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6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64)
레너드는 그렇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흑룡기사들을 일일이 상대해보고, 그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십초(十招)도 안 되는 비무였으나, 두 달밖에 안 된 무공의 숙련도라면 눈을 감은 상태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용안을 뜬 상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서른두 명 모두가 전수했던 무공의 극성(10성)에 도달했군. 11성부터는 그 심상이 공명하기 시작해야하니, 사실상 한계에 도달했다고 봐도 좋겠지.’
초월경에 다다른 강자들이라고 해도 이 성장속도는 상식을 크게 뛰어넘었다. 〈섬전십삼검뢰〉처럼 그 속성의 친화력에 큰 영향을 받는 무공들도 있었다지만, 〈구절검〉이나 〈오귀검법〉 같은 무공들은 상당히 난해했는데 말이다.
카르데나스 특유의 무형검을 오랫동안 수련한 것이, 새로운 가르침을 흡수하는데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나코어 덕분에 내공심법의 발전도 아주 빠르다. 대부분이 5성이나 6성에, 몇 사람은 7성에 다다랐을 정도니.’
도가적이나 불가적인 색채가 적은 무공을 선별하고, 사상적 이해도가 요구되는 구결을 쉽게 해설해놓은 효과가 있었다.
그 대가로 무공 자체에 담겨있는 뜻(意)의 심오함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초월경까지 돌파한 강자들이 배워야할 정도로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만류귀종.
이미 자신만의 경지에 도달해있는 자들에게, 타인이 보여준 이정표는 결국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사아악.
〈삼음기공(三陰氣功)〉을 기반으로 한 검기, 〈한빙천류검〉이 스쳐지나간 자리에 곧 살얼음이 언다.
그 칼날에 베인 상처에선 살과 가죽뿐만 아니라 뼈마디까지 침투하는 냉기가 남아, 운기조식으로 몰아내거나 양기가 짙게 묻어나오는 내공을 동원해서 저항해야했다.
사황련에 속하지 않고 청부살인을 즐겨하던 고수, 음풍검을 죽이고 얻게 된 비급에서 습득한 무공이었다.
‘음풍검 나부랭이와는 감히 비교하기도 미안하군.’
32번의 검에 휘감겨있는 냉기는 이미 북해빙궁에서도 찾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와있었다. 초절정에 겨우 턱걸이나 하고 있었던 음풍검과는 그 격이 다르다.
레너드가 배울 수 없었던 절학, 〈빙하천령검(氷河天嶺劍〉도 8성 이상에 도달해야만 저 검과 맞대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한옥신장(寒玉神掌)
대리석처럼 희게 탈색된 손바닥이 검기를 으스러트리고, 그 뒤로 나아가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한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범위에만 있어도 몸뚱이가 움츠러든다. 광세절학이라고 할 만한 소수마공에 범접할 수는 없더라도, 〈한옥신장〉의 기운을 끌어올린 손은 어지간한 검기 따위보다 강하고 날카로웠다.
몇 번의 충돌로 〈한빙천류검〉을 제압해버린 레너드가 검을 놓아주면서 조언했다.
“일격에 치명상을 노리기보단, 별 거 아닌 상처를 누적해서 검의 냉기를 침투시켜라. 대응하지 못하면 그 즉시 몸이 굳을 것이고, 대응하더라도 집중력을 크게 잃어버릴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무를 한 32번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연무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흑룡기사 전원을 내려다본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내 강연을 성실하게 따라와준 제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7번 거점에서 무공을 강연하는 날은,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그들을 가르치면서 그 스스로도 배운 게 많았지만, 기사단 하나에 속박되기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남아있었다.
허신토벌도 한 번밖에 해보지 못했고, 청룡기와 적룡기에도 무(武)에 도움이 될 강적들은 득시글거릴 터다. 흑룡기사단에 지금 말뚝을 박아야할 이유가 없다.
“무예를 수련하는데 두 달은 절대로 길다고,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제군들의 성취는 훌륭하다. 이 다음은 내 가르침이 없더라도 스스로 깨우치면서 나아가도록 해라. 주변 동료들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말도록.”
삭막하기까지 한 고별사(告別辭)였지만, 흑룡기사 누구도 그 앞에서 부동자세를 풀거나 입을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카르데나스의 일원으로서 그 경의를 표현했을 뿐.
카아앙!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허리춤에서 발검해낸 흑룡기사 전원이 극공경의 예를 취했다.
검례(劍禮).
제각각의 길이와 형태를 지닌 검이 일직선으로 곤두서면서, 날이 아닌 면으로 레너드를 보았다. 기사단장 이외의 혈족이 그 예를 받는 게 얼마만인지, 베테랑급 기사들도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카르데나스의 역사를 잘 모르는 레너드에게도, 검에 묻어나오는 경의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본격적인 교육은 나도 처음이었지만, 한 번 정도는 경험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상황이었다.’
32인의 흑룡기사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멀어져가는 레너드의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사승관계(師承關係)를 그저 무공과 소망을 떠맡기는 행위로 생각해왔던 것이 좀 바뀌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스스로의 배움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개인시간이 줄어드는 게 너무 막중한 단점이었지만.
‘내일이면 이 거점을 벗어나겠군.’
레너드는 제 물건이 얼마 존재하지도 않는 방을 정리하고서 가부좌를 틀었다. 그대로 운기조식을 할 것도, 명상을 할 것도 아니었지만 무림인의 습관 자체가 그러했다.
두 달간의 교관생활로 나름대로 정이 든 건지, 흑룡기사 몇 사람의 무공에서 지적해야할 점 따위가 자꾸 떠오른다.
그래서 잡념이라도 떨쳐버리고자 두 눈꺼풀을 감아버렸다.
‘내 역할은 이미 충분하다. 대종사의 자질을 지닌 단장들이 존재한다면, 중원의 무공이론을 따라잡는 것도 그렇게까지 먼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맨땅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체계화된 무공지식을 배우고 난 다음에 추격해오는 일이었다.
데미안도, 오드리도 이미 레너드가 준 무공서들을 완벽하게 독파하고서 자신이 직접 무공을 개량하거나 창안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신공절학이라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일류 수준의 무공서라면 얼마든지 찍어내는 것이 가능하리라.
두 달이라면 이미 성과를 도출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헬게이트]를 지속적으로 접하고 관찰한 탓에, 〈동신류〉의 성취가 깊어졌던 것도 좀 예상 외였다.’
세계법칙의 일그러진 접합면, [헬게이트]는 그 존재 자체가 개념적으로 불합리에 가까웠다. 〈동신류〉로 지워버릴 수 있는 현상이었으나, 레너드는 그걸 시도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상성관계에서 좀 우위에 서있더라도, 힘의 차이가 만 배 이상이라면 통용되지 않는다.
〈동신류〉와 [헬게이트]의 관계성이 그와 같았다.
설령 레너드가 완전한 반신경에 도달하더라도 그 왜곡점을 수습하진 못한다. 신화경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를 수 있지만, 초월경 수준에서는 논할 가치조차 없었다.
“…[용언]에 관련해서 더 알고 싶었는데 말이지.”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그 부분이었다.
몇 세기에 걸쳐서 자료들을 수집해놓은 도서관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보고 [용언]을 알아봤을 텐데.
거점에서 벗어나거나 할 여유도 없고, 자유롭게 연습하거나 할 수 있는 능력도 아니다보니 크게 진척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용언]의 허용량이 음절(音節) 단위라는 게 실마리였다.’
이전에 혀의 마족에게 쓴 [용언], ‘닥쳐라’라고 한 사용법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쪽 세상에서 쓰이는 말과 전생에서 쓰였던 말의 차이였다.
어느 문명에서든지 언어를 시각화한 것이 문자이며, 문자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되었다.
표의문자(表意文字)와 표음문자(表音文字).
그 소리를 형상화한 글자와 그 의미를 형상화한 글자로.
‘[부서져라]라고 한다면 네 음절이나 필요하지만, [파(破)]라고 말한다면 한 음절로 충분하니까.’
진정한 드래곤이라면 음절 단위의 제약도 없고, 의지만으로 쓸 수 있었을테니 경이로운 발견은 아니었다. 음절의 한계가 존재하는 레너드만이 득을 볼 수 있는 꼼수였다.
실제로도 몇 번을 남몰래 연습해보면서 검증한 내용이었다.
그 외에 [미뭉]을 제어하는 천둔검법이나 〈서신류〉는 딱히 진전을 보지 못했다. 마족 상대로는 부적합하고, 흑룡기사들과 어울리면서 쓸 일은 없다보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음?”
그때였다.
거점 전체를 덮어버리는 존재감의 출현에 두 눈썹을 치켜뜬 레너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반신경급 강자. 하지만 그 느낌이 익숙했기에 크게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한 달도 넘게 소식이 없었던 데미안의 기척이었다.
* * *
아니나다를까.
“레너드, 오랜만이다.”
피로감에 찌든 얼굴을 한 백룡기사단장, 데미안이 쓴웃음과 함께 인사했다. 그 스스로도 제 꼴이 엉망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터였다. 다 알면서도 그걸 정돈하거나 할 정도의 여유가 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카르데나스의 진면목을 알게 된 레너드다. 7대 기사단과 그 수장에 해당하는 기사단장들이 얼마나 많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우여곡절이 많으셨나봅니다.”
레너드가 한 말에 실소한 데미안이 맞장구쳤다.
“하, 그렇지. 대신급이 하나 튀어나왔거든. 단장급 세 명이 몰려가서 쓰러트리고 오는 길이야.”
“대신급은 전부 그렇게 강력합니까?”
“약체로 분류되는 놈이라도 두 명은 필요하지. 올림포스의 태양신, [아폴론]이었으니 최소 세 명은 필요했고. 태양마차로 하늘 위를 날아다니면서 〈필중〉의 권능으로 광선을 갈겨대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더라고. 보름을 싸움박질만 계속했다.”
다행스럽게도 기사단장 모두가 크게 다치는 일 없이 토벌을 완수했다고, 데미안은 말했다.
그리고 레너드를 돌아보면서 제 용건까지 밝혔다.
“일정대로라면 내일 데리러올 셈이었는데, 내가 좀 피곤해. 복귀하면 며칠 쓰러져있을 것 같아서 겸사겸사 처리하러왔다. 너한테 직접 전달해야할 이야기도 몇 건 있고.”
그 말에 레너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데미안 단장님이 직접 전해야한다면…설마?”
“응? 아, 아니야. 황금룡하고는 관계없어. 아주 관계가 없진 않은데, 지금으로선 신경 안 써도 돼.”
데미안은 서둘러 그를 안심시키면서 전언을 털어놓았다.
“지난번에 내가 보여준 토벌령은 기억하고 있지? 네가 여기 머무르는 동안에 [키르케]는 토벌되었고, [아이올로스]만 안 잡히고 남아있는 상태다.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제한시간은 있습니까?”
“뭐, 긴급사태도 아니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지.”
근데, 하고 운을 뗀 데미안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룡기사단에서 네 체류기간으로 항의가 들어왔다. 순번에 존재하지 않았던 흑룡기사단에 두 달이나 머물렀으니, 이번과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너무 지체된다고 말이야.”
“아.”
레너드로서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족들과의 전쟁에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지식이 발견되었으니, 그걸 최우선으로 취급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청룡기사단이나 적룡기사단 입장에서는 갑자기 새치기를 당한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데미안 단장님이나 오드리 단장님께 폐가 된 겁니까?”
그의 우려에 키득거린 데미안이 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레이스의 성격대로라면 소소하게 불평불만이나 몇 마디 늘어놓은 셈이지. 심각하진 않아. 그래도 한 번 달래주긴 해야할 것 같아서 꺼낸 말이었다.”
“달래준다니요? 설마 그레이스 단장님을, 저 혼자서?”
“걱정하지 마. 웨이드 영감이나 누님과 달리 퍽 순진하거든. 호기심만 다 채우면 뒤끝이나 앙금도 없이 돌아가버릴걸?”
레너드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7대 기사단의 수장 중에서도 그레이스는 좀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기사단장의 최소자격, 반신경.
그 경지에 도달하려는 과정에서 무인 대부분은 닳고 닳아서 무기질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감정보다 이성이 강하고, 충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단 합리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두 명만 예시로 보더라도 그렇다.
카르데나스 직계의 힘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전통과 의무를 중시해온 웨이드. 방계 출신이지만 웨이드에 버금가는 지위를 확보하고서 명예를 수호해온 오드리.
그들처럼 공(公)과 사(私)를 칼처럼 구분한다는 소리였다.
“그레이스는 좀 달라. 너를 탐냈던 이유도 이 카르데나스의 부흥이나 청룡기사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흥미와 촉을 자극했기 때문일 거다. 다수의 검을 조종한다는 소리에 공감대를 느낀 것 같기도 하고. 칼부림이나 몇 번 어울려주면 순순히 물러나겠지.”
직감과 충동의 검객.
청룡기사단장, 그레이스는 제 특이점이 천성에서 나온 것을 증명하듯이 자유를 형상화한 인간이었다.
거기까지 듣고서 레너드는 옛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만변(萬變)을 기반으로 한, 만검(萬劍)의 주인.’
그의 어검술을 본 사람들이 그녀와 비교하면서 입에 올렸던 표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일원오행검결〉과 공유할 수 있는 특이점이나 깨달음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새 기대감으로 열을 띤 손아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