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538)
무공 쓰는 외과 의사-538화(538/540)
제105장 완결과 연결(4)
“하아…….”
준후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중환자실에서 준후는 머리를 붕대로 감싼, 초췌한 스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승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스승의 뜻을 저버리느냐, 존중하느냐.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준후의 선택은 전자였다.
스승의 포부 따위 준후가 알 바 아니었다. 준후에게는 그저 스승이 더 소중할 따름이었다.
스승이 없는 세상을 아직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다.
흑요석 메스는 정확히 측두엽에 괴사한 조직만 도려냈다.
하지만 스승을 내려다보는 준후의 눈빛은 여전히 착잡하기만 했다.
수술이 끝난 지도 벌써 보름째였건만 스승의 의식은 회복될 줄을 몰랐다.
“스승님.”
준후가 가볍게 스승의 어깨를 흔들었다.
스승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대수술을 치렀다는 걸 감안해도 의식 회복이 너무 늦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과장님. EEG(뇌전도) 가지고 왔습니다.”
우현이 Portable EEG를 끌고 침상에 다가왔다.
“그래. 같이 연결해 보자.”
준후는 손수 스승의 머리를 감싼 붕대를 품고 뇌전도 전극을 연결했다.
띠이이이.
띠이이이.
기계음과 함께 뇌전도 모니터가 상하로 요동쳤다.
뇌파는 정상이 아니었다.
꼼꼼히 분석한 결과 다형성 d파와 다형성 a파가 번갈아 나타났다.
“과장님. 이건…….”
우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준후는 대답 대신 힘없이 웃었다.
뜻을 저버린 스승이 벌을 내린 걸까.
스승의 뇌파는 명백하게 ‘식물인간’ 뇌파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재현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면서 매스컴이 뜨거워졌다.
최근 기승하고 있는 묻지마 흉기 난동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재현이 그동안 추진해 온 의원 활동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졌다.
의과의 출신 국회의원 1호.
그동안 발의한 법안 등등.
재현의 명성과 안타까운 사연 덕분인지 매스컴은 대부분 재현을 호의적으로 다루었다.
그 틈을 고현철은 놓치지 않았다.
스승의 의지를 이어받아 박재현 법, 그러니까 응급 외과의 의무 배정법을 추진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뜨거운 여론에 맞설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약간의 여론 조작도 있었다.
-서 과장, 수술이 예정보다 늦었던 걸로 해줘요. 집도할 의사가 없어서 한참 대기하다가 간신히 수술한 걸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어느 날, 고현철이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응급 외과의 의무 배정법을 추진하기 위한, 정당한 명분을 얻기 위한 부탁이었다.
준후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이 유쾌하지 않았지만 수락했다.
스승이 건강하게 의식을 회복했다면 거절했겠지만 식물인간이 된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준후는 고현철이 부탁한 멘트를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수술에서.
준후의 대내외적인 평판은 딱히 추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정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많은 사람이 준후와 재현의 끈끈한 관계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스승이 식물인간이 된 후.
준후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식물인간 치료법에 대해 연구했다.
대부분이 헛물이었다.
뇌사와 달리 식물인간은 드물게 회복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기적 정도랄까.
그래서 준후는 논문을 뒤지고 살피는 일을 포기했다.
본인이 직접 치료에 뛰어들었다.
매일 스승을 찾아가 간호사들 몰래 스승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스승의 머리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
내공 특유의 치유력에 기대를 걸어봤지만 헛수고였다. 내공 치료를 보름 가까이 했음에도 손톱만큼의 진전조차 없었다.
스승은 한 달 째 식물인간이었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스승의 몸을 이 자세, 저 자세로 뒤집어주어야 했다.
비위관, 그러니까 콧줄로 영양분을 공급 받았으며.
대소변도 간호사들이 처리해 주어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스승의 육신이 꼭 겨울에 고목처럼 앙상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두 달이 지났다.
준후의 가슴은 이미 다 타버려서 재만 남았다.
그 와중에 잠잠하던 매스컴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정기 국회가 시작되면서 이른 바 ‘박재현 법’이 정식으로 발의된 것이다.
찬성표가 과반수를 넘기면서 법안은 통과되었다. 시행령에 따라 법안은 내년 하반기부터 적용될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준후는 여전히 스승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럴 듯한 묘수를 발견했다.
만약 이 방법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돌파구는 없어 보였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세요.”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준후는 병상 주변에 촤르륵 커튼을 쳤다.
스승의 이마에 손바닥을 얹었다.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였다.
* * *
재현은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의 바다에 빠져 있음에도 재현은 전혀 두렵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극도의 편안함을 느꼈다.
태아가 되어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자신은 죽었나, 살았나.
이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도 생각들은 단단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물에 젖은 휴지처럼 흐물흐물 흩어져 버렸다.
이제는 아무렴 상관없는 것이었다.
재현은 지금 느끼는 포근함이 황홀했다. 이 황홀함을 생각 따위에게 먼지만큼도 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어둠의 바다에 울려 퍼졌다.
-스승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준후입니다.
재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여기서 준후의 목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준후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스승님. 제 목소리가 들리면 몸을 움직여 보세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재현은 준후의 지시를 따라보았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난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제대로 된 설명을 해봐.”
-혹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신가요?
준후는 아까부터 계속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재현의 외침은 준후에게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몸을 움직였음에도 준후는 이를 움직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두 사람이 존재하는 세계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재현은 무력감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쓸모없는 환청이겠지.
무시하자.
살면서 이렇게 아늑한 기분을 느껴 본 건 처음이야.
난 이제 쉬고 싶어. 그리고 쉴 만한 자격도 충분하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재현은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재현은 환자와 의사들이 한 번이라도, 하루라도 더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거면 족하지 않은가.
자신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스승님, 돌아오세요. 저는 아직 스승님이 필요합니다.
“다 끝났어. 네가 진짜 준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마. 이곳은 너무 평화로워. 난 평화롭게 살고 싶고.”
-저랑 한 약속 잊으셨어요? 스승님은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고 저는 환자들의 등불이 되기로 했잖아요. 이렇게 먼저 떠나시는 건 반칙이에요.
“…….”
-부디 돌아와서 약속을 지켜주세요. 저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요. 스승님이 안 계신 세상은 상상도 안 해봤단 말입니다.
준후의 외침이 절절하면서도 촉촉했다.
순간 재현도 가슴이 울컥하고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너무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다.
준후와 나눴던 영혼의 약속을.
심지어!
부끄럽게도 이 약속은 재현이 준후에게 먼저 제안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 어둠의 바다는 너무 포근해서 떠나고 싶지 않았으며 설령 떠나고 싶다고 한들 떠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기 먼 곳에서 한 줄기 빛무리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 빛들은 멀리 있는데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영롱했다.
잘은 모르겠다만 저 빛에 닿을 수 있다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듯 했다.
-스승님. 저를 잊지 마세요. 저와 했던 약속도 잊지 마세요. 무엇보다 스승님이 스승님 자신과 했던 약속도 잊지 마세요. 끝까지 발버둥 치다보면 반드시 길이 보인다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잖아요.
까닭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준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외침이 아니라 속삭임이 되어버렸다.
재현은 묵묵히 빛무리를 쳐다보았다.
편안한 어둠의 바다.
아마도 새로운 고통이 시작될 빛무리.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재현은 빛무리를 향해 헤엄쳐 나갔다. 빛무리가 가까워 보여서 금방 닿을 것 같았지만 착각이었다.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았지만 참았다.
희망고문.
외과의 생활을 하는 도중에, 또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주변 사람에게 누누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놈의 희망에게 그만 좀 착취당하라고.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희망도 끝이 없고 절망도 끝이 없다는 걸.
똑같이 끝이 없다면 자신은 차라리 희망을 택하겠다고.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곳에 시간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 재현을 빛무리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재현이 찬란한 빛무리를 손에 쥐었다.
빛무리는 화끈할 정도로 뜨거웠다.
잊고 있었던 통증이란 것이 전신으로 몰려들었다.
“으으으으.”
재현은 신음을 흘리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놀란 준후였다.
준후는 한참동안 눈만 깜빡거리다가 재현을 거칠게 끌어안았다. 준후의 몸이 서럽게 떨고 있었다.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래…… 네가 나를 불렀구나.”
재현이 미소를 띤 채 준후의 등을 토닥거렸다.
* * *
의식을 차린 지 나흘 만에 스승은 퇴원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니?”
하루는 스승이 준후에게 물었다.
본인이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 듣고 난 후였다.
“이제야 솔직히 말씀 드릴 기회가 찾아왔네요. 저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응? 초능력자라도 된다는 소리니?”
“그런 셈이죠.”
준후가 멋쩍게 웃었다.
자신의 근본이 무림에 있었음을 밝혔다.
무협 소설을 읽어본 스승은 비교적 거부감 없이 준후의 정체를 받아들였다.
애초에 준후가 그동안 보여준 활약들이 워낙 상식을 벗어나 있었으니까.
“그래. 준후 네가 무림 출신이라는 건 알겠다. 그래도 식물인간을 무공으로 치료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구나.”
“전음과 선천진기를 섞어 썼습니다.”
“전음과 선천진기?”
“네.”
선천진기는 인간이 타고난 생명력이었다.
내공은 소모하면 보충할 수 있었지만 선천진기는 보충할 수가 없었다.
선천진기가 다한 인간은 죽는다.
그러니까 준후는 필사의 각오로 재현을 치료했던 것이다.
우선 선천진기로 뇌의 활동성을 극대화한 후 전음을 펼쳤다.
식물인간 환자 중에도 의식이 존재하는 환자가 있는데.
의식이 있다면 전음으로 소통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계획은 맞아 떨어졌다.
뇌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전음을 들은 스승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는 100퍼센트 가능한 치료법은 아니었다.
준후가 스승의 치료에 고무되어 다른 식물인간 환자에게 같은 치료법을 시도했다.
의외로 치료는 실패했다.
스승처럼 삶으로 돌아오고 싶은 의지가 간절해야 치료가 성공하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스승의 케이스가 희귀했던 걸까.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내릴 수 없었다.
어쨌거나 준후는 기뻤다.
스승은 살았고 이른 바 박재현 법은 이미 통과됐으니까.
이제 준후에게 남은 숙제는 단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