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3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31)
일격필살을 장담할 수 있는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레너드는 이게 유효타가 될 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남아있는 힘을 두 눈에 쏟아넣었다.
용안으로 본다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안 놓치고 본다.’
공간마법의 원리까지 간파할 수 있는 시야가 오직 한 사람, 데미안의 움직임을 분석하는데 그 기능을 집중시킨다.
근섬유가 진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공의 수축이나 이완, 신경계를 타고 흐르는 전기신호까지 관측하게 될 정도로.
본래대로라면 육체가 아닌 정신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시각이었다. 상대방이 규격 외의 초강자, 백룡기사단장 데미안과 다른 자였다면 그렇게 되었으리라.
두 쌍의 용안이 공명하면서 상대방의 의지가 전해져온다.
―이야, 잘 쓰는구만? 용안의 사용법을 따로 가르칠 필요도 없어보이는데?
레너드가 아무리 체감시간을 늘려봤자, 데미안이 그 배속을 쫓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주멸살〉처럼 인과의 틈새를 지워버리는 권능까지 쓸 수 있는 경지가 반신경이다. 신경계만 몇백 배 몇천 배 가속하는 것을 넘어서, 시간을 완전히 멈추거나 되감거나 하는 것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데미안의 검이.
“?뭣.”
저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진 레너드가 경악했다.
열 갑자에 가까운 내공을 밀어넣었던 강환, 〈주작의 격〉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강환을 파괴하거나 벤 것도 아니었다.
용안으로도 볼 수 없었던 찌르기가 그의 검극을 멈춰세우는 순간, 이전에 한 공격들과 마찬가지로 상쇄되어버렸다. 심마의 〈천주멸살〉에 처음으로 당했을 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데미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히죽거렸다.
“어때? 잘 모르겠지?”
레너드가 대답하는 것보다 반 박자 빠르게, 앞으로 한 걸음 내딛은 데미안이 검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들어가볼까?”
정체불명의 검권이 한 걸음에 몇 배로 넓어진다.
어떻게 반응하고 말고 할 틈조차 없이 연무장 전체를 삼킨 검권이 레너드의 목덜미를 오그라들게 했다. 한순간에 자신의 목을 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았던 심마와는 격이 다르다.
반신경의 강자와 대결한다는 것은, 미지의 법칙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와의 투쟁을 의미했다. 모른다면 반드시 죽고, 알고 있다고 해서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다. 심마와 싸울 때처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어가면서 도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키잉.
데미안의 검이 정석적이기까지 한 수평베기를 날렸다.
좌에서 우로 베어내는 횡소천군(橫掃千軍)이다.
초월경 수준에서야 논할 가치도 없는 기본기에 불과했지만, 레너드는 한 치의 방심도 없이 검로를 틀어막았다.
“……이건, 도대체.”
일검이었다.
데미안의 칼날이 그 목을 베어내기 직전에 멈춰있었다.
“이걸로 한 번이다.”
검격 자체가 터무니없이 빠른 것도 아니었으며, 기이막측한 변화를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수평베기의 정석이나 다름없는 검로가 우측에서 날아들어서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렇다.
‘좌에서 우’가 아니라 ‘우에서 좌’로 말이다.
“감도 안 잡히지?”
레너드의 목덜미에서 검을 회수한 데미안이 말했다.
“시간을 멈춘 것도 아니고, 공간을 도약한 것도 아니야. 잘 생각해봐라. 생각해서 잘 모르겠으면 감으로 찍어보든지. 그게 정답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런 식으로 깨달아봤자 성장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
데미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너드가 금방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6살에 초월경까지 된 천재가 일격으로 진 셈이었으니, 자존심이 처참하게 무너졌으리라.
정신의 동요를 가라앉히는데 최소 한나절이, 길다면 며칠이 더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몇 번의 기회가 남아있습니까.”
“호오?”
그러나 레너드는 한두 번 꺾인다고 체념할 정도로 무르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제 검을 수련할 기회를 놓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데미안으로서는 여러모로 즐거운 오산이었다.
“내가 질리거나 네가 포기할 때까지로 할까?”
“좋습니다.”
두 검객이 다시 간격을 벌려놓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걸음 다가서면서 참격을 뻗어냈다.
검격 자체는 철저하게 기본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걸로 두 번.”
몇 초만에 수십 합을 주고받던 게 거짓말처럼, 레너드의 목 앞을 점령해버린 검극이 두 번째 죽음을 선고한다.
위에서 내리베던 검이 갑자기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상하좌우(上下左右)에 간섭했던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의 머릿속으로 순간 ‘반전(反轉)’의 개념이 스쳐지나갔다. 현상이나 방향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그가 경험한 일 대부분이 설명가능하다.
‘하지만 힘의 방향을 반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청룡의 섬〉과 〈주작의 격〉을 상쇄한 게 설명되지 않는다. 반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반전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일 가능성이 높아.’
수법 하나를 알아낸 것만 하더라도 충분한 소득이었다.
카아앙! 캉! 카앙!
데미안과 레너드의 격검이 단숨에 그 수를 늘려, 백 초까지 주고받으면서 연무장에 크고 작은 흉터를 만들었다. 순수하게 검술 자체의 예리함이 공간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으음…!”
호승심으로 자신에게 튄 검력을 받아낸 파비안이 제 검면에 난 흠을 보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검강이나 검기의 완성도를 떠나서 검의 움직임에서 한 차원 높은 참격이 발생한다. 데미안은 그렇다쳐도, 레너드가 이렇게 따라붙을 수 있다는 것은 의문스러웠다.
재능과 다르게 업(業)은 그 생애로 쌓아야하는 것인데, 아직 스물도 안 된 나이로 이렇게까지 무겁고도 깊이가 있는 검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그의 의문이 해결될 리도 없이, 데미안은 다시 한 번 찾아온 결말의 수를 헤아렸다.
“세 번.”
오랜만에 할 마음이 생긴 데미안도, 반신경의 강자에게 한 수 배우게 된 레너드도 멈출 마음이 없었다.
즉흥적으로 개시된 비무가 한 시간을 넘고, 두 시간에서 세 시간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패배를 경험한 레너드가 멈춰섰다.
백룡기사단장의 심상무예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오냐.”
데미안이 그 요청대로 검을 멈추자, 두 시간이 넘도록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파비안은 겨우 안구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에게 있어서도 큰 공부가 되는 상황이었던지라,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눈을 부라린 탓이었다.
두 눈을 내리감고 생각을 정리한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수면에 비친 달, 이군요.”
이쪽 세상에도 경화수월(鏡花水月)이라는 말이 있는지는 알 수 없어서, 간결하게 잘라낸 말에 데미안이 웃어젖혔다.
레너드의 표현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수면에 비친 달이라? 하, 멋스럽게도 표현하는구만.”
눈에 보이지만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거리감을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설명하려고 한 문구였다.
데미안도 그 결론을 부정하지 않고 수긍하면서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내 심상무예의 근원은 ‘거울’이니까, 수면과도 닮은 부분이 많겠지.”
역시, 하고 고개를 끄덕거린 레너드가 그 개념의 막강함을 새삼스럽게 체감했다.
〈청룡의 섬〉이나 〈주작의 격〉을 상쇄해버린 것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상대적으로 격이 부족한 기술이다보니, 상(像)만 반전시켜도 제 힘을 그대로 돌려받아서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블로와 대적할 때에 배웠던, ‘격의 차이는 출력으로 넘을 수 없다’는 이치와도 같았다.
‘격하(格下)의 적을 상대한다면 무적이나 다름없겠구나.’
일시적으로 반신의 격을 구현할 수 있는 레너드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그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초월경에서 데미안을 상대로 유효타를 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레너드라고 해도 현 상태에선 반전을 파훼하기 위한 공격수단이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천주멸살〉을 너무 경험해서 화(火)와 수(水)만 단련된 게 문제로군. 저 개념을 돌파하려면 금(金)의 반신경, 〈서신류〉를 완성시켜야한다.’
〈북신류〉의 정지능력과 〈남신류〉의 활성능력은 ‘거울’과 별 상성관계가 없다. 〈북신류〉로 멈춰봤자 상대와 함께 정지하고 말 것이며, 〈남신류〉의 그 공격력을 반사당했다가는 속절없이 자멸해버리고 말 터였다.
만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백호, 〈서신류〉로 ‘거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잘 이해했나보군. 좋아, 여기까지다.”
데미안은 제 검을 납검하면서 몇 마디 호의를 베풀었다.
“초월경까지 돌파하는 과정이 바깥에서 들어온 걸로 안쪽을 채워넣는 작업이라면, 반신경부터는 그와 정반대야.”
“안에서 바깥으로 내보내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제 마음속에서 심상(心象)을 조종하는 것은 초월경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내보내서 자신의 법칙대로 세상을 개벽시키려면 반신경에 올라야하지.”
참격의 상하좌우를 반전시킨 것도 그 권능의 일환이었다.
반신경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반신경과 싸웠다가는, 레너드조차도 일격에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저의 무지를 깨우쳐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결과적으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던 레너드가 정중히 몸을 숙여보이자, 처음부터 별 생각이 없었던 데미안은 머쓱해하는 기색으로 등을 돌렸다.
“크흠, 심심풀이로 한 거니까 그리 신경쓸 거 없다.”
폐허가 된 연무장을 뒤로 하고, 세 사람은 다시 카르데나스 가문의 최심부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 목적지를 아직 모르고 있던 레너드가 질문했다.
“그러고보니 저희들은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아,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연무장부터 끌고 가셨으니 당연히 할 시간이 없었지요.”
데미안에게 면박을 준 파비안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7대 기사단의 주둔지역으로 가는 중이다. 그곳에서 레너드 네 직위와 소속을 결정하게 될 거다.”
“제 직위와 소속을?”
파비안은 그래, 하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설명했다.
“16살에 초월경이 된 것도 모자라서 날 일방적으로 제압한 너다. 7대 기사단에서도 그 정도의 실력자를 모집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거든.”
“평상시에는 배철러와 배너렛급 기사 중에서 싹수가 보이는 놈을 몇 명 데려와서 괜찮은 수준이 될 때까지 굴려보지.”
“…그 과정에서 대부분 낙오된다는 말도 빼놓지 마시지요.”
괜히 카르데나스의 혈족들이 그 유년기부터 7대 기사단으로 입단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었다. 7대 기사단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카르데나스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았다는 증명이었다.
그런데 레너드는 그 선발과정을 생략한 것도 모자라서 몇몇 단장들에게 직통으로 소개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7대 기사단의 소속별 차이는 무엇입니까? 알아보기 쉽도록 색을 구분해놓은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 한 질문은 데미안과 파비안으로서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지, 레너드에게 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몇 마디 나누고 난 후에야 답을 들려주었다.
데미안이 그를 위협하듯이 물었다.
“여기까지 듣고 난 다음에는 7대 기사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냐?”
“예, 상관없습니다.”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반신경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곳이 카르데나스다. 그곳에서 다음 경지를 목표하려면, 최고의 정예들이 모이는 7대 기사단에 소속되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
레너드의 단호한 말에 흡족해하던 데미안이 말했다.
“네 말대로 7대 기사단의 구분은 단순히 알아보기 쉬우라고 한 것이 아니다. 관할하는 업무, 정확히 말하자면 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종(種)이 다르기 때문이지.”
“종족…이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스케일이 좀 크지? 그런데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 과장한 것도 아니다.”
그 문단부터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레너드조차 경악을 금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데미안은 그의 반응을 기대하듯이 두 눈을 마주치면서 계속 설명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흑룡기사단은 심연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온 마족들을 처리하지. 청룡기사단은 저 하늘 너머에서 내려오려는 천족들을 처리하고. 최후의 패라고 할 수 있는 황금룡을 제외한다면 모든 기사단에는 적대종족이 별도로 존재한다.”
“마족(Demoniac)…? 천족(Celestials)…?”
“그놈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가르쳐주마. 그리고 우리 백룡기사단이 상대하는 것은 옛 시대에 몰락한 존재, 신앙을 잃어버리고 지상으로 추락한 신의 껍데기들이다.”
그는 먹잇감의 감촉을 되새기듯이 사납게 웃으면서, 백룡이 전담하고 있는 종족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허신(Void Deities). 백룡기사단의 주임무는 바로 그놈들을 영원히 매장해버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