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6 )
숲을 빠져나온 아이들은 올 때와 달리 가문에서 온 마차를 타고 돌아갈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인데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훈련생들에게 나름대로 포상을 준 것이다. 한 대의 마차에 대여섯 명이 탈 수 있었으니, 거의 백 대에 가까운 마차가 한 곳에 모여있는 것도 진풍경이었다.
인원수를 재차 확인한 교관들이 수신호를 보내자, 맨 앞에 세워져있던 마차부터 한 대씩 출발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마차에는 당연히 레너드가 올라타있었고,
“…….”
“…….”
“…….”
“…….”
어째서인지 1번, 2번, 3번, 4번이 동승하고 있었다.
마차 안의 분위기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두 눈을 감고서 팔짱을 낀 1번, 옆에서 그를 째려보는 2번, 레너드 외엔 다 노려보는 3번, 머쓱해하면서 웃는 4번까지.
“그래서.”
참다못한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왜 여기에 다 모인 거냐?”
마차는 딱히 번호순으로 태운 것도 아니라, 레너드 한 명을 제외한다면 다들 제 발로 찾아온 셈이었다.
6조로서 함께 활동했던 3번까지는 몰라도, 나머지 세 명은 무슨 생각으로 올라탄 건지 모르겠다.
그 말에 누구보다 먼저 반응한 2번이 말했다.
“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너니까?”
4번도 그에 공감한다는 얼굴로 끄덕였다.
“겨우 한 달도 안 걸려서 381번에서 1번까지 올라간 사람, 흥미로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장은 너희들의 이야깃거리 따위가 아냐!”
두 사람의 말에 쌍심지를 켠 3번이 소리쳤다.
“패배자에 불과한 너희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2번과 4번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3번은 항상 까탈스럽고, 그들만 보면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소녀였으니까.
그런데 그 3번이 다른 누군가를, 특히 남자를 감싸는 것도 모자라서 칭찬하기까지 하다니?
“제가 알고 있었던 3번과는 좀 다르군요. 숲속에서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뭐?”
잠시 그 말뜻을 생각해본 3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멍텅구리가!”
당사자를 눈앞에 둔 채로 투닥거리던 아이들은 곧 침묵하고 있는 1번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스스로가 최강이자 최고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자존감의 화신이 바로 그 아니었는가?
“…25번 말고는 다 나한테 패배한 쭉정이들 아니냐. 관심을 줄 만한 가치도 없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세 사람을 주욱 훑어본 1번이 훗 하고 비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말에 2번, 3번, 4번이 일제히 폭발했다.
“이 재수탱이가 뭐라는 거야!”
“마지막에 웃는 놈이 승자야! 그것도 몰라?!”
“저는 25번에게 항복했습니다. 당신에게 진 기억은 몇 번을 되돌이켜봐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만?”
1번의 멱살을 짤짤 흔들어대는 2번, 침이 튈 정도로 강하게 소리쳐대는 3번, 간신히 존댓말을 유지하고 있는 4번.
평상시라면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 때문에 조숙하게만 자란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한 소년, 레너드의 앞에선 강한 척하는 것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했다.
‘시끄럽군. 다 내쫓아버릴 수도 없는데.’
물론 레너드로서는 이 꼬마들이 왜 그의 마차에서 시답잖은 촌극을 보여주는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늑대에게 >영수축양진결>을 전수하느라 심력도 좀 썼는데, 아이들의 소란 때문에 두통마저 올 지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난장판은 금방 진정되었다.
“훈련이 끝나서 들뜬 건 좋다만, 지금처럼 계속 떠들겠다면 마차를 내려서 걸어야할 거다.”
““““죄송합니다.””””
마차 창문으로 고개를 쑥 집어넣은 브루노가 그리 말하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술을 다물었다.
레너드는 겨우 되찾은 평온을 즐기면서 두 눈을 감았다.
앞서 한 일로 소모된 심력을 회복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내상을 입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 번에 성공시키기도 했으니.
‘자연기가 이렇게 풍부한 세상이라면, 몇 년만에 중급영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놈을 생각해보던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1번.”
브루노의 꾸중 이후로 침묵하던 모두가 흠칫 놀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25번이 설마 자신을 부를 줄 몰랐었던 1번이었다.
1번은 몇 번이나 뜸을 들이고서야 대답했다.
“…무엇이냐.”
“이 다음부터 시작될 훈련과정이 궁금한데, 아는 게 있나?”
레너드의 거침없는 질문에 1번뿐만 아니라 2번, 4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이다. 너도 들었나보군.”
오직 3번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내일부터 우리는 이 훈련소에서 거둔 성적을 기반으로 한 수련자원을 지급받고, 진정한 카르데나스의 후예가 되기 위한 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그 순간, 1번의 설명을 끊으면서 2번이 끼어들었다.
“>성혈식>에 대한 내용도 설명해줘야지, 1번? 일부러 빼고 한 건 아니지? 응?”
“조용히 해라, 2번. 지금부터 할 생각이었다.”
낯선 단어를 들은 레너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성혈식(成血式)?
그 의문을 해결해줄 설명이 바로 시작되었다.
“우리들, 카르데나스의 혈통에는 보통 사람과 다른 기관이 잠들어있다고 한다. 특수한 의식으로 그걸 일깨우고 형성하면 몇 배, 몇십 배의 성장속도를 보일 수 있다더군.”
“기…아니, 마나(Mana)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1번은 짧게 수긍했다.
“카르데나스의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마나를 수련하지 않는 것도, 그 의식을 감당할 수 있는 연령까지 기다려서 그 뭔지 모를 기관부터 형성시키기 위함이다.”
레너드는 조심스럽게 그 심상을 일으켜서 제 몸을 빠짐없이 훑어보았지만, ‘기관’이라고 할 만한 부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혈식>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는 관측 자체도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혹시 마공(魔功)이나 사공(邪功)의 일종인가 고민되었으나, 지금까지 그러한 힘을 품은 자는 본 적이 없었다. 무림에서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한 번 겪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던 레너드의 귀로, 몇 년만에 의문을 해결한 3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그래서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영과나 영석을 먹지 못하게 한 거였구나?”
“>성혈식>을 하기 전에 축적한 마나는 그 이후의 수련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더군. 어디까지나 들은 말이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마나를 못 쌓게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왜 수련자원을 그렇게 쌓아놓고 애들만 못 먹게 하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1번이 한 말, 3번이 한 말을 되짚어봐도 특별히 이상할 게 없다. 그렇다면 왜 레너드는, ‘연무혁’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영초? 영석? 수련자원을 먹는다?
내공심법의 기초를 닦는 것과 그 말들이 무슨 상관이지?
“1번.”
“뭐냐.”
“일반적으로 몸에 마나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와 동시에 네 사람의 시선이 레너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담겨있는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어째서 그 당연하기까지 한 상식을, 그들에게 묻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이기도 했다.
1번보다 먼저 입을 연 2번이 말했다.
“마나홀(Mana―hole)을 형성하기 이전이라면, 마나가 짙게 배어있는 영약이나 영과를 섭취하는 게 보통이지? 영석은 그 밀도 때문에 감당하기가 어렵고.”
“일단 마나홀을 만들고 난 다음부터는 텅 비우고 다시 채울 때마다 그 용적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하더군요.”
4번의 부연설명에 레너드는 말이 더 나오길 기다렸지만, 그 다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까지였다.
이 세상에서 마나를 끌어모으는 방법은 외부에서 섭취하는 것과 초회복 외엔 없었다. 내공심법은커녕 기초적인 토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검제>의 정신이 뒤흔들렸다.
‘그렇게 될 수가 있나? 어떻게?’
조화경의 고수를 정신적으로 뒤흔드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살수 문파에서도 초절정 이상부터는 의뢰비가 말도 안 되게 치솟거나, 의뢰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고 있으면서도 전방위의 기습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괴물들이었으니까.
내공을 순환시키기만 해도 천독불침은 기본에, 호신기를 쓴 상태면 벽력탄도 안 먹힌다. 강기(罡氣)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공격과 방어 둘 다 무적에 가까워진다.
‘…위험했다. 주화입마가 올 뻔했어.’
그런데 레너드는 방금 아이들이 한 말을 듣고서 심검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 틈을 찔렸다면 몇 수 아래의 살수한테도 죽었겠지.
내공심법이 없다?
무림인에게 그 말은 주춧돌과 기둥 없이 건물을 만들었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 관점이 잘못되었던 걸지도 모르겠군.’
레너드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아, 무림과 이 세상이 뭐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하, 내가 멍청했구나!’
그는 곧 깨달았다.
아이들의 말이 옳았다.
이 세상에서 기, 마나를 쌓는 방식은 절대로 내공심법이 될 수 없었다.
‘자연의 기가 너무나도 많고 강해서, 조화경에 달한 고수가 아니라면 운기토납(運氣吐納)조차 불가능하다.’
레너드는 전생의 기억을 찾은 시점에서 그 심혼이 조화경의 영역에 도달했다.
상단전(上丹田).
육체와 기를 넘어서서 정신력으로 세상에 간섭하는 경지.
그 수준에 들어서면 자연기의 양과 밀도를 무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연기를 끌어모으거나 늑대의 몸 안에 불어넣었을 때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내공에 막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자연기를 몸 안에 끌어당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숨만 쉬고 있어도 내공이 쌓이는 몸, 공령지체(空靈之體)로 유명하던 놈도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채울 수 없는 바가지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마나를 끌어당길 수 있다고 해도 문제였다.
중원에서와 달리 이 세상의 자연기는 너무 강력해서, 작고 밑바닥도 얕은 논두렁에다가 강물을 끌어다가 퍼붓는 꼴이 될 게 틀림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통제를 벗어나면 그 기가 기경팔맥을 찢고 몸 안쪽부터 산산조각내리라.
‘늑대한테 >영수축양진결>을 준 것도 위험한 일이었군. 그 심법은 한 번 완성시키면 자동으로 순환하는 구조라 탈이 날 일이 없지만, 내가 실패했다면—.’
레너드는 그 참혹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고, 이제라도 알게 된 상식에 대해서 고찰했다.
이곳이 정말 내공심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그것을 혼자 쓸 수 있는 자신은 이곳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수련자원을 소모하지 않아도 기를 빨아들여, 내공을 쌓아서 다음 경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우득.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낙천적으로만 흘러가는 생각을 멈추기 위함이었다.
‘내게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가문만 보더라도 내공심법도 없이 고등한 경지에 올라있는 무인들이 상당수 존재하지. 그들은 그 나름대로 새로운 체계의 무학을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카르데나스의 혈통으로 태어난 것은 천운이었다.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바깥에서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귀한 것들일테니까.
>성혈식>인지 뭔지하는 것도 그렇다.
외부인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비밀이리라.
끼이익.
그때, 저택으로 돌아온 마차들이 일제히 멈춰서면서 말들이 히힝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왔군. 오늘로 마지막이겠지만.”
1번이 한 말에, 2번은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아, 내일부터는 더 힘들고 귀찮겠네.”
“난 >성혈식>이 뭔지 기대되는데!”
“내일이 되면 알 수 있겠지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녀와 달리 3번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4번은 언제나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는 네 사람은 미리 짠 것처럼 레너드를 돌아보았다.
“내 이름은 윌리엄이다, 25번. 기억해라.”
1번은 그렇게 말하고서 마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하여간 저 재수탱이는 끝까지 잘난 척이구나. 난 벨리타야. 앞으로 베티라고 불러도 돼.”
“딜런입니다. 애칭이나 별명은 따로 없군요.”
2번과 4번도 그 이름을 레너드에게 알려주었다.
내일부터 훈련생들이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통성명을 서두른 것이다.
그들에게 한 발 뒤처진 3번도 뒤질세라 외쳤다.
“난 헤더야! 다음번에는 내가 조장을 도와줄게!”
레너드는 그 어색한 접근방식에 피식 미소지었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스쳤다가 묶이는 것 또한 인연일테니.
“레너드, 그게 내 이름이다.”
연무혁은 죽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레너드였고, 이전의 경험과 힘은 그 등을 떠밀어주는 바람에 불과했다. 너무 의지하거나 하면, 이번처럼 크게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뒤를 돌아보는 일 없이.
마차에서 내려선 레너드는 오늘로 마지막이 될 그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그게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