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7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71)
[아이올로스]의 신역, 아이올리아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 백룡기사들과 레너드의 얼굴이 굳어졌다.당연하기까지 한 반응이었다.
섬 어디를 둘러봐도 부둣가는커녕 해안가조차 보이지 않아, 상륙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배 위에서 바로 성벽을 공략해야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가시군.”
아이작의 평가에 공감하듯이 레너드가 제 입을 달싹거렸다.
“아무래도 정공법밖에 없어보입니다.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배를 습격했던 [아이올로스]의 특성상, 청동성벽을 넘을 때도 공격해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겠지요. 제 발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함정입니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한다네. 게다가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저 청동성벽은 외적(外敵)과 접촉하면 상대의 힘을 흡수하고 반감시키는 걸로 유명하지. 성벽을 빠르게 넘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지독하게 어려워질게야.”
문자 그대로의 금성철벽(金城鐵壁)이다.
아이올리아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청동성벽에는 성문조차 없었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물론,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바늘구멍도 하나 남겨두지 않은 폐쇄공간.
누가 보기에도 성벽을 기어오르는 방식은 좋지 않아보였다. 요철도 없이 거울처럼 매끄러운 청동성벽을 딛고 싸우긴 매우 힘들어보였고,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빼앗기는 구조물에 제 발로 뛰어들어야할 이유가 없다.
레너드가 말했다.
“공중으로 들어가야겠군요.”
당연하게도 그 결론에 다다르는 것은 필연이었다.
성벽의 방어력은 어디까지나 땅 위로 걸어다니는 자들에게 특화되어있다. 제아무리 높고 튼튼하더라도 새들을 가로막을 수 있는 성벽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작도 그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최선이겠지. 하지만 공중으로 침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라네. 상대방도 그걸 잘 알고 있을테니까.”
[아이올로스]는 바람의 신, 사정거리는 물론이고 공중전에 아주 적합한 권능을 지닌 존재였다.부유마법이나 비행마법으로 어설프게 몸을 띄웠다간 그대로 표적이 될 뿐이었다. 하르피아의 칼바람도 그토록 매서웠는데, [아이올로스] 본연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바람은 그 칼바람과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일 것이 분명했다.
칼란타도 그 말대로라면서 서둘러 맞장구쳤다.
“안 그래도 부유마법과 비행마법은 대기의 흐름을 조종하는 술식인지라 바람 계통으로 분류됩니다. 역이용당할 수도, 아니 그렇게 될 게 틀림없어요.”
“반중력(Reverse Gravity)마법이라면 어떻겠소?”
“청동성벽 주변에서는 마법식 자체가 불안정해집니다. 너무 위험해요. 갑자기 중력이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뒤집혔다가 올바르게 작용했다가 할 겁니다.”
“그런 식이라면 안 되겠군.”
통제할 수 없는 변수라면 결국 도박에 불과하다.
백룡기사 전원이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칼란타와의 검증을 거쳤지만 한 가지도 통과되는 것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회의를 지켜보던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아이올로스]의 토벌은 이게 처음이 아닐텐데요. 전례에선 어떻게 성벽을 넘어갔습니까?”
“군선을 몇 척 동원해서 성벽 너머를 포격하다가, 그 포탄 사이에 토벌대가 섞여들었다네. 바람의 권능이 투사체 방어에 유리하다고 해도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포격을 완벽하게 막을 순 없는 법이니까.”
“…우리가 그걸 따라하긴 힘들겠군요.”
그렇지, 하고 수긍한 아이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상륙할 곳이라도 있었더라면 땅굴을 파서 지하로 들어가는 것 또한 방법이었는데, 상대가 너무 치밀하군. 파편에 불과한 존재라지만 신을 자칭하면서 이렇게 나올 줄이야.”
처음부터 섬 전체가 청동성벽으로 둘러싸였던 것은 아니다. 위클라인에서 이 섬을 발견했을 때의 보고서만 하더라도 해안 언저리가 남아있었다고 했다.
[아이올로스]가 의도적으로 파도를 끌어당겨서 성벽 너머의 지표면을 바다로 만든 게 틀림없었다.레너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 아공간주머니를 풀었다.
스르르릉.
도합 네 자루의 검이 튀어나와서 허공에 정지했다.
이기어검(以氣御劍).
상단전의 의념과 내공을 합일시켜서, 검을 원격으로 다루는 수법이라면 저 성벽도 넘을 수 있었다. 본인이 아니라 타인을 어검비행으로 운송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탑승자 개개인이 초월경급의 무인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백룡기사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우리들을 네 검에 태우고 날아가겠다는 거야?”
“감당할 수 있겠나? 자네 스스로가 올라탈 때를 기준점으로 삼아서는 안 될걸세.”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까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초월경급 무인이라면 발바닥보다 좁고, 불안정한 발판 위에서도 하르피아의 칼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 가능할 터.
어떻게든 청동성벽만 넘어서 땅 위에 내려선다면, 토벌대의 전투력은 그 즉시 원상태로 되돌아온다.
성공가능성은 충분했다.
“뭐, 믿어보는 수밖에 없지.”
“너한테는 목숨도 한 번 빚졌으니까.”
백룡기사들은 전술적인 완성도를 다 떠나서, 레너드에 대한 신뢰로 그 작전을 받아들였다.
3번대 전원이 검 위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레너드도 제 검을 뽑아내고서 검면에 올라섰다. 불안해하는 기색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칼란타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출발하겠습니다.”
다섯 자루의 검에 올라탄 토벌대가 날아올랐다.
어검술에 기반을 둔 편대비행(編隊飛行).
옛 시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장에서 보인 적이 없었던 전술이 실현되었다. 처음에는 약하게 쏜 화살보다 더 완만한 속도였지만, 성벽으로 바로 다가가지 않고 가속하면서 점점 빠르기를 더한다.
화살을 뛰어넘서서 소리에 가까워진 속도는 그 위에 올라탄 자들에게 큰 부담이었으나, 음속돌파의 충격 따위가 초월경급 무인을 떨어트릴 순 없었다.
퍼어어어엉?!
음속을 돌파하는 것과 동시에 청동성벽으로 쏘아지는 검극, 그 위에 탑승한 기사들의 체감속도가 가속했다.
[아이올로스]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들을 들여보내줄 리는 없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요격수단이 존재할 터다. 그걸 돌파하지 못하면 청동성벽을 넘지 못하고 바다로 낙오한다.바다로 떨어진 당사자가 죽진 않겠지만 토벌대의 전력이 큰 폭으로 감소해버리고 만다.
‘이번에야말로…!’
‘선임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앞서 하르피아들의 습격에서 별 활약을 하지 못했던 자들의 자존심이 그 의욕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평상시보다 예리해진 감각이 곧 무언가의 접근을 감지했다.
무형무음(無形無音).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영격이 날아온다.
섬광검(Flash Blade)
레너드의 측면에서 날고 있었던 그레디가 검을 뻗었다.
‘호오? 이전보다 더 예리해졌군.’
그걸 본 레너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사일검법〉의 제1초를 보게 된 덕분인지, 자세부터 검극의 집중도까지 몇 단계 효율적으로 변화했다. 음속으로 날아가는 검 위에 올라탄 상태인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공격이라면 감각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두 눈을 감아버린 그레디의 집중이 한층 더 무아지경에 가까워지고, 일순간에 수십 발의 찌르기를 쏟아냈다.
파파파파파파파팡!!
바람의 화살이었다.
누가 쏜 것인지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상당했는데, 그 화살 끄트머리를 정확히 검극으로 찔러부순 것이다. 찌르기의 힘은 극점(極點)에서 나오는 법이었으나, 그곳을 공략당하면 위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미약한 수준으로 분화한 바람화살에 비해서, 그레디의 검이 담아낸 특이점은 10할 수준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하르피아들도 오는군.”
청동성벽의 뒤쪽에서 날아오르는 괴조가 수십 체.
[인페르노]에서 살아남은 놈들 외에도, 〈신역〉에 남아있던 개체 대부분이 출격한 모양이었다. [아이올로스]의 권속으로 소환된 놈들이라서일까.하르피아들의 움직임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싸울 때보다 더 신속하고 유연했다. 날개에서 쏟아져나온 칼바람의 위력도 서너 배는 높아져있었다.
끼에에에엑!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괴조들이 참풍(斬風)을 쏟아낸다.
레너드의 어검술이 신묘한 움직임으로 공격 대부분을 피해, 십중팔구는 빗겨나갔으나 한두 발은 회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백룡기사의 이름값은 감히 허신도 아닌 봉사종족이 넘볼 만한 게 아니었다. 눈썹 한 올도 까딱하지 않고, 방향을 가리지도 않고 날아든 칼바람을 베어넘긴다.
“이거, 너희들만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해?”
자네트의 입가에서 살의 가득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노래하는 검(Song Blade)
강철의 소나타(Sonata of Steel)
‘관성제어’의 특이점을 반드시 전신으로 동원해야할 필요는 없다. 레너드의 지적으로 그걸 깨닫게 된 자네트는 두 팔만을 이용해서 수십 번의 참격을 만들어냈다.
어깨에서 팔꿈치, 손목에 이르기까지 움직임에 변주를 가할 수 있는 축은 얼마든지 존재했으니까.
검신에 외다리로 선 자네트가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콘치타토(Concitato)
쌍검의 잔상이 넷, 여덟, 열여섯으로 계속 분열하면서 수십 개의 검풍을 쏘아날린다. 그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하르피아 몇 마리가 토막이 나서 추락하고, 가까스로 치명상을 회피한 놈들도 그녀 주변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비슷했다.
어검술의 조종에 전력하고 있는 레너드 하나를 제외한, 네 명의 백룡기사 모두가 안정적으로 방어선을 돌파해간다.
“오.”
마침내 토벌대가 탄 검이 청동성벽을 넘어서고, 그 너머에 숨겨져있던 풍경이 드러났다.
옛 시대에 존재했던 왕국, 아이올리아.
〈신역〉으로 모방한 형태이니만큼 그 원형과 차이점이 적지 않겠지만, 유적으로서의 가치는 상당했다. 위클라인 가문에서 선호한다는 〈신역〉의 조건에 잘 들어맞는다.
‘[카스토르]의 신역과 같은 경우가 최악이라고 했지.’
칼란타의 설명을 떠올려본 레너드가 이내 납득했다.
신이 머물렀다고 해봤자 삼림지대가 결국 숲이지, 인공물이 나타나거나 할 일은 없었다. 허신이 남기고 간 힘의 잔향으로 농작물이 풍성하게 자란다거나 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토벌대는 그렇게 고대 왕국의 유적지를 지나쳐서, 중심지에 솟아나있는 탑 같은 구조물로 향했다.
어느새 하르피아들의 접근이나 공격은 멈춰있었다.
“…아무래도 손님맞이를 할 생각이신가본데.”
“오만인가, 친절인가. 어느 쪽이든지 상관없지만.”
“그 정도를 감당하지 못하면 손님 자격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죠. 아, 그렇다면 오만한 게 맞나?”
백룡기사들을 제각기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으면서,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구조물을 노려보았다.
전투가 멈췄는데도 긴장감이 더 팽팽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르피아를 참새 수준으로 격하시킬 정도의 존재감이, 왕국 중심부의 구조물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신역〉의 핵을 담당하는 허신, [아이올로스]가 내보인 기척이었다.
“탑…? 아니, 왕좌인가!”
놀랍게도 왕국 중심부에 솟아나있던 건물은 탑이 아니라 그 정점부에 좌석이 드러나있는 옥좌(玉座)였다.
그와 동시에 다섯 자루의 검이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아이올로스]와 대면하면서 공중에 머무르는 것은, 불리를 자처하는 실책이었다. 바람의 권능은 지표면에서 멀면 멀수록 더 강해지는 성향이 존재했으니까.―나의 아이올리아에 온 것을 환영하네, 손님들이여.
수십 킬로미터 너머의 해역까지 영향력을 발휘한, 계절풍의 허신 [아이올로스]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올로스]를 훑어본 레너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티르]나 [카스토르]와는 좀 다르군. 무인보다는 군주라고 하는 게 올바르겠어.’
무인이라면 그 수준을 막론하고 몸 주변에 감겨있는 공기의 질이 다르다. ‘피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저도 모르게 상대방의 급소를 살핀다거나, 주변을 경계하는 습관이 보인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아이올로스]에게선 그러한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대들이 온 이유는 알고 있다. 나 자신이 스스로의 파편, 부서지고 남겨진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아이작이 나서서 대답했다.
“흐음, 죽어주겠다는 말처럼 들리지도 않는다만.”
―실존의 즐거움과 허무의 두려움이란 나 같은 불멸자에게도 존재한다네. 처음부터 눈 뜨는 일이 없었다면 모를까, 내 발로 망각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군.
“그렇다면?”
아이작의 추임새에 미소를 띤 [아이올로스]가 말했다.
―나, 아이올로스의 이름과 신격을 걸고 맹세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그저 이 자리에 존재하면서 세상을 관조하는 것, 그걸 용납해준다면 그대들의 요구사항을 다 받아들이겠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제안에 토벌대의 몸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