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4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46)
‘현상수배서를 찾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로군.’
옛 시대였다면 불경한 자로 심판받을지도 모르는 생각을 한 레너드가 종이를 넘겨보았다.
토벌령에 기록되어있는 허신은 모두 세 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최상단에 자리해있는 신의 이름은, 레너드가 제 눈을 의심해볼 정도로 익숙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반 년 주기로 갱신하는 해도(海圖), 그것에서 제5해역에 붙인 명칭이 바로 그러했으니까.
올림포스 신족의 일원이면서 아이올리아 섬을 다스리던 왕, 주신 [제우스]의 총애로 신이 된 계절풍의 지배자.
바람신, [아이올로스(Aeolus)].
‘아틀란티스에서 해역명으로 쓴 것이 허신의 이름이었다니? 알고 한 것인지 모르고 한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데미안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인지도(認知度)는 숭배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백룡기사단에서 고고학이나 신학을 전담하고 자료를 검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틀란티스에 설마 허신의 숭배자가 있나 싶어서, 레너드는 조심스럽게 그 부분을 물어보았다.
“뭐라고? 아틀란티스? 아, 그쪽인가.”
데미안은 잠시 놀랐다가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돌아왔다.
“해상연합이 자칭하고 있는 아틀란티스(Atlantis)라는 이름은 옛 시대에 존재했었던 섬의 흔적이야. 올림포스 12신 중에도 그 힘과 권위가 세 손가락에 꼽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신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
“그럼 해상연합의 명칭 때문에 [아이올로스], [포세이돈]의 권능이나 힘이 강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레너드의 반문에 씩 웃은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 말을 긍정하고, 동시에 부정했다.
“[아이올로스]와 [포세이돈]에 대해서 잘 알려져있다면, 그 말도 맞겠지. 하지만 인지도는 이름 몇 글자 알려진다고 바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야. 그 이름으로 불린 존재가 무엇인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이름만 널리 전파한다고 허신의 영향력이 회복되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신화시대로 회귀하고 난 다음이었으리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신의 이름이나 옛 시대의 흔적들은 세상 곳곳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신의 영향력으로 직결되지 않았느냐면, 이유는 간단했다.
아르카디아 제국이 수백 년에 걸쳐서 옛 시대의 기록물이나 역사를 말살하여, 신의 존재를 공상으로 떨어트려서 백성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올로스]나 [포세이돈]이 신명(神名)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진심으로 신을 믿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놈들에게 도움이 될 일은 없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해선 안 된다. 오히려 그 감정이야말로 놈들에게 양식이 되어줄테니.”
데미안은 말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신의 이름이 빈번하게 쓰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옛 시대에 침몰한 섬, 아틀란티스의 유적 주변이라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거든.”
“…그걸 일일이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제국령이라면 모를까, 저 대륙 건너편에 있는 곳을 관리할 순 없지. 호들갑을 떠는 쪽이 더 의심스럽게 보일걸.”
아르카디아 제국은 그 진면목을 모르는 자들조차도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최강이었지만, 그들을 시기하고 끌어내리려는 세력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삼공 가문을 비롯한 무력집단을 철저하게 은폐한 것도, 7대 기사단의 진정한 목적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데미안도, 레너드도 인간의 악의를 너무 잘 알았다.
“우리들이 세계를 수호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머리를 조아릴까?”
장난스럽기까지 한 말투와 달리 내용은 섬뜩했다.
레너드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외신이나 허신, 천족이나 마족과 붙어먹는다면 제국도 거꾸러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위기를 불러들이겠지요.”
“하! 내가 가르쳐줄 게 없구만. 스무살도 안 된 녀석이 너무 염세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이겠지.”
“수백 년이나 사명감을 유지해온 아르카디아와 삼공 가문이 비정상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전생에서부터 인간의 밑바닥을 너무 많이 본 레너드 나름의 진심이었다. 아르카디아가 진심으로 세계정복에 나서면, 모든 국가를 발밑으로 무릎꿇리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을 터다.
언제든지 그 짐만 내려놓는다면 무소불위의 위치에 설 수도 있는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을 계속해온 것은 신념을 넘어서서 이미 광기에 가까웠다.
그 말을 부정하지 않은 데미안이 미소지었다.
“약자들에게 힘을 자랑하는 것보다 강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쪽이 더 폼나잖아?”
삼공 가문의 자긍심은 엄밀히 말하자면, 오만과 선민의식에 기반을 둔 감정이었다. 너희들은 우리의 적이 될 자격도 없는 약자들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지킴당하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극한.
몇 세기의 역사로 그걸 증명해온 카르데나스가 아니면 감히 입밖에도 낼 수 없는 발언이었다.
‘멋지군.’
무인으로서 이 가문보다 몸을 둘 만한 장소는 없다.
그걸 확인하게 된 레너드가 다시 토벌령을 읽어내려갔다.
* * *
1. 아이올로스
―부서지지 않는 청동성벽으로 둘러진 섬을 발견. 〈신역〉, 아이올리아의 존재를 확인함. 마법적인 감시수단이 안 통하는 벽의 존재로 그 이상은 상세불명.
공간규모: B
계측치: D+
종합평가: [아이올로스]의 권능은 계절풍을 다루는 것. 네 종류의 바람을 불러내거나 다스리며, 바람 계열의 마법식이나 정령술은 모두 봉쇄당함. 봄의 바람은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며, 여름의 바람은 적을 불태워버리고, 가을의 바람은 생명체들을 쇠약화시키며, 겨울의 바람은 모든 걸 얼려버림. 상대를 멀리 날려버리거나, 끌어당기는 식의 운용법도 확인되었음. 계측치 C+ 이상부터는 단장급이 동행할 것.
2. 키르케
―〈신역〉, 아이아이에(Α?α?α)의 존재를 확인함. 고대마법의 결계를 돌파할 수 없었기에 그 이상은 상세불명.
공간규모: ?
계측치: D
종합평가: [키르케]는 마법의 신, [헤카테]의 제자이면서도 불로불사를 지닌 마녀신임. 권능의 영역에 도달한 고대마법의 사용자로, 파괴력보다는 그 피격대상을 동물이나 곤충 따위로 변화시키는 마법을 주로 사용함. 괴물을 소환하거나 사역하는 능력도 가끔 보고되지만, 대부분은 독과 변화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함. 고대마법을 봉쇄할 수 있는 유물이나 마법저항력에서 특이점을 지닌 인원을 동행시킬 것.
3. 카스토르
―〈신역〉, 제미니의 존재를 확인함. 신역 내부는 삼림지대, 봉사종족 켄타우로스가 순찰을 돌고 있으며 전투력은 외력경 최상위권으로 확인됨. 궁술과 창술을 사용하고, 마법적 능력은 확인하지 못했음.
공간규모: D
계측치: D
종합평가: [카스토르]는 승마술의 신이며, 기병을 상징하는 신격이기에 말 위에서 힘이 극대화됨. 봉사종족 켄타우로스를 지휘하거나 강화하는 능력도 있을 거라고 추정됨. 격투능력도 상당하지만, 초월경을 압도하지는 못함. 현재까지 발견된 개체 중에서 중급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없었음. 단, 과거에 주신 [제우스]의 벼락을 1회성으로 불러들인 경우가 보고됨.
* * *
바람신, [아이올로스].
마녀신, [키르케].
기병신, [카스토르].
3체의 허신에 관련된 종합평가를 모두 탐독한 레너드는 각 개체의 난이도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강한 건 [아이올로스]지만, [키르케]의 변칙적인 마법은 그 상성관계에 따라서 난이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군.’
토벌령의 내용대로라면, [키르케]가 고대마법으로 변신시킨 대상은 제 능력을 거의 다 봉쇄당한다. 마법에 저항하는 물약, 아티팩트 따위로 대응할 수 있다지만 모르고 당하면 치명타가 되어버리는 경우였다.
‘독’과 ‘환각’도 귀찮았다. 신역 전체를 맹독으로 채워버리고 은신한다든가, 토벌대끼리 서로 싸우게 만든다든가 하는 식의 전술이라면 직접전투보다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따로 궁금한 게 없으면 지난번에 소개한 3번단을 찾아가서 그놈들하고 이야기해봐라.”
데미안이 흐암, 하고 하품하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시간제한은 없으니까 셋 중에서 누구를 먼저 토벌하는지는 마음대로 결정해도 돼.”
“셋 전부입니까?”
“한두 번의 임무로 백룡기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단장들하고도 이미 협의한 사항이야. 적룡기나 청룡기에서도 서너 번 정도는 움직이게 될 거다.”
[티르]의 토벌에 동행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견학이었으니, 제대로 된 토벌임무는 이게 처음이었다.레너드는 그 말에 수긍하고서 단장실을 빠져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정해져있었다.
‘3번단이라, 여기서 먼 곳은 아니었지.’
지난번의 다대일 비무로 알게 된 4인조가 머무르는 숙소는 얼마 떨어져있지도 않았다. [상아숲]의 복도와 계단을 몇 개 가로질러간 레너드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기적절하게도 네 명 모두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호오, 토벌령인가.”
레너드에게서 토벌령을 받아든 아이작이 세 명과 그 서류를 돌려보더니, 의자를 몇 개 가져와서는 탁자 주변에 놓았다.
선 채로 가볍게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었던 탓이다.
아이작은 먼저 제 의견을 털어놓았다.
“[키르케]나 [카스토르]부터 시작해보지. [아이올로스]라면 만전을 기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전력을 총동원해도 호각 이상을 장담하기 어려운 허신이네. 팀워크도 확인해보지 않고 갈 만한 임무가 아니지.”
“저도 동의합니다. [카스토르]라면 적당히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상대겠죠. 그리고 [키르케]는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대응법이 복잡해집니다.”
과묵해보이던 휴고가 제법 유창한 말솜씨를 뽐내자, 나머지 두 명도 반박하거나 할 생각이 없는지 고개만 끄덕거렸다.
레너드도 그의 의견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셋 중에서 최강이나 다름없는 [아이올로스]를 첫 임무로 할 만한 이유가 없고, 변수투성이의 허신으로 유명한 [키르케]는 통상임무와 차이가 좀 발생하게 된다.
체험입단의 순번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카스토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아이작이 그 말에 거리낌없이 수긍했다.
“음, 이전에 두 차례 토벌해본 경험이 있지. 기병의 신답게 경이로운 승마기술을 보여줬지만, 무력은 초월경보다 좀 나은 수준이었네. 말 위에서 떨어트린다면 일대일로 맞붙어도 크게 어렵지 않은 상대일걸세.”
“허신으로서의 권능은 무엇입니까?”
“말을 지배할 수 있는 [기승]이나 기병대를 강화할 수 있는 [지휘]가 대표적이지. 그 외에는 보고된 것이 없네.”
[카스토르] 본연의 전투능력으로 직결되는 권능이 없다.그것만으로도 허신의 토벌난이도는 두세 단계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궁술의 신이라면 ‘필중’처럼 무시무시한 권능을 지닌 경우도 빈번했다. 승마술 자체가 말을 필요로 하는데다, 초월경급에선 기병으로서 지닐 수 있는 우위가 없었다.
그들이 수행하게 될 임무는 즉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카스토르]의 토벌 수행을 보고하겠네. 내일이면 위클라인 쪽에서 공간마법사를 파견해주겠지.”
이번에도 공간문으로 갈 만한 지역이 아닌지, 위클라인에서 마법사가 올 때까지 하루는 기다려야했다.
사실 하루만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초월경 다섯 명이 동원되는 작전을 결단하자마자 그 다음날 실행하다니? 이 전력이라면 어디를 쳐들어가도 대규모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아틀란티스의 A급 모험단이 다 모여도 그들을 대적하기엔 역부족일 터다.
‘음?’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는 곧 자신을 흘끔거리는 시선들을 느끼고,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3번단의 기사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일 임무를 대비해서 가볍게 몸이라도 풀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의 대련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백룡기사 네 명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 그럴까?”
“바로 나가자!”
“찬성한다.”
“크흠! 뭐, 자네가 그렇다면야. 난 보고서부터 써야겠군.”
내일의 토벌임무 때문에 힘을 크게 쓸 순 없었지만, 검술의 가르침이나 심득을 주고받는 정도는 가능했다.
연무장으로 뛰쳐나가는 세 사람과 다르게 책상으로 걸음을 옮기는 아이작의 등이 유독 처량해보였다.
[카스토르]의 토벌을 예정하게 된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