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7)
아르카디아 제국을 수호하는 검의 명가, 카르데나스에는 그 무력집행을 담당하는 기사단이 무려 7개나 존재했다.
옛 시대에 존재했다는 드래곤을 그 깃발과 망토에 문장으로 새겨넣은 것이 그들의 고유한 특징이었다.
황금룡기사단.
적룡기사단.
청룡기사단.
흑룡기사단.
백룡기사단.
녹룡기사단.
영룡기사단.
그들 하나하나가 중소 규모의 국가를 단독으로 짓밟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하며, 너무나 크고 광활해진 제국의 안위를 수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무력집단이었다.
당대의 검공만이 부릴 수 있는 황금룡기사단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여섯 기사단의 활동내역은 제국 역사에서 감히 빼놓고 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악마를 쳐죽이질 않나, 몬스터 웨이브를 몰살시키질 않나. 그 활약이 없었더라면 제국은 지금처럼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으리라.
“올해에도 벌써 그들이 올 때가 되었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브루노가 중얼거렸다.
카르데나스에는 그 영광을 대표하는 일곱 기사단 이외에도, 외부적으로 공표되지 않은 기사단이 하나 더 있었다.
유룡기사단(Knights of Infant Dragon).
막 태어난 드래곤의 명칭을 붙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오직 카르데나스의 후예들을 잘 육성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집단이었다.
>성혈식>에 필수적인 약을 공수하며, 훈련생들을 그 자질에 맞게 분류하고서 최적화된 수련과정을 제공한다.
“지난번에는 샐러맨더 나이트의 배너렛(Banneret)이었던가? 이번 기수에는 또 누구를 보낼지 모르겠군.”
직위 자체는 브루노와 큰 차이가 없다지만, 유룡기사단에서 배너렛(상급기사)이 될 정도면 그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한 인물이었다.
상대하기 힘든 성격을 한 자가 파견되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대응이 까다로워진다.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오면 좋으련만.
“흠, 기대를 배신해서 미안하게 됐네. 브루노 경.”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창문을 보고 선 브루노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그를 소름끼치게 했다.
이 간격에서 공격당하면 칼도 못 뽑고 죽는다.
전성기가 한참 지나간 몸으로도 그걸 확신하면서, 브루노는 그 즉시 뒤돌아서면서 발검했다.
키이이이잉—….
푸른 섬광이 번뜩였다.
선명하기까지 한 소드오러(Sword-Aura)가 쏘아져, 그 앞에 선 자를 종잇장처럼 꿰뚫는다.
아니, 꿰뚫었던 것처럼 보였다.
“괜찮군. 검의 수련을 게을리하진 않은 모양이야.”
브루노가 제 목숨을 담은 쾌검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낸 채, 상대방을 칭찬한 중년인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그제서야 그를 알아본 브루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파, 파비안 경!?”
파비안(Fabian).
그 이름으로 불린 남자가 그림자에서 한 걸음 걸어나왔다.
190cm가 넘어가는 거구인데도 옷깃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브루노의 모습에 큭큭 웃음짓던 그는, 그대로 빈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내 얼굴은 알고 있는 듯하군. 자네의 취임식에는 가질 못해서, 한 수 막아내고도 계속 덤비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는데 말이네.”
“…장난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브루노는 안도 반, 긴장 반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설마 기사단장께서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유룡기사단장, 파비안.
7대 기사단과 달리 아이들의 훈련병단에 불과하다지만,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그 실력을 입증해야했다.
그리고 그는 이 자격요건을 달성한 존재였다.
소드마스터(Sword Master).
무림에서 조화경이라고 부르는 경지에 오른 강자였으니까.
“자네의 보고서가 날 부른 거나 다름없다네. 이렇게 극찬만 잔뜩 적어놓은 기수는 거의 처음이었으니. 게다가.”
파비안은 제 품속에서 꺼낸 종이뭉치를 탁자에 올렸다.
이번 기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놓은 문서였다.
“1번, 윌리엄이야 잘 알고 있었지. 그분의 장남이고, 타고난 힘도 특수하고 강력해. 무예를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도 아주 좋았어. 그런데 25번, 레너드라는 아이한테 패배하면서 1번의 자리를 뺏겼다니? 내 눈으로 직접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온 거라네.”
브루노는 그 말에 동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25번이라면 그럴 만하지요.”
“자네가 내 앞에서도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군. 헛걸음을 하게 만들었다면 오랜만에 훈련소의 기강이라도 잡고 가는 건데 말이야.”
“하, 하하하….”
파비안이 한 말에 간신히 입꼬리를 부여잡은 브루노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반응에 또다시 키득거리던 파비안은 그가 직접 가지고 온 물건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그걸 본 브루노의 얼굴이 즉각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올해의 분량입니까?”
“그렇다네. 505명, 한 방울도 넘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계량했지.”
>성혈식>을 진행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물품이다.
그 존재 자체가 가문 내부에서도 1급 기밀에 속하기에, 이 훈련소의 선임교관과 유룡기사단의 배너렛급을 제외하면 가문 내부에서도 고위직에 있는 인물들만이 알고 있었다.
>드래곤 블러드(Dragon Blood)>.
가문 구성원들의 몸 안에 내재되어있는 가능성을 일깨우고, 인간의 몸에 존재해선 안 되는 기관을 만들어내는 비약.
그렇다.
카르데나스의 혈통에는, 용의 피가 흐른다.
* * *
레너드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마나코어(Mana―Core)라….”
아침단련도 생략하고 식사를 한 후에, 아이들을 대강당으로 집합시킨 교관들은 드디어 >성혈식>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카르데나스의 후예들은 그 혈통에 깃들어있는 힘을 일깨워, 마나를 축적하고 증폭시키는 기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
그걸 >마나코어>라고 부르며, 선천적으로 그 개수와 속성이 결정되고 등급 또한 몇 단계로 분류된다는 것.
‘영물들이 몸 안에 지니고 있는 내단과도 닮았군.’
내공심법 중에도 그 경지가 아주 높아지면 체내에 단(丹)을 형성하는 종류가 있었지만, 내공에 막 입문하면서 만들어내는 >성혈식>은 그런 수준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레너드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제까지 1번, 2번, 3번, 4번으로 불렸던 아이들이었다.
>성혈식>의 진행이 훈련번호의 역순이었던 탓이다.
“나는 싱글코어가 틀림없다.”
언제나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한 1번, 윌리엄이었다.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린 2번, 벨리타가 쏘아붙였다.
“꿈도 크네. 싱글코어는 거의 1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수준이라던데.”
“그렇다면 그 하나가 바로 이 몸이겠지.”
“만약에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어쩔건데?”
윌리엄은 그녀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잖느냐. 넌 품위가 부족하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어제의 경험으로 좀 친해졌는가 싶었더니, 여전히 툭탁대는 모습을 본 4번이 삐뚜름하게 웃었다.
“뭐, 코어의 수에 관계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성장속도가 빠르다니까요. 과욕은 금물입니다.”
레너드는 그들이 한 말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마나코어의 숫자는 곧 개개인이 타고난 선천지력의 이치를 의미한다. 하나라면 혼원(混元), 다섯이라면 오행(五行). 다섯 개가 최대라는 것은, 역시 천마가 한 말대로 살아있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한계치가 다섯까지라서 그런 거겠지.’
무학적으로 그 이치를 따져보면, 수가 적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으며 수가 많다고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검제 연무혁은 태극검선보다 열등했을테니까.
하지만 카르데나스 가문에선 그 수가 적으면 좋고, 많으면 좋지 않다고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교관들이 설명한 내용들이 전부 올바르다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나코어는 하나일 때에 그 힘을 10할 발휘하며, 외부에서 공급한 수련자원의 흡수율도 10할이 된다. 그리고 수가 늘면 늘어날수록 그 수에 비례해서 성능이 분할된다고 했지.’
싱글코어의 효율과 비교하면 듀얼코어는 무려 4배의 자원이 필요하며, 트리플코어는 9배, 쿼드코어는 16배다. 최악이라고 전해지는 5개, 펜타코어의 경우에는 25배에 달했다.
그러니 수가 많을수록 열등하다는 인식이 생길 만했다.
‘무엇보다 이 마나코어란 것은, 자연의 기를 정제할 필요도 없이 제 속성의 자연기만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자연의 기 자체가 혼탁해서, 토납과정을 거친 후에도 몇 번 정제하지 않으면 내공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무림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기의 성질을 분류해야할 필요도 없고, 충돌하거나 할 걱정도 없는 단일속성이 유리한 게 당연하다.
펜타코어는 다섯 속성의 기를 받아들여서 그것이 뒤섞이지 않게 분리하고서 통제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싱글코어라면 숨 쉬듯이 힘을 받아들이고 뿜어낼 수 있었으니.
―딜런, 들어오도록.
>성혈식>이 진행되고 있는 방의 문 너머에서 4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훈련생들은 이미 >성혈식>을 마쳤고, 그들의 차례만 남겨두었다는 의미였다.
4번, 딜런이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일어섰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금방 또 만나죠.”
그리고 그가 문 너머로 사라지자, 이제 자신들의 차례가 온 것을 실감한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자신만만하던 1번도 조금 초조한 기색이었다.
레너드와의 싸움에서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지만, 제 힘과 우수함을 계속 증명해온 입장에서 그 평가를 운에 맡겨야하는 >성혈식>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나는.”
세 사람의 눈이 레너드에게 돌아갔다.
그가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마도 펜타코어일 거다.”
“…뭐?”
“무슨 소리냐.”
“레너드?”
영문을 몰라서 두 눈만 깜빡거리는 아이들에게,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 나름대로의 격려를 털어놓았다.
“코어의 수가 뭐 그리 중요한가. 효율이 나쁘면 그 이상의 수련자원을 획득하면 그만 아니냐? 너희들은 그렇게 할 만한 재능도, 실력도 있는 주제에 뭘 두려워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 말에 아이들은 놀란 것처럼 두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평상시의 그들처럼 미소지었다.
헤더나 벨리타보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미소를 띤 윌리엄이 훗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범인들이 정해놓은 구분 따위가 나를 재단할 순 없지. 싱글코어가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벨리타도 좀 굳어있었던 입꼬리가 도로 부드러워졌다.
“뭐, 그러게?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썼다고.”
“레너드가 날 그렇게 믿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내 코어가 몇 개로 나오든지 그 기대에 반드시 부응해보일게!”
두 사람보다 격하게 방방 뛰면서 그 말에 호응하던 헤더는 곧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감정에 솔직하다못해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입이 좀 가벼워졌군.’
몸뚱이가 어려진 탓인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이 아이들이 마음에 든 건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잘 모르는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나머지 두 명도 >성혈식>을 위해서 불려들어갔다.
청력에 집중해봐도 방 안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가문 내부에서도 기밀로 취급되는 의식이니만큼, 외부에서 엿듣는 게 불가능한 구조인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났다.
―레너드, 들어와라.
그를 호명하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굳게 닫혀있는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방 내부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넓었다.
적어도 백 걸음은 나아가야할 거리에서, 탁상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맞는다.
앉아있는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몸집, 위압감을 느끼지 못하는 쪽이 이상할 정도의 존재감, 몸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염(念)의 파동까지.
‘조화경, 아니 마스터인가.’
전생이라면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생사결을 청하고 싶을 정도로 잘 단련되어있는 무인이었다.
그러나 이 방에 존재하는 사람은 레너드였다.
검제 연무혁이 아니다.
몸 안에서 끓어오르려는 호승심을 찍어누르며, 그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에 움츠러드는 일 없이 나아갔다.
“레너드입니다.”
마침내 방의 정중앙에 선 레너드가 말했다.
선임교관 브루노도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늘어서있는 탁상 중 하나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먼저 입을 열 수 있는 건, 누구보다도 높은 지위와 무력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유룡기사단장 파비안.
그의 두 눈동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진동했다.
“…14살이라고? 이게?”
레너드가 이 방에 들어섰을 때부터 눈을 떼지 못하던 그는, 이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붕!
머리 위에서 천천히 내리쳐오는 일검을, 정확하게 반 걸음 물러나서 피해버린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제자리에 서있어야할 아이가 갑자기 뒤로 물러났으니까.
오직 파비안만이 진심으로 경탄하고 있었다.
“그 나이에 보인다는 거냐? 정말로? 오러에 입문하지 못한 상태로, 마음으로 검을 쥘 수 있다는 건가?”
레너드는 내심 쓴웃음을 지어야했다.
전생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제아무리 그가 대단한 천재라도 이 나이에 심검(心劍)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파비안이 한 말에서 틀린 부분은 지적할 수 있었다.
“무(武)는 마음으로 쌓고, 육체로 벼려내는 것. 오러가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방 안이 고요해졌다.
훈련생 나부랭이가 감히 소드마스터에게 가르침을 내리듯이 말할 줄이야?
당장이라도 두 눈을 뒤집은 파비안이 레너드를 두 동강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상이 현실화되는 일은 없었다.
“제자를 가르치면서도 배울 게 있다더니, 오늘 처음으로 본 아이로부터 배우게 될 줄은 몰랐구나!”
파비안은 잠시 두 눈을 내리감고서 레너드가 한 말을 음미하더니, 앉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충동적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약속하지. 네 >성혈식>의 결과가 어떻게 돌아가든, 특급의 대우를 보장하겠다. 이건 유룡기사단장 파비안이 그 서임장을 걸고 한 맹세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 앞에서 레너드만이 담담했다.
“감사합니다.”
그의 >성혈식>이 시작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