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7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75)
황금룡기사단에서 온 것이 분명한, 머리카락 한 가닥조차도 갑옷 밖으로 내보이지 않은 기사 중 하나가 걸어나왔다.
눈구멍만 작게 뚫려있는 투구로부터 두 눈동자가 보인다.
금색 눈동자.
머리카락의 색은 알 수 없었지만, 머리보다 눈이 더 희귀한 색이다보니 직계일 가능성이 높다. 레너드는 그렇게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렸다.
‘질투심이라고? 나한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용안에 힘이 들어가, 두 눈동자의 동공이 얇게 갈라지면서 시야를 확장한다. 본래대로라면 볼 수 없어야하는 감정이나 무의식, 갑옷 너머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안쪽까지 선명하게 투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서신류〉의 1식을 구축하면서 얻게 된 성과였다. 레너드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전승이지만, 신수 백호에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갖춰져있다고 했다.
용안과 그 힘이 맞물리면서 격을 높여버린 것이다.
“백룡기사단에 체제하?.”
“음?”
위압감을 조성한 황금기사가 묵직하게 말을 건네려던 순간, 레너드의 입술 사이로 의문성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안으로 본 황금기사의 영육(靈肉)은, 여러모로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꼴이었으니까.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잘게 다져놓고서 반죽으로 형태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나, 하고 두리번거린 레너드의 눈에 들어온 황금기사는 다 그러한 상태였다.
‘설마?’
황금룡기사단에 대한 의문으로 두 눈이 가늘어진 레너드를 향해서, 더 참지 못하게 된 황금기사가 소리쳤다.
“너! 백룡기사단에 체제하고 있는 레너드가 맞겠지!”
“그렇습니다만.”
“난 황금룡기사단의 트레스(Tres)다! 너를 즉시 [용머리]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니나다를까.
황금룡기사단에서 그를 빼돌리고자 온 인원이 틀림없었다.
[용머리]로 복귀하라는 지시에 불복하고, [검의 숲]으로 갈 것까지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한 명 한 명이 결전병기 수준의 전투력을 지닌 황금기사를 4명이나 파견한 것도 그러했다.‘나를 포함한 토벌대의 면면, 칼란타까지 포함해도 세 명을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말이지.’
그런데 전방위를 포위하듯이 그 대형까지 완성한 황금기사 네 명이라니. 이건 7대 기사단을 통틀어서도 단장급이 아니면 돌파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레너드는 그걸 인지하자마자 무력돌파의 선택지를 잊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와서 트레스와 대치했다. 토벌대까지 괜히 끌어들여서 다대다의 구도를 성립시키는 것은 악수(惡手)라고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제 이름으로 내려온 명령서는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고압적인 태도에 위축되기는커녕 한 걸음 다가가서 맞서자, 투구 너머에서 흘러넘치던 감정이 한층 더 진해졌다.
‘정기신의 합일을 이뤘음에도 그 심기가 너무 경박하다. 날 상대로 이렇게까지 악의를 품을 만한 이유가 있다거나?’
레너드의 무기질적인 시선 앞에서, 제 감정을 다 숨기지도 않은 트레스가 거칠게 윽박질렀다.
“뭐라?! 황금룡기사단의 호출에 항명하겠다는 의미인가!”
“규율상의 절차를 조금 더 존중해달라는 겁니다. 제 출두를 원하신다면 황금룡의 단장님께서 도장만 한 번 찍으시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제대로 된 소속도 없이 돌아다니는 놈 따위가! 단장님께서 직접 상대해주시길 바란다는 것이냐!?”
음? 하고 두 눈을 크게 뜬 레너드가 반문했다.
“그렇다면 [용머리]로 저를 불러오라는 명령은, 단장님께서 직접 결재하신 사항이 아니었습니까?”
황금기사 트레스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지만, 상대의 말실수를 놓쳐주거나 할 레너드가 아니었다. 황금룡의 권위를 이용하려고 한 상대에게, 명분의 논파는 치명적이었다.
“죄송하지만 제 신원은 현재 백룡기사단장님의 권한 아래에 있기 때문에, 황금룡기사단에서 절 소환하려면 그쪽의 단장님 권한으로 결재가 떨어져야합니다.”
“시건방진 놈!”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이 제 눈에 거슬렸는지, 트레스의 투구 안에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칼이라도 뽑아들었을 것 같은 기세였다. 트레스처럼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황금기사는 더 없었으나, 그들의 심기도 그리 편해보이진 않았다.
일면식조차 없는 레너드를 싫어하게 될 공통점이라니?
‘사실 짐작되는 게 없진 않다만…떠보긴 힘들겠어.’
문자 그대로 역린(逆鱗)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라는 것이, 그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였다.
레너드가 한 추측이 진실이라면, 황금기사들은 정말로 그를 도륙내고자 할 수도 있었다. 환관에게 정말로 남자 구실을 할 수 없느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래서 상대방의 명분을 크게 논파하는 것으로 물러나게 할 속셈이었는데, 황금기사들은 그럴 마음이 없어보였다.
‘여차하면 힘으로 끌고 가기라도 할 셈인가? 막무가내로군. 뒷감당은 생각도 안 하고 저지르니, 급진파라고 할 만하다.’
공기가 점점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날을 세운다.
이대로라면 황금기사 네 명을 동시에 상대해야했다. 올바른 방식으로 얻게 된 강함은 아니더라도, 반신경급 강자도 쉽게 볼 수 없는 포진이었다. 그걸 정면으로 들이받는 것은 멍청한 짓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레너드는 바로 눈앞에 서있는 황금기사, 트레스의 악감정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제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드시나본데, 명분 따위를 내세우는 것보단 직접 나서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라?”
명백하기까지 한 도발에 트레스는 물론이고, 배후와 좌우를 틀어막고 있던 황금기사들마저 한순간 멍청해졌다.
7대 기사단 중에서도 규격 외로 취급받는, 세계최강의 무력집단이 아직 스무살도 안 된 애송이한테 입으로 떠들지 말고 붙어보자는 소리를 듣게 된 거다.
분노하는 것보다 먼저 헛웃음이 치밀어오를 지경이었다.
“하!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도 이 정도라면 재능이로군.”
도저히 받아넘길 수 없는 말에, 트레스가 제 투구를 내려서 스스로의 얼굴을 내보였다. 황금룡기사단의 대표자가 아니라 한 명의 기사로서 그 제안에 응하겠다는 뜻이었다.
금발금안.
누가 보기에도 직계의 혈통임이 분명한 남자가 레너드의 두 눈동자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 임무는 어디까지나 너를 데려가는 것이다. 죽이거나 큰 부상을 입히지도 말아야겠지. 그래도 너무 안심하진 마라. 네 재능이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내 검이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테니까.”
레너드가 그 경고 아닌 경고에 냉소하면서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는 사양할 것 없이 베겠습니다. 황금룡의 일원이시라면 후배가 손대중하지 않는다고 우는 소리를 낼 걱정은 없을테니까요.”
“감히!”
바로 그 직후였다.
키이이이잉!
레너드와 트레스의 허리춤에서 거의 동시에 섬광이 뿜어져, 중간지점에서 요란하게 맞부딪쳤다. 발검을 기점으로 한 쾌검. 소리를 몇 박자 따돌려버린 검격은 일순간에 열다섯 번 베고 찌르면서 상대의 검권을 돌파하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레너드의 검도, 트레스의 검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초고속의 참격을 십수 번 주고받고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난 검객들이 짧게 심호흡했다.
‘백중세(伯仲勢)인가.’
얄팍하기 그지없었던 인간성과 달리 검술은 심오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검 하나만큼은 천의무봉 수준에 도달해있는 강자, 트레스는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해있었다.
몸풀기 수준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몰아지경에 돌입했던 것이다.
오싹.
유리구슬처럼 투명해진 금안을 본 레너드가 몸을 떨었다.
공포? 아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체내에 흐르고 있는 피가 반응하고 있었다. 카르데나스 혈족 전원이 공유하는 용혈(龍血),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옅게 희석되었던 피가 끓어오른다.
레너드는 그 원인을 밝혀내고자 트레스를 꿰뚫어보았고.
카아아아앙?!
제 눈앞까지 날아온 검을 빗겨내면서 두 걸음 물러섰다.
빠르면서도 무겁다.
용에 가까워진 근골이 다 욱신거렸다. 상대방의 신체능력이 너무 막강했다. ‘근육’의 특질을 각성해낸 휴고보다도 몇 수나 위였다. 신체 관련의 특질을 복합적으로 각성한 존재만이 그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레너드의 용안은 이미 그 이유를 알아낸 지 오래였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황금기사들은 이미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있다.’
무인으로서 경지를 높인 게 아니라, 체내의 용혈을 몇 배나 강력하게 극대화해서 몸을 개조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용안이나 드래곤하트처럼 기관 자체가 초월적인 격을 지닌 것까지 만들어내진 못했으나, 중급 이하로 분류되었던 특질은 전부 각성했다고 봐야겠군.’
하급 특질에 속하는 ‘피’, ‘비늘’, ‘뼈’, ‘근육’ 따위에서부터 중급 특질에 해당하는 ‘폐’, ‘뿔’, ‘날개’까지 체내에 도사리고 있는 게 투시되었다.
한 가지만 각성해도 7대 기사단에서 1인분을 할 수 있다는 용혈각성을 복합으로 달성한 존재. 인간보다 용인(龍人)이라고 호칭하는 쪽이 더 적절한 무력집단.
황금룡기사단의 기사들이 강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콰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혔는데 금속음이 아니라 폭음이 터진다.
레너드의 대응은 완벽했으나, 그 신체능력의 격차에서 나온 손해가 점점 누적되면서 천칭이 기울어져간다.
기본기가 서로 완벽하다면 그 우열이 뒤집히는 일은 없다.
변수를 만들어내려면, 기본기를 벗어난 영역에 돌입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무색투명한 검기가 검게 물들면서 수직으로 떨어져내리는 검을 맞받아쳤다.
오상류(五象流)
현무구식(玄武九式)
완성도가 높아도 기본기는 결국 기본기에 지나지 않는다.
작게 그려진 보름달이 상대의 검극을 뒤틀어버린다.
태월반음경(太月反陰鏡)
세 자릿수의 검합을 주고받으면서 반복작업에 길들여져버린 트레스가 한 발 늦었다. 어긋나려고 하는 검격의 궤도를 바로잡는 사이에,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빈틈이 생겨났다.
그들과 같은 경지에서는 너무나도 큰 허점이었다.
일원오행검결(一元五行劍訣)
오상류(五象流)
결전오의(決戰奧義)
흑색 검강이 오색으로 물들었다가 곧 청색이 된다.
오행을 기반으로 한 벼락의 일섬.
생사결도 아닌 상황에서 쓸 만한 기술이 아니었으나, 수단을 가릴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청룡(靑龍)의 섬(閃)
필사적으로 검을 되돌리는 트레스의 가슴팍에 한 줄기 빛이 내달려, 오른쪽 견갑에서부터 흉갑을 가로지르고 왼쪽 옆구리 부근으로 빠져나왔다.
한 치만 깊었더라면 늑골을 절단하고 폐와 심장을 잘라냈을 검격이, 오리하르콘으로 된 갑옷조차 무처럼 베어버렸다.
쩌억, 하고 벌어진 갑옷이 트레스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아니, 제대로 들어갔어도 몸이 너무 단단해서 치명상까지는 안 되었겠군.’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 검을 내려다보았다.
[폴룩스]의 유해로 만든 검.허신의 권능을 무력화하고, 특이점에도 간섭할 수 있었지만 검의 예리함은 특별할 게 없었다. 차라리 [미뭉]으로 베는 게 치명상이었을 터다.
그러나 생사결도 아닌 상황인데다, 트레스는 그를 상처없이 제압하고자 기본기만 다루고 있는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그를 격살해봤자, 나머지 황금기사들이 제대로 할 명분만 내어주게 된다.
“……네놈.”
제 갑옷의 흉물스러운 상처를 불신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던 트레스가 마침내 눈이 뒤집혔다. 적당히 놀아주면서 실력차를 과시하려던 입장에서 갑자기 똥물을 뒤집어쓴 셈이었다.
시기심이나 적의 따위를 넘어서 살의에 가까워진 증오.
키이이잉.
칼날 위로 보라색 오러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레너드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에서 비롯된 싸움이 다시 한 번 시작되려는데.
“?멈춰라.”
누군가의 진중한 목소리가 두 사람을 멈춰세웠다.
오만불손한 트레스조차 제 살의를 잊어버릴 만큼, 상대방을 위압하는 존재감의 소유자였다.
그쪽을 돌아본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처음부터 이 순간을 목적으로 한 시간벌기였지만, 설마 저 사람이 찾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황금룡기사단의 권한이라도, 이 상황은 선을 넘었군.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그 혓바닥을 놀려보겠나?”
적룡기사단장, 웨이드.
7대 기사단 내부에서도 암묵적인 최강자로 통하는, 반신경 정점에 선 괴물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