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6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68)
사실 반면교사라고 할 정도로 부정적인 뜻은 아니었다.
일원화(一元化)의 방법론 자체가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다른 탓에, 레너드 입장에선 긍정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오행과 오대원소의 차이점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레너드가 설령 반신경에 다다르더라도, 그레이스와 같이 제 손발처럼 자연을 다룰 순 없었다. 〈일원오행신공〉이 지향하는 목표를 너무나도 크게 벗어나버린 경지였다.
‘오대원소라고 지칭하기는 했지만, 틀이 완전히 무너져있군. 일원이 아니라 혼원(混元)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어.’
자연계의 다섯 요소로 구성되어있는 개념, 오행은 분리되지 않는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모아놓는다고 오행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오행은 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상생, 상극의 순환작용까지 포함하기 때문이었다.
하나이면서 다섯, 다섯이면서 하나.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그레이스의 말에 경악했던 이유도 그 본질을 알아차렸던 탓이었다.
“그레이스 단장님.”
“응?”
레너드의 말에 반응한 그레이스가 제 눈을 깜빡거렸다.
두 손가락으로 〈용왕출두〉를 무력화해버린 절대강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단장님께서는 이미 다섯을 하나로 만드셨군요.”
“……그걸 알아봤다고?”
이번에야말로 그레이스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반신경에 다다른 자가 초월경의 성취를 알아보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초월경에 불과한 자가 반신경의 경지, 그 본질을 알아보았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위업이었다.
펜타코어를 타고나서 다섯 속성을 다 통합해, 싱글코어처럼 융합시키는 것으로 벽을 뛰어넘은 게 그녀였으니까.
자연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대단한데. 너와 똑같은 용안소유자, 데미안도 그 정도로 다 알아차리진 못했거든? 이건 진짜로 좀 놀랐어.”
그레이스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던 장난기가 빠졌다.
왜 황금룡기사단을 경계하는지, 다른 기사단장들의 태도를 조금 이해하게 된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반신경에 오르는 것도 얼마 안 걸리겠는데…?”
스무살도 안 되어서 초월경을 돌파했던 것도 제법이었지만, 반신경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1,000년을 수련해도 안 될 놈은 안 되고, 10년만 수련해도 될 놈은 된다. 그것을 알아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나, 누가 보더라도 레너드라면 될 놈이었다.
반신경을 넘어서 신화경까지 넘볼 수 있는 인재라면 고루한 비원 따위에 연연해야할 필요성이 없다.
‘아무래도 내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있는 것 같네.’
다른 사람을 포섭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데미안이, 그 여론의 무게감을 늘리는 것은 웨이드와 오드리가 맡으면 딱히 거들어야할 부분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레이스가 이 인선에서 담당할 만한 일이라면, 펜타코어의 길을 앞서간 선배로서 그를 가르쳐주는 것 정도였다.
“네 말대로야. 나는 오대원소를 통합해서 하나로 만들고, 그 하나를 완벽하게 다스리는 것으로 반신경에 도달했어. 자연의 힘을 마음대로 다루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고.”
하지만, 하고 운을 뗀 그레이스가 설명했다.
“너는 내 방식을 따라오려는 게 아니지? 다섯 자루의 검을 고수한다는 건, 다섯을 통합해서 하나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체제를 유지하면서 격만 높이겠다는 뜻이니까.”
“정확합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길을 가는구나.”
오대원소의 체현자가 된 그레이스는, 그 누구보다 레너드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섯 요소를 무너트리고 뒤섞어서 하나로 만드는 작업 또한 난해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균형을 유지하면서 다음 경지까지 올라서는 일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거미줄보다 얇은 실 위에서 폭풍우를 견뎌내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가 될 터였다.
‘그럼에도 그 길의 종착점까지 나아갈 수만 있다면….’
레너드는 정말로 신의 경지를 넘볼 수 있는 영역에 닿는다. 반신경에 도달하자마자 제 한계를 깨달아버린 그레이스였기에 직감한 사실이었다.
펜타코어를 통합하고 자연과 일체화해버린 순간, 그 경지는 반신에서 멈춰버린다. 자연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신화경에 다다르려면 세계의 내외(內外)를 통찰하는 경지를 넘어서야했다.
자연계에 귀속되어버린 그레이스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더 진지하게 어울려줄게.”
스스로의 성취를 후회하거나 돌이키고 싶진 않았지만, 재능 있는 후배가 아무것도 모르고 멈춰버리길 원하지도 않는다.
시행착오를 보여주자.
그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산중턱에서 멈추게 된 족적을 보여주자. 이 가문에서 오직 그녀만이 줄 수 있는 가르침이었다.
자연검(Nature Blade)
자연의 검도, 검의 자연도 아니다.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진 경지였으니까.
“이건!?”
레너드는 전율해야했다.
그레이스의 몸 주변에서 나타난 검의 숫자가, 무려 천 개를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한 자루 한 자루가 어검강(御劍?)이나 다름없는 위력인데, 저 물량이 한꺼번에 작렬한다면 문자 그대로 산이 날아간다.
이전에 데미안과 한 이야기가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7대 기사단은 기본적으로 타 종족과 전쟁하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니까, 그 총대장에 해당하는 기사단장은 제 특이점의 상성에 따라서 부임명령이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불사성을 지니는 허신은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봉인할 수가 있어야하고, 재생력이 뛰어난 마족은 또 재생력을 압도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비행능력을 기본으로 탑재한 천족들을 상대해야할 청룡기사단장의 특이점은 어떤 종류일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광범위의 화력…!’
힘의 밀도라면 뭐든지 소멸시키는 오드리가 더 뛰어나지만, 절대적인 규모에 있어서 그레이스를 뛰어넘진 못한다.
순간화력은 웨이드가 더 높을 수 있어도, 광범위 화력을 몇 번이고 연사할 수 있는 그레이스의 효율이 압도적이었다.
허신들처럼 머릿수가 적지도 않고, 마족들처럼 통로가 좁지 않은데도 천족들이 기어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지상으로 강림하고자 할 때마다 일방적인 구도로 몰살당했으니까.
“참고로 설명해두자면.”
그레이스가 말했다.
“내 특이점은 효율이 좋아. 지금처럼 공격하더라도 몇 초로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소모량에 불과하지. 오드리 언니처럼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두르거나, 데미안처럼 힘의 방향성에 간섭할 수 있다면 효과적이지 못한 수법이지만.”
“격하(格下)의 상대라면 몇 명이든지 상관없겠군요.”
“초월경이 만 명 몰려오더라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전멸시킬 수 있지.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묶여있는 힘이라는 게 아쉬운 부분이야.”
압도적인 화력은 그 자체로 상성관계를 무시한다.
만약 그레이스의 특이점이 이 세상을 벗어나서 천계와 마계 등에서도 기능했다면, 반신급 이상의 몇몇을 제외한 잡졸들은 남김없이 쓸려나갔으리라.
그녀의 무진장한 힘은 아쉽게도 이 중간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는 특권이었다.
“힘 조절은 신경써서 해주겠지만, 크게 다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진 못해. 그래도 상관없어?”
레너드가 그 말에 물러나거나 할 리도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제가 포기하거나 의식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멈추지도 말아주십시오.”
“운이 나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반신경에 도달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무덤덤하기까지 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은, 만용이 아니라 각오하고 있는 자의 담력이었다.
그걸 알아본 그레이스는 더 말하지 않고 물러섰다.
이제부터는 입이 아니라 검으로 이야기할 차례였다.
‘?온다.’
미래예지에 가까워진 육감의 경고와 함께 온 사방을 뒤덮은 검의 소나기가 쏟아져내렸다.
도산검림(刀山劍林).
레너드 한 명을 겨냥하기엔 너무나도 큰 힘의 물결이었다.
* * *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일방적인 비무는 제한시간에 걸리는 것으로 끝을 맞이했다. 청룡기사단장의 일정은 타 기사단보다 널널한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만 하루를 레너드에게 쓸 만큼 여유롭진 않았다.
레너드가 제 의식을 잃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무사무탈하게 끝난 것도 아니었다.
“쿨럭!”
몇 모금의 피를 토해낸 레너드가 간신히 몸을 바로잡았다.
가벼운 내상이 아니었다.
드래곤에 가까워진 몸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실신하거나, 몇 달을 정양해야할 수준의 데미지를 받았다.
“가르침, 에, 감사드립, 니다.”
목구멍까지 넘어온 피를 가까스로 삼켜가면서 그레이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비무에서 그가 얻어낸 깨달음은 몇 년치의 수련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레너드와 다른 방향성으로 나아간 도달점이라도, 닮은 점이 많다보니 참고할 만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야말로 널 가르치면서 깨달은 점이 많았어. 내가 그렇게 몰아붙였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다니, 굉장하구나.”
그레이스는 진심으로 그의 투지와 무위에 감탄했다.
재능 있는 후배가 아니라 한 명의 무인으로서 대우받아야할 상대라고 느낀 것이다. 검진(劍陳)이나 속성력의 응용기술에도 몇 가지 배울 점이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언제일지도 모르는 후일을 기약하게 된 것은.
“네가 반신경에 도달한다면 다시 한 번 붙어보자. 그때라면 내 전력을 보여줄 수 있을테니까.”
레너드의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대답을 받은 그레이스가 씩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그녀가 더 남아있어봤자 레너드가 부상을 추스르는 시간만 늦어지게 될 뿐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올바른 예의겠지.
백룡기사단의 연무장을 벗어난 그레이스가 이내 [상아숲]을 빠져나가려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데미안?”
“오냐.”
두 명의 기사단장이 갑작스레 조우한 순간이었다.
인사치레를 할 사이도 아니다보니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어때? 내가 한 말이 이해가 좀 됐냐?”
주어고 목적어고 다 생략된 말이었으나, 그레이스는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서 대답했다.
“어, 그럴 만하더라. 황금룡 따위에 넘겨주긴 너무 아까워.”
“웨이드 영감까지 설득한다면 과반수군. 그 양반 안목이면 몰라볼 리도 없으니 거의 확정적인가.”
데미안은 제 계획이 순조롭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레너드 본인도 갈 생각이 없는데다, 네 명의 기사단장이 반대한다면 황금룡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혼잣말을 엿들은 그레이스가 질문했다.
“레너드하고 내가 대련하던 거, 보고 있었어?”
“아니, 막 도착했거든. 마지막에 발생한 충격파가 좀 크던데 어디 잘못되거나 한 건 아니지?”
“내상을 좀 입긴 했는데, 중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야. 몸 자체의 내구력이 높아보이던데? 용안 이외에도 각성한 특질이 몇 개 있나보더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고.”
그녀의 말에 얼버무린 데미안이 화제를 전환했다.
드래곤하트의 정보만큼은 너무 막중하다보니, 완전히 같은 편이 된 다음에나 알려줄 생각이었다.
몇 분간의 이야기로 합의된 결론은 쉽게 일치했다.
“레너드가 다음 경지로 올라설 때까지 잘 숨겨두자.”
“코빈만 우리 편으로 넘어오게 만들 수 있다면 편할 텐데. 그놈은 여러모로 부외자니까 좀 힘드려나.”
영룡기사단의 감찰은 가문 외부에서 주로 활약하고 있지만, 가문 내부에서도 두 눈을 부라리고 있는 상태였다.
혹시라도 적대종족의 첩자나 그 협력자가 카르데나스 내에 침투하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계혈족 몇 명이 첩자로 포섭되었던 사실을 알아낸 것도 영룡기사단의 공로였다.
7대 기사단의 내실까지 감찰하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디까지나 안 하는 것이지 못 하는 게 아니었다.
“뭐, 괜찮을지도.”
데미안의 염려에 피식 웃어버린 그레이스가 말했다.
초월경에서 반신경을 돌파하려면 몇 년, 몇십 년이 걸릴 수 있었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조금 전에 상대해본 경험이 그 예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보여준 기술, 굉장했었지.’
제한시간에 맞춰서 그를 쓰러트리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상처까지 남겨버렸다.
거대한 호랑이의 앞발이 천 자루의 검을 때려부수던 광경은 그녀 입장에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준비하고 찾아와야겠네.”
“음? 뭐를?”
“네가 몰라도 되는 거.”
뜻 모를 혼잣말에 어리둥절한 데미안을 내버려두고, 건물을 빠져나온 그레이스가 제 흥에 취해서 콧노래를 불렀다.
흐흥, 흐흥하고 코끝만 실룩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