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5)
두 사람의 일대일 결투가 레너드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숲속에서 진행된 야외훈련도 그 끝을 고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못해, 떨거지처럼 취급받았던 5조가 충격적인 반전을 일으켰던 것이다. 레너드와 3번의 도움을 좀 받았다고는 해도 그 실력이 허접했더라면 불가능한 승리였다.
교관들도 그들 자신이 너무 번호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으니, 훈련생들의 놀라움은 그들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야, 너희들 좀 하는 놈들이잖아!”
“칫! 내가 이렇게 지치지만 않았더라도….”
“실전에서도 그렇게 말할 거냐? 인정할 건 해야지.”
“맞아. 25번도 그렇고, 번호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겠어.”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다 제각각이었다.
5조원들의 활약에 감탄하는 아이도 있고, 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서 투덜거리는 아이도 있고, 그걸 한심하게 생각하는 아이와 고정관념을 무너트린 아이도 몇 명 있었다.
‘…우리들의 계획을 크게 벗어났지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잘된 것 같군.’
결과적으로 이 훈련의 목적 자체는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선임교관, 브루노는 제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제 힘과 가능성을 모르고 침체되어있던 5조원들이 자신감을 되찾은 것도, 별 것도 아닌 우월감에 취해서 게을러졌던 아이들이 향상심을 되찾은 것도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1번, 윌리엄도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었고 말이야.’
무언가에 씌이기라도 한 것처럼 최고의 자리에만 집착했던 그가, 25번에게 패배하고 나서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미소짓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패를 모르는 자는 더 크게 좌절한다.
설령 그 인물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좌절하게 된다. 탄탄대로인 줄 알고 나아가던 길이 갑자기 무너져내린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훈련과정 도중이라면 다시 일어날 기회라도 있지, 실전이면 그 실패와 좌절이 바로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게 다 25번 덕분이로군.’
이번 훈련의 담당자로서 1등공신이라고 할 만한 인물, 25번 레너드를 찾아본 브루노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속에서 그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리의 주역이나 마찬가지인 25번을 빼고 즐거워할 이유가 없는데?
그 표정을 읽고 다가온 교관, 콜린이 속닥거렸다.
“25번은 잠시 늑대를 만나러갔습니다.”
“아, 그렇군.”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토록 잘 따랐으니, 애완동물처럼 정이 든 거겠지. 14살이라고 믿기지 않던 검술실력과 다르게 아직 어린애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이건 또 괜찮은 기회였다.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에 새롭게 1번이 된 레너드와 따로 할 말이 있었으니까.
“콜린 교관, 아이들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수습해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마차는 내가 불러뒀으니.”
“알겠습니다.”
“나는 25번과 잠시 이야기하고 오겠네.”
교관들에게 남은 잡무를 떠넘기고, 브루노는 뒷짐을 진 채 숲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다지 빠른 걸음이 아닌데도 한 번에 수 미터를 뛰어넘어, 이내 25번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찾는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오호.’
25번을 찾아낸 브루노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작정하고 한 은신은 아니었다지만, 나름대로 기척을 감추고 다가갔는데 25번은 이미 그를 향해서 돌아서있었다.
보고서에서 괜히 ‘초감각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이라 한 것이 아니었다. 1번의 특질까지 사용한 연속공격을 모조리 받아넘긴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리라.
“25번, 아니 1번이라고 불러야할까?”
“편하신대로 하십시오.”
“그럼 25번이라고 부르겠다. 윌리엄, 아니 1번이 너무 오랫동안 한 사람이다보니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군.”
레너드는 그 말에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아이답지 않은 성격이로군.’
이 기수의 최강자를 의미하는 1번 자리를 쟁취했음에도 그 호칭에 아무 관심이 없어보인다.
고요하기까지 한 눈빛도,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호흡도 방금 전까지 격렬하게 싸운 사람처럼은 안 보였다.
“흐음.”
브루노는 그 같은 느낌의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바다를 만드는 수준의 실전경험을 누적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괴물들의 분위기.
십수 년이나 된 기억인데도 아직까지 선명한, 카르데나스의 적룡기사단 1번대와 처음 마주쳤던 순간.
태풍의 눈에 들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적막해진 세상.
―비켜라, 꼬마.
스스로가 길을 막아섰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왔던 피 냄새와 농밀하기까지 한 죽음의 기척.
그날 이후로 브루노는 깨달아버렸다.
카르데나스의 진정한 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은 자신과 다른 영역에 있노라고. 재능과 노력, 자원 따위로 뛰어넘을 수 없는 수준의 피로 담금질된 자들이라고.
그래서 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25번, 이 아이가 그들과 같은 존재라는 말인가? 진검을 쥔 적도, 전장에 선 적도 없었는데? 그럴 수가 있는가?’
어설프게 좋은 감 때문에 답 없는 고민에 휘말린 그였다.
하지만 레너드는 그의 침묵을 더 기다려주지 않았다.
“선임교관님?”
“아, 미안하구나. 잠시 한눈을 팔아버렸다. 네가 길들였다는 늑대가 바로 저놈인가?”
겨우 제정신을 되찾은 브루노가 괜히 딴청을 피웠다.
레너드의 등 뒤에 숨어있는 늑대를 보고 있었다는 듯, 말을 돌린 것이다. 안 그래도 꼬랑지를 내렸던 늑대가 놈을 향하는 시선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영리하군.’
브루노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자마자 레너드의 배후로 숨어든 것만 봐도 그렇다.
그 애처로운 눈망울에 콧등만 몇 번 쓰다듬어주고,
“네, 맞습니다.”
“늑대를 이용해서 숲 곳곳에 흩어져있던 5조원들을 수색해, 6조로 포섭한 것은 훌륭했다. 자네와 3번이 두 발로 뛰었다면 그 절반도 못 찾았을테니.”
레너드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엄연히 사실이었으니까.
“늑대를 이용해서 타 조의 훈련생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해서 협상의 수단으로 쓰지 말라. 그게 약속이었습니다.”
“지적하려고 한 말이 아니야. 오히려 칭찬하고 싶군. 규칙의 빈틈을 파고들었다면, 처음부터 그걸 예상하지 못한 교관들의 책임이니까 말이니.”
“감사합니다.”
할 말이 없어진 브루노가 그냥 허허 웃었다.
“3번 훈련생에게 준 포션은 어디에서 난 건가?”
“이전에 의료실에서 치료받고 나올 때, 치료사님이 아프면 먹으라고 몇 병 챙겨주셨습니다.”
“그걸 가지고 온 건가. 준비성이 철저하군.”
카르데나스의 혈통이라고 해도 골절상이 며칠 잔다고 낫는 건 아니다. 충분한 영양분과 포션으로 몇 배 늘어난 회복력이 아니었다면 3번은 아직도 부목을 댄 채였을 터다.
그 후로도 브루노는 자신이 모르거나, 의혹이 남았던 부분 몇 가지를 질문하고서 대답을 경청했다.
그리고 전후사정을 다 들은 브루노가 말했다.
“왜 이렇게 시시콜콜 물어보는지, 궁금하지는 않나?”
“제가 알아야할 이유라면 선임교관님께서 더 말씀해주실 것 같습니다.”
“끄응, 애태우는 맛이 없구먼.”
브루노는 그의 애늙은이 같은 태도에 혀를 찼지만, 할 말을 숨기거나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25번, 네가 새롭게 1번이 되었으니 그 번호에 맞는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란다.”
“1번…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훈련소에서 왜 아이들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별 것도 아닌 차등대우로 경쟁심을 부추기겠느냐? 번호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얻을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레너드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말은 아니었다.
1번, 2번, 4번과 같은 직계들은 이 야외훈련부터 사전에 다 알고 있었으니까.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상위번호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브루노가 계속 말했다.
“이번 훈련을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몇 군데로 분류되어서 본격적인 카르데나스의 훈련과정에 돌입한다. 이 훈련소에서 낸 성적을 기반으로 갈 수 있는 지역과 수련자원의 배분이 큰 폭으로 달라지지. 1번이 된 너라면 그중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될 것이고.”
“그렇군요.”
“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진 않나? 직계들은 이걸 다 알고 사전에 대비했지만, 다른 훈련생들은 아무것도 몰랐는데.”
당연히 불공정한 이야기였다.
그걸 알면서도 레너드는 별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삶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공정하게 구는 게 드물고, 그걸 약속하는 자들 대부분은 사기꾼이었으니.
힘 있는 자들은 자기 자식의 앞날이 조금이라도 평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고, 잠재력이 다른 훈련생들보다 몇 배 이상인 직계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능하고 간사한 쓰레기들이 뒷배 하나로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더 건전한 방식이다.’
적어도 제 실력을 입증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른스럽군. 그렇다면 내 설명을 듣고 나면 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야.”
브루노는 그의 의견에 감탄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카르데나스가 아무리 위대하고 질서가 바로 선 가문이라도, 제 혈육을 아끼는 마음이나 사리사욕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문 내에서는 몇 가지 규율을 제정하여, 허가받지 않은 도움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자면, ‘허가된 도움’은 딱히 금지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훈련일정을 며칠 앞서서 알려준다거나.
부여받은 번호가 무슨 의미인지를 가르쳐준다거나.
사소하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수준으로 허가해줬다.
완전히 가로막는 것보다 형평성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내버려둔 셈이었다.
“가문에서 제정한 규율 중에는 너처럼,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은 훈련생이 상위번호를 차지한 경우도 나와있지.”
“…아까 물어보셨던 게?”
“그래, 누군가의 조력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한 질문들이었다. 불쾌했다면 미안하군.”
“아닙니다.”
브루노가 빙긋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방계 출신에, 아무 도움도 안 받고 1번까지 올라갔으니 그 규정상 기존 1번의 세 배가 넘는 수련자원을 받게 될 거란다. 미리 축하해두마.”
“감사합니다.”
레너드도 그 말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 배의 수련자원이라니!
영약조차도 그 양, 혹은 질을 세 배 높여준다는 뜻 아닌가? 직계들의 혜택을 보고 불만스러웠을 아이들이라도 마음이 싹 풀릴 정도의 보상이었다.
거기에 몇 가지 설명을 더한 브루노가 몸을 돌리려는데,
“선임교관님.”
“음?”
“이 늑대는 어떻게 됩니까?”
레너드가 한 질문에, 겨우 그를 어린아이로 볼 수 있게 된 브루노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정이라도 든 거냐?”
“뭐, 귀엽더군요. 이래저래 신세도 졌고.”
“걱정하지 마라. 이 숲의 파수견처럼 머무르게 될테니, 따로 처분당하거나 할 일은 없을거야.”
그 대답에 조금 안심한 레너드가 부탁했다.
“숲을 떠나기 전에,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브루노는 흔쾌히 수긍했다.
“너무 늦어지진 말고. 오늘의 주인공이 흥을 깨버려서야 안 될 일이잖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레너드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브루노는 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순식간에 시야 바깥으로 사라진 그를 일별한 레너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놈을 무섭게 한 사람이 사라져서일까, 다시 몸을 일으켜세운 늑대가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 눈망울은 알게 모르게 젖어있었다.
“너도 헤어지기 싫으냐?”
늑대가 컹 하고 대답했다.
오랜 시간도 아니었건만, 불과 며칠만에 그를 제 가족처럼 생각하게 된 늑대의 마음이 느껴졌다.
인간보다 더욱 순수한 짐승의 정.
레너드조차 그 애처로운 시선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미안하다. 지금으로선 함께 갈 수 없구나.”
끄응, 하고 고개를 숙인 늑대의 머리털을 헤집어놓는다.
“나는 더 강해질 거다. 언젠가 나와 또 만나서, 함께 다니고 싶다면 너도 더욱 강해져야한다.”
언젠가 이 가문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날도 오겠지.
그때 레너드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해졌을 것이고, 훈련생들의 시험 목적으로 길러진 늑대가 감히 따라올 엄두도 못 내는 여행이 시작되리라.
그러니까 이 약속은, 지켜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만약 그 여정에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그날, 너에게 내 직접 이름을 붙여주마.”
늑대의 정수리에 손을 댄 레너드가 두 눈을 감았다.
영수축양진결(靈獸畜養眞訣)
남만야수궁의 비결 아닌 비결, 영물을 사육할 때에 그 몸에 각인하는 심법이었다.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몸에 진기도인을 해야하는데다, 짐승의 지능이 떨어져서 그 길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기회는 고작 한 번뿐이다.’
내공을 안 쌓은 몸으로는 자연의 기를 끌어들여, 늑대의 몸 안에 밀어넣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
“……큽.”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피를 삼키고, 늑대의 몸 안을 보면서 >영수축양진결>의 흐름을 각인시킨다.
늑대 스스로 기를 그 흐름대로 이끌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기를 돌린다.
남만야수궁이 바보도 아니고 왜 모든 짐승들에게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영물급의 지능을 가지지 못했다면 백날 천날 시도해도 무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공, 했구나.”
놀랍게도 늑대는 다섯 번의 소주천을 거치자마자 그 흐름을 완벽하게 기억하여, 레너드가 손을 뗀 후에도 문제없이 기를 순환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놈의 지능은 어지간한 영물보다도 뛰어났던 것이다.
컹! 컹컹!
제 몸에 넘쳐흐르는 힘을 느꼈는지, 늑대는 제자리에서 몇 번을 뛰어오르면서 날뛰었다.
도약력만 해도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제 막 입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놈의 전투능력은 얼마 안 가서 하급영물 정도는 단독으로 물어죽일 수 있는 수준이 될 터였다.
“게을러지거나 오만해지지 말고, 꾸준히 수련하거라. 야성에 물들거나 피 맛에 취하면, 내 손으로 너를 죽이겠다.”
컹!
걱정하지 말라고, 늑대가 힘차게 부르짖었다.
그걸 본 레너드는 피식 웃으면서 뒤돌아섰다.
늑대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가 안 보이게 될 때쯤에야 머리를 들어올리면서 길게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
두 인랑(人狼)은 그렇게 헤어졌다.
언제일지 모르는, 있을지도 모르는 재회를 기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