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3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34)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백룡기사단의 체험입단이 결정된 후, [용들의 전당]을 나선 레너드는 곧바로 [검의 숲] 내부에서 비어있는 첨탑 한 채를 거주용으로 배정받았다.
몇 년간은 사용하지도 않았던 건물치고는 그 내부의 관리가 잘 되어있어, 얼마 안 되는 짐을 풀어놓자마자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편의시설부터 시작해서 지하에 있는 훈련시설까지, 한 명의 수련자가 머무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중에서도 탑 최상층에 설치되어있는 연공실 내부였다.
“스으으?….”
연공실 정중앙에서 가부좌로 앉은 레너드가 아주 긴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이 한 번 교차할 때마다 거의 한 시간이 경과할 지경이었다.
레너드는 그날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끝없이 호흡만을 거듭하다가, 다음날의 해가 뜰 무렵에서야 눈을 떴다.
운기요상(運氣療傷)이 끝난 것이다.
‘터무니없는 위력이었다. 제대로 된 공격이 아니었는데도 다 아무는데 사흘이나 걸릴 줄이야.’
적룡기사단장, 웨이드의 심검이 남기고 간 내상을 완치시킨 레너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은 그를 죽이거나 상처입히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생유명검〉에 놀라서 제 몸을 움찔거린 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어야했다. 사람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는다는 표현과 다를 게 없었다.
심마를 쓰러트리고 초월경을 돌파하면서 전생의 그 자신을 뛰어넘었지만, 아직도 넘어야할 벽이 높으면서도 많았다.
‘아니, 그래도 소득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
무림인들이 왜 강자와의 생사투를 그토록 바라겠는가?
자신보다 명백히 강한 자와의 투쟁으로부터 살아남으면, 그 경험 자체가 자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웨이드의 심검 또한 레너드에게 상처만을 남긴 게 아니었다.
화룡(火龍).
그 숨결로 타올랐던 심상세계에 화기(火氣)가 충만해졌다.
‘〈남신류〉의 성취가 한층 더 깊어졌구나.’
수치상으로 표현해보자면 1성 정도일까.
초월경의 테두리에서 한 발 벗어난 레너드는 더 성장하기도 쉽지 않은데, 웨이드의 심검이 해낸 것이었다. 물론 몇 번이고 거듭해서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아니었다.
이 정도의 내상으로 끝난 것만 하더라도 운이 좋았고, 아주 조금만 더 지나쳤어도 연 단위의 후유증이 남아버렸을테니.
“…〈드래곤하트〉라.”
레너드가 두 눈을 반개한 채로 스스로의 내부를 관조하니, 그 시선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부에 있는 오색구슬이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드래곤하트(용의 심장).
카르데나스의 혈맥에 주어지는 특권, 용혈각성에서 나올 수 있는 특질들 중에서도 규격 외에 해당하는 기관이었다.
웨이드의 심검이 남겨놓은 화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면서 그 회복을 가속해준 기관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평상시와 달리 붉은색의 비율이 좀 높아진 것 같았다.
‘한 번에 특정한 속성력만을 과도하게 받아들인다면 균형이 깨질 수 있겠군. 조심해야겠어.’
운기행공(運氣行功)으로 진정시킬 틈이 있다면 모를까, 전투 도중에 붕괴했다가는 몸이 안쪽부터 그대로 폭발하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제 몸을 일으켜세웠다.
백룡기사단장, 데미안과 허신토벌을 하게 될 날이 어느샌가 내일로 다가와있었다. 그 전까지 가문 내에서 할 일과 공부를 끝마쳐두지 않으면 안 된다.
연공실 측면에 뚫려있는 창문으로부터 [검의 숲]을, 그리고 먼 곳에 있는 훈련소를 내다본 레너드는 바로 그저께 듣게 된 훈련생들의 소식을 떠올렸다.
―1번. 윌리엄은 최단기간에 스콰이어에서 배철러가 된 후로 그 재능에 걸맞은 활약상을 계속 선보이며, 적룡기사단으로의 입단을 목표하는 중.
―2번. 벨리타는 용안 특질의 각성조짐을 보여서 본가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녀가 만약 각성한다면 카르데나스의 용안은 다섯 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4번. 딜런은 직계 셋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7대 기사단의 스카우트를 받았는데, 그 상대는 영룡기사단이었다. 아무래도 영룡기사한테는 좀 특수한 소질이 요구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3번, 헤더를 회상하게 된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늑대기사]인가.”
놀랍게도 헤더의 이야기가 넷 중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다.
훈련생 시절부터 검술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 독특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위클라인 가문의 제안을 받으면서 마검사로 거듭난 모양이었다. 직계 세 사람과 달리 특질이나 초상능력을 지니지 못한 그녀였으니, 마법은 퍽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몇 번의 임무를 마치고서 가문에 돌아왔을 때, 그가 영수로 만들었던 늑대가 너무 커져버려서 어떻게 할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나보다.
―제가 데려갈게요.
훈련생들은 물론이고, 베테랑 기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크고 센 놈이었지만 헤더에겐 의외로 순순했다던가. 야외훈련 당시에 함께 어울려다닌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늑대를 타고 다니는 여기사가 유명해진 건 금방이었다.
“다행이군. 내가 없어졌던 사이에 살처분이라도 당했더라면, 여러모로 기분이 안 좋았을 텐데.”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넷 모두 본가에서 멀어졌다보니 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만나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촤라락.
네 사람의 동기들을 회고한 레너드가 곧 책상에 펼쳐놓았던 책을 집어들었다. 가문의 기밀로 분류되는 서적, [용혈각성]이 발현해온 특질과 사용법을 기록해놓은 책이었다.
당연하게도 15종의 특질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피’와 ‘뼈’ 같은 하급이었고, 가장 적은 분량을 차지하는 문단은 ‘눈’과 ‘심장’이었다.
역대 사용자들의 수기라도 짧게 몇 문장씩 적어놓은 용안은 그렇다쳐도, 〈드래곤하트〉는 아예 그 존재만 언급해놓았다.
〈드래곤하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잘 활용하려면, 가주에게 직접 배우는 수밖에 없단 소리였다.
‘뭐, 용안의 노하우만 해도 상당하다만.’
레너드는 그 책에 적혀있는 용안의 사용법을 시험해보면서, 괜히 [용혈각성]의 상급으로 분류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야했다.
“오?”
별 생각도 없이 휘둘러진 검에, 창문 너머로 쏟아져들어온 빛이 갑자기 뚝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야할 참격이, 반신경의 격을 동원하지 않은 상태로 가능해졌던 것이다. 용안사용자가 왜 특별취급을 받는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어야할 열(熱)이나 역장(力場)의 경계, 파동(波動)마저 포착가능하다. 사용자가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수록 용안도 진화한다니, 반신경에 달한 후에는 인과나 시공간의 흐름까지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천주멸살〉을 초면에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무엇보다도 ‘본다’는 것은 곧 ‘간섭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심상무예의 영역에 도달했다면, 스스로의 지각력과 상상력이 허용한 범위를 벨 수 있었으니까.
‘이 정도라면 아르카디아가 왜 세계 정복을 하지 않는지 더 궁금해지는데. 제국의 나머지 삼공, 위클라인과 제하이어는 또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의문스럽고.’
백룡기사단이 전담한다는 영역, 허신만 하더라도 이 가문의 바깥에서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아르카디아 제국이 왜 세계를 수호한다는 사명을 이어받고, 삼공 가문에서 그걸 떠받치는지 모르겠다. 그 뒷사정까지 다 알아내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직위까지 올라가야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적어도 7대 기사단에서 단장급은 되어야하려나?’
현 시점의 레너드가 해소할 수 있는 의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곧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용혈각성]의 서적이 아닌 기밀문서를 꺼내들었다.
내일 데미안과 동행하게 될 임무의 대적(對敵), 허신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놓은 서류였다.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레너드를 배려했는지, 허신이 무엇인지부터 그 힘의 원천까지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허신은 옛 시대에 군림했던 초월체, 신(Deity)의 불멸성과 그 힘의 일부로 되살아난 유해(遺骸)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 위험도는 최소 초월경부터 반신경의 수준에 이르며, 그 활동을 오랫동안 방치했다가는 옛 시대의 영역까지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상당수 존재한다.
―신성을 잃어버린 허신들의 존재기반은 제 신앙과 지명도에 크게 외존한다. 섬기는 자, 두려워하는 자, 아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힘을 되찾아간다. 숭배자를 처단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그 지식을 매장해야만 허신토벌이 수월해진다.
―지금부터 옛 시대에 존재했던 신족의 분류와 각 신족에서 이름 높았던 허신들에 대하여 서술하겠다.
문자 그대로 괴력난신(怪力亂神)이나 다름없었다.
섬기는 자, 두려워하는 자, 아는 자가 많으면 강해진다니?
‘이 부분만큼은 외신보다 한술 더 뜨는군.’
레너드는 이 문서를 읽고 난 다음에야 제국과 카르데나스가 왜 자신들의 활동을 은폐하는지 짐작했다. 적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신의 경우에만 해당하는지, 아니면 천족과 마족도 비슷한 놈들인지는 잘 모를 일이었다.
그 문단을 꼼꼼하게 읽고 넘기니, 백룡기사단이 토벌했거나 발견하고 기록한 허신들에 대한 정리가 나왔다. 내일 가게 될 토벌임무의 대상도 그중 하나였다.
문서에 적혀있던 발음기호를 본 레너드가 중얼거렸다.
“외팔의 검신, [티르(Tyr)]인가.”
소속되어있는 신족은 애시르(Æsir)로, 수십 건의 토벌사례가 존재하는 놈들의 일원이었다.
신격도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다.
데미안이 체험임무로 괜찮은 수준이라고 할 만한 상대였다.
쿵쿵.
그 순간이었다.
첨탑 입구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방문객을 알게 된 레너드가 연공실에서 빠져나왔다. 계단을 쓸 것까지도 없이 나선형으로 되어있는 층계의 정중앙으로 뛰어내려, 간단하게 착지한 그가 손님을 맞이했다.
문 너머에서 얼굴을 보인 것은, 레너드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적룡기사단원 특유의 복식만이 그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주었다.
“레너드입니다. 절 찾아오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적룡기사단의 복장을 한 기사는 정중하게 손에 들고 온 상자를 내밀었다.
직사각형의 형태를 한, 작은 상자였다.
“적룡기사단의 조엘입니다. 이건 단장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사죄의 의미로 보내시는 선물입니다.”
“아, 웨이드 단장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레너드에 대해서 전해들은 게 있는지, 아니면 그의 실력을 알아보기라도 했는지 조엘은 그 앞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까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몇 번의 뜀박질로 연공실까지 돌아온 레너드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내려놓았다.
적룡기사단장 같은 위인이 소인배처럼 굴 것 같진 않았으나 주의를 기울여서 나쁠 건 없었다. 기감이나 용안으로 탐색을 거듭해도 나오는 게 없자, 결국 상자의 잠금쇠에 손을 대고서 그 뚜껑을 들어올려본다.
“……단검?”
칼집은 존재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천에 파묻혀있던 단검은 그 자루부터 검극에 이르기까지 황금으로 칠해져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장식품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고가의 귀중품인 것은 분명했으나, 반신경의 검사가 초월경 검사에게 선물로 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서로 금품 따위에 연연하거나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단검 자체보다는 선물에 무슨 의미가 숨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데미안 단장님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