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6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60)
레너드는 제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용언]은 틀림없이 드래곤을 상징하는 권능 중 하나였지만, 카르데나스에 계승되는 용혈의 특질 중에서 한 번도 발현되지 않은 능력이었기 때문이다.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드래곤의 언령’이 기능하는 원리도 다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신체기관의 어느 부분에서 관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와중에 재현하는 것만 가능할 리 없었다. 레너드가 알고 있는 게 정확한다면, 카르데나스의 역사에서 [용언]을 각성한 자는 그 하나뿐이었다.
‘…단장님들이 또 뒤집어질 수도 있겠군.’
눈을 뜨고도 그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던 레너드가 한 차례 실소했으나, 이내 전장의 긴장감을 되찾으면서 ‘혀’의 마족을 노려보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던 [용언]의 허용량은 세 음절.
그 이상 발음한다면 언령에 실려야할 힘을 잃는다.
“후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할 말은 정해져있었다.
‘깨어나’도, ‘힘내라’도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한다. 레너드는 그 말이 향해야할 대상을 바라보면서, 큰 호흡으로 숨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닥?쳐?라?!]”
수백 년, 어쩌면 천 년도 넘게 중간계에서 발휘되지 않았던 [언령]이 지하 대공동에 울려퍼졌다.
레너드가 힘껏 내지른 고함소리가 온 사방을 뒤덮는다.
사자후도, 창룡후도 아니다.
그저 하등한 존재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
용언의 본질은 그 상하관계에 기반한다.
“??!?”
“?!”
“????!”
제 의지와 무관하게 ‘혀’의 마족들이 주둥아리를 다물고,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한 소리로 끙끙댔다. 귀족계급의 마족도 감히 [용언]에 저항하거나 할 순 없었다.
불완전하게 구사된 능력이라도 그 격이 달랐다.
아쉬운 부분을 꼽아보라면, 레너드도 처음 쓴 능력이다보니 피아를 구분하지 못했다. 전음(傳音)도 아닌 목소리를 누구는 듣고, 누구는 못 듣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일시적으로 능력을 봉쇄당한 마족들은 물론이고 위클라인의 마법사들까지 제 음성이 막힌 이유를 몰라서 허둥지둥했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침묵을 깨부순 것은, 당연하게도 그 상황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아무래도 난 너희들과 상성이 좋은 모양인데.”
어느샌가 ‘혀’의 마족을 사정거리에 둔 그가 조소했다.
[언령]이라는 무기를 잃어버린 놈들의 전투력은 이미 몇 수 아래로 떨어져있었다.위타복마검(韋陀伏魔劍)
제일초(第一招)
백흑지변(白黑之辨)
신속하게 거리를 좁힌 레너드의 검이, ‘혀’의 마족을 단숨에 갈라버리면서 그 타르와도 같은 피를 흩뿌렸다.
귀족계급의 마족 한 마리가 허무하게 절명하는 것은, 놈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원.”
레너드는 배후를 돌아보지도 않고, 제 등만 바라보고 있는 흑룡기사단에 명령했다.
“공격하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7번대에 소속된 흑룡기사 330인이 그 명에 따라서 세 마리 남아있는 ‘혀’의 마족들에게 돌진했다. 승리를 주도하고 있는 레너드의 실력과 분위기가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용언으로 강제된 침묵은 이미 끝나있었지만, 승리를 확신한 기사들의 머릿속은 더 이상 정신공격에 흔들리지 않았다.
제 무기를 믿지 못하게 된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걸리겠군.’
그들과 함께 마족들을 밀어붙이며, 레너드는 두 기사단장이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경천동지할 싸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쉬웠다.
* * *
[나인헬]에서 왕족으로 살아온 존재, ‘뇌’의 마족 샤모스는 지금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있었다.“■■■? ■■■■…?”
그의 작전은 완벽했다.
침공시기를 앞당겨서 중간계 병력의 허를 찌르고, 지옥문을 통과하는 것과 동시에 광범위하게 정신파를 확산시켜서 적의 무리를 와해시키는 것.
언제나와 같은 싸움을 예상했다면 절대로 막을 수 없어야할 수법이었거늘.
왜 그가 일방적으로 도망치는 입장에 몰렸는가?
“■■■■■…!”
중간계의 하등생물 주제에 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이 정체불명의 강적들만 해도 그렇다.
평소대로라면 한 마리만 있어야하는 곳에 두 마리가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 뇌를 제외한 몸뚱이는 다 여분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타격이 아예 없지만도 않았다.
반 이상의 엑토플라즘이 떨어져나간 탓에, 초능력의 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추격자들이 그걸 몰라볼 리 없었다.
“네가 준 데미지가 완전히 무의미하진 않았나보구나.”
오드리는 놈의 약화를 알아차리고 그 옆에서 내달리고 있던 데미안에게 말했다.
“공간을 뛰어넘는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거리도 꽤 줄어든 상태란다. 다다음 도약에선 따라잡을 수 있겠어.”
“초능력이라고 해서 무한하게 사용할 순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지. 전장에서 멀리 떨어트렸으니 [컨슘]도 못해. 개수작을 부리기 전에 토막내버리자고.”
“음.”
그 말에 오드리의 살의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전투력만 따지고 보면 심장의 마족이 더 강하겠지만, 뇌의 마족은 놈들보다 몇 배나 혐오스럽지.’
고위 마족의 특수능력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뇌’의 마족이 사용하는 [컨슘]은 악질적이었다.
지성체의 영혼을 빨아먹어서 제 힘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텅 비어버린 몸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특수능력. 그 힘에 당한 부하들을 안식시켜준 경험이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생전의 기억을 이용해서 가문과 동료들을 모욕하거나, 아직 멀쩡하기라도 한 것처럼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경우도 흔하다. 베테랑급 흑룡기사들도 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가 크게 당한 경험이 한두 번은 존재했다.
멸절(Extermination)
오드리가 한 차례 내지른 글레이브로부터 쏟아져나온 어둠, 만물을 지워버리는 특이점이 그 묘용을 발휘한다.
공간을 지운다.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세계법칙에 간섭하는 특이점의 공능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수 킬로미터의 간격이 일격으로 지워지면서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무리하는구만! 그렇다면 나도 좀 힘내보실까!”
데미안이 그에 호응하듯이 제 칼날을 사선으로 겨눴다.
[원 오브 사우전드]마저 피해버린 놈이다.어중간하게 공격에 치중해선 못 베고, 퇴로를 먼저 끊는 게 이상적이었다. 〈거울검〉의 능력을 활용한다면 그 선택도 딱히 불가능하지 않았다.
거울검(Mirror Blade)
굴절무한구속기(屈折無限拘束技)
컬라이더스코프(Kaleidoscope)
한 줄기 검광이 벼락처럼 내달리더니, ‘뇌’의 마족 샤모스를 앞질러가서 그 정면을 베어낸다.
아니, 정면뿐만이 아니었다.
사방팔방(四方八方)을 모두 베기라도 할 것처럼 미쳐날뛴다. 난반사된 빛이 수십, 수백 줄기로 산란하듯이, 샤모스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360도 전부가 데미안의 검이 만들어낸 빛에 장악당했다.
“■■■■?!”
놈은 염력으로 시공간까지 구부릴 수 있는 초능력자였기에, 데미안이 한 짓을 알고서 경악해야했다.
공간을 도려내서 아공간처럼 분리시킨 것이다!
세계법칙의 복원력이 있으니 오래 갈 순 없겠지만, 그 전에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뚫고 나가려다간 공간의 난류에 휘말려서 갈가리 찢어지고 말 터다.
“자, 추격적은 이제 때려치우자고.”
직경 100미터 정도의 공간을 도려내서 결투장으로 만든, 그 이적을 성립시킨 검객이 서늘하게 미소지었다.
그런데 오드리가 그를 제치고 몇 걸음 걸어나왔다.
“뭐야? 혼자서 할 거야?”
“도와줘서 고맙구나. 여기서부턴 나 혼자라도 괜찮다.”
군단장급이 강하다고 해도 2대1로 맞서야할 강적은 아니고, 파견요청으로 온 단장을 너무 소모시켰다간 그 다음의 상황에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당당하게 ‘뇌’의 마족 샤모스와 마주한 오드리가 글레이브를 높이 치켜들었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싸운다면, 난 절대로 지지 않으니까.”
“■■■■■…!”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등종족, 오드리에게 얕보였음을 안 샤모스가 남겨둔 힘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수조처럼 투명한 두개골에 둥둥 떠다니던 뇌가 혐오스러운 광채를 뿜어내고, 몇 배로 증폭된 초능력을 범람시키면서 놈 주변의 시공간을 일그러트린다.
체감시간의 가속과 달리 세계를 감속시키는 수법이다.
한 번만 작렬해도 초월경급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염력의 궁극경지가 오드리를 향해서 쏘아져나왔다.
“기술이 아니라 힘에 의존하는 막싸움이라.”
그걸 마주한 오드리가 요염하게 미소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 특기란다.”
흑룡기사단장의 특이점, [멸절]이 활성화되면서 몸 전체를 풀플레이트 메일처럼 휘감는다.
호신강기와 그 원리 자체는 동일했다.
최강의 공격력을 몸에 두른다면 최강의 방어력이 된다.
단순하고 무식한 논리로 만들어진 칠흑의 갑옷이, 시공간도 꺾을 수 있는 염동력을 간단히 지워버렸다. 샤모스의 두 눈이 경악과 공포로 휘둥그레진다. 마계에서도 그렇게 염동력을 깬 존재는 만나보지 못했다.
“막아도 좋고, 피해도 좋다. 반격해도 상관없겠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느긋하게, 상단세로 든 글레이브를 천천히 내리긋는다.
오드리가 말했다.
“할 수 있다면, 말이란다.”
그와 동시에 글레이브에서 쏟아져나온 어둠이 샤모스의 몸 전체를 집어삼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그 지표에 새겨진 9위계급 방호마법까지 일부 손상시켰다.
일격필살(一擊必殺).
정면승부를 선택한 시점에서 놈의 승산은 사라졌다. 그것을 증명하는 일섬이, ‘뇌’의 마족 한 마리를 지워버렸다.
쓰읍.
데미안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여전히 살떨리는 위력이구만. 내 〈거울〉이라도 저 아줌마 공격력은 못 버틸 것 같단 말이지.’
적룡기사단장 웨이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실력자답다.
그 위용을 오랜만에 목도한 그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야, 누님도 팔팔하구만! 놈이 멍청하게 정면승부를 걸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격에 끝날 줄은 몰랐는데.”
그러나 오드리는 제 글레이브를 어깨에 진 채로 말했다.
“아줌마라고 하지 않았었니? 왜 갑자기 누님?”
“에, 에이, 그거야 레너드를 놓고 싸우다가 한 말이고. 내가 진심으로 누님을 아줌마라고 했겠어? 7대 기사단에 막 입단한 시절부터 누님 등만 따라다녔는데?”
“나도 기억하고 있단다. 그 당시에도 입버릇이 안 좋다보니 주의를 몇 번 줬었는데, 고치질 못하는구나.”
데미안은 그 불온하기까지 한 공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저기, 누님? 아니지?”
“예전에 한 번 보여줬던 기술이구나. [컬라이더스코프]던가, 시전자라도 최소 5분간은 해제할 수 없는 구속기였지. 아마?”
오싹, 하고 목덜미가 오므라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창백해진 안색을 본 오드리가 스산하게 웃었다.
“우리들이 복귀할 무렵이라면 이미 전투가 다 끝나있을 것 같구나. 혀의 마족이라도 그 전황을 역전하긴 힘들지. 빠르게 대처했다면 열 명 남짓한 사상자로 끝났을지도.”
전면전에서 모루 역할을 담당하는 흑룡기사단이 그 정도로 끝났다는 것은, 거점수비 전투에서 보기 드문 대승이었다.
경사라고 할 만한 전과를 입에 담으면서도 오드리의 흉흉한 분위기는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자기 손으로 판 묫자리에서 저승사자를 마주한 데미안이 움츠러들었다.
백룡기사단장에 등극하기 전의, 수십 년이나 된 트라우마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안심하거라. 너도 이제 단장이니, 아이들 앞에서 체면 구길 일은 없을게다.”
오드리가 한 걸음 다가서면서 말했다.
겉으로 티도 안 나게 패주겠다는, 배려 아닌 배려에 죽상이 된 데미안이 이판사판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필사적으로 내세우던 가식도 전부 집어치웠다.
“이 망할 아줌마가! 그렇게 폭력적이니까 단원들이 말도 못 걸고 찌그러지는 거라고!”
“……너도 찌그러트려주마.”
무표정해진 오드리가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데미안이 검을 휘두르면서, 출입구가 없는 [컬라이더스코프] 안에서 때 아닌 싸움박질이 벌어졌다.
그녀의 예측대로 그 시점에서 전투는 이미 끝나있었다.
두 기사단장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흑룡기사단은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이렇게 시답잖은 이유로 치고받는 단장들의 추태는 알려져서 득이 될 게 없었으니까.
“생각보다 좀 늦으시는군.”
레너드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