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04)
초월경의 강자가 뿜어내는 살기가 방에 휘몰아치자, 경지가 낮은 의원들 몇몇이 몸을 휘청거렸다. 방향성도 없는 의지에 불과한데도 그 심신을 뒤흔드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파블로는 곧 살의를 가라앉혔다.
그는 제 옆자리에 앉아있는 의원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로버트, 아쿠아마린이 제출한 보고서는?”
“원본으로 가져왔네. 〈버뮤다〉에는 사본을 남겨뒀지.”
파블로나 그나 〈연합의회〉의 의원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누가 보기에도 상하와 우열이 분명했다.
로버트 의원은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제 주머니에 넣었던 서류를 건네주었다. 모험단의 정보는 〈버뮤다〉에서도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수뇌부의 절반 이상을 매수해둔 의원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몇 초만에 보고서를 모두 암기한 파블로가 그대로 한 바퀴 돌리고, 참석자들 모두가 읽고 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노골적으로 전력을 은폐하고 있어. 안 그런가?”
일정과 경로 자체는 상세하게 기록했지만, 〈균열〉 내부에서 벌어진 전투와 그 내용은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버뮤다〉의 규정에 정해져있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으로 쓴 게 분명했다. 몬스터의 수와 강함도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으며, 〈균열수호자〉는 운이 좋아서 쓰러트릴 수 있었다는 겸손까지 더해서 제 실력을 감추려고 한다.
파블로는 수십 년 경력의 모험가답게 그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탐사했던 균열, 〈씨오크 소굴〉에서는 잭 러셀이 활동하지 않았다. 정령술사도 진입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넷이 들어갔다는 소리군.”
애꾸눈, 고래잡이, 수석장로의 제자.
마지막으로 콘라트를 해치운 소년검객, ‘천재’ 레너드.
그 이름과 활동내역을 되짚어보던 파블로가 으르렁거리듯이 혼잣말을 뱉었다.
“…의외성은 제법 강렬하지만, 중요도가 높지 않은 것치고 자꾸 신경에 거슬리는 놈이야.”
“콘라트를 죽인 놈 말인가? 검술 실력은 확실하더군.”
나머지 의원들도 그에 동감하듯이 제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토퍼 콘라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모험단, ‘산타마리아’의 단장을 맡고 있었던 놈은 쓰레기였지만 그 이상의 천재였다. 외력경 10단, 5위계의 마법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던 콘라트가 설마 외지에서 온 소년에게 패할 줄이야?
그날의 내기결투는 모두 관전하고 있었기에, 레너드의 검과 재능을 폄하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천재라고 해봤자 위험요소가 될 정도로 성장하려면 10년은 필요하리라고 생각했는데…5년이면 충분할지도.”
“포섭하거나 견제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제거하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커.”
“미래가 안 보이던 시절에도 아쿠아마린에 남았던 놈이야. 이런 놈들은 아무리 구슬려봐도 안 넘어오는 법이지.”
파블로는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두 번째 균열, 〈악귀문어의 나락〉은 잭 러셀의 활약상밖에 없군. 아쿠아마린과 함께 진입해서 몬스터들의 이목을 붙잡고, 매개체까지 홀로 잠입해서 파괴할 수 있었다, 라.”
그 말을 놓치지 않은 로버트가 반문했다.
“균열수호자는?”
“매개체가 균열수호자의 체내에 파묻혀있어서, 전투 도중에 우연히 파괴했다는군. 하, 개도 안 믿을 소리만 늘어놓다니.”
확률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게 실제로 벌어졌을 가능성보다는 헛소리일 가능성이 백 배는 높다.
하지만 보고서로 얻은 소득이 아예 없지만은 않았다.
두 번째 균열에 숨겨져있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정보라고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악귀문어의 나락〉을 공략하는데 기여한 자, 수석장로 잭 러셀이 아닌 누군가가 아쿠아마린의 숨겨진 칼날이라고 판단하면 된다.
‘애꾸눈과 그 동생은 전혀 가능성이 없겠고, 러셀의 제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남겨진 두 사람. 덴투소의 동생, 갈라노거나 하이네의 수제자, 로렐라이인가. 하지만 갈라노 그 머저리가 8년간의 폐인생활을 연기할 수 있는 놈처럼 보이진 않아…만약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을 순 없겠지만, 로렐라이가 몇 배는 유력하군.’
파블로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능성이 휘몰아쳤다.
그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거대한 체격과 험상궂은 외모, 몸 전체에서 뿜어져나온 패기 때문에 파블로의 진가를 초월경에 다다른 폭력과 야만성으로 판단하기 쉬웠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의 진면목을 본 사람은, 오우거 같은 몸뚱이에 숨어있는 뱀의 심장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포악함으로 위장되어있는 교활함.
8년 전의 참사를 주도했음에도 그 행적에 미심쩍은 부분을 남겨놓지 않은, 〈연합의회〉에서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일면을 지닌 권력자가 바로 그였다.
머릿속으로 결론을 낸 파블로가 말했다.
“아쿠아마린을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되겠군. 〈균열〉을 두 개 봉합했다고 당장 어떻게 될 일은 없겠으나, 이대로 방치하면 제 아비처럼 대업을 지연시킬 수도 있겠어.”
“그럼?”
“A등급으로 올라온 이상, 직접적인 수단으로 제거하거나 할 수는 없겠지. 간접적으로 견제한다. 모험단에 소속되어있는 자 전원의 신상명세를 조사하고, 그들이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면 자연히 발이 묶일 터. 소수정예의 단점은, 소수로 움직인다는 것 자체니까.”
결원이 좀 생기더라도 예비인원이 상주하는 모험단과 달리, 현 아쿠아마린은 한두 명만 빈자리가 생겨도 치명적이었다.
100명에서 5명이 빠지는 것과 10명에서 5명이 빠지는 것.
어느 쪽이 더 중대한 사안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수석장로와 그 제자는 후순위로 미루지. 마탑에 간섭하는 것도 어려운데다, 현 마탑주는 이미 본토로 돌아갈 생각밖에 없는 노인네라서 말이 안 통하네.”
“갈라노는 8년 사이에 놈을 따라다니던 양아치들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렇게 깊은 사이도 아니더군. 인질로 잡아봤자 별 의미가 없을걸세.”
“하이네의 제자 같은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네. 도대체 그 세월을 어디에서 보낸 건지, 혈연관계는 물론이고 지인도 한 명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하이네의 유품이나 유언장 같은 걸 만들어내서 미끼로 쓰면 통할 수도 있겠지만…꼬리를 잡히기 쉽고, 수제자라면 속이기가 쉽지 않겠지.”
“애꾸눈 자매도 마찬가지야. 대륙에서 온 것들이다보니 이 해상연합에서 건드릴 만한 여지가 없네. 콘라트, 그 머저리만 아니었다면 방법이 있었을 텐데.”
의원들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던 파블로가 끼어들었다.
“레너드, 그 애송이는?”
“〈버뮤다〉에 제출한 인적사항을 토대로 좀 조사해봤는데…, 기묘한 부분이 없지 않더군. 마법사고로 바다 위를 표류하다, 아쿠아마린에 구해져서 공주를 따르게 된 모양이던데.”
“출신국가는 크루지스. 예전에 한 번 들어봤던 적은 있었지. 아르카디아 제국이 크게 번성하기 전만 하더라도 대륙 최고의 기사왕국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천재적인 검술 실력과 재능은 그 혈통과 출신성분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버뮤다〉에는 외력경 2단으로 기록되어있으나, 그날 목도한 레너드의 경지는 최소 외력경 4단 이상이었다. 지금이라면 한 단계 더 돌파했을 가능성마저 있었다.
번개의 드래곤을 불러낸 아티팩트는 파손되었지만, 만약 그 정도 수준의 아티팩트가 한 자루라도 더 남아있다면…발휘할 수 있는 전투력은 콘라트 수준이라고 판단해야했다.
“아무래도 이 애송이부터 노려야할 것 같군.”
레너드가 관련된 것을 볼 때마다, 파블로는 그의 직감이 알 수 없는 경고를 울려대는 것을 느꼈다.
8년 전의 뇨르드에게서 느껴졌던 것과 유사할 정도였다.
“아쿠아마린의 본격적인 활동은 이 애송이가 애꾸눈 자매를 구원하고, 수석장로를 설득하면서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8년 내내 B등급에서 강등당하지 않는 것이 한계였던 프란시스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공주에게 있어서 이 애송이는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이나 마찬가지겠지.”
“호오, 그렇군.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도, 모험단 내부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단 소린가.”
“게다가 그 뇨르드의 딸이, 자신을 궁지에서 꺼내준 은인의 변고를 외면하거나 하진 않겠지. 설령 모험단의 존폐를 걸고 나서야할 사안이라도 말이야.”
의리라던가, 신뢰라던가.
그런 관계성에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파블로였으나, 그 가치를 공유하는 자들에 대한 이해마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이용해먹을 수 있었다.
“조잡하기까지 한 계획이지만, 제대로 걸려들면 프란시스의 손발을 모조리 잘라버릴 수 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놈들을 미리 통제하는 게 급선무겠어.”
“자라탄은 얼마 전에 출항했으니 반 년 정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와일드헌트는 역시 잘 모르겠군.”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 ‘와일드헌트’의 이름을 들은 의원들 모두가 제 눈살을 찌푸렸다.
연 단위로 신출귀몰하는 모험단인 것과 동시에 〈연합의회〉, 〈버뮤다〉의 영향력으로도 감시할 수 없는 괴짜들의 집단.
그에 파블로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놈들은 천재지변과 같은 놈들이다. 그저 마주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수밖에.”
“아쿠아마린의 편을 들 수 있는 모험단과 상위 모험가들의 행적을 알아보지. 이번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해두겠네.”
“음.”
묵직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인 파블로가 검붉은 빛으로 물든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바위처럼 미동도 안 하던 입꼬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끌어당겼다.
“—드디어 내 무가치한 핏덩이를 쓸 때가 왔군.”
* * *
쿠구구궁…!
마탑의 최상층에 위치해있는, 특급 마나집적실에서 제법 큰 진동이 터져나왔다. 6위계 마법조차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설비임에도 충격을 다 지워내지 못한 것이다.
그 내부에 들어가있는 사람이 마탑주도, 수석장로도 아니라 16세밖에 안 된 소년이라는 것도 놀라운 점이었다.
마나집적실 중앙에 가부좌를 튼 레너드의 몸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방 전체에 가득차있는 마나를 빨아들이면서 오색빛의 오러를 그 주변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쿠웅!
레너드의 심장 어림에서 터져나온 진동이 다시 한 번 방을 뒤흔들고, 굳게 닫혀있었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면서 강렬한 안광을 짧게 뿜어냈다.
외력경 10단.
마침내 초월경까지 불과 한 걸음을 남겨놓은 경지에 올라선 것이었다. 어느 순간보다도 충만해진 내공과 육체의 완성도는 이제 인간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수준이었다.
‘타화자재천은 확실히 넘어섰다.’
하지만 레너드는 제 경지가 소경계를 하나 뛰어넘은 것보다 ‘타화자재천’의 파훼에 성공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사실 그 예상보다 빠르게 외력경의 10단을 돌파한 것 또한 ‘타화자재천’을 공략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 덕택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적어도 몇 달은 더 걸렸을 터다.
육식제천살(六識際擅殺).
파황살선(破皇殺仙).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심마가 온전하게 재현할 수 있는 천마신공의 오의, 세 가지 전부를 완벽하게 무너트렸다. 〈오색강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운용하는 수법은 그 반탄강기마저 찢어발기고, 절대방어를 더 이상 절대라고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레너드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단 하나.
“…천주멸살(天主滅殺).”
천마신교의 신공절학, 〈아수라패황무〉 안에서도 최종오의라 할 수 있는 절명기를 넘어서야한다.
안 그러면 심마에게 살해당하고 몸을 강탈당할 뿐이니.
‘고대 신화의 아수라에게 있어서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제석천, 뇌신이자 신들의 왕. 그렇기에 천주(天主)를 대적하기 위한 초식이야말로 〈아수라패황무〉의 최종오의에 해당한다.’
번개를 다스리는 신을 죽이려면 그 이상으로 빨라야한다.
하늘에 군림하는 신을 죽이려면 그 이상으로 강해야한다.
오직 빠르고 강력하다.
단순하기까지 한 원리로 구현되는 초식이지만, 현경의 힘을 고스란히 담아낸 일격은 문자 그대로 멸살(滅殺)을 구현한다. 제 심상을 바깥으로 투사하는 것도 모자라 세계법칙의 틀마저 부숴버리는 경지의 전심전력.
〈오색강기〉도 격 자체는 대등하다지만, 아직 다 무르익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적할 순 없었다.
‘타화자재천과 다르게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초식이다. 전생 시절의 기억이다보니 온전하게 남아있지도 않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공략하는 것은 무리다.’
심마와의 전투로 놈을 몰아붙여, 직접 상대하고 경험하면서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그를 끝장내버린 기술을 몇 번, 아니 몇십 번을 감당해야한다는 소리였다.
“후우.”
그 너머에 도달해야만 초월경을 돌파할 수 있다.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그걸 확신한다.
레너드는 새삼스럽게 공포와 호승심이 공존하는 걸 느끼며, 마나집적실을 빠져나왔다. 도망칠 수 없는 승부라지만 오늘은 정신력을 제법 소모한 상태였다. 만전으로 대적하더라도 쉽지 않을 승부에 도전하는 것은 만용이었다.
러셀과 에스더는 〈균열〉에서 수집한 것을 가지고 실험하는 도중이었고, 나머지 단원들도 각자 개인정비를 누리는 시간.
“오랜만에 숨이나 좀 돌려야겠군.”
드물게 할 일이 없어진 레너드는 마탑 바깥으로 걸어나와서 아틀란티스의 번화가로 걸음을 옮겼다.
* * *
{……작전목표가 나타났습니다.}
{예상경로를 확인하고 시간과 장소를 재설정해라. 그분께서 지시한대로 움직인다. 이 모든 것은 선택받은 자를 위하여.}
{선택받은 자의 뜻대로.}
{선택받은 자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