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01)
외력경 9단.
초월경까지 불과 두 걸음을 남겨놓은, 필멸자로서의 한계에 거의 도달해있는 경지다. 외력경 9단과 10단의 차이도 크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미 조화경의 심득(心得)을 보유하고 있는 레너드한테는 내용물을 채워넣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세 번째 〈균열〉을 탐사하지 않아, 외력경 10단까지 돌파할 기회를 놓쳤더라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외력경 9단에서 10단으로 돌파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라고 해봤자 상단전의 문을 두드리는 것 정도다. 이미 상단전을 연 상태라면 내공의 운용이 좀 더 원활해지는 것 정도겠지.’
그 차이가 결코 미미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초월경의 벽 이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심상 내부에서라면 레너드는 전생의 그, 연무혁조차 초월하는 수준이 된다. 내공의 양과 운용능력이 좀 늘어봤자, 격(格)으로 승부하는 경지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오색강기〉처럼 현경의 격과 대등해질 수 있어야했다.
‘깨달음을 얻어야한다. 놈의 타화자재천을 파훼하고, 필살의 일격이라고 할 수 있는 천주멸살까지 뛰어넘을 만한 실마리를 찾아내야해.’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의 접전이 펼쳐졌다.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아수라패황무〉 안에서도 감히 절세의 초식이라고 할 만한, 상고시대의 전설을 따라잡은 무공.
그걸 마주한 레너드의 검이 제 한계를 뛰어넘었다.
오상류의 144식부터 시작해서, 그 전부를 조합하고 연계한 황룡식까지 아낌없이 전개한다. 너무나도 깊게 몰입한 심신이 그의 정신세계에서 이루어진 고찰의 결과마저 몸에 재현시켜, 옷 안에서 툭툭 찢어지고 갈라진 상처로부터 피가 흘렀다.
타화자재천의 방어를 파고들었던 청룡기가 반사당해서 몸을 꿰뚫고, 역장 자체를 불태우려던 주작기가 몇 배로 돌아와서 살갗을 화상으로 일그러트린다.
“……음.”
만약 심상수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면, 레너드는 이미 몇 번을 살해당하고도 남았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핏! 푸슛!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법 전부를 시험해본다.
청룡, 주작, 백호, 현무.
그 모두를 활용하는 황룡의 식에 이르기까지. 한 번 실패할 때마다 몸에 칼자국이 생겨나고, 피부가 일그러지면서 극심한 고통이 찾아들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경의 고수를 대적하면서 이 정도 상처로, 고통으로 머뭇거렸다간 그 즉시 숨통이 끊어질테니까.
신념보다 광기에 더 가까운 집중력이 그의 검격을 지금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타화자재천의 절대방어가 아주 조금씩 그 간격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흐.”
검귀가 미소지었다.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있다는 증명이다.
한 치, 아니 그것보다 못한 수준의 전진이라도 그 발걸음만 멈추지 않을 수 있다면. 하늘이라고 해도 이 세상이 닳아버릴 때까지 계속 걸어나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너머에 닿을 수 있었다.
* * *
〈악귀문어의 나락〉을 봉합한 후, 아쿠아마린의 단원들은 다 극심한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모험가라도 해도, 위험등급이 B 이상에 해당하는 괴물을 천 단위로 상대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저을 터였다.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 단원들은 거의 며칠간 선실 바깥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제 실력의 부족함을 깨닫고 수련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정신력은 결국 체력에서 나오는 것. 집중력이 부족한 상태로 수련해봤자 체력소모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후우, 악력이 좀 돌아왔구만.”
이틀만에 겨우 창대를 쥔 갈라노가 몸을 풀었다.
외력경 9단의 신체능력, 창술가로서 단련된 육체가 더 빠른 회복속도를 보인 것이다.
〈마엘스트롬〉의 전사경은 그 위력만큼이나 막대한 부하를 동반하기에, 사용자의 육체도 극한까지 단련해야한다. 내구가 부족하면 제 몸부터 갈아버리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칫.”
그와 반대로 니니안은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시위를 조율하는 감각이 둔해져있어…. 이틀만에 이 정도로 흐트러지다니, 내 경지가 불완전한 수준이라는 뜻인가.’
하프엘프의 피 덕분에 인간 이상의 손재주와 감각을 타고난 그녀였지만, 연씨궁술의 심오함은 재능 하나로 간단하게 닿을 수 있는 깊이가 아니었다.
단기간에 겨우 한 발 들여놓았던 천발일착의 경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에, 니니안은 아직 다 아물지도 않은 손가락으로 활 시위를 매만졌다.
마음 같아서는 천 발이든 만 발이든 쏘고 싶었으나, 그렇게 몸을 혹사해봤자 뒷걸음질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니니안은 활을 쥔 채로 명상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배 갑판을 지켜냈던 순간을 돌아보았다. 훈련 중에는 불가능했던, 실전에서 겨우 도달해낼 수 있었던 경지의 체험을.
“——후우.”
기본동작을 수백 차례나 반복하던 검사, 마리안이 겨우 한 번 심호흡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두 사람과 달리 그녀는 이미 다 회복한 상태였다.
갑판전투에 가세한 시점 자체가 늦었던데다가, 마리안의 몸 안에 남아있었던 영약이 뒤늦게 녹아내리면서 회복과 성장을 가속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외력경 9단을 돌파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마리안, 너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너 자신이다.
검을 가르칠 때만큼은 그 말투가 엄격해지던 레너드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 또한 깨달음의 단서가 될 수 있겠지만 네 경우에는 그 반대다. 검이 올바르게 나아가야할 궤적을, 몇 년간의 호위생활로 굳어진 몸이 억압하고 있다.
‘그 말은…지키기만 하는 검술로는 더 높은 경지에 닿을 수 없다는 뜻입니까?’
―얼빠진 소리로군. 너는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나? 역습을 도외시한 수비에 무슨 의미가 있지?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 계속 두들겨맞게 될 뿐이다. 적의 공격보다 앞서 제압하는 것도, 반격하는 것도 다 호신의 일환이거늘.
레너드가 그렇게 한 말은 고리타분한 검술서의 글귀보다 몇 배나 알아듣기 쉬웠고, 직접 보여주는 동작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쾌했다.
몇 년이나 억눌려있던 검이 해방되는 순간, 마리안은 지난 8년간의 수련을 불과 며칠만에 뛰어넘었음을 알아차렸다.
‘천재, 아니 그 표현조차도 너무 부족해.’
그리고 몇 단계 위로 막연하게 추측해왔던 레너드의 경지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갈라노에게 창술에 대해서 조언하던 모습, 니니안에게 활을 가르치던 모습까지 생각해봤더니 그 나이대에 터득할 수 있는 범위를 까마득히 초월해있었다.
아주 먼 옛날에 실존했던 존재, 드래곤의 유희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터무니없다.
“……설마, 아니겠지.”
“뭐가 아닌가?”
마리안이 중얼거리는 말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새 그녀 옆으로 다가왔던 갈라노였다.
“심란해보이는 얼굴이군. 대련이라도 한 판 어떤가?”
두 눈을 가늘게 뜬 마리안이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기척을, 좀, 내주십시오.”
“크흠! 헛기침도 몇 번 했다네. 자네가 못 들은 거지.”
“읏, 그랬습니까? 죄송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기척을 숨기지도 않은 상대방에게 제 간격을 침범당한 것은 스스로의 실태지, 그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두 사람은 잠시 무안해서 서로의 눈을 피하다가, 이내 말을 돌렸다.
“그, 우리 대장은 좀 어떤가? 자네가 오늘 한 번 찾아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리안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기이한 반응이었다.
“…레너드의 모습은 직접 볼 수 없었습니다만.”
〈악귀문어의 나락〉을 봉합하고 난 후로, 레너드는 제 방에 틀어박혀서 다시 나오는 일이 없었다.
혹시 몸 상태가 나빠지기라도 한 걸까.
그러한 생각으로 방을 찾아갔었던 게 바로 어제였다.
마리안은 그 당시의 기억을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몸 전체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레너드의 선실 앞에서 그 문짝을 노크하려던, 찰나에 지나지 않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오싹.
반쯤 구부린 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멈추고, 마리안은 그녀 자신의 어리석음과 안일함을 깨달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문 너머에서 흘러넘치는 기운이 어느샌가 그녀의 목덜미를 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너드가 의도하고 한 일이 아니다. 극도의 집중력으로 몰입하던 검객의 투지가, 감히 제 영역을 침범하려던 자에게 경고했던 것이다.
다가오면 넌 죽는다, 라고.
“몸 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선실 밖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백이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공포에, 갈라노는 저도 모르게 허 하고 감탄했다.
그 자신도 범재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마리안은 진짜 천재의 부류였다. 수십 년의 차이가 벌써 한 단계, 그것마저도 얼마 못 가서 따라잡힐 정도로.
하지만 레너드는 그 천재를 기백만으로 겁먹게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인물이군, 우리 대장은.”
열등감은커녕 호승심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경외(敬畏)만이 남았다.
무인에게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감상이었으나, 그 격차를 너무 절실하게 알아버렸기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본의 아니게 공감대를 형성한 마리안과 갈라노에게, 그들과 달리 태연하기 그지없는 니니안이 접근해왔다.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니니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야말로 이 모험단에서 레너드의 진정한 제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 제 무예의 부족한 점을 지적받았을 뿐인 마리안과 갈라노와는 또 다르다.
연씨궁술.
누가 보기에도 비전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무예를 전수받은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상식을 벗어나있는 존재를, 상식의 테두리에 갇혀있는 자들이 헤아리려고 하면 안 된다.”
“상식을 벗어났다…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니,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니니안은 먼 곳을 바라보듯이 눈동자의 초점을 바꿨다.
“그 남자의 신체연령은 틀림없이 10대 중후반이지만, 그의 내면과 역량에서 묻어나오던 세월은 결코 그 연령대에 부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육체와 영혼의 시간이 어긋나있는 것 같은, 치명적인 위화감을 느꼈다.”
“으음.”
“시간의 어긋남, 인가요.”
두 사람도 그에 공감하듯이 제 고개를 기울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이이잉——!
아쿠아마린의 선내 전체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큰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훈련실을 뛰쳐나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타실로 향했다. 이 경보를 발령했을 사람, 프란시스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배에 탑승한 지 얼마 안 되는 갈라노와 니니안이 그들의 고참, 마리안에게 눈으로 질문했다.
“…이 경보는 위협적인 적, 혹은 신원을 알 수 없는 대상이 갑작스럽게 등장했을 때에 발령됩니다. 본래대로라면 이 항해 도중에 마주쳐선 안 될 대상이거나, 해룡왕처럼 그 경로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그에 해당합니다.”
꿀꺽, 하고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어느 쪽이든지 아쿠아마린 모험단에 큰 위험이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로부터 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조타실로 향했다.
외력경 후반기의 강자들답게 그 이동속도는 신속했고, 불과 1분을 지나지 않아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앗.”
조타실에 먼저 들어선 마리안이 반사적으로 소리를 냈다.
세 사람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해있던 소년, 레너드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방금 전까지 격전이라도 치른 것처럼 넝마짝이 된 옷차림과 짙게 풍기는 피 냄새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의아한 것은, 살기등등해도 모자랄 것 같은 분위기가 더없이 고요하게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에 온 사방이 고요해지듯이.
덜컹.
마리안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세 사람의 뒤에서 한 박자 늦게 도착한 일행들이 있었다.
비비안, 에스더, 로렐라이.
마법과 정령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새우던 단원들이었다.
에스더가 그녀 앞에서 멈춰서있는 사람들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뭐에요? 다들 안 들어가고.”
무인으로서 그 위화감을 읽어낸 마리안과 갈라노, 니니안과 달리 에스더 일행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그렇게 여섯 명의 단원들이 모이고, 마지막으로 잭 러셀이 나타나자 아쿠아마린의 전원이 집합하게 되었다.
프란시스는 그 타이밍에 맞춰서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경보 때문에 많이 놀란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 전, 우리 모험단의 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는 변수가 포착되었어요.”
“호오.”
그 말에 러셀의 눈동자가 흥미로 일렁거렸다.
소수라고는 해도 이 모험단의 전력은 규격 외였다.
스스로를 제외하더라도 마스터급에 해당하는 레너드, 그의 가르침으로 재능을 꽃피우고 있는 외력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무인들, 대마법사 하이네의 수제자에다가 상급 정령사까지.
그들과 비교하기에는 좀 미숙하지만, 에스더도 어디서 꿀릴 만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근거를 듣고 싶군.”
“물론이에요. 자, 이쪽의 계기판을 봐주시겠어요?”
단원들의 시선이 모두 프란시스가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점과 선이 거세게 파도치듯이 흔들리고 있는, 그 계기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 로렐라이가 말했다.
“차, 차원함수…죠? 정상적인 형태가…아닌, 거 같은데.”
“로렐라이 씨의 말대로예요.”
프란시스가 그에 수긍하면서 빠르게 설명했다.
“이 패턴은 지금 우리들의 지근거리에 도사리고 있는 균열, 〈부패의 정령군단〉을 관측한 결과예요. 최근에 두 번 관측할 수 있었던 현상의 증명이죠. 그게 무엇일까요?”
단원들은 어렵지 않게 그 정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쿠아마린 모험단이 최근에 두 번 성공한 일은, 해상연합 역사에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까.
봉합.
그들의 표정을 읽은 프란시스가 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봉합입니다. 누군가가 〈부패의 정령군단〉에 진입해서, 무려 균열을 봉합하기 직전이에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균열〉의 봉합은 그 자체로 매우 난해한데다, 〈부패정령의 군단〉과 같은 경우에는 미탐사지역인 것도 모자라, 위험도가 아주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균열을 봉합하려면, A등급의 모험단이 제대로 된 작전계획과 함께 움직이거나 B등급 최상위권의 모험단 다수가 연합작전을 실행해야했다.
그렇게나 큰 움직임이 프란시스나 잭 러셀의 시야를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체불명의 강자라. 혹시 〈와일드헌트〉일 가능성은?”
“없진 않아요. 그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니까요. 하지만.”
〈와일드헌트〉가 아닌 정체불명의 무력집단이라면, 교섭부터 전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했다.
그때.
쩌저적! 쩌적!
아쿠아마린의 모험가들에게 낯설지 않은, 공간이 붕괴하는 소리가 수 킬로미터를 넘어서 들려왔다.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다.
공기의 진동으로 전달되는 소리가 아니었기에, 일정 수준을 뛰어넘은 강자들은 다 인지할 수 있었다. 〈부패의 정령군단〉, 위험도가 잠정 A등급으로 추정되던 균열의 봉합현상이다.
숨소리마저 가라앉은 조타실에서, 수 킬로미터 바깥에 있는 균열을 주시하는 눈동자만이 여러 쌍 반짝거렸다.
그 직후였다.
파카아아아앙——!!
한 척의 대형선이 공간의 틈을 쳐부수면서 등장했다.
잠정 A등급의 〈균열〉을 봉합해버린 위용을 과시하듯, 제법 먼 거리에 있는데도 저릿저릿한 존재감이 뿜어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프란시스의 안색이 석고처럼 창백해졌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녀의 입속에서 맴도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피쿼드(Pequ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