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82)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82)
‘아니, 혜광심어(慧光心語)에 더 가깝군. 이즈멜과 대련하는 과정에서 기척을 크게 드러냈다지만, 내 위치를 파악한 것도 모자라 시간차가 느껴지지 않는 전음이라니.’
역시 반신경의 강자만 모아놓는 기사단장 사이에서도 격이 다르다고 할 만한 괴물이었다.
레너드는 그 수법에 감탄하면서도 웨이드의 지시를 따랐다. 경공술을 발휘하기 시작한 몸이 한 걸음에 떠올라, 두 걸음에 수십 미터를 뛰어넘으면서 집무실로 향했다.
적색경보가 발령된 상황이다보니 규정속도를 위반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군기(軍紀)를 엄정히 바로잡고자 한 규율이 군을 무너트린다면, 그거야말로 본말전도였다.
1분도 안 지나서 집무실에 도착한 레너드가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음.”
언제나처럼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웨이드가 끄덕거렸다.
적색경보 따위에 동요하거나 할 인물도 아니었다.
“적룡기사단에서 나름대로 적응을 마친 모양이던데.”
웨이드는 서류 몇 장에 사인하고서 구석으로 밀어낸 후에야 레너드를 바라보았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보이는 금안. 제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안광이 고요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적룡기사단장.
카르데나스 최강의 기사단장이 평상시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모습으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윌리엄의 정체기를 해소시켜준 것도 그렇고, 내 예상을 몇 번이나 벗어나버리니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군.”
“과찬이십니다.”
“칭찬하지는 않았다. 아들의 일은 분명히 감사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레너드를 다시 긴장시킨 웨이드가 말했다.
“적룡기사단은 임무를 수행하는 빈도가 타 기사단보다 훨씬 잦다보니 부대편제와 숙련도의 수준이 높다. 자네를 투입하면 해당 부대의 수행능력은 증가하더라도, 불협화음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의 정예화와 달리 집단의 정예화는 그 효율을 더할수록 배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볼 때에 간파할 수 없어야만 전술적 우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신호부터 시작해서 진형의 구축,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이 맞아떨어지는 연계에 이르기까지.
무력이나 경지와 관계없이 시간을 들여야하는 단계였다.
“…어쩔 수 없겠군.”
웨이드는 두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면서 중얼거렸다.
“자네는 계속해서 날 따라다니도록. 〈마경〉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곳만 전전하게 될 텐데, 괜찮겠나?”
기사단장은 최소 반신급 존재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이라서, 그 주변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레너드가 그걸 마다할 리 없었다. 〈황룡〉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고 생각되는 웨이드와 붙어다닐 명분을 얻게 된 셈이었으니까.
“물론입니다. 제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게 단련한 것은 아니니까요.”
“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웨이드의 입가에 아주 옅은 호선이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그리고는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색경보의 내용에 관련해선 아는 게 없을 것 같다만.”
“예,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주지. 한 번만 말할테니, 빠트리는 것 없이 암기할 수 있도록.”
탁자 위에서 한 장의 보고서를 집어든 웨이드가 말했다.
“이번에 적색경보의 진원지가 된 〈마경〉은 바로, 옛 시대에 세계수를 무너트렸던 외신의 영역이다. 나스트론드(Nastr?nd), 고대어로 ‘시체의 해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시체의 해안이라면…언데드가 출현하겠군요.”
“그 말대로다. 나스트론드는 악덕으로 물든 영혼을 낚아채, 영겁에 다다르는 시간을 고문한다고 하지. 산 자를 증오하고, 그들의 몸을 빼앗아서 나스트론드를 탈출하려는 망자들이 셀 수도 없이 널려있을 수밖에.”
웨이드는 그렇게 〈마경〉, 나스트론드에서 마주하게 될 적을 가르쳐주는 것과 동시에 고문서를 한 장 끄집어냈다.
나스트론드의 외신은 먼 과거,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뿌리에 독니를 박아넣었던 놈이었다. 적극적으로 세계를 넘보고 있는 외신이다보니 역대 적룡기사단이 수집한 정보량도 상당했다.
고문서에 필사된 내용은 그 상세를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그곳을 지배하는 외신, 니드호그(Niðhoggr)는 고대언어로 ‘증오에 차서 공격하는 자’ 혹은 ‘조소하는 학살자’라고 불린 신으로 드래곤과 유사한 형태를 보유한다. 〈마경〉이라고 해도 외신급이 강림하려면 침식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져야하니, 이 원정에서 놈과 직면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경〉의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외신이 직접 강림한다면 카르데나스를 넘어서 이 제국 전체가 위태로울 사건이지만, 외신의 사도나 화신체만 강림하더라도 적룡기사단 전체가 동원되어야할 상황이었다.
아틀란티스에서 외신의 존재감을 접해본 레너드는 그 힘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살의도, 적의도 한 조각 없는 기척으로 마스터급의 강자 다수를 마비시켰던 존재.
반신경에 오르더라도 승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문서에 따르면 니드호그는 일곱 마리의 사도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 전원이 반신급의 괴수라고 한다. 〈마경〉의 핵이 될 만한 존재라면 그놈들 이외의 후보군이 없지. 일곱 마리가 다 나타났을 리는 없고, 〈마경〉의 침식도를 보아하니 많아도 두 마리라고 판단된다.”
아틀란티스에서 쓰러트린 파블로 역시 외신의 사도였지만, 장난감 수준에 불과했던 놈과 옛 시대부터 수족처럼 따라다닌 놈들의 격이 비슷할 리 없었다.
레너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반신급 괴수가 두 마리라면…타 기사단에 단장급의 지원을 요청해야할 사안 아닙니까?”
“이미 지원요청을 보냈다.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더군.”
그 질문에 대답해준 웨이드가 몇 마디 덧붙였다.
“카르데나스가 아닌 위클라인에서 말이지. 대단위 전투에선 기사단장보다 대마도사가 더 유용하니까.”
“설마! 9위계급이 가세하는 겁니까?”
“그렇다.”
카르데나스에 반신경의 기사단장이 존재하듯이, 위클라인엔 9위계의 대마도사가 존재했다.
신비협회를 설립하고 그 정점에 선 자들이기도 했다.
현 시대에는 다섯 명의 대마도사가 활동하기에, 협회에서는 그들을 펜타곤(Pentagon)이라고 호칭하면서 경외한다. 현상의 범용성이나 실용성에 있어서는 반신경 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부수거나 죽이는 것 외에도 유능했기에, 몸값은 기사단장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일어나지. 최소인원을 제외한 적룡기사 모두가 출정해야할 상황이니만큼 이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줄 순 없다.”
“수행하겠습니다.”
음, 하고 고개를 끄덕거린 웨이드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레너드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자꾸 솟아오르려는 호기심을 끝없이 억눌러야했다.
9위계의 대마도사.
반신경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는 자. 전생의 연무혁도 높은 수준에 도달해있는 주술사나 도사를 본 적은 없었기에, 진정으로 낯선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 * *
적색경보의 발령으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이 경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룡기사단의 주둔지, 그 연병장에 모인 인원은 무려 천 명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초월경 수준의 정식단원들만 200명이 넘었고, 나머지는 다 외력경 극한에 도달해있는 견습기사였다. 이 자리에 모여있는 전력만으로도 아르카디아 바깥의 국가 전부를 초토화시키고도 거스름돈이 남는다.
갈라파고스에 납치부대를 보냈다는 이유로 그 기둥뿌리까지 뽑혔던 왕국, 크루지스에 파견되었던 적룡기사가 불과 열 명 남짓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긴장감이 엄청나군. 이 정도로 모여있으면 없던 자신감도 생길 만한데, 〈마경〉이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하다는 건가.’
실전경험을 쌓다못해 절여지다시피 한 적룡기사들도 얼굴이 굳어있었다. 〈균열〉의 힘이 강해지면 〈마경〉으로 변한다지만, 위험도는 한두 단계가 아니라 열 단계 가까이 뛰어오른다.
한 번이라도 〈마경〉에 들어갔다가 생환해본 자들은 절대로 그 경험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이전에 윌리엄과 한 이야기를 조금 참고하자면,
―〈균열〉에 들어설 때도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마경〉은 그 수준이 다르다던데. 외신의 아가리나 위장 속에 들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세계 전체가 날카롭게 적대해오는 느낌이라고. 두 다리가 붙어있는 땅을 믿을 수 없고, 호흡하는 공기조차 독이 섞여있을까봐 숨을 멈추게 된다더군.
세계법칙은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을 다 굽어살피는 흐름이기에, 특이점과 같은 힘으로 거스르더라도 그 자정력만 발휘하려고 하지 그들을 적대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
외계법칙(外界法則)은 그 반대였다.
〈마경〉은 제 안에 들어온 침입자들을 불순물로 인식하기에, 위장에 떨어진 음식물을 소화하듯이 위액과 같은 소화기능을 발동해서 녹여버리려고 한다. 세계가 적대하는 느낌을 받아본 자들은 하나같이 그 공포를 잊지 못한다던가.
‘제대로 단련되지 않은 자가 〈마경〉에 들어섰다간, 몇 분도 버텨내지 못하고 미쳐버린다는 말도 있었지.’
레너드는 그 미지의 공포를 짐작해보면서, 연병장에 도열한 적룡기사단의 면면들을 살펴보았다. 단상에 있는 웨이드의 등 뒤였다보니 본의 아니게 내려다보이는 구도였다.
“거창한 연설 따위는 필요없겠지.”
웨이드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무덤덤했다.
“언제나처럼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의무를 수행하라. 몇 명 죽거나 다치는 자도 나올 것이고, 너희들의 앞이나 옆에 있는 얼굴들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카르데나스의 기사들에게 있어, 죽음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과도 같았다. 〈마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균열〉에서도 사상자는 나날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다음에 한 잔 마시자고 약속한 친구가 돌아오지 않는 것도, 등을 마주하고 싸우던 동료의 몸이 차가워지는 것도 경험해본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적룡기사들의 눈동자에 깃들어있는 투쟁심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웨이드가 말했다.
“우리들은 항상 그러했듯이, 저 너머의 머저리들을 모조리 베어넘기고 승전보와 함께 돌아올 것이다.”
환호하는 자는 없었다.
격앙하는 자도 없었다.
천 명의 적룡기사 모두가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남자, 웨이드가 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서기로 한 전투에서 패배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기도 했다.
“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설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호언으로 사기를 끌어올려놓은 웨이드가 어느 방향을 돌아보았다.
웨이드 다음으로 반응한 것은 레너드였다.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어야할 세계법칙의 왜곡, 그 형태가 공간문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낸 시점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갑작스럽게 출현했다.
위클라인에서 온 지원군이 틀림없었다.
“하아아암….”
공간의 아지랑이를 넘어서 두 발로 내려선 사람은 흑단처럼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등 뒤에서 덜렁거리는 빗자루는 체격에 안 맞게 거대했으며 고깔모자 때문에 얼굴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차림새에서 ‘마녀’라는 호칭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위클라인에서 온 대마도사가 졸린 얼굴로 말했다.
“안녕, 웨이드. 16년하고 3개월만에 또 만나네.”
10대 소녀처럼 어려보이는 생김새였으나, 웨이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 연령대를 알 수 있었다. 웨이드와 대등하거나 그에 준하는 신분이나 지위를 지니고 있을 터.
웨이드 역시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고 응대했다.
“크루엘라인가. 네가 올 것 같기는 했다.”
“나스트론드라면 언데드잖아. 나 말고는 적임자가 없어.”
“〈마경〉의 공간좌표는 전부 숙지하고 왔겠지?”
“응.”
“공간문을 열어라. 바로 이동하겠다.”
세상만사가 전부 귀찮다는 얼굴로 그 말에 끄덕거린 소녀, 크루엘라가 등에 맨 빗자루를 끌어내렸다.
아무래도 그 빗자루가 지팡이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라?”
웨이드의 배후에 서있었던 레너드와 두 눈을 마주친 순간, 졸음기로 흐리멍텅하던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레너드의 용안이 반응했다.
‘이건!?’
누군가를 들여다보려고 하면, 그 상대방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이 존재한다.
시선은 곧 연결과도 같기 때문이었다.
기감조차 지니지 못한 일반인도, 누군가가 계속 바라본다면 시선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9위계에 달한 대마도사의 시선과 드래곤의 눈을 지닌 레너드의 시선이라면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몇 초 남짓한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은 정보량은 어마어마했다.
‘터무니없다. 최소 400년을 살아온 존재라니…?! 마법사와 무인이 추구하는 경지가 다르다지만, 불로장생(不老長生)도 저 정도라면 신선에 가까운 수준이다.’
크루엘라의 진면목을 간파한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으나, 그걸 무의미하게 몇 걸음을 추격해온 크루엘라가 외형에 안 맞는 미소를 머금었다.
“규격 외의 자질이구나. ‘눈’도 모자라서 ‘심장’까지? 영혼의 나이테가 두 겹인 것도 신경쓰이고, 웨이드가 왜 따로 데리고 있나 싶었는데 그럴 만하네.”
레너드가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머뭇거리자.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기대되네.”
크루엘라는 더 추궁하지 않고 돌아서더니, 웨이드 주변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제 빗자루를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콧노래 같은 말을 흥얼거렸다. 그게 단순한 흥얼거림이 아니라는 것은, 레너드의 눈에 들어온 광경으로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주문영창인가. 세계법칙이 흔들린다. 제대로 힘을 쓴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칼란타가 보여준 [멀티 텔레포트]나 이전에 몇 번 경험해본 [매스 텔레포트]와도 다르다.
9위계 대마도사의 마법식은, 드래곤하트를 지닌 레너드조차 한눈에 다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애초에 9위계 수준이면 고대 드래곤이 사용하던 마법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워프]!”
크루엘라의 시동어가 울려퍼진 순간, 연병장에 있는 기사들 전원을 대상으로 한 공간마법이 발동했다.
천 명 남짓한 인원을 수천 킬로미터나 날려버리는 마법.
레너드는 그 규모에 경악할 새도 없이 공간문의 아지랑이로 빨려들어갔다. 순식간에 좁아지는 시야 너머로 평상시와 같은 얼굴을 한 웨이드가 보였다.
〈마경〉, 나스트론드의 원정대가 출발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