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05)
수도 아틀란티스.
다양함을 넘어서 난잡하기까지 한 섬의 연합체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지역이었다. 남부해역에서 가장 큰 면적을 보유하는 섬인데다가, 해류가 잔잔해서 연안 전부가 부둣가로 적합하고 기상의 변화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 본토와도 적당히 가까우면서 적당하게 거리감이 있어, 간섭받지 않고 무역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무엇보다도 해상연합을 지탱하고 있는 3대조직이 다 수도에 본거지를 둔 이유도 그러했다.
〈버뮤다〉, 모험가들의 이익과 입지를 대변하는 조직.
〈연합의회〉, 해상연합의 정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관.
〈아틀란티스 마탑〉, 도시와 배의 설계 및 유지를 담당하는 마법공학의 근원지.
셋 중 하나만 빠지더라도 아틀란티스의 존재는 유지될 수가 없으며, 이 3대조직의 거점이야말로 수도의 심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상연합의 주민들은 그 일대를 ‘1구역’으로 구분해, 성공한 자들이 거주한다는 상급지로 구분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험가들이 계속 드나들었던 〈버뮤다〉 근처는 제법 번잡했는데 말이지.’
모험가들을 상대로 호객하는 상인.
호기심과 동경을 품고 그들을 구경하러온 아이들.
그 이외에도 수많은 관계성이 뒤엉켜있어, 지켜보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에 비해서 〈연합의회〉나 마탑의 주변에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연합의회〉에 소속된 의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엉덩이가 무거운 거물들이고, 마탑의 마법사들은 제 공방에 틀어박혀서 나올 줄 모르는 인종이었기에.
번듯하게 정돈되어있는 구역도 나름대로 볼 만한 풍경이긴 했으나, 변화하는 게 없으면 결국 질리기 마련이었다.
“음.”
빠른 걸음으로 1구역을 벗어난 레너드가 2구역으로 분류된, 상업거리에 들어섰다. 대장간부터 시작해서 잡화점까지 전부 망라하는 구역이었다.
모험단들의 길드 하우스와 유흥시설이 밀집된 3구역과 바로 인접해있어, 시민들과 상인들 사이로 돌아다니고 있는 자들의 행색이 범상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레너드의 눈에 찰 만한 실력자는 전무했지만 말이다.
‘…대낮부터 쥐새끼들이 돌아다니는군.’
인파 속으로 걸어들어간 레너드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외력경 10단까지 돌파하면서 한층 더 예민해진 기감은 이제 마법을 경유하는 시선마저도 간파해버린다.
시선 자체는 아무래도 좋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다니는 일 자체는 익숙했으니까.
전생만 하더라도 검제 연무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거지들과 하오문도들이 천 단위였으며, 요 근래에 아쿠아마린 모험단의 명성이 치솟으면서 그 단원들의 이름값까지 덩달아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관찰 자체를 목적으로 한 시선이 아냐. 내 경로를 파악하고 앞질러가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온 놈들이 좋은 의도를 가졌을 리 없어.’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
옛 시대의 문인이 남겼으며,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논한 이야기였으나 무림에서는 더욱 현실적인 격언이었다.
선한 자는 찾아오지 않고, 찾아오는 자는 선하지 않다.
경험과 연륜으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운 레너드의 눈빛이 일순간 흉흉하게 번들거렸다.
‘아쿠아마린을 암중으로 견제할 만한 세력이라면, 하나밖에 없겠지. 파블로를 중심으로 한 〈연합의회〉의 균열보존파.’
A등급에 복귀하자마자 두 번의 봉합을 성공시킨, 그 활약은 〈버뮤다〉의 분위기를 바꿀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이대로 아쿠아마린이 계속 승승장구하면, 8년 전에 조용히 묻어버렸던 참사의 진상이나 〈균열〉의 위험성에 대한 말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터였다.
전성기의 아쿠아마린마저 거침없이 습격했던 놈들이 가만히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아쿠아마린에서 내가 가장 만만했다…는 소리로군.”
당연하기까지 한 계산이었다.
전력을 철저하게 은폐한 것도 그러했지만, 16세밖에 안 된 소년이 초월경마저 대적할 수 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콘라트와의 결투에서 보여준 힘도 아티팩트라고 오인당했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불필요한 관심을 받는 일은 없어졌으나, 강자로서 약자의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불쾌했다.
레너드는 자연스럽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의도를 읽지 못한 미행자들도 소리없이 뒤를 따랐다.
* * *
3대조직의 거점이 존재하는 1구역.
그 1구역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2구역과 3구역을 좀 벗어나면 4구역과 5구역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부둣가로 직행하게 되는 4구역과 다르게 5구역은 섬 내부에서도 개발이 덜 진행된 곳이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 자체가 워낙 불안정한 환경이다보니, 섬에 완전히 정착하거나 소속감을 지닌 사람이 드물었던 탓이다.
해상연합 안에서 움직이는 돈과 인구에 비해서 기반시설이 부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폐인생활을 하고 있었던 갈라노와 그 패거리들이 머무르던 곳도, 공백지대에 띄엄띄엄 형성되어있는 슬럼의 하나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5구역의 변두리까지 온 레너드가 드디어 멈춰섰다.
건설 도중에 무슨 변고가 있었는지, 세우다가 만 건물들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지역이었다.
검 자루에 손바닥을 올리고 뒤돌아본 그가 말했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나한테 볼 일이 있는 거겠지? 쫄아서 못 나오는 게 아니라면 얼굴 좀 보자.”
적당히 뒷골목으로 빠진 것도 아니고, 대놓고 5구역까지 온 시점에서 미행자들도 깨닫고 있었다.
이 애송이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말이다.
만일 레너드가 아니라 갈라노, 로렐라이 같은 인물이 그런 행보를 보였더라면 즉각 후퇴했을 것이다. 그들의 실력으로도 감히 당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을테니.
그러나 천재검사로 유명한 놈이라고 해도 16세, 아티팩트로 이름값을 올린 꼬맹이한테서 도망치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감과 자만심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놈이군.”
삭막한 목소리와 함께 마법처리가 된 복면과 의복을 휘감은 미행자들이 온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두 명이 아니다.
도주하는 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을 셈인지, 전방위를 차단한 복면인들의 숫자는 무려 20명이 넘었다.
“아티팩트를 믿는 것이냐?”
“아니면 탈출용의 스크롤이라도 가졌나보지?”
“그 여유부터 지워주도록 하마.”
복면인들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이어붙이더니, 품에서 꺼낸 스크롤을 한 장 찢었다. 그와 동시에 스크롤에서 뿜어져나온 빛이 5구역의 폐허를 한 차례 휩쓸었다.
레너드는 그 빛이 스쳐지나간 순간, 스크롤에 담긴 마법의 원리와 효과를 즉각 알아차렸다.
‘완성 상태로 축적해놓은 마법식의 동결…! 발동형 마도구를 무력화하기 위한 스크롤인가? 철저하게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물건이로군.’
효과의 범위 내에서는 아티팩트와 스크롤을 비롯한, 발동형 마도구가 전부 먹통으로 변한다.
최소 6위계, 어쩌면 7위계일지도 모르는 마법이었다.
갈라파고스 섬에 경험했던 [매스 텔레포트]조차 이 마법의 효과범위 안에서는 발동할 수 없다. 발동하고 난 후에 취소할 순 없더라도, 발동을 저지해버릴 순 있는 것이다.
레너드가 말했다.
“한두 푼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아깝지도 않은가보지?”
“우리들이 섬기는 분께 있어서는 별 것도 아니다.”
“파블로 말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던져진 이름에, 복면인들은 위압하던 것도 잊고서 숨을 훅 들이켜버렸다.
레너드가 한 말을 긍정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서, 복면인 중에 대장격으로 나선 인물이 말했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군.”
그리고서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복면인들이 저마다 제 손에 움켜쥔 병장기를 치켜세웠다.
처음부터 말로 할 생각도 없었다.
설령 레너드가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한 번 정도는 그 몸과 마음에 공포심을 새겨넣어야했다. 신뢰 따위보다 확실한 족쇄가 될 수 있는 게 공포였다.
적어도 그들과 그 윗사람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팔다리를 다 잘라버려도 좋다. 숨통만 붙여놓도록.”
제아무리 특출한 재능을 지녔더라도 16살에 불과한 소년이, 지금 같은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겠나.
새하얗게 질린 안색을 기대한 복면인들의 두 눈에.
“흐.”
어느샌가 두 자루의 검을 뽑아낸 레너드가 보였다.
쌍검(Dual―Sword).
그 화려함에 비해서 난이도가 높고, 그 난이도에 비해서 한 자루를 쓰는 것과 큰 차이도 없는 수법이었다. 그래서 쌍검을 사용하는 자는 겉멋이 든 머저리가 대부분이었고, 제대로 쓸 줄 아는 몇몇만이 그 화려함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복면인들은 저 ‘천재검사’가 쌍검을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얕보는거냐?!”
“이, 건방진 애새끼가…!”
“죽이지만 말라는 명이었으니, 회를 좀 쳐놔도 괜찮겠지.”
살기등등해진 복면인들이 일제히 레너드에게 덤벼들었다.
‘집단전술의 수준이 낮군.’
빠져나갈 곳이 없어보이는 포위공격의 안쪽에서, 레너드는 겨우 한 걸음으로 빈틈을 파고들었다.
제대로 된 합격진과 비교한다면 찢어진 그물만도 못했다.
한 발 앞선 타이밍에 출수가 늦은 복면인의 목덜미에 검을 박아넣고, 거기에서 뿜어져나온 피로 그 옆에서 달려든 놈의 시야를 봉쇄한다.
“읏?!”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버린 놈의 심장을 찔러꿰뚫고, 검기를 형성해서 그 몸뚱이를 둘로 가른다.
이 상황에서 칼날을 뽑아내려다간, 그 빈틈에 서너 번은 더 찔리고도 남는다. 다대일의 전투를 셀 수 없이 경험해본 그의 움직임에는 아주 조금도 비효율적인 부분이 없었다.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이화접목(移花接木).
허허실실(虛虛實實).
기초적인 수준에서부터, 고차원적인 무예의 이치까지. 검과 검이 교차할 때마다 죽음으로 핀 꽃송이가 떨어져내린다.
푸확!
레너드의 사정거리에 들어간 복면인 세 명의 머리통이 위로 튀어오르고, 싸움보다 춤을 추듯이 반 바퀴 회전하는 칼날이 그 틈에 배후로 접근하던 자를 두 동강냈다.
내달리던 기세 그대로 엎어지는 하체 위로 내장을 쏟아내는 상반신이 굴러떨어진다. 두 동강이 난 상태에서도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해, 땅바닥에서 바르작대던 복면인의 숨통이 얼마 못 가서 끊어졌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복면인들조차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뭐하나?”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절반 가까이가 죽어넘어졌다.
그걸 인지한 복면인들의 공세가 주춤거리는 순간, 레너드가 제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비아냥거렸다.
“자신감과 자만심을 구분하지 못한다면서? 탈출용 스크롤은 준비해왔나? 아, 너희들이 사용한 마법 때문에 못 쓰겠군. 제 손으로 퇴로를 끊어버린 기분은 좀 어떤가?”
노골적인 도발이었지만, 실력의 차이를 깨달은 복면인들은 크게 물러나면서 식은땀만 흘렸다.
방심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방심하지 않은 상태로 싸웠더라도 별 차이가 없었을 터다. 시궁창에 발을 들였지만, 그들도 그 나름대로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온 자들이었다.
이길 수 없다.
제대로 훈련받은 암부와 달리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던 자들 모두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쯧.”
복면인들의 대장이 그 모습에 혀를 찼다.
‘신앙’으로 결속한 형제들과 다르게 저 얼치기들은 그분에게 헌신할 자격도, 각오도 없었다. 결국 소모품에 불과한 수준의 쓰레기들이니, 그 주제에 맞는 방식으로 쓸 수밖에.
공포에 질린 복면인들이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하기 직전에, 그가 새끼손가락을 튕겼다. 미리 그들의 몸 안에 심어놓은 걸 발동시키기 위함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춤거리던 복면인들의 눈동자가 탁 풀리더니, 초점이 흐릿해진 홍채 전체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르륵! 그륵!”
“그르아아악! 각!”
“그롸라라라라!”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게거품을 문 복면인들이 핏빛 눈을 번들거리면서 다시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이성을 전부 상실했기에 공포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무림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현상에, 흥이 올랐던 레너드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고독이나 금제 따위로 백회혈을 건드렸으리라. 제 의지로 싸우지도 못하는 자들을 베는 것은, 차라리 짐승을 상대하는 것만 못하다.
‘저놈만큼은 곱게 죽이면 안 되겠구나.’
다시 한 번 시작된 공세를 간단하게 받아넘기며, 레너드는 멀리서 전투를 관망하고 있던 복면인의 대장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묻어나오는 살기가 무시무시하다.
스스로의 목이 잘려나가는 환각마저 본 복면인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제 쇄골을 더듬거렸다.
“…괴, 괴물이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복면인 대장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봤자 네놈도 결국 그분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어댄 결과가 어찌 되는지 직접 경험해보거라!”
그렇게 큰소리를 친 그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놈을 데려와라. 선택받은 자가 말씀하셨던대로, 작전목표를 2순위로 변경한다.”
“선택받은 자의 뜻대로.”
복면인들이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
무력으로 놈을 억제할 수 없을 경우에, 파블로가 후순위로 둔 지시사항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복면인 대장의 눈에 잔인하기까지 한 희열이 넘쳐흘렀다.
그 작전은 레너드의 강함과 무관하게 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