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9)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9)
카르데나스 가문의 저택 부지는 과연 레너드가 상정했던 것 이상이었다.
제법 속도를 낸 마차였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수십 분 가까이 소요되었다. 일반적인 남작령 수준이라면 진작 영지를 벗어나고도 남았을 거리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말들을 진정시킨 기사가 먼저 내려서 그 마차를 시종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레너드 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거기서부터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널 안내할테니, 염려하지 말고 가도록 해.”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아까는 미안했다.”
레너드는 도대체 뭐가 미안했는지 궁금해졌지만, 그는 이미 뒤돌아서서 떠나가는 중이었다.
‘빵에 뭐 하자라도 있었나? 맛은 괜찮았는데.’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가볍게 떨쳐버리고, 이윽고 레너드는 제 눈앞에 세워져있는 건물로 발을 들여놓았다.
한 걸음 들어서기가 무섭게 분위기가 일변한다.
공기의 무게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가문 내부에서도 중요한 시설로 취급되는 구역이라서일까? 훈련소의 교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 삼엄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올해의 훈련생은 네가 마지막인가?”
그림자처럼 그 옆에 내려선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네, 레너드입니다.”
레너드의 태연한 반응을 본 기사는 엷게 미소지었다.
“…담력이 괜찮군. 유룡기사단의 배철러(Bachelor), 어셔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구역과 그 구역에 대한 설명을 담당하게 된 사람이지. 어셔 경이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어셔 경.”
“내 뒤에 붙어서 따라오도록.”
스스로를 중급기사라고 소개한 어셔는 그를 등 뒤에 달고서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나아갔다. 유룡기사단이 매년 담당하는 일이니만큼 퍽 익숙한 모양새였다.
그 뒤를 따르는 레너드는 조심스럽게 이 시설의 이모저모를 훑어보았지만, >성혈식>의 방과 마찬가지로 그의 감각이 거의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진법이나 특수한 자재를 쓴 모양이로군. 간접적인 방법으로 안을 꿰뚫어보는 건 불가능하겠어.’
중원이었다면 천마신교 본단이나 황궁의 심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설이었다. 어지간한 대문파에도 없는 시설이 온 사방에 널려있는 셈이다.
가문의 부유함에 새삼스럽게 혀를 찬 레너드가 어느새 그를 둘러싼 풍경이 변화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환영진(幻影陣)을 통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놀랐나?”
“…예.”
어셔는 그의 놀라움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권한 없는 자들은 출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설이다. 나 역시 훈련생들을 이송할 때가 아니라면 방문할 수 없지.”
그렇게 설명하던 어셔가 봐라, 하고 정면을 가리켰다.
높이가 대략 3미터 정도에다가, 사람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드나들 수 있을 듯한 석문이었다.
특이사항이라면 문짝도 없이 뻥 뚫려있는 공간일까.
그걸 본 레너드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이것이 그 공간을 뛰어넘는 문인가.’
무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물이다.
신선들이 사용한다는 축지법(縮地法)도 아니고, 단숨에 수만 리를 주파할 수 있는 시설물이 존재한다니?
마법사들의 능력은 무인과는 또 다른 부분에서 상식의 틀을 초월하고 있었다. 공간을 제 마음대로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 상대를 제압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워지리라.
“절차는 아주 간단하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구역을 모두 알려주고, 그 구역의 장점과 단점을 설명하겠다. 그리고 문을 기동시켜서 네가 선택한 곳으로 보내주면 내 일은 끝이지.”
“어셔 경.”
레너드의 말에 어셔가 제 고개를 까딱거렸다.
한 번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저는 본인의 실력 여하에 따라서 최대한 많은 수련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구역으로 가고 싶습니다.”
오행의 일원화를 달성하면서 펜타코어 자체의 효율은 조금 개선되었지만, 그럼에도 싱글코어나 듀얼코어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수련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 일대 자연기가 풍부하다는 말과 같았으며, 구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실력과 난이도도 그에 비례해서 높아질 터.
‘수라도(修羅道)를 걷지 못하는 무인은 결국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다.’
마도인들이 정파나 사파의 무인들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강자존의 풍습에 따라서 죽고 죽이며, 제 목숨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서 무공을 갈고닦는다. 나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치열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네 요구사항에 해당하는 곳은 있지만, 그곳은 1년차부터 갈 만한 장소가 아니다.”
어셔가 보기 드물게 초조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본래대로라면 선택할 수도 없어야하는 곳이지만, 특급으로 취급된 너는 갈 수 있지. 추천하진 않겠다. 싱글코어 소유자도 한두 달을 못 버텨서 전출을 신청하는 곳이니까.”
“그 구역의 명칭이 무엇입니까?”
“갈라파고스(Galapagos).”
레너드의 태도에 긴 한숨을 내쉰 어셔가 어디선가 큰 지도 한 장을 꺼내왔다.
그리고 탁자 위에 올려놓고서 널찍하게 펼쳤다.
“아르카디아 제국에서도 거의 변방에 가까운, 우리 가문의 구성원을 제외한다면 인류가 거주하지 않는 무인도지.”
유룡기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훈련생들의 사상률이 높은 지역이라는 설명도 첨부했다.
“7대 기사단이 공략하는 마경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 최심부는 마경에 준하는 위험지역이다. 갈라파고스의 배너렛, 브래들리 경도 그 일대가 준동하면 파비안 단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할 정도지.”
그런데도 갈 마음이 남아있느냐? 라는 어셔의 시선에…….
“갈라파고스로 보내주십시오.”
레너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어셔는 그를 더 만류하고 싶었으나, 안내자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였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린 어셔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허름해보이지만 그 안쪽에서 기묘한 힘을 감지한 레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이 좋군. 아공간 마법이 걸려있는 주머니다.”
“아공간 마법이라면…?”
“작아보이지만 웬만한 창고 수준의 공간이 들어있지. 네게 분배된 수련자원도 넣어놨으니, 계획적으로 잘 써라. 무턱대고 다 사용해버리면 나중에 곤란해질 거다.”
세심하게 조언한 어셔는 정확히 1인분 남아있는 영석을 몇 번에 걸쳐서 끼워넣었다.
시공을 조작하는 마법물품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해서, 한 조각만 어긋나거나 해도 대참사가 날 수 있었다.
몇 분만에 공간문의 준비가 모두 끝났다.
우우우우우웅—!
격렬한 진동과 함께 공간문이 뒤흔들렸다.
뻥 뚫려있던 석문의 안쪽 부분이 건너편과 연결되면서 주변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탓이었다.
삼투압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어셔가 다급히 소리쳤다.
“가라! 어서!”
레너드는 그 말에 대답하는 것도 잊고서 석문 안쪽으로 제 몸을 던져넣었다. 검제 시절에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감각에, 드물게 그의 간담마저 다 서늘해졌다.
구름 위에서 떨어져내리는 듯한, 만 장 높이의 절벽 위에서 추락하는 듯한.
영혼이 제 몸을 빠져나와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화아아아악!
다행스럽게도 그 무한하게만 느껴지던 부유감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지면에 닿아있는 발의 감각이 한 박자 늦게 되돌아왔다.
“——큽.”
레너드는 간신히 제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음식물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설마 마차에서 빵을 준 기사가 사죄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이 공간이동의 부작용 같은 현기증은 호흡을 몇 번 거듭하기도 전에 가라앉았다.
그 다음으로 닥쳐온 것은, 찔 듯한 무더위였다.
‘여기가…갈라파고스인가.’
수그렸던 몸을 편 레너드의 시야에,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한켠과 그 해변가를 따라서 늘어서있는 열대우림이 들어왔다.
살갗을 뚫을 것처럼 날카로운 햇살과 습한 공기.
남만에서나 드물게 경험해본 극한환경이다.
‘아직 수화불침(水火不侵)도 이루지 못했으니, 당분간은 좀 고생하겠군.’
북해와 남만을 포함해서 새외무림을 돌아다녀봤던 레너드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모지라고 하면 사막이나 빙하 따위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다도 생존이 더 어려운 환경은 이곳 같은 열대우림이었다.
너무 우거진 숲 때문에 밀림에선 시야가 짧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어나온 독사나 독충 따위가 덤벼들어온다.
먹잇감으로 삼을 수 있는 짐승들도 산이나 평원에 서식하는 종류보다 크기가 작고, 추적하기도 더 어려웠다.
“…누가 오는군.”
레너드의 감각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인기척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유룡기사단에서 훈련하고 있는, 몇 년 앞선 기수의 아이들이었다.
계급상으로는 모두 견습기사(Page)라고 부른다던가?
갈라파고스 구역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기수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자들이 분명했다.
“뭐야, 진짜로 1년차가 온 거야?”
남들보다 먼저 그를 발견한 청년이 경박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정신이 나간 신입이구만. 며칠만에 징징 짜면서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할지 내기할까?”
“난 일주일에 걸겠다.”
“나는 한 달. 1년차가 여기로 바로 온 거면 특급이잖아? 쓸 만한 녀석이겠지.”
갈라파고스의 생활이 제법 험난한지, 그들의 갑옷과 망토는 이곳저곳이 다 해진 상태였다.
연령 자체는 레너드보다 서너 살밖에 많지 않을 텐데, 잔뜩 거칠어진 피부와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때문에 더 조숙하게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반사적으로 그들의 실력을 더듬어본 레너드가 내심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 명 모두 절정의 초입이군. 실전적으로 단련되어있다.’
정파무림의 으뜸가는 후지기수, 오룡삼봉도 스물이 안 되어 절정고수가 된 인물은 매우 희소했다.
하지만 이 섬의 기사들에겐 특별한 일도 아니겠지.
“—1년차에게 간섭하는 행위는 전부 금지되어있다. 징계를 받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라.”
그 순간, 묵직한 목소리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나, 나이트 배너렛! 죄송합니다!”
“즉시 물러가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청년들은 감히 그 목소리에 저항할 엄두도 못 내고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그럴 만했다.
레너드는 제 곁에 나타난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이트 배너렛.”
그 남자는 파비안과 비슷할 정도로 크고, 바위를 어설프게 깎아내서 만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동(不動)의 존재감.
자신만의 무도를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화경의 벽을 두드리고 있군. 계기를 만난다면 금방 넘어설 수 있는 실력자다.’
가만히 레너드를 훑어본 남자, 이 구역을 담당하는 배너렛 브래들리가 입을 열었다.
“너에 관련된 내용은 모두 전달받았다. 특급 대우에, 파비안 단장님이 직접 추천서까지 쓴 녀석이지. 레너드.”
“예, 배너렛.”
“내 이름은 브래들리다. 이 갈라파고스 섬을 관리하는 유룡기사단 1번대, 바질리스크의 상급기사이기도 하지. 네 안전을 보장하고, 기본적인 마나연공을 가르칠 사람이기도 하다.”
석상과도 같이 무기질적인 얼굴이 입술만을 달싹거린다.
“오늘부터 반 년간은 너의 보호기간이고, 나머지 반 년간은 수습기간이다. 그동안은 이 섬의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못해.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가면, 네가 지니고 있는 것들은 스스로 지켜내야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좋다. 곧바로 마나연공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지. 휴식하고 싶다면 몇 시간은 쉬게 해줄 수도 있다만.”
그 말에 레너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즉답했다.
“필요없습니다.”
“마음에 든다.”
브래들리가 처음으로 씨익 웃었다.
“이곳에서 너를 가능한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겠다.”
갈라파고스 섬의 상주인원은 1000여명.
그중에서 관리감독을 담당한 중급기사 이상의 유룡기사단을 제외한다면, 아이들의 수는 총 800명 남짓.
최연소 견습기사만 하더라도 3년차에, 최연장자는 7년차에 달한다. 지금까지 이 섬에 1년차가 찾아온 것은 이전에도 몇 번인가 있었지만, 끝까지 남아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펜타코어임에도 불구하고 단장의 추천서까지 들고 온 소년, 레너드가 그 예외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