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5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56)
스스로와 동격이라고 할 수 있는 백룡기사단장, 데미안마저 아랫사람처럼 다루는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흑룡기사단장, 오드리는 7대 기사단 내부에서도 그 지위와 경력이 적룡기사단장 다음으로 높았다. 웨이드보다 더 윗줄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은 황금룡의 단장 정도였으니,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카르데나스에 복귀하고 얼마 안 되었던 레너드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드리 단장님.”
“음?”
고요하기까지 한 눈동자가 그를 돌아보았다.
반론이나 이견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절대자의 시선에도 굴복하거나 물러나지 않고 맞선다.
무인으로서 소신을 굽히면서 살 바에는 죽는 게 낫다.
검제 연무혁도 그랬고, 레너드도 그랬다.
“백룡기사단에 정식으로 몸을 둔 것은 아닙니다만, 제 뜻과 입장을 먼저 존중해주신 분은 데미안 단장님이십니다.”
흑단처럼 검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오드리의 녹색 눈동자가 한 줄기 이채를 발했다.
단장들 이외에 두 눈을 마주쳐오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짐승조차도 은혜를 기억하고 갚는 법인데, 신세를 진 후에 돌아보지도 않고 떠난다면 짐승만도 못한 게 아닙니까? 그건 이 카르데나스 가문의 법도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급자로서 상급자에게 할 말도 아니고, 약자로서 강자에게 할 말도 아니었으나 레너드는 당당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甘呑苦吐)처럼 역겹게 살고 싶진 않았다. 한 번 죽어서 다시 태어났어도 그는 무인이었지, 상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드리는 그 완곡한 거절에 잠시 침묵했다.
반신경급의 강자가 뻗은 손을 정면에서 내친 거나 다름없는 짓이라, 분위기를 못 읽는 걸로 유명한 칼란타조차 남 모르게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후회는 안 한다.’
카르데나스 가문과 그 일원들의 공명정대함을 믿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후폭풍이 어떻게 찾아오든지, 제 선택이 불러들인 결과를 감내하려는 것이다.
레너드가 그렇게 각오하고 있는데, 눈앞에서 그를 마주보던 오드리가 왼손을 들어올렸다.
공격? 아니다.
내공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염(念)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 이 거리에서 반신경급의 고수를 직면했다면, 레너드가 어떻게 대응하더라도 십초지적이 안 된다. 반사적으로 천 배 이상 가속해버린 체감시간 속에서, 오드리는 부드럽기까지 한 움직임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기특하구나.”
오드리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금색 머리카락을 헤집고, 그녀답지 않게 다정한 목소리로 칭찬했다.
섬뜩할 정도로 날이 서있었던 공기가 누그러진다.
“그래, 카르데나스의 혈족이라면 너 같은 강단이 있어야지.”
“…감사합니다?”
“음음.”
거침없는 손길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오드리는 제 얼굴에 보기 드문 미소를 베어물었다. 외형적으로 두 사람의 연령차는 서너 살도 안 되어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산이 몇 번 바뀔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검제 시절부터 헤아리더라도 레너드가 한참 더 어렸다.
그래서인지 연소자(年少者)로 취급받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그는 별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누님이나 어머님을 뵙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군.’
전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흑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틀란티스에서 만났던 소녀, 프란시스도 그 머리색 덕분에 조금 더 빠르게 친숙해졌다.
오드리는 그의 침착한 모습에 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손을 움직였다. 반신경까지 돌파한 강자의 예상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러하다면, 상대방이 정말로 특별하다는 증명이 된다.
“어린애로 취급당한 게 불쾌하지는 않았니?”
“좋게 봐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 의젓하구나. 데미안은 그 나이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다가 크게 혼쭐이 났었는데.”
그를 칭찬하면서 데미안의 흑역사까지 공개한 오드리가 제 손을 거두었다. 그녀의 시선은 알게 모르게 달라져있었다.
처음에 레너드를 데려가려고 한 것이 그저 무력과 재능만을 본 판단이었다면, 이젠 그 인성과 가치관마저 마음에 들게 된 상태였다. 데미안에게 신세를 진 탓에 함부로 떠날 수 없다니, 놈을 설득한다면 곧 해결될 일이기도 했다.
“네 의사를 존중하마.”
오드리가 말했다.
“데미안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고, 그 다음에 네 뜻을 다시 물어보겠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 마디로 레너드를 다시 긴장시킨 그녀가 미소지었다.
“네가 보여준 기술만큼은 내버려둘 수 없구나. 가능한 빨리 흑룡기사단에 보급하고 싶다. 약식으로라도 괜찮으니, 나한테 먼저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이쪽 세상의 강자들이 내공심법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아틀란티스에서 연씨 궁술이나 창술의 묘리를 좀 가르치긴 했으나, 내공심법이나 무공구결 자체를 본격적으로 전수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내공심법을 전수할 이유도, 필요도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설마 반신경의 고수를 가르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 * *
만류귀종(萬流歸宗). 무공을 좀 깊게 파고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었다.
불교에서 나온 격언이지만 무림에선 좀 다른 의미였다.
‘무공은 그 경지가 높아질수록, 무리(武理)와 병기의 차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희미해진다.’
한평생 검만 잡아본 무인이라도, 초절정을 넘어선 고수라면 검 이외의 병장기에 빠르게 숙련되기 마련이었다. 검객으로서 타 병장기를 상대해본 경험이 많은데다, 기본적으로 백병전의 이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초절정을 넘어선 경지, 화경의 고수라면?
정기신(精氣神)이 합일하면서, 심상의 숙련도가 곧 초식으로 연결되는 경지에 올라선다면?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병기와 무공이라도, 그 이치만 전부 파악한다면 극성(10성)까지 도달해버리지.’
검제 연무혁이 수많은 무공을 훔쳐배울 수 있었던 원동력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호기심으로 검 이외의 병장기와 무공마저 파고들면서, 화경에서 발휘할 수 있는 학습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고유 내공심법을 전제로 한 무공이나 이치 자체가 너무 난해한 신공절학만 아니라면 그가 습득하지 못할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화경에 불과한 수준에서도 이 정도인데, 현원경의 고수가 만류귀종을 실현한다면?’
산봉우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위에 올라선 자의 눈높이도 정비례하는 법이었다. 화경에 불과했던 연무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나, 현경의 고수가 지닌 학습능력은 화경을 아득히 뛰어넘을 것이 분명했다.
천마 단목진과는 그런 문답을 나누지 못했기에, 오늘날까지 레너드가 풀지 못했던 의문이었다.
그런데.
“하.”
오드리가 반 시진(1시간)도 안 지나서 〈가사복마공〉을 극성 수준까지 터득한 것도 모자라, 제 마음대로 구결을 수정하는 것을 본 레너드는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대종사(大倧師).
소림칠십이절예의 대부분을 창시했다는 보리달마(菩提達磨), 마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천마조사(天魔祖師)와 같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던, 무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능력이 바로 반신경의 특권이었다.
“레너드, 이거 참 재미있구나.”
오드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마나를 운용했을 뿐인데,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에선 볼 수 없는 능력과 형태가 나오다니. 출력 자체는 좀 감소한다지만 특이점과 유사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만으로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어.”
“…제가 기억하는 형상과 좀 달라보이는데요.”
“음? 아아, 이국적인 의복처럼 보이는 것도 괜찮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단다. 경로 몇 군데를 수정하면 출력도 조금 더 올라가고 드레스처럼 만들 수 있겠더구나.”
아무리 〈가사복마공〉이 소림사에서 천대받는 무공이라지만, 그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구결이나 기의 운용경로는 레너드 수준에서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경지였다. 몇 군데 고쳐쓰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불문 특유의 항마력을 유지하면서 제 마음대로 형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드리는 그걸 해낸 것도 모자라서 〈가사복마공〉의 단점도 하나 개량해버린 것이다.
“검술도 한 번 보여주렴.”
“알겠습니다.”
레너드는 기대 반, 경악 반의 감정을 추스르면서 앞서 뼈의 마족을 끝장냈던 〈위타복마검〉을 시연했다.
구파일방에서 실전주의로 유명한 공동파의 무공이다.
불문과 도문의 구결들이 난잡하게 뒤섞여있는 것은, 오로지 사마(邪魔)를 베어죽인다는 목적만을 추구한 탓이었다. 결과만 잘 나온다면 그게 최선이라고 주장해온 문파다웠다.
오드리도 그걸 알아본 기색이었다.
“실전적이구나. 고아한 것 같으면서도, 수단방법 안 가리는 형태가 인상적이야. 전장에 어울리는 검술이다.”
레너드는 그녀의 평을 경청하면서 〈위타복마검〉의 18초식, 그로부터 파생된 변화 72획까지 다 펼쳐보였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의 무공시연을 감상한 오드리가 제 등허리에 메고 있었던 글레이브를 풀어내렸다. 검보다는 창이나 언월도에 더 가까운 무기였으나, 그녀 수준에서는 별 차이도 아니었다.
“어울려주겠니?”
“기꺼이.”
두 무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맞은편에 마주섰다.
검과 글레이브.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무기였으나, 둘의 자세와 분위기만은 문외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했다. 〈위타복마검〉의 내공 운용까지 한눈에 간파했으리라. 그걸 알아본 레너드가 사양도 없이 오드리의 급소를 겨냥했다.
위타복마검(韋陀伏魔劍)
제삼초(第三招)
촌선척마(寸善尺魔)
상대가 볼 때는 일촌(3cm)밖에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눈의 착각을 이용해서 일척(30cm)을 찔러넣는 초식이었다.
그에 맞춰서 오드리도 〈위타복마검〉을 전개했다.
위타복마검(韋陀伏魔劍)
제오초(第五招)
악지악각(惡知惡覺)
레너드의 검극을 가로막듯이, 글레이브의 넓은 면이 경로를 차단한다. 그 벽을 우회하려고 검광이 이리저리 몸을 틀지만, 바늘구멍만한 빈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공세가 격화되기 전에 끊어버리는, 능동적인 방어의 수.
오직 〈위타복마검〉만 사용하는 비무가 점점 격화되었다.
‘글레이브로 검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틈이 없다. 아니, 틈이 생기자마자 곧바로 사라지고 있다…!’
즉흥적으로 초식을 변형하고, 기의 흐름과 움직임을 억지로 끼워맞추는데도 〈위타복마검〉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레너드가 아직도 반 박자를 앞서고 있는 것은, 다 좁혀지지 않은 숙련도의 격차와 병장기의 어긋남에서 온 불협화음이 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오드리가 계속 수세로 일관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카앙! 캉! 카아앙! 캉! 캉!
순수한 무의 경지에서 레너드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그녀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칼날을 받아흘리며, 글레이브에 안 맞는 동작이나 흐름을 최적화하고 다시 열세를 뒤집는다.
1초를 주고받을 때마다 글레이브로 펼치는 〈위타복마검〉이 완전해지고 있었다.
위타복마검(韋陀伏魔劍)
절기(絶技)
천참잔마(千斬殘魔)
비무가 시작되고서 정확하게 83초에 이르렀을 때, 오드리가 마침내 공세로 전환하면서 오의를 펼쳐냈다.
레너드의 〈위타복마검〉을, 검도 아닌 글레이브로 따라잡은 것이다. 신공절학은 아니지만 일류 이상의 무공이었는데도!
‘여기서부터 동수(同數)라니, 너무 빠르군.’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은 레너드가 응수했다.
그녀와 같이 〈천참잔마〉를 전개해서 오의를 상쇄하고, 불과 100초도 안 지나서 호각으로 숙련된 〈위타복마검〉에 대응한 초식을 쏟아내면서 걷어낸다.
그 수준이 동등하고 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힘과 길이가 더 강력한 글레이브가 검을 압도한다.
필연적으로 열세에 처해야할 것은 레너드였다.
하지만.
“호오?”
83초를 지나쳐서 150초에 다다랐을 때, 오드리는 이번에도 자신의 예상이 틀린 것을 인정해야했다.
레너드와 그녀의 〈위타복마검〉은 여전히 호각이었다.
검과 글레이브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약한 수준이라도 레너드가 좀 더 나은 셈이었다. 기의 운용법까지 완벽하게 따라했다지만, 무공 본연의 심상이나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발생한 차이였다.
킹.
손발처럼 다루던 글레이브를 다시 등으로 되돌리며, 호흡을 가라앉힌 오드리가 말했다.
“전부 파악했다고 생각했건만…내가 다 읽어내지 못한 것이 있었나보구나. 심오한 기술이야.”
“저야말로 감탄했습니다. 반신경은 다 그런 겁니까?”
“학습능력을 말하는 것이겠지? 뭐, 비슷하겠구나. 데미안과 너처럼 용안을 가진 경우에는 더 편하겠다만.”
레너드의 말에 뭐라고 더 설명하려다가, 오드리는 제 고운 눈썹을 찌푸리면서 출입구를 돌아보았다.
“불쾌한 오산이군. 아주 빨리도 찾아왔구나.”
“예?”
레너드가 그 말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꽈아아아앙?!
굳게 닫혀있었던 공방의 문을 차날리면서, 두 눈을 벌겋게 충혈시킨 데미안이 뛰쳐들어왔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 애를 데려가! 이 망할 아줌마가! 맨날 지하에 처박혀있으니 음습한 짓만 늘어가지고!”
“……호오.”
레너드와는 정반대로 그 성미를 건드리는 태도에, 오드리가 다시 글레이브를 풀어내렸다.
여차하면 두 동강을 내주겠다는 의지가 선명했다.
“못 보던 사이에 겁이 없어졌구나, 데미안?”
데미안은 그녀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레너드의 존재를 깨닫고서 더 호기로운 태도를 취했다.
“나도 짬 좀 먹었거든? 옛날처럼 그쪽이 결정했다고 순순히 다 넘어가줄 것 같아?!”
“그렇군. 내가 널 얕봤구나.”
오드리가 제 실수를 자책하면서 글레이브를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데미안이 발검하면서 〈권역〉을 형성해, 머리를 짓누르려고 한 압력을 베어냈다.
인사치레에 불과한 기습이었지만, 서로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리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무표정해진 데미안에게 날을 까닥거린 오드리가 서늘하게 미소지었다.
“서열정리부터 다시 해보자꾸나.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할 수 있으면 하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