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2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20)
‘오는가.’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두 손바닥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의 무의식에 새겨져있는 ‘죽음’이 떠올랐던 탓이다.
아수라상은 그의 눈앞에서 여섯 팔을 느릿느릿하게 휘둘러, 기괴하기까지 한 자세를 만들어갔다. 파리도 못 죽일 것 같은 움직임인데 그 과정에 끼어들 수가 없다.
애초부터 느릿느릿하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었다.
‘뭣, 체감시간이?! 이 정도로 가속했는데도 저 속도였나!’
〈천주멸살〉의 조짐을 감지했던 순간, 레너드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준으로 가속해있었다. 벼락조차 그 흐름과 맥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천주멸살〉의 자세를 구축하고 있는 아수라상은 그보다 더 빨랐다.
권법의 동작으로 비유하자면, 정권을 내지르기 전에 하체를 고정시키고 두 팔의 위치를 조정하는 단계였다.
그 준비동작마저 레너드의 최고속도를 능가하고 있었다.
일원오행검결(一元五行劍訣)
오상류(五象流)
결전오의(決戰奧義)
〈운증용변세〉의 증폭 덕분에 가까스로 때를 맞춘다.
다섯 개의 칼날이 회전하는 궤도가 겹쳐지면서 그 범위만은 절대적으로 수호하는 영역이 된다.
공격과 방어.
한 박자 늦어진 상황에서 맞받아치는 것은 악수였다.
현무(玄武)의 벽(壁)
〈오색강기〉로 짜올려진 강기의 벽이 형성되는 것과 동시에 아수라상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고 느꼈다.
——————콰직.
레너드가 그 ‘다음’을 인지했을 때는, 전생과 마찬가지로 제 심장이 뜯겨나간 후였으니까.
〈현무의 벽〉에 뚫려있는 구멍과 함께 부러져나간 검들만이 그의 패배를 증명하고 있었다.
“쿨럭!”
체감시간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면서 입과 가슴팍에서 선혈이 쏟아졌지만, 레너드는 제 고통과 출혈 이상으로 크고 선명한 의문점을 품어야했다.
말도 안 된다.
〈현무의 벽〉을 관통하는 공격력은 그렇다쳐도, 그 과정조차 인지할 수 없는 빠르기라니.
인과(因果)를 생략하기라도 한 것 같은 수법이었다.
―〈천주멸살〉에 당하고도 즉사는 피했나? 귀찮아지겠군.
레너드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수라상으로 주먹을 한 방 내리쳤다.
이미 빈사에 접어들었던 레너드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이걸로 아흔 번. 열여덟 번 남았다.
심상세계에서 죽는다는 것은 그 정신의 소멸을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정신만 온전하다면 몇 번을 베고 찢어도 원상태로 소생할 수 있었다.
팟!
산산조각이 난 채로 흩뿌려진 파편과 피가 사라지고, 다시 온전한 몸뚱이로 나타난 레너드가 검을 만들어낸다.
이 사이에 난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한 불문율(不文律)이 없었더라면, 심마는 그가 부활하는 순간에 〈천주멸살〉을 쏘면 그만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 절명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테니까.
불과 몇 초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레너드가 방금 전의 경험을 돌아보기엔 충분했다.
‘인지속도를 벗어난 극쾌(極快)에, 절대적인 파괴력이라.’
회피불능과 방어불능.
〈육식제천살〉의 무리와 〈파황살선〉의 무리를 합쳐놓기라도 한 듯한 기술이었다. 이치는 물론이고 위력 또한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올라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준비동작부터 그의 최고속도를 넘어선 시점에서, 발동 전에 차단한다는 선택지는 덧없이 사라졌다.
‘동귀어진을 노려봐야하나?’
이 상황에서 방어와 회피 이외의 선택지라면, 〈천주멸살〉을 맞받아치거나 무시하면서 반격하는 것밖에 없다.
〈천주멸살〉의 범위는 넓지 않았다.
〈현무의 벽〉과 제 가슴팍에 난 상처로 짐작하건대, 성인의 머리통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크다. 레너드의 생명력은 검제 연무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으로 높았다. 머리만 남길 수 있다면, 오장육부가 다 날아가더라도 일격은 가능했다.
―생각하는 게 뻔히 보인다, 미치광이놈.
아수라상의 안에 떠올라있던 심마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턴 계속 머리를 노려야겠군.
그 선고와 함께 아수라상이 움직이고, 이전과 같이 한 박자 늦게 레너드가 대응했다.
태극오행검진(太極五行劍陣).
〈천주멸살〉은 일점집중형의 기술이다. 〈현무의 벽〉처럼 면 형태의 방어보다는 공격 자체를 무력화하거나 되돌리는 것에 중점을 둔 대책이 효과적일 터였다.
그러나.
——————콰직.
오행검진으로 만들어진 태극이 허물어지고, 그 뒤에 자리한 레너드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그러자 통제를 잃어버린 검들이 떨어져서 땅에 우르르 쑤셔박힌다.
힘을 돌려주고 자시고 할 틈조차 없다.
일격살(一擊殺).
머리통을 잃어버린 시체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그 자리에 재생성된 레너드가 혀를 찼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하듯이, 강함은 부드러움을 끊어낼 수 있다지만…이건 좀 너무하는군.”
무당파의 태극혜검에 미치진 못할지언정, 그 이치는 제대로 구현해낸 진법이었다.
속도와 예리함에 중점을 둔 청룡식으로도 제대로 된 태극을 베어내는 것은 어렵다. 태극검선이나 레너드 수준이라면 한두 번에 한해서는 번개도 흩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천주멸살〉은 그걸 단숨에 찢고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심마가 그의 푸념에 대답하듯이 질문했다.
―포기인가?
“설마.”
두 번의 실패로 주저앉을 정도로 나약하지도 않다.
앞으로 17번.
생사결에서 한 번의 패배는 죽음으로 이어져야하거늘, 무려 17번이나 더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무인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축복받은 환경이 어디 있으랴.
일원오행검결(一元五行劍訣)
오상류(五象流)
결전오의(決戰奧義)
아직 레너드에게 남아있는 패는 많았다.
황룡도, 현무도 안 먹혔다면 나머지부터 먼저 시험해본다.
청룡(靑龍)의 섬(閃)
오색 검강으로 불타오르는 검들이 한 자루로 합쳐지기라도 할 것처럼 겹쳐지면서 힘을 집중한다.
오행을 기반으로 한 벼락의 일섬.
〈파황살선〉을 양단했던 것보다 한 단계 높은 기술이었다.
―하, 〈천주멸살〉을 감히 쾌검으로 공략하겠다고?
하지만 심마가 그걸 비웃으면서 아수라상을 움직였다.
——————푸확.
아수라상이 레너드의 인지속도를 초월한 순간, 청색 검광이 산산조각나면서 그 칼자루와 함께 반신(半身)이 증발한다.
남아있는 내공 전부를 소모해서 호신강기까지 둘렀는데, 그 방어력을 무슨 종잇장처럼 뭉개버렸다. 팔과 다리가 하나밖에 안 남은 레너드가 휘청거리다가 지면에 엎어지자, 아수라상이 그걸 마무리하듯이 주먹을 내려쳤다.
―아흔두 번.
박살이 난 레너드가 원상복구되는 사이에, 심마는 그 꼴을 구경하면서 그의 죽음을 헤아렸다.
이제 16번 남았다.
한 번 공격해서 한 번 죽여댔으니 쉬워보일 수도 있겠으나, 심마 역시 레너드를 얕보고 있지 않았다. 재정비의 불문율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틀림없이 가까워지고 있군.
〈천주멸살〉의 원리를 간파하진 못했으나, 레너드의 경지는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정기신의 세 구성요소를 현실과 심상으로 나눠서 극한까지 몰아붙인다는, 한 걸음만 삐끗해도 주화입마로 떨어질 수련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단 증거였다.
제 혈통의 특수성으로 각성했던 〈오색강기〉도 점점 손발을 다루듯이 익숙해져간다.
심마 입장에서도 제법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승부였다.
―열여섯 번이라.
현경의 벽을 넘어서는 과정이라면 백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자랄 수 있지만, 레너드는 벌써 문턱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수준의 초고수였다.
언제든지 경지를 돌파하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그 실마리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심마가 다시 한 번 〈천주멸살〉을 펼쳤다.
——————콰앙.
레너드의 결전오의 중 하나, 〈주작의 격〉이 폭발하면서 그 불티와 함께 산산조각이 난 육편들이 튀어올랐다.
심마는 느낄 수 있었다.
아수라상의 표면에 아주 작은 그을림이 생겨났다는 것을.
그걸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면서 다음을 준비한다. 레너드와 달리 심마는 한 번 맞부딪힐 때마다 성장하거나 하지 않았다. 전생의 천마 단목진이 새겨놓은 흉터의 통증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그였다.
상처자국이 아물지 못하도록 그 틈을 벌려놓을 순 있어도, 레너드의 성장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
“열다섯 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재도전의 기회를 헤아려본다.
레너드와 심마.
〈오색강기〉로 만들어진 신수를 제 곁에 거느린 검객과 그 몸뚱이를 아수라상에 파묻은 마인이 재차 격돌했다.
* * *
레너드가 제 심상세계에서 〈천주멸살〉의 위력에 고전할 때, 현실세계에 남겨진 몸은 그 본능과도 같은 무예로 파상공세를 버텨내고 있었다.
투콰아아아앙—!
진녹색 섬광이 한 번 내리꽂힐 때마다 땅을 뒤흔들고, 해안 가까이 다가왔던 파도는 도로 물러나면서 바다가 뒤집혔다.
한 사람의 주먹질이 불러일으킨 광경으로서는 너무나도 큰 규모의 힘이 움직인다.
파블로 엘 오를란도 페터슨.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드물다. 초월경의 강자인 것도 모자라서 A등급 모험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데다가, 〈연합의회〉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유력자가 유명하지 않을리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비딕 모험단의 활동이 점점 뜸해지면서, 파블로의 강함을 기억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간 정치가 노릇이나 하면서 썩은 줄 알았더니, 여전히 괴물딱지가 따로 없군.”
“뭐, 모비딕의 전성기도 사실 파블로 한 명이 견인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지.”
베테랑 모험가들은 옛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그 힘에 전율하고, 어중간한 모험가들만 보고 살아왔던 주민들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레너드와 파블로 두 사람은 이제 외력경 9단, 10단급도 다 인식할 수 없는 영역에 올라서있었다.
다섯 자루의 검과 두 개의 주먹이 교차하면서 허공에 짙은 잔상을 새겨넣고, 그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몇 차례를 다시 격돌하면서 투명한 충격파를 터트린다.
콰르르르르릉——!
〈귀갑반혼경〉을 강타한 주먹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터져, 그 충격량을 감당하지 못한 레너드가 몇 미터 날아갔다.
연무혁의 몸이었다면 두 팔은 부러지고, 내상으로 기경팔맥 세 곳이 파열할 위력이었다.
극강(極强).
터무니없는 재생력을 토대로 한 파블로의 공격은 그 전부가 필살기나 마찬가지였다. 일시적으로 내공이나 신체능력을 몇 배 증폭시키는 수법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셈이었으니, 그걸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불합리할 수밖에 없다.
■■■의 권
■■를 찢어발기는 ■■
주도권을 쥔 파블로가 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세우고, 두 방향에서 거의 동시에 그어내렸다.
권강이 아니라 조강(爪罡)이 된 빛줄기가 열 가닥 쏘아져서 그 범위에 있는 것들을 산산조각낸다.
그에 맞서서 먹물처럼 새까만 강기의 벽이 가로막았다.
오상류(五象流)
현무칠식(玄武七式)
귀갑빙천벽(龜甲氷天壁)
당연하게도 그 방벽은 얼마 못 버티고 갈기갈기 찢어졌다.
면의 형태를 한 방어로 선의 형태를 한 공격을 받은데다가, 출력의 차이까지 압도적이니 버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귀갑빙천벽〉이 잠시라도 버틴 덕분에 레너드는 한 치 차이로 공격범위를 벗어났다.
몇 번째인지 모를 상황에, 파블로가 이를 갈아붙였다.
“쯧,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군. 결국은 꺼질 목숨이다. 몇 분을 유예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우열은 명확했다.
옷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걸레짝으로 변한 레너드와 달리 파블로는 제 코트를 벗어던졌던 시점에서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사실 그의 육체는 손상과 재생을 반복하면서 백 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피해를 경험했지만, 보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막이었다. 수백 배 단위의 체감시간에 돌입한 레너드조차도 겨우 간파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레너드의 의식은 제 심상세계에 진입한 상태라서, 파블로의 말이나 행동 따위에 반응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 상태야말로 무(武)의 본질에 가까웠다.
경지 이상으로 숙성되었던 정신으로부터 벗어나, 극한에 선 몸이 혈통으로 계승한 잠재력까지 일깨운다. 너무나도 뛰어난 무공실력이 줄곧 억누르고 있었던 힘.
카르데나스의 검재(劍才)가 그 몸에 재현되어있던 드래곤의 심장과 호응하면서 더욱 진화한다.
두근.
지금까지 계속 불협화음만 일으키던 육체가, 기운이, 의식이 맞아떨어진다. 연 단위로 수행해야하는 초월경의 돌파가 불과 몇 분만에, 아니 몇 초만에 진전되어간다.
중원무림에선 조화경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행을 총 5단계로 분류하고 있었다.
취정회신(聚精會神), 육체와 정신을 집중시키는 단계.
물심일여(物心如一), 두 구성요소가 구분을 상실하는 단계.
영기동인(英氣動人), 천지간의 영기를 끌어들이는 단계.
삼보상응(三寶相應), 정과 기와 신이 융화하는 단계.
천인합일(天人合一), 합일을 완성시키는 단계.
파블로와 싸우기 전의 레너드는 ‘취정회신’조차 이루지 못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영기동인’에 도달했다.
수십 번의 격돌로 만신창이가 된 육체가, 심상세계에서 몇 번이나 살해당한 정신이 탐욕스럽게 힘을 요구한다.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 있었던 〈오행진룡환〉이 처음으로 제 한계지점에 도달할 정도였다.
세 가지 구성요소가 완벽하게 맞물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뭐지…?”
파블로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던 발을 내려다보면서 의아해했다.
외신의 권능을 받으면서 초월경마저 뛰어넘은 그에게 있어, 저 애송이한테 위기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한 방만 맞추면 레너드는 산산조각날 것이고, 그와 반대로 레너드의 발버둥은 몇 번을 허용하더라도 파블로에게 통하지 않을 터다.
본능보다도 더 깊은 영역에서 전달된 경고였기에, 파블로는 그걸 귀담아듣지 않았다.
■■■의 권
하지만 모험가로서 쌓아왔던 경험과 업이 헛되지만은 않아, 아슬아슬하게 그 재생속도에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힘을 전부 끌어올린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고, 무의식중에 그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탓이다.
파블로의 등 뒤에서 불길하기까지 한 괴물의 형상이 일순간 나타났다가, 두 주먹에 모여들면서 진녹색의 강기가 암녹색에 더욱 가까운 색조로 물들였다.
여섯 개의 ■■
■■를 물어죽이는 ■■■
오른주먹과 왼주먹이 제각기 세 개의 광선을 뿜어낸다.
한 발 한 발의 출력이 7위계 대마법을 상회하는 파괴의 빛, 내공으로 추산하자면 일격에 최소 세 갑자가 담겨있었다.
도합 6발의 연격이었으니, 열두 갑자의 내공을 그 한순간에 쏟아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공에 있어서 내공량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이 정도면 백팔나한진도 감당하지 못한다.
“——죽어라.”
직선과 곡선으로 꿈틀거리는 권강이 여섯 발.
소리보다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