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3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37)
‘특이점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소속과 지위까지 결정되는 셈인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군.’
레너드는 그 선정방식에 납득하면서도, 무림과는 너무 다른 관점에 생경함을 느껴야했다. 반신경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제 능력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소속기사단을 변경해야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백룡기사단장, 데미안도 제 역량이 초월경에 불과했을 때는 타 기사단 소속이었을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특이점을 다룰 수 있는 경지가 반신경이다보니 단장급부터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초월경에서도 그 싹이 보인다면 데려가려는 경우가 흔해.”
데미안은 저 멀리 보이는 성채, [글리트니르]로 나아가면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적룡기사단의 인원수가 가장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
적룡기사단의 관할영역, 〈균열〉과 외신은 그 종류부터 워낙 다양하다보니 특이점보다 강력한 힘이 더 필요했다. 가능하면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특이점이 최선이겠으나, 그런 게 흔했다면 분류 자체가 없었으리라.
그래서 특이점이 본격화되지 않은 기사들은 대부분 적룡에 소속되어있다가, 경지를 높여가면서 제 특이점이 발현하면 타 기사단으로 포섭되는 경우가 많았다.
레너드는 거기까지 듣고 난 다음에 아, 하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적룡기사단장은 타 기사단장보다 강하겠군요?”
데미안이 쓰게 웃으면서 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생각대로야. 웨이드 영감은 기사단장 중에서도 한 사람, 황금룡의 단장만 제외한다면 분명 최강이다.”
타 기사단장과 다르게 적룡기사단장은 순수한 역량으로 그 자격을 심사받는다. 〈균열〉 너머에서 무엇이 튀어나오더라도,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제 무력 하나로 돌파할 수 있는 자만이 적룡기의 우두머리가 된다.
움직이는 일 자체가 드문 황금룡과 달리 최전선에서 선봉을 담당하기에, 암묵적인 대장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아스가르드 계열의 〈신역〉에선 보통 에인헤랴르가 기본에, 그 허신의 권속이나 수하라고 알려진 신수와 영령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미리 숙지해두는 게 좋아.”
두 사람은 어느샌가 [글리트니르]의 화려한 문을 지나면서, 〈신역〉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백룡기사단에서 괜히 고고학(考古學)이나 신학(神學)을 따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허신처럼 고유의 권능이나 설화를 지닌 존재들은 그 상세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공략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였던 탓이다.
[티르]처럼 전승 자체가 희귀해서 별 실마리가 없는 경우도 존재했지만 말이다.“[티르]는 옛 시대의 최종장에 일어난 멸신전쟁에서 주신을 물어죽인 늑대, 펜리르에게 오른팔을 내어주고 놈을 봉인하게 한 전승이 가장 유명하지. ‘검’과 ‘법’, ‘봉인’과 연관된 신으로 생각하면 될 거다.”
“이전에 상대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두세 번 정도던가. 그런데 허신은 그 특성상 ‘검’에 치우친 [티르]가 나타날 때도 있고, ‘봉인’에 치우친 [티르]가 나타날 때도 있기 때문에 고정관념을 가지면 안 돼.”
허신을 ‘신의 껍데기’라고 부르는 것은, 그 존재부터가 신의 열화(劣化)가 아닌 파편화(破片化)에 기반하기 때문이었다.
레너드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오행 중에서 몇 가지 속성력이 빠졌다거나, 검을 제외한 무공만을 쓸 줄 안다거나 하는 식의 분신이 수십 명 만들어진 셈이다.
근본적으로 동일한 존재라도 그 힘의 규모와 종류가 판이한 게 당연했다.
저벅.
에인헤랴르가 모두 사라지고 나서, 카르데나스의 두 검객을 가로막는 존재는 더 나타나지 않았다.
[글리트니르]의 중심지에 가까워지니, 금지붕과 은지붕에서 흘러내린 빛이 점점 모여들면서 인간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 시작했다.그로부터 몇 분이나 걸어들어가니 겨우 목적지가 보였다.
신좌(神座).
찬란한 빛의 소용돌이에 마련되어있는 의자를 차지한 거인, 외팔의 검신 [티르]가 두 명을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손님이로구나.
혜광심어처럼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음성이 실로 위엄차다.
심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두 무릎을 꿇고 경배할지도 모르는 장엄함이 있었다. 고작 파편 따위에 불과한데도 이 정도라면, 진정한 신의 위광을 감당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우리라.
하지만 레너드는 물론이고, 반신의 영역에 도달한 데미안은 눈썹 한 올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대들이 날 찾아온 용건은 짐작하고 있다.
[티르]는 그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크다.’
눈어림으로 잴 수 있는 신장은 5미터가 조금 안 된다. 빛에 휘감겨서 형상을 보기 어려웠지만, 용안소유자에게 그 정도는 문제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뿔 대신에 날개 형상이 솟아나있는 투구 아래로 긴 수염을 늘어트린, 지적이면서도 야만적인 풍모가 남아있는 사내다.
진갈색의 머리카락과 수염 속에서 녹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영락해버린 ‘나’의 흔적을 지우고자 방문한 것일 터.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데미안이 대답했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 목을 내밀어준다면 금방 끝내지.”
상대방의 격노를 예상한 레너드가 먼저 몸을 긴장시켰다.
허신이라고 해도 그 정체성은 옛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인간 따위에게 얕보인 신의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용맹하구나, 전사. 네 요구는 틀림없이 정당하다만, 전쟁의 신이기도 한 내가 싸우지도 않고 투항한다면 신자들의 믿음을 저버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정중하기까지 한 태도로 데미안의 말을 돌려준 [티르]가 제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작스(Saks), 옛 시대의 도검이었다.
왼팔밖에 없는 [티르]다보니 한손검 크기였으나, 체격이 몇 배나 크다보니 인간이 사용하는 양손검보다 두 배 이상 길고 묵직해보였다. [미뭉]처럼 고대유물일 수도 있으니, 무턱대고 그 칼날을 맞대기에도 부담스러웠다.
“레너드, 뒤로 물러나있어라.”
[티르]와 마찬가지로 임전태세에 들어간 데미안의 주변에서 스쳐지나가던 바람이 날을 세운다.키이이이이이.
노골적인 살의가 뻗어나오면서, 허신의 위압감을 두 갈래로 베어가른다. 그와 대련할 때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그 기세에 오싹해진 레너드가 뒤로 물러나면서 두 눈에 힘을 집중시키고 용안을 일깨웠다.
지금부터 그가 목도하게 될 싸움은, 용안으로도 감히 다 볼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으니까.
[티르]는 이내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제 검을 들어올렸다.―펜리르에게 준 팔이 욱신거리는 전장이로다. 좋다! 오거라, 전사여! 내 목을 떨어트려봐라!
“에잉, 허신들은 보통 오만에 쩔어있거나 미쳐있는 쪽이 더 상대하기가 편한데 말이지.”
데미안은 그렇게 푸념하면서도 짙게 미소지었다.
“그래도 난 당신 같은 작자들이 마음에 들어.”
―크하하하하하!
찬사 아닌 찬사에 폭소하던 [티르]의 검이 떨리는 순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데미안이 달려들었다.
용안으로 수백 배를 감속한 시야에서도 한 줄기의 벼락처럼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검극으로부터 길게 솟아난 오러블레이드가 티르의 심장 부근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
한 번의 내려베기가 오러블레이드를 좌우로 갈라버리며, 반 걸음 옆으로 비켜선 데미안이 있던 자리를 깊숙하게 쪼갰다.
킬로미터 단위로 벌어진 땅이 뒤늦게 비명소리를 토해냈다. 화산지대에서 벌어진 싸움이었다면 마그마가 치솟았으리라.
일검과 일검.
찌르기와 베기를 주고받은 걸로 온 세상이 부서져간다.
‘과연! 검신(劍神)이라고 할 만하군.’
데미안의 찌르기도 마찬가지였지만, [티르]의 베기도 동작 하나하나가 완벽의 경지에 이르러있었다.
레너드 수준에서도 고하를 논할 수 없는 천외천의 영역.
한 명의 반신과 한 명의 허신이 재차 격돌했다.
???????!!
소리 따위가 쫓아올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 일대의 공기가 전부 날아가버리면서 무음지대로 변하고, 열기와 충격으로 일그러진 공간이 압축됐다가 팽창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땅과 구름이 찢어진다.
베기와 베기.
찌르기와 베기.
베기와 찌르기.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검격을 주고받을 뿐인데, 그게 너무 빠르고 강력하다보니 천재지변에 근접한다.
두 배가 넘어가는 체격차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검격만이 휘몰아쳤다. 티르의 투구장식이 쪼개진 것과 동시에 데미안의 견갑 하나가 잘게 부서지면서 먼지로 흩날렸다.
‘이건…?!’
거기까지 본 레너드는, 반신경 아래에서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상황을 알아차리는데 성공했다.
스스로가 먼저 확신하고도 믿기 어려운 진실이었다.
‘이건, 탐색전이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했다간 몸뚱이가 조각날 검격이 셀 수도 없이 휘몰아치는데, 데미안과 [티르]는 태연하기까지 한 기색으로 서로의 검권을 측정하고 있었다.
물리법칙을 벗어나지 못한 기술은 결국 한계점이 존재하고, 그 영역에 도달하면 백날 천날을 겨루더라도 승부가 안 난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
서로에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빈틈을 탐색하는 것인데, 그 과정을 버티지 못한 천지사방이 궤멸하고 있을 뿐이었다.
“쯧, 날로 먹기에는 글렀군.”
―훌륭하다, 전사. 필멸의 극치에 도달했구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검을 멈춰세운 반신과 허신이 서로의 역량을 인정하고, 본격적으로 그 능력을 불러일으킨다. 잠깐의 휴식으로 돌아온 공기가 다시 밀려나면서 소용돌이쳤다.
여기서부터는 개념의 영역까지 진입하는 투쟁이었다.
―선포하겠다.
[티르]가 먼저 제 권능을 발동했다.―신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은 땅에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 오른팔의 사용을 금지하겠노라.
이해할 수 없는 선언문과 함께 그 현상은 발생했다.
“……허?”
레너드는 제 오른팔에서 힘과 감각이 사라지고, 손아귀에서 미끄러진 검이 지면에 꽂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오른팔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와 다르게 데미안은 그 즉시 왼손으로 검을 바꿔쥐고, 제 앞에서 웃고 있는 [티르]를 노려보았다.
“‘검’보다 ‘법’에 치중되어있는 허신이군? 〈신역〉 안이라면 법령의 선포가 자유로운 수준이라니, 중급 이상이야. 잔머리도 괜찮게 쓰는 것 같고.”
백룡기사단장이 누적해온 경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법(法)의 신격이라도 제 마음대로 법칙을 주무를 수는 없다. [티르] 스스로도 그 법령에 제약당했지만, 이미 오른팔이 빈 상태였기에 두 사람과 달리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두 눈썹을 치켜세운 [티르]가 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응이 너무 신속하구나, 전사. 내 권능을 몇 번 경험해본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미 짐작했으면서 왜 물어보는 거냐?”
―대화상대가 수백 년이나 없었으니 좀 이해해주거라.
시답잖은 말을 한 차례 주고받은 허신이 검을 치켜세웠다.
―자, 그러면 외팔이끼리 서로 정정당당하게 겨뤄보자!
데미안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티르]가 달려들었다.
왼팔 하나로 치고받는 격검이 시작된다.
처음에 한 기습을 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심장 부근을 찔러들어온 칼날이 그 측면에서 날아온 베기에 맞으면서 위로 튕겨나간다. 우수(右手)와 좌수(左手)의 구분 따위는 반신경의 검사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쌍수(雙手)와 독수(獨手)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왼손과 오른손을 구분하는 게 동전의 앞뒷면과 동일하다면, 양손과 한손은 동전의 개수가 다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양손으로 쥘 때가 한손으로 쥘 때보다 강하다.
비어있는 손으로 권장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무력화당한 상태라면 더욱 그러했다. 레너드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나서서 왼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음?
두 괴물의 전투가 시작되고서 처음으로 유효타가 발생했다.
투구장식과 함께 동강이 난 투구가 떨어지고, 얼굴을 한 번 사선으로 긋고 간 자국에서 황금색 피가 흘러내렸다.
가죽이나 얕게 벤 정도였지만, [티르]가 당한 것이다.
그의 눈동자에 떠오른 빛은 경악이나 고통보다 의문의 색이 더 짙었다. 그와 똑같은 현상을 본 레너드도 마찬가지였으나,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왜?”
데미안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자기 ‘오른손’을 흔들었다.
“내 오른팔이 움직이는 게 그렇게 신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