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7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77)
“…이건 좀 놀랍군.”
놀람도 잠시, 평정심을 되찾은 웨이드의 얼굴이 평상시처럼 무표정해졌다. 기본적으로 7대 기사단의 수장이라면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인물이기 마련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웨이드는 가장 노회한 축에 들어가있었다.
제 눈앞으로 운석이 떨어지더라도 칼부터 뽑아들지, 놀라서 반응하는 것이 늦어지거나 할 부류가 아닐 터였다.
조금 전과 같은 반응이야말로 이례적인 경우에 속했다.
“데미안이나 오드리가 말해준 것 같진 않다만, 자네 스스로 알아차린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레너드는 그 의문에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용안(龍眼).
카르데나스의 혈족들이 각성하는 특질 중에서도,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고 강력한 눈.
“과연. 용안으로 그들의 결함을 통찰했다는 뜻이로군.”
웨이드는 그걸 단번에 납득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자네와 같은 용안소유자, 데미안도 반신의 격을 이루고 난 다음에서나 가능했던 일인데. 아무래도 눈을 다루는 재능이나 소질이 그 이상이든지, 아니면 반신경에 도달하기 직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나.”
그의 혼잣말에 관심을 드러낸 레너드가 반문했다.
“단장님께선 그중에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후자라고 대답해주고 싶다만, 틀림없이 전자일 터다.”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돌아온 대답이었다.
7대 기사단에서 암묵적인 최강자로 대우받는 존재, 반신경 극한에 도달한 적룡기사단장이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용안의 힘과 편리함은 반신급 강자들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이상은 아니었다. 세계법칙을 제 마음대로 왜곡해버리는 강자들에게 세계의 흐름이나 인과 내부의 필멸자들을 통찰하는 눈은 별 의미가 없었으니까.
“자네 안에 도사리고 있는 힘의 종류는 넷. 그러나 그 틀의 완성에는 다섯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진행도로 따지자면 80퍼센트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경지의 돌파에 있어서 산술 따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모르지도 않을테고.”
정론(正論)이었다.
초월경이니 반신경이니 하는 영역을 떠나서, 어느 분야든지 그 높이를 쌓아갈수록 한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어진다. 1층의 계단 한 칸과 10층의 계단 한 칸은 그 너비와 폭이 같더라도, 본질적으로 까마득한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천자문을 외기 시작한 학동(學童)과 온 세상의 책을 독파한 대학사(大學士)의 깨달음이 동등할 수 없는 이유다.
천재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무공에 막 입문해서 초절정의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소요한 시간보다, 초절정에서 화경으로 넘어가기까지 소요한 시간이 더 길고 혹독한 것은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경우였으니.
다음 경지로 도약하기 전에 지나쳤던 길에서 한 걸음이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벽을 넘어서기 위한 화두를 찾을 수 없었다면 10년이고 100년이고 다 허송세월이 될 수 있었다.
‘뭐, 〈황룡〉은커녕 〈서신류〉도 겨우 입문한 참이었으니.’
그답지 않게 조바심을 낸 것을 자각한 레너드가 술렁거리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빠짐없이 갖춰져야지만 일원화에 도전할 수 있다. 오행에서 넷을 모았던지, 하나를 모았던지 큰 차이가 없다. 정기신의 합일 이상으로 만전을 기해야하니, 그 걸음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레너드의 의념이 잔잔해지는 것을 본 웨이드가 드물게 옅은 미소를 내보이면서 칭찬했다.
“심기를 완전하게 다스릴 줄 아는군. 훌륭하구나.”
그건 심상무예를 구현해야하는 경지, 반신경에 달하기 위한 선결조건 중 하나였다. 자신의 심상으로 세계법칙마저 압도할 필요가 존재하는데, 시답잖은 일에 가볍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가능할 리 없었다.
웨이드는 먼저 제 추론을 늘어놓았다.
“용안소유자라고 해서 그 특질의 발현도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다. 자네가 황금기사의 결함을 알아차린 것은, 데미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힘이 깃들어있기 때문이겠지.”
그 말뜻을 알아차린 레너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래곤하트 말씀이십니까.”
카르데나스의 역대 가주들만이 각성해온 최상위 특질, 그에 수긍하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린 웨이드가 말했다.
“[용혈각성]은 결국 우리들의 시조가 드래곤이기에 그 피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킨 것에 불과하다. 뿔도, 날개도, 눈조차도 원본의 하위호환에 지나지 않아. 그러나 심장, 드래곤하트만은 예외적으로 취급된다.”
일반적으로 심장은 피의 순환을 담당하고, 생명력의 원천과 같은 기관으로 묘사된다. 뇌와 마찬가지로 불사성마저 흠집을 낼 수 있는 급소로서도 기능한다.
하지만 드래곤하트는 그 이상이었다.
드래곤이 초월종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권능이 용언이라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신체기관은 바로 심장이었으니까.
“드래곤하트를 각성하는 것만으로도 몸 전체가 드래곤에 더 가까워지고, 육체의 격을 몇 단계나 상승시키지.”
옛 시대가 종말하고 용들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그 폭거에 필멸자들이 감히 대항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7위계 미만의 마법으로는 비늘조차 흠집낼 수 없고, 강기의 영역에 다다르지 못한 오러는 물안개처럼 흩어져버린다. 존재 자체가 초월적인 격을 보유하기에, 대항하려면 최소 마스터의 경계를 넘어서야했던 것이다.
레너드는 잠시 경청하다가 제 의문점을 해결했다.
“그럼 드래곤하트는 [용혈각성]의 가능성을 모두 일깨울 수 있는 셈이로군요.”
“이론상으로는.”
그 발언을 부정하지 않은 웨이드가 무덤덤하게 답했다.
“활성화 상태로 존재하는 용안이 먼저 드래곤하트의 영향을 받았을테지. 앞서 황금기사들이 자네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나?”
“…말로 형용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인간도 드래곤도 아니게 된 것 같아보였지요.”
“불안정해보였는가?”
“안정성과는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낸 레너드가 몇 마디 덧붙였다.
“황금기사들의 영혼과 육체는 기이하게 뒤틀려있었습니다. 어설프게 뒤섞었다가 다시 떼어낼 수 없게 된, 반죽과도 같은 형상으로서.”
“뒤틀림이라, 아주 정확한 표현이군.”
웨이드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황금룡기사단.
대외적으로 카르데나스의 최강전력으로 알려진, 신비주의적 무력집단의 본질은 여러모로 감춰져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저 전력을 은폐하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가문 내부에서 일어나게 될 소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드디어, 하고 레너드의 귓바퀴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 직후였다.
“지금까지 수백 년을 허비한 황금룡기사단의 숙원은, 시조 카르데나스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 * *
건국제와 세 명의 아내들은 기나긴 싸움의 끝에 드래곤들을 물리치고, 용의 시대를 끝장내면서 아르카디아를 건국했다.
신과 드래곤을 뛰어넘어서 인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건국 직후의 아르카디아는 위태로웠다.
현 시점의 아르카디아처럼 넓은 땅과 막대한 인구수를 갖고 있지도 못했으며, 신흥국의 존재를 못마땅해한 주변국들이 그 나름대로 수작을 부려왔기 때문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신화경급 강자가 존재하는 아르카디아의 힘이 그들을 압도했겠으나, 동족들의 저주를 무수히 뒤집어쓴 시조 카르데나스가 죽어가면서 그 철옹성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라그나, 내 말을 들어줘요.
시조 카르데나스는 제 죽음마저도 연인에게 바쳤다.
인간과 뒤섞이면서 피가 흐려지게 될 후손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혈액을 뽑아두고, 검사로서 신의 영역에 도달했던 업을 흘려보내서 무재(武才)를 심는다.
백 년 단위로 내다봐야할 계획을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제 빈자리를 임시로라도 채울 방안을 떠올렸다.
―동족들의 저주로 내가 잊어버린 것은 ‘몸’이지, ‘영혼’까지 망각한 것은 아니랍니다. 위클라인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후에 내 영혼이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세계법칙의 굴레 안에서 순환하는 필멸자들과 달리 초월의 격에 다다른 불멸자들은 저 너머로 떠나가야했다.
위태로운 제국과 연인을 남기고 사라지느니, 그 사후마저도 족쇄를 차겠다는 마음가짐이 불러온 일이었다.
시조 카르데나스가 제 영혼으로 준비한 ‘의식’은, 바로.
“강신(降神). 시조 카르데나스의 영혼이 제 후손들의 육체를 빌려, 제국의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라그나와 그녀 사이에 나온 자식들은 현 시대의 카르데나스 혈족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드래곤에 가까웠다.
당연하게도 그 소질과 잠재력은 무시무시했고, 그들의 몸을 일시적으로 빌려서 카르데나스 본인이 생전과도 같은 위용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수준이었다.
설령 하프드래곤(Half―Dragon)이라도 감당하기 쉬운 부담은 아니었으나, 시조가 직접 나서야할 정도의 위기가 그렇게까지 흔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피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한 다음부터였지.”
카르데나스의 계보가 늘어날수록 그 순수성은 흐려졌다.
시조 이외의 드래곤이 남아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필멸자를 사랑하는 초월종이 그렇게 흔했더라면 아르카디아와 건국제의 존재가 기적이라고 칭송받는 일도 없었으리라.
수많은 직계와 방계 혈족들이 태어나면서 가문의 힘은 건국 초창기보다 수십 배 이상 커졌지만, 시조의 강신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혈족 하나가 몇 번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을, 몇 세대가 지나가니 초월경급의 혈족이 제 목숨을 버려가면서 한 번 성공할까 말까한 수준까지 내려와버렸다.”
시조의 힘이 제아무리 강대하더라도 천계와 마계, 외계에서 온 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 너머를 정벌하진 못했다.
온전하게 제 몸을 가지고 있었던 생전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후손의 몸에 강신한 상태로는 불가능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서 그 첨병들을 맞받아치는 것이 한계였다.
천만다행으로 신급 존재들이 몇 번인가 시조에게 패배하고, 중간계에 직접 강림하는 일은 없어져있었다.
“낙관론자들은 놈들이 포기했다고 이야기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시조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릴 때까지 침공의 때를 연기했을 터. 불멸자들에겐 1000년도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닐테니까.”
수백 년의 시간으로 아르카디아와 삼공 가문이 강성해지고, 반신급 이하의 존재라면 그들 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지만 신급 존재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황금룡기사단은 그 최악의 가능성을 상정한 집단이었다.
누군가가 제 힘으로 신화경에 다다르는 것보다 시조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더 가망성이 있다고 본 자들. 광기에 가까운 집념으로 계속 의식에 도전해온 조직이기도 했다.
“시조가 남겨놓은 피와 그 잔혼(殘魂)에 공명시켜서 인간을 초월하고, 그녀의 업을 증폭하여 경지를 뛰어넘는다. 황금룡의 기사들은 전부 그 의식의 대상자로 자원했었다가 겨우 목숨만 건진 녀석들이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몸은, 의식의 부작용입니까?”
“그렇다.”
웨이드가 단언했다.
“시조의 업을 받아들여서 검의 이치를 깨우치고, 초월경을 압도할 수 있는 신체능력과 특질을 획득했지. 그러나 그 이상 성장하지도 못하고, 반신급 존재에게 이기지도 못하는 박제들. 여차하면 시조의 강신에 희생당하는 소모품들이다.”
황금룡기사단이 세간의 칭송과 달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고, 급진파라는 명목으로 크게 비뚤어진 자마저 나오게 된 이유였다.
세계평화와 카르데나스의 영광을 목적으로 지원했는데,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더 이상 강해질 수도 없는 반푼이가 된 셈이었으니 말이다.
제 분수를 모르고 신화경의 힘을 탐냈던 과욕의 대가이자, 한 번의 실수에서부터 시작된 비극이었다.
“자네를 반강제로 데려가려고 한 것도, 그들과 달리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단장들의 옹호를 받는 게 부러워서겠지.”
황금룡기사단의 차출요청은 거부할 수 없다지만, 그 의식에 참가하느냐 마느냐는 철저하게 본인의 의사에 달려있었다.
어떻게 구슬렸든지 그에 넘어가고, 시조의 힘에 눈독들이게 된 것은 본인들의 선택이었다.
‘자업자득이군.’
무인으로서 더 나아갈 수 없게 된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그 처지를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한 행보까지 긍정해줄 순 없었던 레너드의 표정이 건조해졌다.
황금룡으로 끌려갔다고 해서 레너드가 의식에 참가할 일은 없었겠지만, 의도 자체가 너무 악의적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웨이드 단장님.”
레너드는 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꺼내들었다.
“그렇다면 황금룡의 기사단장은 누구입니까? 반신경에 달한 혈족이 그 의식에서 살아남기라도 한 겁니까?”
“아니, 반신경에 다다른 자는 제 의식세계가 고유한 법칙을 지니기에 시조가 내려올 수 없다. 황금룡의 숙원은 물론이고, 강신의 그릇이 될 수조차도 없지. 초월경에 불과한 유망주만 차출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웨이드는 그 직후에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황금룡기사단의 단장은….”
카르데나스 대공가에 숨겨져있는 비밀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단장급만이 접근할 수 있는 중대사항.
단순히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영룡기사단의 감시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였다. 기사단장의 과반수가 동의하면서 레너드도 알 권리가 생겨났지만, 직접 거론하는 입장은 꺼림칙했다.
그럼에도 웨이드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시조 카르데나스가 남겨놓은 영혼의 잔재, 그 잔혼이 바로 황금룡의 기사단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