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00)
아쿠아마린 호의 회의실에 얼굴을 내민 것은, 갑판에서 축 늘어진 단원들을 제외한 인원뿐이었다.
그나마 좀 늦게 참전해서 피로도가 덜한 마리안만이 그들을 따라서 프란시스에게 돌아왔다. 그녀의 명령 때문에 호위직을 내버려두고 전선에 나갔다지만, 일이 다 끝났으니 다시 호위 역할을 수행해야할 차례였다.
마리안의 어깨 너머에서 두 사람을 본 프란시스가 피로감을 다 숨기지 못한 기색으로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두 사람 모두.”
아쿠아마린은 무인(無人)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배가 아니다.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았을 뿐, 프란시스 역시 악귀문어들의 공세에 맞서서 계속 배를 조종하고 있었다.
[임펄스 웨이브]로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놈들의 맥을 다 끊어주고, 소각포를 짧게 발사해가면서 대규모 마법을 쓰려던 악귀문어들을 태워버렸다.만약 그녀가 두 손을 놓고 있었다면, 갑판 위에서 분투했던 단원들은 그 절반의 시간도 버텨내지 못했으리라.
“프란, 상태가 안 좋아보입니다만.”
레너드도 그걸 짐작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단원들과 비교해서 체력이 뒤떨어지는 그녀였다. 간접적인 수준의 전투였다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모험가도 나가떨어질 싸움에서 멀쩡할 리가 없었다.
프란시스는 쓰게 웃으면서 그 지적에 수긍했다.
“아하하, 표정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네요. 이렇게까지 집중해본 것도 오랜만이라서 좀 힘든 모양이에요.”
대부분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정신력은 결국 체력에서 나오는 법이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안 먹고 안 마시면서 계속 움직일 순 없었다.
상단전을 개방해서 몸과 정신을 독립시키는 경지에 오르면 또 모르겠지만, 그걸 제외하면 예외를 찾기 어렵다.
“이번 〈균열〉의 탐사보고는 약식으로 진행하시죠. 회복하고 난 다음에 상세하게 들려드리겠습니다.”
“…후, 알겠어요. 레너드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내 상태가 안 좋다는 거겠죠. 짧게 부탁해요.”
그 제안을 받아들인 프란시스가 제 뺨을 탁탁 두들겼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두 눈꺼풀이 내려와, 자꾸 가라앉는 의식을 푹 잠기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쿠아마린 호를 벗어나서, 심해도시의 중심부로 돌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균열수호자〉와 조우했습니다. 문어 형상의 거대괴물이었는데, 물리적인 실체를 지니지 않는 놈이더군요. 그래서 놈의 임시명칭을 ‘마인드크라켄’으로 명명하고, 그대로 전투를 개시했는데—.”
레너드의 설명은 나름 간결했지만, 그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마리안도 프란시스도 금방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인드크라켄.
추정등급이 무려 S랭크에 달하는, 이계에서 온 거대괴물과 대결한 것도 모자라서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오다니? 대마법사 잭 러셀의 지분이 컸다지만 실로 대단한 위업이었다.
검을 타고서 날아다녔다는 설명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레너드는 직접 어검비행을 시연해보이기까지 했다.
“마, 마법검이 아니라 오러만으로 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예.”
프란시스보다 더 경악한 마리안이 그 원리를 궁금해했지만, 상단전을 다루지 못하는 경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녀는 매우 아쉬워하면서도 수련의욕이 더 강해졌는지, 두 눈을 의지로 불태우면서 검 위에 올라타있는 레너드의 모습을 몇 번이고 훑어보았다.
“계속하겠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재개되었다.
기본적으로 전투의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다보니, 그렇게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과 마인드크라켄의 전투는 아주 치열했으나,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넣지 않는다면 한 장에 다 써내고도 남을 터였다.
잭 러셀의 대마법도, 레너드가 쓴 강기공으로도 제대로 된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는 것.
소모전의 반복에 열 받은 마인드크라켄이 비장의 수단으로 정신지배를 꺼내든 것.
그걸 역이용해서 치명상을 입히고, 놈의 체내에 숨겨져있던 매개체를 파괴한 것까지.
“아, 그에 대해서는 나도 상당히 궁금했네만.”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러셀이 끼어들었다.
“마인드크라켄, 놈은 틀림없이 정신생명체였네. 자네와 나는 의지력을 다룰 수 있어서 놈의 정신지배에 당하지 않았지만, 수비와 공격은 전혀 다른 영역이야. 어떻게 한 건가?”
대마법사의 설명은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다.
탄생할 때부터 정신체로 존재해왔을 놈과 정신의 영역에서 싸운다는 것은, 물고기와 잠수로 겨루겠다는 말과 비슷했다.
상대방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과 그 시도를 뒤집어서 거꾸로 쳐들어가는 것. 난이도의 차이는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 수준이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레너드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해버렸다.
“놈이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초월경에 도달하진 못했으나, 마음으로 검을 다루는 게 가능합니다. 제 심상으로 끌어들여서 힘의 격차를 줄여놓고 급소를 벤 겁니다. 놈이 그 시도를 알아차리거나 경계했다면 실패했겠지만요.”
“심상으로 끌어들여…? 자네, 설마 놈의 정신지배를 일부러 받아들인 건가? 역으로 받아치기 위해서?”
잭 러셀의 눈동자가 드물게 경악으로 일렁거렸다.
대담하다는 말도 부족했다.
만약 마인드크라켄이 레너드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 수에 대응했다면 속절없이 몸을 빼앗겼을 것이다. 죽음보다도 더욱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으니, 제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 겁니다.”
“…성공했으니 더는 뭐라고 안 하겠네만, 무모했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 때가 있으니까요.”
두 사람의 문답을 마지막으로 〈악귀문어의 나락〉에 관련된 전투보고가 끝을 맞이했다.
약식이라도 이 정도면 〈버뮤다〉에 제출할 보고서로는 딱히 부족함이 없었다.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레너드의 말을 기록한 프란시스가 제 깃펜을 내려놓고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커피 몇 잔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피로감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세 번째 〈균열〉은 진입하지 않는 게 좋아보여요. 이미 단원들의 피로가 상당한데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요. 두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식은 너무 위험하기도 하구요.”
이번 탐사에서 아쿠아마린 모험단은 그들의 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인원 자체가 소수인데다, 또한 봉합을 목적으로 한 탐사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레너드의 도박으로 사상자 한 명도 없이 봉합에 성공할 수 있었으나, 아주 조금만 틀어졌어도 큰 피해가 나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몇 번의 탐사경력이 존재하는 〈악귀문어의 나락〉과 달리 〈부패의 정령군단〉은 제대로 된 탐사보고서가 안 나올 정도의 미지수였다. ‘안티매직’과 관련된 아티팩트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한 가지 문제였다.
“항해일정대로 그 주변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아틀란티스로 복귀하도록 하죠.”
프란시스의 음성은 단호했다.
그 결정에 반발하는 사람도 없어서, 회의실에서의 이야기는 그대로 일단락되었다.
제5해역에서의 탐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시 한 번 그것을 실감하게 된 모험이었다.
* * *
제 방으로 되돌아온 레너드는 바로 명상에 들어갔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야한다.’
어검비행부터 시작해서 내공의 반 이상을 소모하고, 심상의 영역까지 진입했으니 몸과 정신이 모두 지쳐있었음에도 놓칠 수 없는 경험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인드크라켄에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인간도 아닌 괴물인데다, 출력 하나만을 장점으로 한 놈의 전투방식은 저열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정신세계에서 놈을 짓뭉개버린 심마의 수법은 과연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단목진의 표상(表象)에 지나지 않는 놈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무공을 사용한다거나, 천마 본인의 진면목을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터.’
결국 연무혁이 패배한 생사결에서 탄생한 존재, 심마는 그 한계가 분명했다.
127초.
그 싸움에서 천마가 보여준 무공과 무위밖에 쓸 수 없다.
‘내공은 아낌없이 사용했다지만, 현경의 고수로서 발휘할 수 있는 권능이나 아수라패황무의 절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 전력의 3할, 아니 그 이하의 역량으로 나를 쓰러트린 거다.’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터득한 후에 진입할 수 있는 초상승의 무학, 〈아수라패황무〉.
그중에서 그가 경험한 초식은 네 개밖에 없었다.
회피불능의 견제기, 육식제천살(六識際擅殺).
방어불능의 파괴기, 파황살선(破皇殺仙).
돌파불능의 반격기,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생존불능의 절명기, 천주멸살(天主滅殺).
하지만 〈오색강기〉를 각성하고서 파훼할 수 있게 된 초식, ‘육식제천살’과 ‘파황살선’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도 이겨낼 수 없었던 초식, ‘타화자재천’과 연무혁의 삶을 끝장낸 ‘천주멸살’이야말로 오의라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레너드는 수십 분에 걸쳐서 그 일순간을 돌아보았다.
마인드크라켄이 암흑촉수와 정신파, 염동력과 이계마법까지 총동원해도 뚫을 수 없었던 방어를.
‘…천주멸살은 볼 수 없었지만, 타화자재천은 봤다. 정신파, 이계마법마저 되받아칠 수 있는 반탄강기의 도달점. 완성되기 전에 무너트리지 못하면 열 배의 힘으로도 돌파할 수 없어.’
타화자재천.
욕계천의 왕, 마라 파피야스가 군림한다고 알려져있는 하늘. 그곳에서 태어난 자는 그 바깥에서 태어난 자의 즐거움을 제 마음대로 강탈할 수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전승을 참고했기 때문인지, ‘타화자재천’은 적의 공격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도 모자라서 제 힘으로 삼거나 그 공격력을 몇 배로 증폭시켜서 돌려주는 게 가능했다.
〈오색강기〉조차 다 뚫어내지 못하고 힘을 흡수당해, 역으로 치명상을 입게 된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림의 대승반야선공이 반탄지기의 극치라고 알려져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상이군.’
원리 자체는 단순하다.
강기로 된 힘의 장막을 펼쳐내서, 그 안에서 움직이던 힘을 전부 빨아들이고 축적하는 것이다. 마인드크라켄의 능력도 다 흡수해버린 것을 보아하니, 무공이 아닌 현상이라도 얼마든지 대응해낼 수 있는 듯했다.
시전자는 그렇게 ‘타화자재천’으로 빨아들인 힘을 내공으로 전환하거나, 제 힘을 얹어서 공격자에게 돌려보낼 수 있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무공이다.’
상고시대의 전설 중 하나, 이화접옥신공(移花接玉神功)과 별 차이가 없는 신공절학이다.
레너드가 그 성능에 감탄하면서도 파해법을 궁리해봤다.
‘타화자재천이 전개되면 그 방어를 깨트릴 수가 없다. 괜히 공격했다간 몇 배의 위력을 돌려받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내 쪽이 불리해지는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구나.’
오상류의 결전오의를 몇 가지 상정해서 돌파를 시도해봐도, 일할의 가망성도 보이지 않는다.
선실 정중앙에서 가부좌를 튼 레너드의 미간으로부터 땀이 배어나왔다. 전생의 힘과 경험으로 수많은 위기를 넘어왔지만, 이번에는 그 전부를 총동원해도 감히 장담할 수 없었다.
현원경(玄遠境).
카르데나스의 일곱 단장이 도달해있는 경지이자, 인간의 틀 자체를 초월하기 시작하는 경계. 〈오색강기〉를 완성해도 겨우 동격에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흐, 재미있군.”
그 난공불락의 벽을 마주한 레너드는 오히려 미소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자리에서 답보하고 있는 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높고 험난한 언덕이나 벽 따위가 아니라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허허벌판이기 때문이었다.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계속 정진할 수 있었다.
잡념을 모두 떨쳐버린 그가 두 눈을 감아버리자, 선실 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선실 바깥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공기였다.
폐관하지 않고도 폐관수련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깊이에 도달하는 집중력이야말로, 검제 연무혁을 구축한 기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