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36)
무공 쓰는 외과 의사-536화(536/540)
제105장 완결과 연결(2)
-날 치료하면 안 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둬.
수술방으로 향하는 동안 스승의 비장한 목소리가 귓가에 또 뇌리에 울려 퍼졌다.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건조한 입술이 갈라지며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20분 전.
준후는 스승을 자신의 차에 태운 후 레이서처럼 도로를 질주했다.
필요한 응급처치를 직접 했기에.
119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그랬다.
광란의 질주를 한 덕분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부산 신원대 병원에 도착했다.
“과장님. 이분은……?”
미리 전화해서 마중 나와 있던 우현이 스승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신경외과 전공자라면 스승을 모를 수 없었다. 준후 이전에 스승이 있었으므로.
“수술방은 예약했지?”
“네. 마취의 선생님도 대기 중입니다. 최 교수님도 대기 중이고요.”
“잘했다.”
“수술 동의서는 어떻게 할까요?”
“줘 봐.”
준후가 동의서에 직접 서명했다.
잠기지 않는 스승의 휴대폰으로 스승의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스승의 부모는 서울에 있어서 제 때 서명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의원님은 곧바로 수술방으로 보내.”
“CT나 MRI 촬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MRI는 촬영할 시간 없고. 수술방에서 Portable CT만 촬영하자꾸나.”
“알겠습니다. 과장님.”
우현이 스승을 침상에 눕힌 후 총알같이 수술방으로 먼저 달려 나갔다.
준후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응급실을 통과해 비어 있던 진료 의자에 앉았다.
육체가 피로한 건 아니었고.
마음이 피로했다.
두개골이 함몰되면서 푹 꺼진 측두부.
두피가 찢어지면서 철철 흐르던 피.
새파랗게 질린 스승의 낯빛.
귀에서 흘러내리던 뇌척수액.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스승의 처참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한 박자 늦게 죄책감이 덮쳐왔다.
자신이 약속 장소에 몇 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도 스승이 그런 끔찍한 비극에 휘말릴 이유는 없었을 텐데…….
준후는 양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잰 걸음으로 수술방을 향했다.
-날 치료하면 안 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둬.
스승은 왜 그런 황당무계한 말을 했을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식이 혼미해진 나머지 헛소리가 튀어나온 걸까.
아니면 준후가 모르는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준후는 스승이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먼지 한 톨만큼도 없었다.
부모님과 아영과 스승.
준후에게 가장 소중한 세 사람이었다. 그들을 지켜야 한다면 온 세상과도 맞서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과장님. 괜찮으십니까?”
수술실에 들어가자 최진구가 아는 체를 했다.
수술방에 들어가지 않고 준후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아뇨. 솔직히 최악이네요.”
“빈 말도 안 하실 정도면 정말 최악이 맞군요.”
“네.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좋겠어요.”
“수술은 제게 맡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최진구가 조심스레 말했다.
외과의의 금기 중 하나가 가족이나 지인을 직접 수술하지 않는 것이었다.
냉정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극심한 부담감에 오히려 실수할 확률이 높아서 그랬다.
만약 준후가 다치고 최진구가 준후를 수술하게 된다면.
최진구조차 준후를 제대로 수술할 자신이 없었다.
“안 됩니다.”
“어째서…….”
“최 교수님이 감당하기에 스승님의 상태가 워낙 처참합니다. 솔직히 저도 자신이 없을 정도예요.”
“그 정도입니까?”
최진구가 놀란 부엉이 눈으로 물었다.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빌어먹을 놈이 스승의 머리를 얼마나 악랄하게 가격했는지 스승의 머릿속은 이미 곤죽이나 다름없었다.
점혈법으로나마 출혈을 막지 않았다면 스승은 이송 중에 뇌사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도 최 교수님이 도와주시면 어떻게든 될 것 같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젖 먹던 힘을 다해보지요.”
두 사람이 계수대로 이동했다.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수술모와 수술장갑, 수술 마스크, 루뻬, 수술 장갑을 착용했다.
환자도 보통 환자가 아니고.
수술 난이도도 보통이 아니라서 두 사람 다 표정이 비장했다.
지이이잉.
두 사람이 나란히 9번 수술방으로 입장했다.
수술대에 스승이 누워 있었다.
무영등 불빛 때문에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환자 감시 장치의 전선과 수액 줄이 스승에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체온 37도.
혈압은 수축기 200mmHg, 이완기 150mmHg.
맥박은 분당 150회.
SpO2(산소 포화도)는 85.
활력징후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심전도 그래프가 파도처럼 불규칙했으며 뇌전도 그래프는 거의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살아 있다는 표현보다 목숨만 붙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만니톨(이뇨제)과 항고혈압제, 진정제, 부신 피질 호르몬제, 혈전 용해제, 헤파린(항응고제) 전부 IV로 믹스해서 투여해.”
“…….”
“머리 거상하고 산소는 고농도로 투여하고 체온 낮추고.”
준후는 신속하게 내과적인 오더부터 내렸다.
“약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이러다 부작용이라도 나타나면…….”
최진구가 우려를 표했다.
“두개골 열 때까지 버티려면 이 방법에 없습니다.”
준후의 대답은 단호했다.
스승의 상태가 비정상이니 정상적인 치료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수술 전에 CT 촬영부터 하죠. 최 교수님이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진구가 Portable CT 촬영을 하는 동안.
준후는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내공 뇌혈관 조영술로 파악한 스승의 머리 상태를 복기하면서 수술 방향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승부처가 두 곳이 있었다.
그 지점에서 삐끗한다면 스승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또는 반드시 영구 장애를 얻게 될 것이다.
최진구가 실력 있는 서전임에도 흔쾌히 수술을 맡기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스승님.
당신을 만나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어요.
그동안 받은 은혜.
이번에야말로 온전히 보답하겠습니다.
각오를 마친 준후가 눈을 떴다.
후회와 죄책감이 말끔하게 사라진 눈빛이 용맹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번쩍! 번쩍!
Portable CT 촬영이 끝나고 모니터에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을 확인한 스태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기겁했다.
뇌가 좌측으로 쏠려 있었고.
직경 10cmx10cm에 달하는 거대 혈종 2개가 중대 뇌동맥을 장악했으며.
일부 뇌 조직은 괴사해서 까맣게 죽어 있었다.
“허…… 이것 참, 해도 해도 너무하군요.”
최진구가 참다못해 탄식조로 말했다. 정말 환자를 수술하는 게 맞나 싶었다.
만약 준후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박재현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술을 해도 죽을 환자.
테이블 데스가 명백한 환자가 바로 박재현이었다.
“과장님. 약물 투여 끝났습니다. 바이탈이 희미하지만 내려가고 있고요.”
우현이 야무지게 노티를 했다.
준후 일편단심인 우현은 이번에도 준후가 수술에 성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했어. 그럼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준후의 외침이 수술방에 울려 퍼졌다.
준후는 시작부터 제천공을 펼쳤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준후의 전신에서 뻗어나간 내공이 삽시간에 수술대 주변과 스태프들을 감쌌다.
시간을 왜곡하는 투명한 장.
이 안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만약 스태프가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시계를 본다면 이상한 점을 느꼈을 것이다.
본인이 속으로 센 숫자보다 시계 속 숫자가 느리게 움직였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시간 선을 가르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실존할 수 있을 거라고.
스으으윽.
스으으윽.
제2어시스트이자 이제 3년 차가 된 우현이 환자의 머리를 넓게 소독하고 그 위에 방포를 덮었다.
“10번.”
“네. 과장님.”
준후는 스승, 아니, 환자의 전두엽과 측두엽에 각각 4cm 길이의 절개창을 만들었다.
절개창이 자로 대고 그은 것처럼 반듯했다.
“측두골 절개술은 최 교수님이 맡아주세요. 저는 전두골 절개술을 맡겠습니다.”
“그러시죠.”
최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는 머리에 광범위한 뇌손상을 입었다.
절개창을 하나만 내서 해결할 수가 없었다.
“아마 최 교수님이 두개골 절개술을 끝날 때쯤이면 제 쪽은 웬만한 수술이 다 끝나 있을 거예요. 그때 교대하시죠.”
“저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설마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려고요.”
“두고 보시면 알아요.”
더 설명하기에는 입이 아팠다.
준후가 먼저 질주했다.
리트랙터(견인기)를 사용해 절개창을 상하로 벌렸다. 수술 시야가 한결 광활해졌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양손에 드릴을 쥐고 전두골에 총 4개의 구멍을 뚫었다. 슬러시 입자처럼 고운 골편이 구멍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치이이익.
제3어시스트가 골편을 썩션했다.
준후는 메스로 네 개의 구멍을 이었다. 전두골에 직사각형이 만들어졌다.
큐렛으로 전두골을 드러내자 코앞에 뇌막이 있었다.
뇌압이 워낙 높았던 탓에 뇌가 전두골까지 밀려났던 것이다.
“프로브(탐침).”
“네. 과장님.”
푸우우욱!
준후는 과감하게 탐침을 Kocher’s point로 찔러 넣었다.
운동 중추신경과 주요 혈맥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간 탐침이 몬로공 앞에 도달했다.
“뇌압 측정값은?”
“……4…… 40mmHg입니다.”
제3어시스트가 눈을 깜빡거리며 계측기를 응시했다.
정상 뇌압이 0-15mmHg임을 감안하면 끔찍하게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뇨제와 약물을 들이 부어서 낮춘 것이었다.
“일단 두개골을 들어냈으니까 뇌압은 계속 낮아질 거야.”
“그럼 수술은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 혈종부터 제거하고 지혈도 해야지. 그다음이 본 게임이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알겠습니다.”
준후는 우유 지방층처럼 불투명한 경막부터 절제했다.
미세 혈관이 넓게 분포한 곳이라 메스가 닿는 곳마다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때마다 제3어시스트가 양손을 써가며 썩션했다.
“우욱.”
갑자기 구역질을 하는 준후.
제3어시스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속이 좀 안 좋나 보다. 괜찮아. 금방 나아질 테니까.”
준후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가뜩이나 고난이도 수술을 하는데 대들보인 준후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전쟁터에서 사기가 중요한 만큼.
수술방에서도 사기가 중요했다.
준후가 갑자기 구역질을 한 이유라면 제천공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수술 시간이 벌써 20분을 넘겼다. 그동안 모든 스태프를 감싼 시간의 장을 펼쳐댔더니 기혈에 무리가 갔다.
일부 혈은 뭉치고 일부 혈은 희미하게 역류할 조짐이 보였다.
그렇다고 제천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승을 살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오로지 시간만이 스승을 살릴 수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부디 20분만 버텨다오. 생명과 관련된 처치는 그 안에 끝낼 테니까.
준후는 구역질을 식도까지 끌어내렸다.
경막을 다 절개하자 거대 혈종이 위치한 지주막이 모습을 드러났다.
미세 현미경으로 바라본 혈종은 마치 검붉은 혹성 같았다.
“이렇게 큰 혈종은 난생 처음 봅니다……. 썩션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안 되지.”
“그러면 어떻게…….”
“거슬리는 게 있으면 베어버리면 돼. 메스, 제 전용으로요.”
“네. 과장님.”
소독 간호사가 건넨 것은 흑요석 메스였다.
메스보다 수십 배 날카롭지만 강도가 약해 쉽게 부러져 그 어떤 외과의도 다루지 못하는 메스.
준후는 흑요석 메스의 칼날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
칼날이 은갈치의 비늘처럼 눈부셨다.
서걱!
준후는 단번에 혈종의 목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