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1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17)
중심도시 아틀란티스.
제3구역.
쏴아아아아—….
3구역이라고 해서 그 구역 전체가 유흥시설과 길드하우스로 도배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백만 명 남짓하는 인구를 포용할 수 있는 섬의 면적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누군가는 음주가무를 즐기고 싶어하지만, 또 누군가는 조용히 사색하거나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할 수 있는 법이었다.
레너드가 지금 올라와있는 전망대, 그 아래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도 3구역에서 제법 유명한 관광명소였다.
‘남해(南海)와는 좀 다른 정취가 있구나.’
후덥지근한 날씨가 1년 내내 계속되었던 해남도와 달리 이 아틀란티스의 기온이나 습도는 적당한 편이었다.
한서불침에 오른 상태라도 그 차이는 느낄 수 있었다.
“…대낮부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군.”
가만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던 레너드의 눈이 그 아래에서 돌아다니는 모험가들을 한 차례 훑었다.
관광이나 휴양 목적으로 온 사람과 그와 다른 목적으로 온 사람을 구분하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행색을 위장하더라도 상단전을 연 초고수에게 의도를 감출 순 없었다.
수색자들을 본 레너드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허먼 덕분에 추적수단을 한 가지 무효화할 수 있었지만, 그 아티팩트 외에도 내 행적을 알아낼 수 있는 수법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겠지. 이 도시는 결국 아쿠아마린보다 모비딕의 편에 더 치우쳐있으니.’
잔월무상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다니고 있지만,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면 다시 숨어들기는 어렵겠지.
땅을 파고 들어가서 귀식대법까지 사용한다면 더 오래 버틸 자신은 있었으나, 파블로와의 만남을 언제까지고 피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싸우기에는, 허먼이 한 말이 거슬렸다.
‘허먼은 놈의 무력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체를 의심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파블로는 인간의 모습으로 초월경 둘을 압도하는 전력을 발휘한다는 소리가 된다.’
정체 모를 약으로 폭주했던 콘라트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양지로 끌어내봤자 그 진면목을 폭로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8년 전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침묵하게 될 터다. 인간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신속하게 대처하는 생물이니까.
파블로가 〈오행진룡환〉의 적으로 인식된다면 〈오색강기〉를 쓸 수 있을테니, 간단히 베어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확인하려면 놈과 제대로 대치해야할 필요가 있지. 그 시점에서 이미 둘 중 하나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다.’
만약 〈오색강기〉가 발동한다면 레너드의 검에 파블로가 두 동강나버릴 것이고, 발동하지 않으면 무려 초월경급 두 명을 압도하는 전력에 레너드가 짓뭉개지리라.
배수진(背水陣)도 그렇게까지 무식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때였다.
삑. 삐빅. 삑. 삑. 삐빅.
잭 러셀이 건네주었던 아티팩트, 일방통행형 통신기가 작은 소음으로 그 존재를 알렸다.
반사적으로 통신기를 손에 쥔 레너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소지었다. 프란시스로부터 전달받은 소식은, 그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연합의회〉의 2인자 고든 헤이우드와 유령선 피쿼드호.
두 장의 카드를 모조리 손에 넣었으니, 프란시스가 이 섬에 돌아오는대로 파블로와 모비딕 모험단을 역습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8년 전의 사건의 주동자로 확정된다면 해상연합 전체에서 매장당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프란시스도, 러셀도 놈의 배후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모비딕에서 10년 가까이 지냈던 허먼마저 알 수 없는 조직이라면, 하루이틀 조사한다고 찾을 수 있는 놈들도 아닐테고.’
아무것도 모르고 놈을 궁지로 몰아붙였다간, 그 배후조직이 도시 한복판에서 폭주하는 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틀란티스가 큰 피해를 입고, 파블로 일당까지 놓치게 되면 본말전도였다.
전생의 경험으로 그걸 직감한 레너드가 중얼거렸다.
‘파블로가 쉽게 잘라낼 수 있는 꼬리라면 무의미하나, 놈의 입지는 상당하다. 초월경의 무력은 물론이고 8년 전의 사건을 결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작전권한…. 적어도 상위 간부거나 이 아틀란티스를 총괄하고 있는 존재일테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놈의 명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다면, 콘라트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버릴 수 있을까?
레너드는 그 대답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모비딕 모험단의 배후조직이 어떻게 반응하고 말고 할 틈도 내주지 않는다면?
파블로 본인조차도 제 위협을 예견하지 못하고, 제 본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레너드 한 명만이 실행할 수 있는 우책(愚策)이었다.
실패하면 죽는다.
승산은 높지 않다.
즉, 언제나와 같은 선택지였다.
* * *
〈버뮤다〉의 판결이 내려진 후로, 파블로는 모비딕 모험단의 길드하우스에 계속 머물러있었다.
허먼이나 레너드의 행방이 발견되는대로 그 즉시 움직이기 위함이었다. 어느 쪽이든지 파블로 본인을 제외한다면 누구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없는 강자였으니, 당연한 조치였다.
아틀란티스의 초창기부터 그 수를 불려왔던 외신숭배자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정예라고 할 만한 인원들을 제외하더라도, 수색에 쓸 만한 인원만 추려내서 수천 명은 될 정도였다. 사방이 막혀있는 섬 안에서 피해다니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선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선택받은 자께 보고드립니다. 표적 중 하나, 레너드가 지금 3구역의 해안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호오.”
파블로는 그 말에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담하군. 아니면 내가 대낮부터 움직이지는 않을 거라고, 멋대로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혹은, 하고 고개를 기울인 파블로가 중얼거렸다.
“러셀과 아쿠아마린의 잡놈들이 안 보이는 것도 수상한데…함정이라도 파놓은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3구역의 해안가는 뭔가 수작을 부려놓을 만한 장소가 아니지. 아무 대책도 없이 날 유인하려고 할 리가 없는데.”
크리스토퍼 콘라트의 참살은 물론이고, 몇 차례의 검격으로 허먼이 제대로 싸울 마음을 먹게 만들었던 놈이다.
겉모습이나 나이만 보고 애송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파블로의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의 음모가 스쳐지나갔으나, 그중에서 현실성이 높아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에게 유인책을 쓸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날 우습게 보는 허세인가, 내가 모르는 함정인가.”
오늘날까지 그가 해상연합에서 암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신중함과 교활함이 폭력을 뒷받침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랬다면 8년 전에, 아니 그보다 더 전에 실패했겠지.
레너드의 행적을 알아내고도 한 시간이나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파블로는 놈의 움직임을 허세로 결정지었다.
“가능성은 적지만, 프란시스를 위해서 내 이목을 자신에게 붙들어두려는 걸지도 모른다. 도시 전역을 철저하게 수색해서 아쿠아마린 모험단의 면면을 찾아내도록.”
“““선택받은 자의 뜻대로.”””
“난 지금부터 3구역으로 가서 애송이를 잡겠다. 굴복한다면 ‘동포’로 만들어서 공주의 목을 베게 만들어야겠군. 퍽 즐거운 여흥이겠어.”
옥좌에서 몸을 일으킨 파블로가 길드하우스를 빠져나와,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경박하게 서두르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놈이 도망친다면, 그 보고를 받고 나서 따라잡아도 된다.
적어도 아틀란티스에서 놈이 파블로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8년 전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팽창을 가로막는 집단이나 압력은 모두 사라졌다. 아틀란티스 마탑을 제외하면 이제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으니, 발견되지 않는다면 마탑을 수색하면 그만이었다.
길드하우스에서 해안가까지의 거리는 얼마 안 되었다.
“도착했습니다, 단장님.”
“음.”
사두마차에서 두 발로 내려선 파블로가 아름다운 백사장을 내려다보고, 이내 그 시선을 돌렸다.
그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리도 없건만, 레너드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뒷모습을 본 파블로는 내심 놀랐다.
‘강하군. 허먼이라도 승산은 반반 정도인가.’
초월경에 오른 자 특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애송이는 외력경인데 초월경의 극한에 다다른 자와 대등하다는 소리였다. 비상식적이기까지 한 결론이지만, 파블로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말을 걸어본다.
“도망치지 않은 건 칭찬해주지.”
레너드와 파블로 주변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수백 미터는 더 물러나있었다. 적의와 살의를 드러내기 시작한 초월경의 힘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약자를 심정지시킬 수 있다.
공기가 얼어붙고, 땅이 미세하게 뒤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뒤돌아보지 않는 레너드였다.
“날 상대로 그렇게까지 허세부릴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군. 허나 내 아들을 참혹하게 죽인 죄값은 받아내야겠다.”
“흐.”
여전히 수평선만 내다보고 있던 레너드가 픽 실소했다.
“아들이라고 했나? 마당의 개만 못하게 취급하던 사생아를, 죽고 나서야 아들이라고 부르는군. 루치아노도 아마 명계에서 기뻐하고 있겠지. 제 아비가 한 번 불러줬으면 해서 일평생을 개짓거리만 일삼던 놈이었으니까.”
“…놈, 무슨 속셈이냐?”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도발에, 파블로는 오히려 두 눈동자를 얼음처럼 차갑게 식혀버렸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다.
그제서야 뒤를 본 레너드가 놈의 실체를 꿰뚫어보았다.
곰처럼 크고 강인한 몸뚱이에 숨겨진 것은, 뱀보다 더 깊고 음습한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미였다. 머리가 잘 돌아갈수록 상대방의 속셈을 읽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법이었다. 파블로의 속내를 간파한 레너드가 다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착각하지 마라. 유인책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너를 기다리고자 이 자리에 머물렀던 게 아니다.”
“뭐라고?”
파블로가 그 말에 일순간 경직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참은 더 고민했을 텐데, 파블로는 불과 몇 초만에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레너드와 마찬가지로 바다 건너편을 본 파블로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부릅떠졌다.
당연하기까지 한 반응이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는 선박은, 해상연합의 누구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배였으니까.
“아쿠아마린, 이라고…!?”
부둣가와 달리 3구역의 해안가에선 수심이 깊지 않아, 배가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제한되어있다.
수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아쿠아마린은 그 모습이 동전만한 크기로 확대되었을 때에 멈춰섰다.
그리고.
탁.
아쿠아마린의 갑판 위에서 날아오른 프란시스와 잭 러셀이,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던 전망대에 떨어져내렸다.
러셀의 장악력이 뻗어나가면서 파블로의 살기를 밀어내고, 그 뒤로 따라붙은 프란시스가 살풋 미소지었다.
레너드를 본 그녀는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요? 좋은 타이밍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