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6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65)
오드리가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더 지체할 것 없이 [상아숲]으로 복귀했다.
잠깐의 방문이라고 생각했던 일 때문에 몇 달이나 돌아오지 못할 줄이야? 긴장감으로 항상 팽팽하게 당겨져있던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헬게이트]의 영향력으로 잡초 한 포기조차 발견할 수 없었던 협곡지대와 숲의 정경이 대조적이었다.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흑룡기사단의 거점과 후방의 주둔지를 비교했으니 퍽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레너드.”
턱이 삐걱거릴 정도로 크게 하품을 한 데미안이 말했다.
“난 돌아가서 좀 자련다. 그레이스가 방문하려면 시간도 꽤 남았으니, 어디 나가지 말고 몸이나 추스르고 있어. 흑룡기의 노땅들한테 여러모로 시달린 것 같던데.”
“생각보단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타인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있다지만, 네 연령대에선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레너드의 말에 황당해하던 데미안은 곧 실소했다.
스스로 한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가 평범한 소년이었다면, 기사단장 몇 명이 채신머리까지 내팽개치고 줄을 설 이유가 없었다. 전투력이 중급 수준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카스토르]를 토벌하고, 흑룡기사단의 전황을 바꿔버릴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낸 녀석이었다.
“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나중에 보자.”
두 사람의 동행은 거기까지였다.
가벼운 손인사와 함께 멀어져가는 데미안을 보고, 레너드는 그 몸에 누적된 데미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용안으로도 간파하기 힘들 정도로 잘 숨겼지만, 오장육부를 순환하는 기의 흐름이 비틀려있었다. 치명상까진 아니라도 큰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태양신 [아폴론], 기사단장 셋이 협공했는데도 중상을 입을 정도로 강한 놈이었던가.’
레너드는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상상해보고서 경탄했다.
‘올림포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더니, 괜히 태양을 상징하는 신격이 위험하다고 한 게 아니었군.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를 제외하면 놈 이상의 신도 없을테니.’
태양은 문명에서 큰 비중을 지닐 수밖에 없는 천체(天體)다. 그걸 상징으로 한 신격은 최소 대신급이었으며, 몇몇 신족의 경우에는 주신급으로 대접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창세신이자 태양신의 지위를 가진 [라(Ra)].
광명신이자 태양신의 지위를 가진 [수리야(Surya)].
정법신이자 태양신의 지위를 가진 [샤마쉬(Shamash)].
그 이외에도 수많은 예시가 존재해왔다. 번개와 마찬가지로 소유자를 더욱 강대하게 만드는 속성이 바로 태양이었다.
‘…생각해보면 삼족오도 태양에 속한 신수였지. 〈남신류〉에 참고하거나 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카르데나스가 허신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지만, 그 힘을 파헤치거나 모방하는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무(武)의 근본은 기본적으로 흉내내는 것에서 나왔으니까.
소림사의 기초무공 중 하나, 소림오권(少林五拳)도 짐승들과 깊이 연관된 동작으로 구성되어있다. 약자로 태어났기에 힘을 갈구하여, 강자의 움직임에서 배우고자 한 것이다.
“앗, 레너드다!”
그런데 그가 더 고찰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카스토르]의 토벌에 동행했던 백룡기사, 자네트였다.장미처럼 붉게 핀 머리카락이 발걸음의 리듬에 맞춰서 짧게 찰랑거렸다. 여전히 그 허리춤에는 두 자루의 검이 달려있고, 부상이라도 입은 것인지 왼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자네트 경, 오랜만입니다.”
“내가 할 말이야! 흑룡기사단에 차출되었단 말은 들었지만, 몇 달씩이나 붙들려있을 줄은 몰랐어.”
“저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습니다.”
마족에게 항마 계열의 무공이 통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거점수비에 참전하게 된 것도 모자라서 흑룡기사단에 무공을 가르쳐주는 교관 노릇까지 하게 되다니.
결과적으로 잘 풀린 일밖에 없었으나, 두 달 전의 레너드가 알았더라면 살짝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자네트도 그 심정을 알아봤는지 더 추궁하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우리들이 [키르케]를 토벌했다는 말은 들었어? 단장님이 알려주겠다고 하긴 했는데.”
“그건 들었습니다. 3번대가 토벌한 거였군요.”
“[키르케]가 잡혔다는 말만 전하셨나보네. 하여간 단장님은 너무 건성이라니까? 중요도가 높은 사안에만 좀 집중하고, 그 이외에는 대충 넘겨버린단 말이야.”
“확실히 그런 분이시지요.”
그 말에 동감한 레너드가 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드리가 바늘 하나 안 들어가는 원칙주의자라면, 데미안은 한 가지만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목표주의자였다.
잡어나 치어는 다 보내주고, 대어만 철저하게 휘감아버리는 방식이었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요령 좋은 놈으로 보이겠지만,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그 자질구레한 일들을 감당해야했다.
유능하지만 좋은 상사라고 할 만한 유형은 아니었다.
“이 부상도 [키르케]한테 당한 거야. [폴룩스]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지만, 독이나 소환수를 계속 뿌려대니까 크고 작은 부상을 감수해야할 수밖에 없더라구.”
“괜찮으십니까?”
“상처에 침투해버린 저주 때문에 한 달은 절름발이 신세야. 휴고나 그레디, 아이작 단주님도 다 비슷비슷하고.”
하급 수준의 허신이라도 그 위험성과 의외성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초월경에서 분명 상위권에 들어갈 백룡기사들이 모두 중경상에 시달리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카르데나스에 쌓여있는 노하우와 위클라인의 협력이 아니면 [키르케]를 토벌하고도 그 독을 해독하지 못해서 죽는 사람도 나올 수 있었다.
백룡기사단에서 [키르케]와 관련된 책을 본 적이 있었기에, 레너드의 추측은 이미 기정사실에 가까웠다.
‘치정관계의 질투 따위로 상대방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거나, 심심풀이로 사람을 돼지 같은 가축으로 변신시키는 악녀였지. 정정당당하게 패배했다고 순순히 사라져줄 것 같지도 않군.’
허신이라고 해서 다 오만하거나 잔인한 것은 아니다.
[티르]처럼 제 존재가 용납되지 못하는 시대를 받아들이고, [폴룩스]처럼 무인답게 결투를 받아들이는 허신도 존재한다.그러나 인간군상이 선과 악으로 전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듯이, 신들도 그러했다. 일관적으로 선한 신도, 악한 신도 있으면서 두 부류에 속하지 않는 신도 있었다. [키르케]는 그 중립지대에서 악에 가까운 신격이었다.
“영구적으로 후유증이 남는 저주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레너드의 용안이 그 왼다리에 남아있는 저주를 읽고, 한 달 정도면 깔끔하게 사라질 것을 알아보았다.
옛 시대에 실존했던 [키르케]라면 모를까, 파편만 남아버린 허신 상태에선 그렇게까지 오래 지속되는 저주를 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네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배시시 미소지었다.
“아직 일선에선 은퇴하기엔 너무 이르지. 50년은 더 구르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볼 거야.”
소박하기까지 한 말이었지만, 레너드는 알고 있었다.
카르데나스 7대 기사단에서 무사히 50년을 살아남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족, 마족, 허신과 같은 존재를 일상적으로 상대해야하는 입장이다. 한 번의 실수가 죽음이나 그에 준하는 상태로 직결된다. 부귀영화를 당연시할 초월경의 강자가 무슨 파리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기사단장조차 별 차이가 없는 처지였다. 반신경에 도달하면 최소 300년의 수명이 보장되는데, 최연장자 취급을 받고 있는 웨이드마저도 아직 200살이 안 되었다.
‘그 이상의 연장자가 모두 전사했다는 뜻이겠지.’
아르카디아 제국의 영광만을 보고 있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알아차릴 수 없으리라. 카르데나스의 명예를 질투했던 왕국의 결사대처럼 어리석은 짓거리만 계속 반복하리라.
그들이 자각하지도 못하고 누려온 태평성대가, 누구의 피와 희생으로 지켜져왔는지도 알지 못하고.
“레너드.”
자네트가 그를 불렀다.
“이제 막 복귀했으면 숙소에 가보지도 못했겠네?”
“그렇습니다만.”
“[폴룩스]의 무쇠손으로 만들어진 검이 엊그제 도착했거든. 네 숙소에 보내뒀으니까, 돌아간다면 바로 확인해봐.”
“아.”
레너드는 몇 달이나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허신 [폴룩스]의 권능이 내재되어있는 무쇠손을 전리품으로 획득해, 제하이어에 의뢰했던 기억이었다.
두 달이나 경과했으니 완성품이 돌아올 만도 했다.
“알겠습니다. 이 다음에 남아있는 [아이올로스]의 토벌령은, 3번대가 만전이 된 후에 계획해보지요.”
“응, 나도 그렇게 전달해둘게.”
자네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왼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져갔다. 초월경의 무인이다보니 다리 한 짝을 놀리지 못하는 상태로도 잘만 움직였다.
그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전송한 레너드가 몸을 돌렸다.
귀물(貴物)에 연연하던 시절은 지나쳤다고 생각했지만, 신의 파편으로 단조해낸 검에 흥미가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하다. 검객으로서의 욕망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몸뚱이의 혈기를 몇 배 가열차게 부채질했다.
[상아숲]에서 [검의 숲] 외곽지대에 위치한 숙소까지, 불과 10여분으로 주파한 레너드가 문을 열어젖혔다.‘먼지가 쌓여있지 않다. 마법적으로 유지된 건가, 아니면 내 부재기간에 관리해준 사람이 있는 건가.’
사유물을 거의 놓아두지 않은 레너드다보니, 어느 쪽이든지 그렇게 신경쓰이는 상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시선을 사로잡는 물건이 있었으니까.
“…이건가.”
재질을 알 수 없는 가죽으로 감싸여있는, 길쭉한 물건을 본 레너드가 조심스럽게 그걸 집어들었다.
익숙하다못해 그 본능에 각인된 존재감이 휘감겨온다.
검객이라면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도검의 무게였다.
촤르륵.
포장지가 된 가죽을 벗겨내고서 내용물을 꺼내자, 예술적인 가치를 부정하기 어려운 검집이 바로 드러났다.
비늘처럼 얇게 새겨져있는 문양은,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될 수준이 아니었다. 레너드가 직접 검극으로 새겨넣는다고 해도 재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있었다.
장인종족으로 알려져있는 드워프(Dwarf).
그들의 선조나 다름없는 드베르그의 혈통을 계승해온 가문, 제하이어의 솜씨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심미안을 지닌 상인이 목도한다면 두 눈을 까뒤집고 실신하겠지.
‘검집만 내다팔아도 금화 만 개는 받아낼 수 있겠는데.’
하지만 검집 이상으로,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값어치를 보유한 것은 그 내용물이었다.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면서 검 자루를 끌어당겼다.
키잉.
소리마저 잘라낼 것 같은 예리함이 검집 안에서부터 서서히 뽑혀나왔다. [폴룩스]의 권능이 깃들었더라도 그 본질은 무쇠, 거무튀튀한 칼날이 잘 닦아놓은 거울처럼 빛을 튕겨내면서 제 검극까지 유려한 자태를 선보였다.
이건 명검(名劍)이나 보검(寶劍)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상고시대에 존재했던 대장장이의 비조, 구야자가 만든 검과 비교하더라도 더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무림에 존재했다면 그 주변이 피로 물들었겠구나.”
기진이보(奇珍異寶)에 눈이 돌아가는 인간은 얼마든지 있다. 상승경지에 다다른 고수부터 시작해서 재력과 권력이 풍부한 권세가들까지. 진위여부도 분명하지 않은 초천검이 한 차례의 풍파를 불러일으켰을 때도 그랬다.
결국 모조품이라는 게 들통나서 모두가 허탕쳤지만, 들통이 나기 전까지 죽어나간 사람만 세 자릿수였으니까.
웅웅웅웅!
소량의 기를 주입했을 뿐인데도 그 칼날에 어슴푸레한 빛이 맺힌다. 이쪽 세상에서 말하는 오러전도율, 기의 효율이 아주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카르데나스에서 보급품으로 제공한, 미스릴 합검으로 된 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오러의 전도율이 너무 높으면 검 자체가 무르기 마련이었는데, [폴룩스]의 권능 덕분인지 무리한 기의 운용을 시도해봐도 손상이나 변형이 일어나지 않았다.
반신경의 격을 동원하지 않으면, 레너드라도 이 검을 직접 구부리거나 부러트리진 못할 터였다.
“문자 그대로 신검(神劍)이로군.”
허공을 한 번 내리그어본 레너드가 짙게 미소지었다.
물질화한 권능이 깃들어있는, 신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검은 그 자체로 마법이나 권능을 상쇄시킨다. [미뭉]과 달리 기를 거부하지도 않아서 주무기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했다.
아직 구상만 모호하게 된 〈서신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