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6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67)
“내가 널 보려고 한 이유는 그렇게까지 거창한 게 아니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
그레이스가 말했다.
그러나 레너드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집중해도 제대로 느껴지는 게 없어서 더 부담스럽군.’
직계 특유의 금발금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흐릿하기까지 한 존재감에 묻혀서 잘 부각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제 기척을 숨기거나 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자연체(自然體)에 돌입한다면, 수 읽기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레너드의 속내를 알 리도 없는 그레이스가 계속 말했다.
“〈성혈식〉에서 펜타코어였다며? 나도 그랬거든. 직계인데도 그렇게 판명나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실망했었지. 기사단장이 된 다음에는, 아니 좀 지나니까 그런 태도가 싹 없어졌지만.”
그런가, 하고 레너드는 조금 납득했다.
펜타코어(Penta-Core).
카르데나스 가문의 혈족들이 보유한 특권, 마나코어가 다섯 속성으로 분류된 경우를 말함이었다. 무림과 같이 내공심법을 복잡하게 연구하거나, 사상적인 관점에서 깊게 파고들지 않은 세상에서는 그 숫자가 많을수록 불리해진다.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치는 다섯 개. 그러므로 펜타코어란, 마나코어를 보유한 혈족들 사이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초월경의 문턱을 넘고 난 다음부터는 큰 의미가 없지만···. 그 이전까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무시할 순 없지. 속성력을 특화시키기 쉽다는 점도 장점이겠고.’
일반적으로 재능의 높낮이를 볼 때에, 성장속도를 중시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서른살에 절정고수가 된 무인보다, 스무살에 절정고수가 된 무인의 재능이 특출하리라. 전생에서도 그와 비슷한 평가들을 본 레너드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산법(算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하는 머저리들이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격언이 괜히 존재하겠는가?
상승경지에 빨리 도달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고 익혀야하는 기본기가 존재하며, 경험과 시간으로 숙성해야할 부분이 존재한다. 너무 서둘러서 경지를 높이다보면 그 주춧돌을 모조리 놓치게 된다.
물론 오성이 뛰어나서 나쁠 건 없었다. 한 번 듣고 열 개를 안다면, 남아도는 시간에 더 많은 수련이 가능할테니까.
‘하지만 누가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지는, 성장속도만 놓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무살에 절정고수가 되었다고 그 다음 경지에 빨리 입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든살이 될 때까지 초절정으로 도약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상승경지에서 진보한다는 것은, 그 노력과 재능과 운이 올바르게 작용할 때만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재능이 너무 부족하다면, 운이 나쁘다면 절대로 불가능했다.
성장속도는 그 시행착오를 바로잡을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시행착오를 찾거나 바로잡는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초인과 범인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펜타코어가 제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레너드가 말했다.
그 내용에 그레이스의 두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한 갈래의 길로 나아간다면 더 빠르게, 더 멀리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다섯 갈래로 나아간다면, 한 갈래 길로 달려가버린 사람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그 길이 끊어지는 날도 오는데, 하나의 길로 나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오래 헤매기 마련입니다.”
수많은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이 어릴 적에만 번뜩이고, 수십 년 후에는 평범해지던 이유와도 같았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한 게 아니라, 가문에서 준 무공 비급과 영약으로 성장한 자들이었기에. 누군가의 가르침이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지부터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제자리에 앉아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극소수는 그 환경에서도 자신을 올바르게 관조하며, 범재를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성장하겠지만 말이다.
“와! 16살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명언이네.”
그레이스는 감탄의 색을 숨기지도 않고 말했다.
“벌써 초월경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것도 모자라, 그 성취가 서두르거나 한 것도 아니라니? 오드리 언니까지 나서서 탐낼 만하구나. 내가 걱정할 만한 부분도 없어보이고.”
“걱정이라니요?”
“네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편이라,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거든. 뭐, 괜한 걱정이었지만.”
성장속도가 느리기로 유명한 펜타코어가 16살에 초월경까지 올랐으니, 그녀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설마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성장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레너드는 알게 모르게 쓴웃음을 삼킨 채, 그레이스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그 자신도 제3자였다면 그녀와 비슷하게 생각했을테니까.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단장님.”
본의 아니게 헛손질을 한 그레이스가 옆머리를 꼬았다.
“생각하고 온 말들이 전부 쓸모없어졌네···. 아직 두 시간은 남았는데, 이야기라도 좀 할까?”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레너드의 수련을 구경하면서 이래저래 느낀 점이 많았다.
다섯 자루의 검을 유기적으로 조율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검 전부가 다른 속성력으로 뒤덮이는 것. 펜타코어로서 타고나게 된 속성 전부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모습은, 그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레이스는 먼저 제 오른손의 검지를 치켜세웠다.
“이렇게 한 거였던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오오오오오.
연무장을 스쳐지나가던 바람 몇 줄기가 갑자기 검 형상으로 뭉쳐지면서 다섯 자루를 형성했다. 순백색으로 빛나는 검광이 다섯 개 늘어서면서 주변의 바람을 잠재운다.
본래대로라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할 자연기(自然氣), 그걸 실체화한 것도 모자라서 밀도와 격이 터무니없다.
레너드의 두 눈이 곧바로 휘둥그레졌다.
‘강기(?氣)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힘이라고···!?’
초월경에 다다랐다면 자연의 기를 통제하는 것은 간단하나, 강기처럼 압축된 형태로 만들어내긴 어려웠다.
비효율적인 것은 물론이고, 체내를 경유해서 강기를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수십 배 느리기 때문이었다.
“호잇.”
그레이스가 제 검지를 휘두르자, 다섯 자루의 풍검(風劍)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면서 검진을 모방했다.
오륜검진(五輪劍陳)이었다.
아무래도 레너드의 수련을 지켜보면서 그 움직임의 법칙을 간파한 모양이었는데, 핵심원리를 모르고 쓴 것이다보니 몇몇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아하, 바람만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순식간에 제 문제점을 파악한 그레이스가 검지를 흔들었다.
그 직후였다.
레너드가 진정으로 경악하게 된 것은, 말이다.
키이잉.
네 자루의 풍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그 몸이 타오르면서 화검(火劍)으로.
하나는 그 몸이 젖어들면서 수검(水劍)으로.
하나는 그 주변 모래를 끌어모으면서 토검(土劍)으로.
마지막으로 변화하게 된 하나는.
“···그건, 뭡니까?”
청록색의 검광을 본 레너드가 놀란 얼굴로 질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행에서 그 자리를 차지해야할 원소는 금(金)이었는데, 저 검광이 뿌려대는 힘은 절대로 금속성이 아니었다. 그레이스가 지닌 이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오행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거? 에테르(Eter)의 검이야.”
그레이스는 별 거 아니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마법이론 중에 고대원소(Classical Elements)라는 게 몇 개 있거든? 그중에서 오대원소에 속하는 기운이지.”
그녀의 말대로라면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에테르’를 포함한 개념이었는데, 그걸 상세하게 듣고 난 레너드는 크게 놀랐다.
오행 이상으로 오륜검진에 적합한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영검(靈劍)이나 공검(空劍).
레너드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 치환하자면, 에테르는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속성이었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상세를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말.
‘그레이스 단장님의 펜타코어는 나랑 좀 다르다는 거군.’
오행과 오대원소.
다섯 요소에서 무려 네 가지가 동일했지만, 한 가지가 다른 것만으로도 같다고 할 수 없게 된다. 대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려고 한 개념인 것도 같았지만, 그 접근방식이 너무 달랐다.
이 다음부터는 말로 이해시킬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레너드도, 그레이스도 그걸 잘 알았다.
“남는 시간에 티타임이나 좀 가져볼까 생각했는데.”
검지를 흔들어서 다섯 자루의 검을 흩어버리며, 그레이스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애라면 역시 칼싸움이 더 좋을까?”
“부탁드립니다.”
레너드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자연과 일체화한 경지에 다다라있는 강자.
그 내면의 이치마저도 오행과 유사점이 많은 오대원소라면, 그녀로부터 배워야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였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잡담으로 낭비할 순 없었다.
그의 호승심과 기대감을 마주한 그레이스가 미소지었다.
“사양하지도 않는구나. 마음에 들어.”
나머지 단장들과 달리 자유롭기만 한 천성의 소유자다보니, 기사단장이 된 다음에 경원시되는 게 조금 불편했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레너드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렸다.
연무장의 맞은편으로 이동해서 서로를 마주보자, 여전히 그 기색이 흐릿하기만 한 그레이스와 반대로 레너드는 당장 터질 것처럼 부글거리는 상태였다.
그리고.
“시작할까?”
그레이스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레너드가 움직였다.
피이이잇?!
한 줄기 벼락처럼 앞으로 달려나간다.
동급이나 한 수 위의 적이라면 모를까, 압도적인 강자를 상대한다면 수세의 이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수세로 몰려버리면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도 못한다. 처음부터 결사의 기세로 파고들어야했다.
일원오행검결(一元五行劍訣)
오상류(五象流)
청룡(靑龍)의 기(技)
그의 허리춤에서 뿜어져나온 검광이 한 줄기 번개로 변해서 내달렸다. 특이점을 동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속의 검격이 그레이스의 목을 노린다.
소리는 이미 잘려나간 지 오래다.
눈앞에서 들이닥치는 검광에 맞서, 그레이스는.
“에잇.”
검진을 모방했을 때처럼 손가락만 한 개 치켜세웠다.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땅이 치솟으면서 〈청룡의 기〉를 가로막아, 그 예리함으로도 다 뚫지 못하고 튕겨나왔다.
레너드는 수백 배 가속된 체감시간으로 그레이스가 동원한 방어수단을 관찰했다. 벽처럼 보이지만 크기가 너무 크다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고, 형상 자체는 검과 유사하다.
백룡기사 휴고가 사용하던 그레이트소드보다 몇 배나 크고, 넓게 펼쳐진 토검(土劍)이었다.
‘단단하다. 청룡식으로 벨 만한 수준이 아니야.’
그 인지와 함께 검식을 고속으로 전환시킨다.
청색에서 백색으로 변화한 강기가, 호랑이의 울음소리 같은 검명을 토해내면서 솟구쳤다.
파괴력 하나만큼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초식.
오상류(五象流)
백호십육식(白虎十六式)
파천강마(破天降魔)
그레이스의 반격을 도외시한 검격이 땅의 검을 때려부순다.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난 검신이 흙더미로 돌아가고, 그 뒤에 서있던 그레이스와 눈을 마주쳤다.
위기감은커녕 흥미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
그녀의 태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분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 수세로 일관할 수 있는지 볼까.’
그레이스가 그의 실력을 보고 싶어하듯이, 레너드도 청룡기 단장의 진면목을 보고 싶었다.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
그걸 알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무인의 천성이 드러난다.
오상류(五象流) 사검(四劍)
손아귀에 쥔 검을 제외한, 네 자루의 검이 일제히 떠올라서 청색 강기를 휘감고 으르렁거린다.
오상류에서 최대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강기공이다.
청룡삼십육식(靑龍三十六式)
용왕출두(龍王出頭)
레너드가 제 검극으로 그레이스를 가리키자, 네 개의 검이 구현해낸 청룡이 포효하면서 돌진했다.
아틀란티스에서 콘라트를 태워죽일 때와는 격이 다르다.
주인의 성장에 발맞춰서 오의의 파괴력도 급상승했다.
반신경이라도 맨몸으로 받으면 뼈마디까지 타들어갈 위력.
“오? 드래곤치고는 신기하게 생겼네.”
하지만 그레이스는 그 강기공의 형태를 더 흥미로워하면서, 이번엔 두 개의 손가락을 가위질하듯이 교차했다.
별 것도 아닌 동작이었으나 결과물은 어마어마했다.
콰아아아아아아??!!
아무 전조도 없이 바람이 뭉쳐지면서 위아래로 늘어선 이빨 형상을 만들어낸다.
거대괴수의 아가리처럼 보이는 형태였다.
졸지에 그 아가리에 뛰어든 청룡이 주춤거리는 순간.
콰아아아앙!
바람괴수의 아가리가 세차게 닫히면서, 〈용왕출두〉가 품은 강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려버렸다.
그걸 본 레너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순히 기술이 무력화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사라기보다 마법사에 더 가까운, 그레이스의 능력이 무슨 원리로 움직였는지 간파했던 탓이다.
‘만변을 기반으로 한 만검이라···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표현 한 번 정확하구나.’
레너드는 그 위용에 감탄하면서도 이내 확신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로군.’
그레이스가 보여주는 길은,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