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9)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09)
번화하기로 유명한 2구역의 거리라고 해서 하루종일 사람이 왕래하거나 영업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장간의 경우는 그 소음과 열기, 빛 때문에 해가 진 후엔 폐점하는 게 기본이었고, 잡화점 역시 심야에 영업하는 곳은 몇 군데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긴급상황을 대비한 포션, 탐사물품 등을 비싸게 팔아치우는 곳들이었다.
마탑 직영으로 운영되는 마도구점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몰이 막 시작되자마자 영업시간을 종료하는 지점도 있을 정도였으니, 모험가들은 2구역에 들어서면 마도구점부터 찾는 게 보통이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가 2구역의 시간이라면, 해가 질 때부터 뜰 때까지가 3구역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동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군.’
2구역 곳곳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던 레너드가 몇 시간 전에 비해서 제법 한산해진 거리를 훑어보았다.
이대로라면 한두 시간만 더 경과해도 인파(人波)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 되리라.
‘3구역으로 이동해서 다시 한 번 탐색해보거나, 4구역으로 빠져서 판을 벌이거나…인가.’
레너드의 눈으로 직접 판단하건대, 2구역에선 제대로 싸울 만한 공간이 안 나온다.
외곽지역이나 대장간 주변의 골목길이 넓은 편이었으나, 그 안으로 들어서면 놈들도 유인당하는 것을 알아차릴 터. 이미 그렇게 한 차례 전멸당해본 놈들이었으니, 원거리에서 활이나 마법 같은 공격만 퍼부어댈 가능성이 컸다.
수적 우위를 점한 입장에서 소모전을 강요해, 상대의 힘을 깎아내는 건 전술의 기본이었으니까.
‘정면승부를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파블로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이상, 얄팍한 술수에 넘어오는 얼치기들을 동원하진 않았을 터다.
제대로 된 명분을 걸고 움직였으니, ‘모비딕’의 정예 단원이 척살대를 담당했겠지. 지난번에 온 복면인들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습격해오는 경우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레너드는 지금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으니까.
‘이 섬에서 모비딕을 따돌리고 빠져나가려면 아쿠아마린을 탈 수밖에 없고, 〈버뮤다〉의 권위로 인정받은 보복이라면 저 마탑에서도 나를 숨겨줄 수는 없을테니.’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유리해지는 판에서, 조급하게 승부를 걸 만한 이유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잠시 제 결론을 재검토했다.
‘…아니, 정말로 그러한가?’
파블로라고 해서 이 해상연합 전부를 통제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연합의회〉의 실세 중에서도 그의 맞은편에 서있는 자들이 존재했고, 아틀란티스 마탑이나 〈버뮤다〉의 모험가들 역시 모비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레너드 스스로는 그 국면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도, 손패도 가진 게 없었지만.
‘프란시스, 그녀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시간의 경과에 점점 조급해지는 건, 레너드뿐만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적어도 이 추론을 시험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삑. 삐빅. 삑.
그때, 레너드가 제 품속에 넣어두었던 아티팩트에서 미약한 소음이 규칙적으로 발생했다.
마탑을 빠져나오기 전, 러셀이 직접 건네준 것이었다.
―시험적으로 제작된 통신마도구일세. 아직 일방통행밖에 안 되는 상태지만, 상당히 긴 내용을 송수신할 수 있지. 모비딕에 관한 정보와 이 다음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서 전달해주겠네.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품 안을 뒤적여, 마도구를 움켜쥔 손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인간의 영역을 한참 뛰어넘은 감각이 제 손바닥을 간질대는 진동만으로 그 말을 해석한다.
{————. ———————.}
{———————.}
〈버뮤다〉에서 일어났던 상황의 요약.
모비딕 모험단의 비밀스러운 활동.
프란시스가 계획한 이간책과 도박수의 정체.
“하!”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경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천기군자(天機君子)를 떠오르게 만드는 명석함과 칼날 위에 목숨을 건 무림인조차 감탄하게 만드는 대담함.
전생의 힘과 경험을 계승하고 있는 자신과는 다르다.
아직 스무살도 안 된 나이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내 기대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 이상을 보여주고 싶어지잖나?’
검 자루를 움켜쥐려는 손아귀를 가까스로 억눌러 4구역으로 향한다. 3구역에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벌 필요성도, 생각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프란시스가 저렇게 움직이고 있다면, 파블로도 그 움직임을 완전히 놓칠 리가 없었다.
그녀의 의도를 간파하진 못하더라도, 제 손바닥에 걸쳐있는 패라도 확실히 움켜쥐고 싶을 터.
‘3구역에 숨어들어서 시간을 벌기만 해도 이득이겠지만, 그 방법은 결국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쿠아마린이 수세에 몰린 건, 전면전으로 끌고 간 시점에서 패배가 확정되기 때문이었다.
마탑을 대표하는 수석장로, 잭 러셀이 가세하더라도 무력의 절대치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마스터급은 서로 두 명이지만, 그 아래를 지탱해야하는 단원들의 수와 강함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져있었다.
그러니까 그 격차를 줄여놓아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최대한 많이 죽여둬야겠어.”
레너드에게 있어서 그 이상으로 편하고 쉬운 일도 없었다.
* * *
4구역.
모험단들의 배가 질서정연하게 정박해있는 부둣가에 인접한 구역이다. 등급의 높낮이에 따라서 그 부두의 화려함과 면적,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에는 외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방어벽이나 포대 따위가 깔려있었으나, 이젠 그 흔적만이 어렴풋하게 남았다.
‘이 주변은 D등급 모험단의 정박장인가.’
레너드는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몇 배나 길쭉해진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바다 쪽을 보았다.
잔잔한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배들이 초라하기까지 한 몰골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여유공간이 너무 없다보니 배와 배가 서로 부딪힐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저택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였던 A등급의 정박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괜찮아보이는군.”
당연하게도 이 정박장의 꼴을 보고서 한 말은 아니었다.
‘폐허처럼 불규칙하게 남아있는 방벽과 포대의 흔적, 그리고 부둣가에 정박되어있는 배를 장애물이나 엄폐물로 활용한다면 전술의 폭이 넓어진다. 여차하면 바다에 뛰어들어서 수공으로 응수하는 것도 가능하겠고.’
수적 우위보다 수적 열세에 익숙하고, 정정당당한 대결보다 암습과 난전을 더 많이 경험해본 레너드였다.
변수를 활용하는 전투논리가 그 수준을 달리한다.
‘프란시스가 알려준 정보대로라면, 내 척살대를 이끌고 있는 놈은 초월경의 강자다. 네 자루의 곡검(曲劍)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정체불명. 모비딕의 2인자, 허먼 멜빌인가.’
외력경의 후반에 접어들면서 강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레너드였다.
모비딕 모험단의 수준이 대단하다지만, 마스터급도 안 되는 놈들이라면 수십 명을 동시에 상대해도 이길 수 있었다. 격의 차이는 그저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어떻게 될 것이 아니었다.
콘라트처럼 수상한 약을 집단으로 복용한다면 좀 고생할 수 있겠지만, 정당한 명분으로 그를 짓밟으려고 한 파블로가 그 수단을 고를 것 같진 않았다.
앞서 5구역에서 진면목의 일부분을 노출시켰으니,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는 상대를 보낸 것이겠지.
‘흠, 가능하다면 일대일로 싸워보고 싶은데.’
사검(四劍)과 오검(五劍).
다수의 검을 사용하는 검객으로서 그 힘과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수준 낮은 부하들을 내세워서 그의 소모를 기다린다거나, 집단전으로 물을 흐리지 않았으면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키잉!
소리보다 더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의 기척을, 한 박자 앞서 읽어낸 레너드의 검이 베어갈랐다.
반 치 정도만 기울여서 피할 수도 있었으나, 화살대에 걸린 회전이 심상치 않았다. 궤도를 바꾸거나 할 수도 있었기에 그 전에 끊어버린 것이다.
연씨궁술의 달인으로서 평가하자면, 나쁘지 않은 솜씨였다.
‘현재의 니니안과 비교하자면 반 수 처지겠군.’
천발일착의 경지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친 수준일까.
저격수의 수준을 품평한 레너드가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려, 일몰을 등지고 선 채로 한 자루를 더 뽑아들었다.
이제 일검보다 더 익숙해진 이검의 태세.
아무렇지도 않게 임전태세에 들어간 레너드의 두 눈이 어둠 너머에서 숨죽인 적들을 꿰뚫어보았다.
“…올 생각이 없나.”
아직도 해가 다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백 명에 가까웠던 복면인들을 전멸시킨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저 너머로부터 느껴지는 적의는 아주 차갑고 고요했다.
무인이나 모험가보다 사냥꾼에 더 가까운 심상.
그걸 읽어낸 레너드의 입술이 스산하게 미소지었다.
“하, 본인을 사냥하려는가? 고작 그 실력으로?”
초월경의 기척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외력경 9단, 10단급의 실력자가 다수 존재하지만, 그걸로는 한참 부족했다. 마법사나 정령사와 같은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두 자루의 검을 늘어트린 레너드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오행육신법(五行六神法)
창천용왕(蒼天龍王)
어느샌가 해가 다 떨어져, 밤의 어둠이 내려앉은 부둣가에 한 줄기 벼락이 내달렸다.
섬전(閃電)의 보(步)
깊게 팬 발자국에서 튀어오른 전격이 흩어지기도 전에, 그 간격을 절반 가까이 지워버린다.
외력경 10단까지 돌파한 레너드의 순간속도는 이미 외력경 수준에서 반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발 늦게 쏟아진 화살비와 마법의 폭격이 땅을 쳐부수고, 잔상이 새겨져있는 허공을 꿰뚫으면서 힘을 낭비한다. 동선을 숨길 생각도 없이 달려드는데 공격이 따라잡질 못했다.
“뭐야, 저 속도는?!”
“[라이트닝 스피어]! 망할, 전격마법도 안 맞아!”
“점이 아니라 면으로 공격해! 접근경로부터 차단하라고!”
누군가의 지시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반응이 한 발 늦는다면, 두 발 앞선 타이밍과 지점에 미리 공격을 퍼부으면 그만이었다.
푸른 번개의 정면에서 휘몰아치는 힘의 용량은 이미 군대를 상대해야할 수준으로 커졌다. 레너드라도 저걸 호신강기 없이 돌파했다가는 피륙이 걸레짝처럼 변할 터였다.
오상류(五象流)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그 일대의 바람을 휘감아, 두 자루의 검을 따라서 소용돌이가 형성된다.
폭풍을 때려부수려면, 이쪽도 폭풍으로 맞서야할지니.
백호이십팔식(白虎二十八式)
풍비박산(風飛雹散)
그 직후, 산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쿠오오오오오——!
미풍에서 선풍, 선풍에서 돌풍, 돌풍에서 폭풍으로 변하는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연속검격의 선순환.
한 자루로 쓸 때보다 더욱 막강해진 오의가 펼쳐졌다.
6위계급 바람마법으로 보일 정도의 검풍!
수십 발의 화살과 4, 5위계의 마법으로 구성된 화막 따위는 걷어버리고도 남는다. 폭풍의 핵이 된 레너드를 중심으로 한 반경 수 미터가 안전지대로 변화했다.
‘이제 두 걸음이면 닿겠군.’
경악과 공포로 일렁거리는 시선들과 눈이 마주친다.
오행육신법(五行六神法)
그러면서도 몸을 움직여, 어떻게든 그의 공격에 대응하려는 태도가 실로 가상했다.
따라서 고통없이 그 목을 베어줄 생각이었건만.
푸확!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서자마자 레너드가 있었던 지점을 크게 날려버리는 찌르기가 날아왔다.
창격(槍擊).
갈라노보다 한 수 위에 도달한 수준이다.
오러의 완성도부터 창술 자체의 숙련도까지 흠잡을 데가 안 보인다. ‘염’을 깨닫고 격을 높인다면 초월경으로 도약할 수도 있는 실력자였다.
“호오.”
한 명도 아니다.
무려 세 명의 창잡이가 정면을 가로막듯이 늘어서있었다.
레너드는 그들의 정보를 미리 전달받은 것이 있었다.
“세쌍둥이 모험가, ‘트라이던트(Trident)’로군?”
그 외모는 물론이고, 세 명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전부 비슷비슷했다.
무위조차 거의 균일한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모비딕 모험단의 1군이라면 한 명도 빠짐없이 이명이 붙은 모험가겠지만, 그중에서도 ‘트라이던트’는 제법 유명했다. 세 명이 모이면 S랭크의 몬스터마저 처치할 수 있다는, 합격진의 솜씨가 널리 알려져있던 탓이었다.
키잉.
세 자루의 창이 삼지창처럼 일렬로 늘어선다.
군문(軍門)의 창술이나 진형과는 전혀 다른데, 그 형태에서 뿜어져나오는 위압감이 제법이었다.
그에 흥미를 느낀 레너드가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정면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