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29)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29)
백룡기사단장.
생각하지도 못한 거물과 마주한 레너드의 몸이 굳어졌다가, 곧 평정심을 되찾으면서 검을 놓았다.
두 사람의 의지가 완벽하게 가라앉고 나서야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압박감이 사그라졌다. 관리마법사는 이미 게거품을 문 채로 쓰러져있었다. 5위계라면 어디 가서도 푸대접을 받게 될 경지가 아니었건만, 자신에게 향하지도 않은 살기로 꼼짝없이 혼절해버린 것이다.
“이건, 상당히 당혹스럽군요.”
데미안의 등 뒤에서 걸어나온 유룡기사단장, 파비안이 자기 눈을 못 믿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30년이면 단장급까지 성장할 수 있는 천재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설마 3년도 안 지나서 초월경에 올라서다니? 가문의 역사 내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성장속도입니다.”
“뭐, 나도 스무살이 넘어서 초월경을 돌파했으니까. 10대에 돌파했다는 선대들도 전부 18, 19살이었을걸.”
서른도 안 지나서 초월경을 돌파한다는 것 자체가 세간에선 드물다못해 불가능한 일로 통했지만, 카르데나스 가문에선 또 다른 이야기였다.
7대 기사단의 단장들은 물론이고, 그 밑에서 복무하고 있는 혈족들조차 20대에 초월경을 돌파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물론 20대의 범주라지만 초반이나 중반보다 후반, 서른살을 목전에 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말이다. 7대 기사단에서 주력 인원으로 분류될 정도라면 그 정도는 필수적인 역량이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가문이로군.’
레너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그걸 짐작하고, 바깥세상과 카르데나스의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깨달았다.
제국 밖에서는 대영지를 통치할 수 있는 마스터급의 강자가 당연시되는 곳! 이 가문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초월경부터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데미안과 파비안이 놀란 이유도 결국 레너드가 너무 어리단 것이었지, 초월경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흐으음?”
그때였다.
그의 눈앞으로 다가온 백발사내, 데미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치 간격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간합이라면 레너드가 하수의 입장이라도 중상을 입힐 수 있을 텐데,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파비안과 다르게 레너드의 진신역량을 다 꿰뚫어본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구만. 너, 초월경을 돌파하고서 반 년도 안 지났지? 얼마나 됐냐?”
“3개월이 좀 넘었습니다.”
“역시나.”
지근거리에서 두 눈을 마주친 레너드는 깨달았다.
아니, 서로가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용안(龍眼)?!’
거울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의 눈은 그 동공이 날카롭게 갈라져있었다.
세계법칙의 흐름을 간파하는 통찰.
레너드가 그걸 알아차리자, 데미안은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자각하고 있구만? 초월경밖에 안 된 놈이 각성을 한 것도 모자라서 완성도까지 상당해. 용혈각성의 특질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히는 ‘눈’과 ‘심장’이라, 직계우월주의에 심취한 놈들이 다 뒤집어지게 생겼군.”
“용혈각성?! 레너드가 벌써 특질을 완성했다는 말입니까!”
조심스럽게 그를 지켜보던 파비안이 흥분한 기색을 다 참지 못하고 드러냈다. 아무래도 카르데나스 가문에는 아직도 그가 모르는 비밀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양이었다.
데미안은 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걸로 수긍하더니, 이내 레너드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지?”
“그렇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다 풀어버리고 싶지만, 남의 땅에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거든? 저 마법사부터 깨워서 가문으로 돌아가자고.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버렸구만.”
그 다음부터의 상황은 일사천리였다.
데미안을 중심으로 한 셋이 공간문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카르데나스 가문을 대표하는 7인의 기사단장.
사안의 중대함을 모를 리 없는 관리마법사가 일생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공간문을 개방했다.
웅웅웅웅웅웅?!
카르데나스의 검객들이 일제히 그 안으로 사라지자, 곧바로 공간문을 끈 관리마법사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안 그래도 심약한 편이었던 그에게, 오늘 온 손님들은 너무 자극이 컸기 때문이었다. 관리마법사는 그렇게 수정구 앞에서 몇 분을 심호흡하고 난 후에야 일어서서, 보고서에 쓸 내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하지?”
백룡기사단장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정체 모를 카르데나스의 혈족이 귀환했다는 것.
내용이 아주 조금만 잘못되어도 경을 칠 일이었다.
벌써부터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걸 느낀 관리마법사가 제 깃펜을 더듬거렸다. 이 공간문의 관리자로 일하는 것도, 슬슬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 *
아틀란티스에서 올 때와 마찬가지로 두세 개의 공간문을 더 거치고 난 다음이었다.
카르데나스 영지의 어딘가에 설치되어있던 공간문이 격하게 진동하더니, 그 안에서 셋이 걸어나왔다. 주변부터 두리번거린 레너드가 낯설기 그지없는 풍경에 눈을 깜빡거렸다.
이전에 그가 갈라파고스로 갈 때에 이용했던 공간문과는 또 다른 장소였다.
“카르데나스 영지에 존재하는 공간문은 열 개가 넘어.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데미안이 앞서 걸어가면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천천히 이동하도록 하지. 할 이야기도 많고, 오랜만에 돌아온 본가를 돌아보면서 걷는 것도 괜찮을테니.”
“좋습니다.”
“파비안, 자네도?”
“오늘의 일정표는 이미 다 취소했습니다. 동행하지요.”
반신경 한 명과 초월경 두 명.
누가 보더라도 ‘산보’와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온 거더라? 아, 그래. 용혈각성.”
레너드는 그 말에 나오자마자 정신을 집중했다.
카르데나스 가문에, 아니 혈통에 숨겨져있는 비밀 중에서도 퍽 대단한 내용이 틀림없었다. 아직 기능의 반도 깨닫지 못한 ‘용안’만 하더라도 무림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그의 태도를 본 데미안이 히죽거리면서 설명했다.
“너 정도의 재능이라면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겠지. 우리, 이 카르데나스의 혈통에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피가 섞여있단 것을.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신체능력과 마나적성, 초월경으로 도약하고 난 후에 경험할 수 있는 선조복귀(先祖復歸)까지 본 다음에는 확신할 수밖에 없어.”
“선조복귀…?”
“선대의 체질이나 특질 따위가 몇 대, 몇십 대를 경과해서 먼 후대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조회귀(先祖回歸)라고도 부른다는데, 말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
본래대로라면 머리색이나 피부색, 키와 골격이 부모와 다른 정도에서 끝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카르데나스 가문의 혈통, 그 정점에는 인간이 아닌 초월종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들이 창조해낸 세계수호자, 드래곤이었다.
“[매스 텔레포트]의 폭주에 휘말리고도 죽지 않은데다, 그 나이에 무려 초월경까지 돌파했다. 정체를 의심받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냐?”
“…그래서 단장님께서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정답이야. 혈족의 몸을 강탈해서 카르데나스에 잠입하려고 한 놈들은 제법 있었고, 초월경의 수준에서는 제압할 수 없는 외신숭배자도 몇 마리 있었지.”
혹시, 하는 생각에 긴장하기 시작한 레너드를 안심시키듯이, 픽 실소해버린 데미안이 제 손을 내저었다.
“네 정체를 의심했으면 본가로 데려왔겠냐? 그곳에서 바로 썰어버렸겠지. 그리고 내가 널 의심하지 않게 된 이유도 지금 한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용혈각성.”
“그래. 너를 죽이고 껍데기를 뒤집어쓸 순 있어도, 드래곤의 특질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세 사람은 어느샌가 인적이 드문 곳을 벗어나, 사람과 철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구역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위장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는 ‘피’나 ‘비늘’, ‘뼈’도 아니고 ‘눈’과 ‘심장’이라니. 그딴 게 가능했으면 카르데나스는 진작에 함락당했을걸.”
데미안이 흘린 말에 끼어든 레너드가 질문했다.
“용혈각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특질이 다양합니까?”
“다양하다…라고 할 정도는 아닌가. 내 기억으로 스무 개가 안 되는 걸로 아는데. 파비안, 어때?”
“기록상으로 확인된 특질은 총 15종입니다. 현존하는 것만 헤아리자면 10종이군요. 이 다음 내용부터는 제가 설명하죠.”
파비안은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데미안 단장님이 언급한 ‘피’, ‘비늘’, ‘뼈’와 ‘근육’, ‘힘줄’ 같은 특질들은 가장 흔하게 발현되는 부위들이다. 외력경부터 그 전조가 보이기 시작해서, 초월경을 돌파하면 완전히 몸에 도드라지는 종류지. 하급으로 분류되지만, 혈족이 아닌 인간과 비교하기 힘든 수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급이라는 말을 쓴다면, 중급과 상급도 있겠군요.”
“그 말대로다.”
레너드의 말을 긍정한 파비안이 제 입술을 달싹거렸다.
“한 번의 호흡으로 대량의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폐’와 마나를 집속시키거나 해산시킬 수 있는 ‘뿔’, 발현자의 의지에 따라서 펼쳐냈다가 거둘 수 있는 ‘날개’가 중급으로 분류된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내 특질은 ‘피’와 ‘폐’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용이다보니, 뭐가 대단하고 아닌지도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레너드는 얌전히 고개만 몇 번씩 끄덕거리면서 경청했다.
파비안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상급으로 분류되는 특질은 단 하나, ‘눈’이다. 이건 나보다 네가 잘 알겠지. 현 시대의 카르데나스에도 용안각성자는 셋, 이제 널 포함해서 넷밖에 없다. 마나의 흐름은 물론이고, 고위 마법의 형성원리 같은 것도 꿰뚫어볼 수 있다더군.”
“과연….”
“마지막으로 최상급의 특질에 해당하는 ‘심장’인데…이건 좀 특수성이 강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역대 가주님들만 대대로 발현했다는 특질이라서, 아마도 방계에서 나타난 경우는 네가 최초일 거다.”
그 의미를 알아들은 레너드의 낯이 굳어졌다.
‘귀찮아졌군.’
역대 가주들만이 발현한 특질이라는 것은, ‘심장’의 특질을 각성하면 가주후보가 될 수 있다는 뜻과 동일했다.
권력이나 지위 따위에 연연할 생각이 없는 레너드에게 그건 제 발목을 잡는 문젯거리에 불과했다. 대공 작위? 아르카디아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 그딴 건 아무래도 관심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파비안이나 데미안이 그걸 주제로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 세 사람의 발걸음이 멈춘 장소는, 카르데나스에 몇 군데나 존재하는 연무장이었다.
“…이봐. 저쪽을 한 번 봐봐.”
“왜 그래? 어?”
“설마, 저 사람은…?”
데미안이나 파비안을 알아본 사람이 몇 명 있었는지,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바람 가르는 소리만 요란하던 연무장이 금방 조용해지면서 때 아닌 정적이 찾아들었다.
두 사람과 함께 등장한 레너드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알게 모르게 뒤섞여있었다.
“미안하지만 연무장을 좀 쓰자. 비켜봐.”
백룡기사단장의 명령 아닌 명령에 기사들이 재빨리 움직여,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대신에 가장자리로 물러섰다.
고수의 일거수일투족에서 깨달음을 얻어내려고 하는 시도는 이쪽 세상이나 전생의 무림이나 마찬가지였다. 망향(望鄕)과도 같은 기분을 떨쳐버린 레너드가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그걸 본 데미안이 경쾌한 휘파람을 불어제꼈다.
“빠릿빠릿한데? 너도 한 판 붙어보고 싶었나보지?”
레너드는 제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면서 말했다.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래저래 경험은 쌓았습니다만, 반신경의 강자를 만날 기회는 못 찾겠더군요.”
“세상은 넓지. 그렇지만 카르데나스보다 높지는 않아.”
대륙제일검가의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할 선언이기도 했다.
“데미안 단장님.”
뒤이어 레너드의 맞은편으로 향하려던 데미안 앞에, 투지로 이글거리는 눈을 한 파비안이 나타났다.
데미안이 레너드에게 관심을 가진 것처럼, 파비안도 이전날 자신에게 작은 깨달음을 준 소년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 어린 나이부터 마음의 검을 다스리던 천재가, 초월경이 된 지금은 어떻게 검을 휘두르는지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호, 자네가 먼저 해보려고?”
“부탁드립니다.”
그의 열의에 한 발 물러선 데미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구만.”
두 사람의 구도를 어떻게 본 것인지, 파비안은 그것을 잠시 궁금해하다가 잡념을 다 떨쳐버렸다.
16살에 초월경을 돌파한 레너드는 틀림없이 불세출의 천재.
카르데나스에서 몇 번이고 목도했던 괴물들을 감안한다면, 대등한 경지에서도 그 전력을 다해야할 상대였다.
스르릉.
파비안의 검이 뽑혀나오면서 그 칼날로부터 올올이 풀리는 오러블레이드를 만들었다.
검강으로 된 실이다.
다섯 번째 그림자의 팔다리를 일격에 동강내버렸던 쾌검과 조합한다면, 오의도 아닌 일반공격이 필살기가 된다.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그 당시의 기억이 재생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검초가 수십 가지나 떠올랐다가 곧 사그라졌다.
그리고.
“시작하지.”
“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걸음을 내딛고, 레너드와 파비안이 실전과 다를 것 없는 기백으로 검을 내질렀다.
목덜미를 베어날리고 심장을 찔러꿰뚫는 검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치명적인 검격이 교차한다.
카아아아아앙??!
연무장의 가장자리에서 지켜보던 기사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살기등등한 격검(擊劍). 검강이 서로 깎아내면서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가장자리까지 튀어나온 것들은 데미안이 손만 한 번 털어서 지워버렸다.
첫 검격으로부터 정확히 32초를 주고받은 후였다.
“…….”
“…….”
파비안은 제 목젖 앞에서 일렁거리는 칼날을 내려다보면서, 1분도 안 지나서 결판이 난 승부를 회고했다.
최선을 다했는가? 그래.
전력을 다했는가? 실전용으로 다듬어진 수법과 필살기 등은 봉인했다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싸운다면 이길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한 번 묻고, 그 대답을 들은 파비안이 검을 늘어트렸다.
“졌군.”
그제서야 데미안이 한 말을 납득한 파비안이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