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8)
파비안의 눈치를 본 브루노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준비해둔 약병을 들고서 레너드에게 다가갔다.
그 안에는 석류즙처럼 붉고 찰랑이는 액체가 들어있었다.
“복용해라. 한 번에 삼켜야한다.”
“이건…?”
“카르데나스의 혈통을 각성시키는 비약이다. 정확히 한 명 분량이니 실수해서는 안 된다.”
약병에 손을 댄 순간, 레너드는 자신의 피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멀고 먼 기억이, 몸에 새겨진 혈통의 계보가 이걸 그리워하고 있었다.
쑥, 하고 뚜껑을 빼자마자 공청석유와 같이 황홀한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핏물처럼 보이는 외형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꿀꺽.
레너드의 목구멍 너머로 그 비약이 전부 흘러들어갔다.
‘뜨겁다.’
손에 닿았을 때는 차갑기만 한 약병이었는데, 그 내용물은 체내에 들어오자마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용광로의 쇳물을 삼키기라도 한 듯한 작열감!
하지만 레너드는 그 격통에 발버둥치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두 눈을 내리감았다. 스스로의 몸 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걸 관조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위장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세맥에서 정혈(精血)과 동화, 심장으로 향하고 있군. 비약이 지나가는 경로의 혈도 전부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이해간다.’
소림의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을 극성으로 수련하면 볼 수 있다는 효능과 비슷했다.
근육이나 뼈가 단단해지는 영역을 넘어서, 경맥까지 질기고 강인해지는 영역. 그 수준에 도달하면 내상을 입는 일 자체가 드물어지고, 몸 안으로 파고든 공격을 튕겨내는 반탄지력까지 소유하게 된다던가.
이 비약은 아주 조금이라지만 레너드의 혈도 일부분을 그런 영역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두근…두근…두근…!
심장박동이 서서히 거세진다.
처음에는 조금 더 빨라지는 정도였으나, 이제는 그 기세도 강해져서 늑골을 뚫고 나올 것처럼 욱신거렸다.
어느새 심장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비약이 또 하나의 심장을 만들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피를 압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
첫 번째로 형성된 피의 구슬, 적색 마나코어는 닿기만 해도 데일 것처럼 격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화기(火氣)를 다스리는 코어다.
둘!
두 번째로 만들어진 흑색의 마나코어는 앞서 형성된 적색과 반대로 그 체내를 서늘하게 식혀주었다.
수기(水氣)를 다스리는 코어다.
그와 동시에 마나코어의 형성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셋! 넷!
연달아 세 번째, 네 번째로 만들어진 코어는 그의 몸 안을 안정적으로 보강하면서 생명력을 몇 배로 북돋았다.
토기(土氣)와 목기(木氣)를 담당하는 코어들이다.
황색과 청색.
그 다음이 마지막이었다.
다섯!
백색의 코어가 형성되는 것과 동시에 레너드의 뼈가 도검을 감당할 정도로 단단해지고, 몸 주변에서는 스산한 바람이 한 줄기 일어났다가 곧 사그라졌다.
금기(金氣)를 통제하는 코어다.
펜타코어(Penta-Core).
레너드는 그 결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 심혼은 이미 조화경의 영역에 도달해있고, 그건 전생에 수련했던 일원오행신공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품은 이치라면 필연적으로 오행일 수밖에 없다.’
수련자원이 싱글코어보다 25배 소모된다는 것도, 자연기를 토납할 수 있는 레너드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원오행신공(一元五行神功)>.
다섯 종류의 기운을 다루는 것은 제 손가락처럼 익숙하고, 두세 종류라면 상극이나 상생의 이치로 증폭하거나 조합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전생의 그가 불완전하게 도달했던 오색강기(五色罡氣)는 먼 영역이었지만 말이다.
“후우우우….”
그리고 레너드가 그 힘을 만끽하고 있을 때, 어느샌가 그의 발 아래에서 떠오른 마법진이 빛을 뿜어냈다.
각 속성별로 10개가 넘는 판별석이 박혀있는 마법진.
정중앙에 서있는 레너드의 몸 안에 형성된 코어의 속성력이 몇 초만에 파악되었다.
파앗!
적색-흑색-황색-청색-백색 순으로 점등되는 불빛.
그걸 본 사람들의 얼굴이 누구 할 것 없이 침중해졌다.
“검의 재능으로는 하늘에 닿았으나, 피의 재능은 물려받지 못하였는가. 참으로 아쉽구나!”
파비안이 모두의 심경을 대변하듯이 읊조렸다.
14살에 마음으로 검을 다룰 줄 아는 아이가 싱글코어라면, 서른도 안 지나서 단장급의 괴물이 되었을 텐데!
그 아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7대 기사단을 일일이 찾아가서 레너드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해볼 생각도 있었건만, 펜타코어로 판명된 시점에서 그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너는 특급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 코어의 수 따위에 연연하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그의 무덤덤한 태도를 좋게 본 파비안이 말했다.
“유룡기사단에서의 성장을 기대하겠다. 내 얼굴을 자주 볼 일은 없겠지만, 소개해두지. 유룡기사단장 파비안이다.”
“네, 파비안 단장님.”
“저쪽에 붙어있는 문으로 나가면 된다.”
레너드는 그와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한 차례씩 목례하고,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도저히 펜타코어로 상심한 얼굴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힌 후에야 어른들이 웅성거렸다.
“…분명히 실망했을 텐데도 그걸 내색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기특하군. 하늘은 다 내려주시는 일이 없는 건가.”
파비안의 곁에서 제 의문을 참지 못한 브루노가 질문했다.
“저, 파비안 경?”
“무엇인가.”
“앞서 말씀하셨던 마음으로 검을 다룬다는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이 자리에서 그와 레너드의 대화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소년의 값어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거늘.
“그걸 깨닫는다면 자네들도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다네.”
육체를 단련해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첫 번째, 오러를 쌓고 조종해서 검을 다스리는 것이 두 번째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두 번째 단계에서 생을 마친다.
브루노 역시 두 번째의 끄트머리에 도달해있었다.
“마음으로 쌓고, 육체로 벼려낸다. 참 좋은 말이군.”
파비안은 그 이상으로 세 번째 단계의 심득을 잘 요약해낼 자신이 없었다. 마음으로 검을 쥘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에서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난다.
몇 번을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해, 파비안은 괜히 애검의 손잡이만 쓰다듬었다.
‘위대한 시조 카르데나스여, 당신께서 바란 일이십니까?’
당연하게도 그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 *
끼이익.
자주 쓰이지 않는 곳이라서인지 문소리가 요란했다.
>성혈식>이 치러진 방을 나서자, 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레너드를 바라보았다.
파비안과 마찬가지로 해츨링이 새겨진 갑옷.
유룡기사단의 기사 중 하나였다.
“이번 기수의 1번인가? 상당히 오래 걸렸군. 몇 개지?”
레너드는 그 말에 거리낌없이 답했다.
“펜타입니다.”
“뭣?!”
아이의 자만심을 꺾어놓고자 한 기사는 예상치도 못한 말에 혼비백산했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가 싱글코어라면, 10년에 한 번도 나오기 힘든 둔재가 펜타코어다. 안 그래도 좌절했을 어린애한테 큰 상처를 입힌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그러냐.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훈련소를 1번으로 나올 정도라면 네 앞날은 창창하니까. 벌써부터 기죽을 거 없다.”
“? 알겠습니다.”
레너드의 태도를 상심한 걸로 받아들인 기사가 헛기침까지 하면서 말을 돌렸다.
“큼, 나를 따라와라. 본래대로라면 네 친구들도 같이 갈 수 있었는데, 네 >성혈식>이 오래 걸리다보니 먼저 보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문 내부에 설치되어있는 텔레포트 시설이다. 아르카디아 제국은 너무 광활해서 탈 것만으로는 도저히 목적지까지 제때 도착할 수 없거든.”
그를 따라서 몇 층인가 계단을 내려갔다가, 훈련생일 때엔 드나들 수 없었던 길로 쭉 나아가서 저택을 빠져나온다.
미로처럼 복잡한 실내구조는 잘 모르는 사람이면 길을 찾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또다시 문 너머로 늘어서있는 계단을 내려오니, 두 사람의 도착을 기다리는 것처럼 마차 한 대가 서있었다.
“자, 올라타라. 배가 고프면 이거라도 좀 먹고.”
“…감사합니다.”
레너드한테 점심거리로 가져온 빵까지 준 기사는 마부석에 올라가서 고삐를 쥐었다.
‘인품이 선한 청년이로다.’
이유 모를 친절에 의아해하면서도, 레너드는 이내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 좌석에 등을 기댔다.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후에도 마차 내부는 거의 흔들리지 않아, 그가 집중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두 눈을 내리감은 레너드가 자신의 심장을 살펴보았다.
키이이이잉….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미세한 공명음이었다.
다섯 개의 코어가 한 치의 불협화음도 없이 맞물려서 돌고, 그 회전력에 끌어당겨진 자연기가 몸 안에 흘러들어온다.
제대로 된 내공심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숨만 쉬어도 그 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게 경이로웠다. 마나코어가 피의 흐름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레너드는 갑작스럽게 낯선 기관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몸 안에 위화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 있어야할 기관이 눈을 뜬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군.’
카르데나스의 혈통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는커녕 더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 득만 본 셈이니까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었던 레너드는 곧 정신을 집중해, 몸 주변에 넘쳐흐르는 자연기를 장악해나갔다. 무림인에게 있어 식사보다 더 중요한 행위, 운기조식을 전생하고 처음으로 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스으…스으으….”
한 번 들이마시고 내뱉는 간격이 분 단위로 늘어난다.
그와 동조하듯이 자연기의 흐름이 점점 레너드에게 움직여, 호흡하는 박자에 따라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만약 마부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파비안이었다면, 그 흐름을 읽고 대경실색했으리라. 이 세상에서 자연기를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마스터의 벽을 넘어선 강자들뿐이었으니.
‘코어를 생성하기 전에 비해서 세 배 가까이 빨라졌다.’
레너드의 두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기를 빨아들이는 속도만이 아니라 그걸 몸 안에서 움직이는 속도까지 세 배 이상 늘었다. 좋게 생각하면 성장속도가 무려 세 배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위험부담도 세 배다.
>성혈식>으로 혈도 자체가 튼튼해지지 않았다면, 소주천을 한 번 끝내기도 전에 칠공으로 피를 뿜어냈을테니.
‘하지만.’
화경의 극에 도달했던 통제능력은 삼도천을 한 번 건너고도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
세 배 빨라졌다면 그 배속에 맞춰서 다스리면 된다.
무식하기까지 한 해결방법은 정확하게 기운의 고삐를 쥐어, 다섯 속성의 자연기를 조금도 섞이지 않게 분류하고서 코어로 인도했다.
오방색(五方色)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던 코어들은 갑자기 공급되는 힘에 잠시 멈춰섰다가, 이내 물 만난 고기처럼 더욱 활기차게 맞물려돌아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혼원에 가장 중요한 게 순수성이라면, 오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겠지. 조화롭지 못한 오행은 그 근간부터 취약해지는 법.
현경의 고수, 단목진이 한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자네의 오행기는 검기성형(劍氣成形)에 진입한 후에야 틀을 만들었으니, 그 이전 경지에서 초래한 불균형이 다음 경지를 가로막는 벽이 된 거라네.
검기성형이란 그 체내의 기를 외부로 투사하여, 검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경지를 말함이었다.
흔히 일류(一流)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연무혁으로서도 오행기를 일원화하는 것은 그 시기가 한계였다. 다섯 속성의 기운을 균일하게 모으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하나로 조율해서 틀을 만드는 것 또한 범재였다면 초절정은 되어서야 가능해졌을 터.
그런데 천마 단목진은 그 완성이 너무 늦었다고 평했다.
일류조차도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공에 막 입문한 상태에서 오행기를 일원화시킬 수 있다면? 그 성취가 과연 어떠할까.’
레너드의 뜻에 의해서 다섯 속성력이 휘몰아친다.
일원오행신공(一元五行神功)
오성조화결(五星造化訣) 축(縮)
전생에서 그가 배우고 깨우친 바에 따르면, 오행이란 다섯 종류의 기본적인 물질이라기보단 다섯 가지의 기본 과정을 한 단어로 축약하는 개념이었다.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극토, 토극수,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그 정방향으로 순환하면 영원히 이 세상을 지탱하는 순리를 의미하며, 역방향으로 순환하면 그 이치를 끊어버리는 역리를 의미하게 된다.
‘고대 문헌에 이르기를, 오행의 기가 가라앉으면 한 곳으로 모이면서 응축된다(行氣宎則縮)고 했다.’
오행은 결국 하나의 흐름이면서 한 덩어리라는 증거였다.
검제 연무혁의 깨달음에 호응하듯이 다섯 개의 마나코어가 하나라도 된 것처럼 맞아들어갔다.
팟!
눈을 뜬 레너드가 순간적으로 오색 안광을 내뿜었다.
전생에는 일류 무렵에나 도달한 경지, 일원화였다.
한 줄기의 도도한 강물이 된 오행기가 기경팔맥을 흐르면서 펜타코어라고 믿을 수 없는 효율을 이끌어낸다.
“—여기서부터다.”
이번 생에는 현경, 그 너머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레너드를 들뜨게 했다.
마부석에서 괜히 눈치를 보는 기사가 알 리도 없이, 소년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새로운 힘, 새로운 무공, 새로운 땅.
지금부터 가는 곳에선 또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 기대로 두근거림이 멈추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