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34)
무공 쓰는 외과 의사-534화(534/540)
제104장 부모 마음(5)
준후는 대뜸 산모의 복부에 손부터 얹었다.
눈썹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처치를 긴급하게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손바닥을 통해 산모의 복부로, 양수로, 태아에게로 향했다.
내공은 음파 형태로 일렁거리다가 곧 특이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다름 아닌 사슬이었다.
총 4개의 내공 사슬이 태아의 양쪽 손목과 발목을 단단하게 옭아맸다.
그동안 산부인과 입원 환자를 상대로 태아 내공 검사술을 집중적으로 수련한 덕분에.
준후의 내공술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내공을 원하는 형태로 형상화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명실상부, 조화경이면서 현경에 가장 가까운 조화경이 된 것이다.
무림이었다면 능히 천하 5대 고수에 손꼽힐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준후도 응급 환자 앞에서는 늘 속수무책이었다.
오래전부터 느껴왔지만.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수십 배 더 어려웠다.
제발, 이쯤에서 양보해 주라.
선생님이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란다.
준후는 태아에게 간청하면서 다음 작업에 돌입했다.
신현정이 잠시 내려놓은 초음파 스틱을 손에 쥐고 산모의 배를 직접 문질렀다.
초음파 모니터를 관찰하니.
태아가 꼬물거리면서 몸을 뒤척이려고 시도 중이었다.
하지만 내공의 사슬에 꽁꽁 묶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급한 불은 끈 것이다.
내공 사슬은 대략 20분 정도 유지될 텐데 그 시간이면 카테터 시술을 마칠 수 있었다.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 이유는…….
초음파 촬영을 하니 내공 사슬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던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요령껏 얼버무리는 수밖에…….
준후는 그동안 손댔던 것을 전부 원상복구하고 제천공을 풀었다.
그제야 얼어붙어 있던 스태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았다.
“준후야. 이제 어떻게 할래?”
신현정이 준후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를?”
“수술을 더 진행하는 건 무리야. 여기서 접자. 물론 포기하자는 소리는 아니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고.”
신현정은 이번 수술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 아이만 움직이지 않았다면 수술은 성공했으리라.
그리고 2차전에서는 더 잘할 자신도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기는 이르지. 초음파 모니터링 계속해 줘.”
“대책이 없는데 보기만 한다고 뭐가 달라져?”
“글쎄. 일단 확인부터 해봐.”
준후의 재촉에 신현정은 하는 수 없이 초음파 스틱을 손에 쥐었다. 이윽고 떠오른 영상에 눈이 당장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태아는 분명 의식이 깨어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달까.
모니터를 유심히 관찰하면.
하얀 띠 같은 것이 태아의 사지를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었다.
“이 띠 같은 거, 네 눈에도 보여? 이런 게 갑자기 왜 생겨났지?”
“난 잘 모르겠는데?”
“여러분들한테는 어떻게 보여요?”
신현정이 스태프들에게 의견을 구했으나 스태프들은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그들에게는 신현정만큼 초음파를 정밀하게 판독할 눈이 없었다.
“기가 막히네. 이런 케이스는 본 적 없는데…….”
“하늘이 도왔나 보지. 코일 색전술 시작한다.”
준후는 서둘러 손을 썼다.
중대뇌동맥 경막 부위로 카테터를 밀어 넣었다.
길고 험난했던 모험이 끝나는 장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혈관을 금속 코일이 채워갔다.
태아의 뇌혈관 시술.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전대미문의 시술이 무려 첫 시도 만에 성공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하늘이 한 번 더 준후를 배신했다.
“준후야. 태아 심박이 180을 넘었어.”
“180? 많이 높은 거지?”
“이 정도만 유지되면 그나마 괜찮은데 이 이상이면 위험해.”
임신 후기 태아의 정상 심박수는 140bpm이었다. 180bpm이면 아슬아슬하지만 봐줄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심박이 더 올라간다면?
그때는 신현정도 답이 없었다.
아까 투여한 진정제가 빨리 효과를 발휘해야 할 텐데…….
뜻밖의 비보가 한 번 더 준후의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덩달아 손속이 느려졌다.
태아의 심박이 왜 갑자기 빨라진 걸까.
짚이는 바가 있었다.
태아는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내공 사슬이 그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제 몸이 제 마음대로 안 되니 답답해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공 사슬을 해체할 수도 없었다.
해체 즉시 태아는 몸부림을 칠 테고 카테터는 빠져나갈 것이다.
현상을 유지하면 심박이 상승하고 내공 사슬을 제거하면 수술이 실패하고.
준후는 진퇴양난이었다.
앞에도 낭떠러지, 뒤에도 낭떠러지였다.
조화경의 최고수도 난리 치는 아이 앞에서는 별수가 없었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사용할 수 있는 패는 다 소모했는데.
어둠보다 어둡고.
늪보다 끈적한 절망이 엄습했다.
정말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까.
수술을 속행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까.
찰나의 순간 수많은 번뇌가 준후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준후는 늘 그랬듯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주변이 어둠 천지라면.
스스로가 빛이 되어야 했다.
‘그 무공’에 모든 것을 건다. ‘그 무공’이 안 통하면 그땐 어쩔 수 없어.
준후는 잊고 있었던 비장의 한 수를 펼쳤다.
* * *
태아 뇌혈관 수술을 펼친 지 3달이 지났다.
김남준·서보영 부부는 건강하게 2세를 출산했다. 갈렌정맥기형을 치료한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매스컴이 기사를 대서특필했는데 거기에는 준후 이야기도 곁들어져 있었다.
준후가 세계 최초로 태아 뇌혈관 시술에 성공한 덕분에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고.
준후는 기사를 확인하고 씽긋 웃었다.
고생한 만큼 결과가 좋아서 보람찼다.
태아의 심박이 가파르게 치솟던 일촉즉발의 순간.
준후가 떠올린 무공은 바로 ‘전음’이었다.
현대인의 입맛대로 표현하자면 텔레파시였다. 상대방의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준후는 태아에게 전음을 보냈다.
태아가 뱃속에서부터 언어를 익혔을 리는 만무했으므로 그 행위는 멍청해 보였다.
하지만 노림수는 그게 아니었다.
준후는 전음으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흥분한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필살의 묘수였다.
포근하고 규칙적인 멜로디에 태아가 서서히 반응을 보였다.
거칠었던 움직임이 잦아들고 심박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자장가의 효과는 탁월했다!
덕분에 준후는 태아의 기형정맥을 코일로 채우고 카테터를 제거하는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수술은 당연히 대성공이었다.
한 달 뒤 해당 수술을 논문으로 정리해서 해외 사이트에 발표했을 때.
세계 각지에서 말도 안 된다는 항의를 받았지만 곧 잠잠해졌다.
수술을 참관한 벤 덕분이었다.
벤이 두 눈으로 준후의 집도를 봤다고 하니 볼멘소리들이 쏙 들어갔다.
병원장이 준후를 엿 먹이려고 데려온 벤이 오히려 준후의 든든한 아군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 부부 시술 이후.
준후는 오히려 병원장과 멀어졌다.
병원장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갑게 굴지 않았다.
준후를 찾지도 않았다.
수술이 성공하고 국내외에서 준후를 향한 찬사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녀석은 나를 잡아먹을 놈이야. 슬슬 제거하는 편이 좋겠어. 안 그랬다간 도리어 내가 위험해.
병원장은 아마 그런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병원장의 판단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아영이 임신하면서 준후는 자신의 진로를 재설정하고 있었는데 준후의 다음 목표는 무려 병원장이었다.
무공으로 날아다닌다고 한들.
몸뚱이는 하나라 준후의 활약은 한계가 뚜렷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실력 있는 신경외과의를 늘리는 편이 더 낫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 무렵부터 준후는 외래 진료와 수술 환자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찾아온 봄의 끝자락.
주말을 맞은 준후는 아영과 산속 별장을 찾았다.
별장 주변이 녹음으로 푸르렀다.
산바람은 상쾌했으며 짹짹거리는 산새울음이 쾌활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향긋한 풀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준후는 아영과 손을 맞잡고서 산책로를 걷는 중이었다.
슬쩍 바라본 아영의 배가 꽤 불러 있었다.
아영은 두 달 전 흉부외과를 그만두었다.
준후의 내공 수액술을 받는다고 해도 임신 상태로 고된 흉부외과 수술을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쉬면서 느낀 건데 세상이 이렇게 평화로운 줄 몰랐어.”
“…….”
“그동안 나 혼자만 전쟁터에서 싸운 것 같아.”
“전쟁터라…… 표현 좋네.”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모든 직업에 다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외과의의 고충은 매일 삶과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터라는 표현이 알맞았다.
“준후 너도, 얼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내가?”
“응. 피부도 좋아지고 표정도 좋아지고.”
“일을 줄인 게 효과가 있나 보네.”
준후가 피식 웃었다.
업무를 줄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동기 경수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제발, 메시아 증후군을 버리라고.
그 말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덜했다.
준후가 설령 현경의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아니. 생사경에 도달한다고 해도, 인류 전체를 치유할 수는 없으리라.
“책 쓰는 건 어때?”
“한 달 정도면 끝날 것 같아.”
“벌써 진도가 그렇게 됐어?”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잖아.”
준후가 검지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요즘은 남는 시간에 신경외과 전공 교재를 집필하고 있었다.
준후가 그동안 수련한 외과 수술의 정수를 담은 교제를.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서전이나 새내기 서전과 나눈다면 어떨까.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집필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잠깐 쉬자.”
“응.”
두 사람이 산 중턱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아영이 갑자기 손바닥으로 본인 무릎을 툭툭 쳤다.
“누워.”
“응? 갑자기?”
“시원한 산바람 쐬면서 낮잠을 즐겨봐.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준후는 아영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웠다. 아영의 배가 볼록해서 아영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 볼록한 배 안에 2세가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운기조식으로 잠을 대체했던 준후는 모처럼 두 눈을 감았다.
몸을 편안하게 이완하고 어둠을 이불 삼았다.
의식이 차차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의원님. 서 공자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아까부터 옆에서 쫑알쫑알 말이 많구나. 너 때문에 될 치료도 안 되겠어. 살 놈이면 살고 죽을 놈이면 죽겠지.
-편작의 후손께서 치료를 못 하면 대체 누가 서 공자를 치료하겠습니까?
-에끼, 이놈아. 신선도 죽은 사람은 못 살린다.
-서 공자의 숨이 아직 붙어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으니 살릴 수 있는 거겠죠?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나불거리며 이 녀석 가슴이 아니라 네놈의 입을 꿰매 버릴 것이야.
-죄송합니다. 서 공자가 무림맹에 워낙 중요한 인물이라서요. 무림맹주께서 말씀하시길 복수심을 극복하면 하늘을 품을 인재라고 하셨습니다.
-그 대단한 놈이 왜 이 꼴이 났누?
-적일도라는 마두를 처치하다가 그만…….
-적일도? 소문은 익히 들었지. 그 잡놈이 내 거처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고. 어쨌거나 잡담은 여기까지다. 이 아이, 갈비뼈가 조각나고 혈관이 찢어지고 허파가 드러났어.
-…….
-만만치 않은 치료가 될 거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대화를 듣던 중 준후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온몸이 어느새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뭐야?
무림의 나, 아직 안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