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3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36)
데미안은 그렇게 설명하면서 그 산봉우리의 중심에 우뚝 선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기둥이나 뿔처럼 곧게 솟아있는 암석은 이 대자연의 장엄함마저 느껴지게 했다.
그러나 그는 풍경이나 감상하자고 시선을 준 게 아니었다.
“레너드.”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레너드가 대답했다.
“예.”
“용안의 사용법은 얼마나 숙달했냐? 투시(透視)랑 초가속은 가르쳐주기 전부터 할 수 있었으니, 진안(眞?)의 구분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일단 발동시키는 것 자체는 성공했습니다만, 시험해볼 수 있는 대상이나 상황이 없었습니다.”
[용혈각성]을 설명하는 책에 기록되어있던 내용이었다.용안은 제 사용자의 역량만 따라준다면 무엇이든 ‘보는’ 게 가능한 능력이며, 진실과 거짓이라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검의 숲]에 환상마법을 대비하는 훈련시설도 있을 텐데…네가 이용할 시간이나 여유가 따로 없었겠군. 내상부터 먼저 고쳐야했을 테니까.”
상관없지, 하고 넘어가버린 데미안이 말했다.
“네 용안을 활성화시켜서 저걸 관찰해봐라.”
레너드가 그 지시대로 ‘눈’을 발동시키자, 적색 홍채의 동공 부분이 쩍 갈라지면서 시야를 확장했다. 투시능력이나 열감지 능력과는 좀 다른 시야였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눈(True Sight).
정보단체라면 제 수명을 깎아서라도 가지고 싶어할 능력이, 용안사용자에겐 수많은 기능 중 하나에 불과했다.
거짓말이나 간파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환상마법이나 투명화 같은 능력까지 모조리 꿰뚫어본다. 세뇌 등을 비롯한 정신계 능력에도 반영구적으로 면역 상태가 되어버리니 문자 그대로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온 세상이 무색투명한 그림처럼 변화한 시야에서, 이질적인 색과 형태로 일그러진 곳이 존재했다.
데미안이 관찰해보라고 한 바위가 바로 그곳이었다.
기의 흐름으로도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그 완성도가 높다. 환상마법과 결계마법이 공존하는 마법식인데, 두 가지 기능이 서로 방해하기는커녕 상승효과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아도 진짜 암석의 질감만 느껴지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인식마저 흐트러트리는 능력이 더해져있다.
하지만 레너드처럼 그 진위를 간파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다.
“이쪽이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환상을 돌파한 레너드가 어느 지점에 손을 올려놓자, 바위의 형상이 신기루처럼 녹아내리면서 그 내부로 뚫려있는 동굴입구가 드러났다.
그걸 본 위클라인의 마법사가 못 참고 투덜거렸다.
“며칠이나 걸려가면서 겨우 완성한 마법인데, 눈 좀 좋다고 뚫려버리는 게 말이 됩니까? 그놈의 용안은 진짜.”
“마법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의 눈을 속이려고 하는 건 말이나 되고? 잠깐이라도 집중하게 만든 걸로 만족해.”
“하아.”
그 종족의 기원부터가 세계수호자로, 언령 한 마디로 모든 세계법칙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드래곤이었다.
제아무리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해봤자, 신의 영역에 닿지 못한 수준에서는 드래곤을 능가할 수 없었다. 데미안의 말이 얄밉기 그지없더라도 그 논리 자체는 무적이었다.
“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 최대한 빨리 끝내볼테니.”
한숨만 쉬고 있는 마법사를 내버려두고, 두 사람은 곧 동굴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 들어가기가 무섭게 레너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렬하기까지 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바깥에서 볼 때보다 너무 크고 넓다. 마법적인 영향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공간이 왜곡되어있는 건가?’
용안으로 들여다봐도 그 원리를 모르겠다. 고대유물과 같이 파악할 수 없는 종류의 특이점이 개입하고 있는 듯했다.
서너 걸음 앞에서 나아가던 데미안이 말했다.
“허신은 그 존재기반이 우리보다 높은 차원에 있기 때문에, 물질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일대가 놈의 영역으로 점점 변질되어간다. 일명 〈신역〉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야.”
자연현상은 물론이고, 온갖 분야에서 제 관할영역을 확보한 신들이 군림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땅에서 자라나는 작물도 모두 신의 은총과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풍요의 신이 미소지으면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가뭄의 신이 울부짖으면 대지가 메말랐다. 일거수일투족으로 세계법칙을 크게 움직이는 것이다.
〈신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토벌하게 된 허신, [티르]처럼 애시르 신족과 같은 경우에는 그 터전이라고 알려진 아스가르드를 모방한 환경이 구현되지. 〈신역〉의 주인이 사용하는 권능을 극대화하고, 제 권속이나 봉사종족을 소환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옛 시대의 신과 다르게 허신들은 제 〈신역〉에서만 그 힘을 온전하게 다룰 수 있었다. 〈신역〉을 벗어나면 힘의 약체화는 기본이고, 존재가 불안정해져서 소멸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걸 반대로 말하자면, 〈신역〉 안에서만큼은 얕볼 수 없는 적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와!”
정체 모를 법칙으로 왜곡되어있는 공간통로를 지나, 마침내 〈신역〉에 진입하게 된 레너드가 감탄했다.
누구라도 그렇게 될 터다.
무릉도원과 같은 신천지가 눈앞에 펼쳐져있었으니까.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있는 무지개다리와 구름으로 된 지면,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성채와 탑이 늘어서있는 광경은 정말로 신의 궁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아스가르드(Asgarðr)를 처음 보면 다 그렇게 반응하더라.”
데미안은 그 반응에 키득거리면서도, 저 멀리서 반짝거리고 있는 금지붕과 은지붕을 놓치지 않았다.
아스가르드에 존재하는 12개의 성채 중에서, 법을 관장하는 신 포르세티가 소유한 곳이었다. [티르]가 검신이면서 법률의 신이기도 한 존재라서일까. 그의 허신들은 대부분 법의 성채, [글리트니르(Glitnir)]가 〈신역〉으로 구현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온다. 우리들의 침입을 감지했나보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글리트니르]에서 뛰쳐나온 적들의 인기척을 알아차렸다.
애시르 신족을 숭배하는 전사, 에인헤랴르(Einherjar)다.
뿔이 달려있는 투구와 짐승가죽으로 된 갑옷, 도끼와 망치 따위가 주무기로 보이는 행색이 특징적이었다. 한 명 한 명의 기세가 외력경에서 최상위로 꼽힐 수준인데다, 광기에 가까운 투쟁심으로 눈알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하늘마저 뒤흔들리는 것 같은 함성과 함께, 에인헤랴르들이 거침없는 기세로 돌진해왔다.
적어도 수백 명, 아니 천 명 이상일지도 모르는 숫자였다.
‘귀찮아지겠군.’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도외시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호신강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내공낭비고, 집중력을 아주 조금이라도 흐트러트린다면 반신경급의 싸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레너드가 제 검을 뽑아들고서 내공을 순환시켰다.
파직! 파지지직!
대량의 기가 집중되면서 검 위로 푸르스름한 강기가 번개와 같은 형상으로 뒤엉켜, 한 마리의 용처럼 그 길쭉한 머리통을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원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쓸어버리려면, 강기공(?氣功)보다 편한 게 없었다.
불과 몇 초만에 천둥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한 검을 들어올린 레너드가 한 번 내리그었다.
오상류(五象流)
청룡삼십육식(靑龍三十六式)
용왕출두(龍王出頭)
그 일섬을 내리치는 것과 동시에 칼날로부터 튀어나온 용이 위풍당당하게 포효했다.
콰오오오오오오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들의 몸이 제멋대로 굳는다. 범의 울음소리가 오금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처럼, 그 포효엔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깃들어있었다.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땅에 나동그라진 에인헤랴르들 위로, 새파란 벼락으로 만들어진 용이 내리꽂혔다.
그 위력을 본 데미안이 휘파람을 불어제꼈다.
“오우, 화려하구만.”
〈용왕출두〉의 충격파에 수십 명의 에인헤랴르가 파편이 된 채로 튕겨나갔고, 중심지에 있었던 놈들은 숯덩어리만 몇 개 남겨놓고서 증발해버렸다.
백 명 가까이가 일격에 즉사해버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지가 줄어들지도 않는군요. 약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레너드가 재차 돌격해오기 시작하는 에인헤랴르들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자, 데미안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생채에도 싸우다가 죽는 게 소원이었다는 광전사들이거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성채 방향을 한 번 살펴봐라.”
“예?”
성채 [글리트니르]를 본 레너드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마!?”
“바로 그 설마다.”
백 명 남짓한 인원수의 에인헤랴르들이 성채를 빠져나오고, 다시 전장으로 합류하려는 게 보였다.
〈용왕출두〉에 죽어나간 놈들이 즉시 되살아난 것이다.
데미안은 곧 이유를 알려주었다.
“에인헤랴르는 매일 아침마다 싸우고 죽어나가지만, 저녁에 되살아나서 연회를 즐기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싸운다더군. 〈신역〉 내부에서는 몇 번을 죽여도 불사신처럼 되살아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럼 어떻게 처리해야합니까?”
“정석대로라면 단원들이 그 사지를 잘라내던가 하면서 죽지 못하는 상태로 봉쇄하든지, 단주급이 한두 명 남아서 놈들의 발을 묶어버리지만.”
하지만, 하고 제 검을 뽑아든 데미안이 미소지었다.
“내가 동행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단장급을 상대로 그 숫자와 목숨줄만 질긴 잔챙이들은 큰 의미가 없거든?”
어느샌가 에인헤랴르들은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좁히고, 두 사람의 눈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백룡기사단장, 데미안은 그 돌격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한 차례의 수평베기를 날렸다.
그리고.
??????.
아무것도 없었다.
“……?”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깜빡거린 레너드였으나, 에인헤랴르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수백 명의 광전사가 한순간에 다 사라져버렸다. ‘죽음’이나 ‘소멸’과는 동떨어진, 미지의 현상에 제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두 사람에게 접근한 에인헤랴르들만이 아니라, 한 번 죽고 되살아났던 놈들까지 전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레너드, 질문이다.”
데미안은 한 번 휘두른 검을 다시 납검하면서 말했다.
“거울에 비친 상(像)은 실재할까? 아니면 허상일까?”
뜬금없는 질문에 제 고개를 기울인 레너드가 대답했다.
“허상이겠지요.”
“내 생각은 조금 달라. 거울에 무언가가 비쳤다는 것은, 그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이잖아?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신기루가 그 장소에 없던 무언가를 증명하듯이, 실체와 허상은 한 장의 경면(鏡面)으로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거지.”
선문답처럼 들리는 말에 잠시 고민하던 레너드의 동공이 한 번 경련하더니,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데미안 단장님, 제가 짐작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상대방이 한 말로 확인받고 싶었다.
앞서 데미안과 한 번 대련해보고, 적룡기사단장의 심검까지 받아본 입장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허실(虛實)을 지배하는 능력이라니!
“뭐, 크게 빗나가진 않았을 거다.”
데미안은 무덤덤한 태도로 수긍했다.
“불사신이라고 해봤자 그 존재기반을 〈신역〉에 두고 있는 망령들이야. 그래서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게 아니니까 되살리지도 못하지.”
“영구적으로 사라지는 겁니까?”
“내가 다시 한 번 반전시키지 않는다면? 허상이 된 놈들이 자력으로 실체화할 수는 없을테니까.”
레너드는 지금 이 순간에서야 반신경의 강자가 어느 영역에 존재하는지를 깨달았다.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거나, 파괴력이 대단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차원이었다.
개념(槪念)의 영역.
옛 시대의 신들이나 다스릴 수 있었다는 세계법칙을 멋대로 개벽하는, 필멸자의 테두리에서 한 걸음 벗어난 초월자. 신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반신(半神)이라고 불리게 된 거다.
“대단해보이겠지만 그렇게까지 만능인 것도 아니니까, 너무 추켜세우거나 할 필요는 없어.”
데미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에인헤랴르는 〈신역〉에 귀속된 망령 같은 놈들이니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없애버리기도 쉽고. 능력의 범주에서면 뒷산에서 돌아다니는 고블린이 더 없애기 힘들어. 베어죽이는 쪽이 천 배는 편할걸.”
“아, 설마 허신도 그렇습니까?”
“이해력이 좋구만. 에인헤랴르처럼 단번에 지울 순 없지만, 치명상을 입히고 나서 없애버리는 것은 가능하지.”
카르데나스의 주력이면서 상징인 7대 기사단은 그 소속별로 적대종족이 다르다.
따라서 각 종족대전의 총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장은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말살할 수 있는 특이점을 보유해야했다. 천족을 상대해야하는 청룡기사단장은 ‘비행’이나 ‘광범위화력’, 마족을 상대해야하는 흑룡기사단장은 ‘멸절’과 같은 식이다.
그중에서도 허신을 상대해야하는 백룡기사단장의 경우는 좀 더 특수했다.
“불사성을 말살할 수 있는 특이점의 보유자. 그게 백룡기의 단장이 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필수조건이다.”
실존과 허무를 반전시키는 검객.
허신마저 지워버리는 자.
불사(不死)하면서 불멸(不滅)하는 신마저 죽일 수 있었기에, 데미안은 백룡기사단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