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9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93)
“…진짜냐. 그 나이대에 벌써 도달했다고?”
오랜만에 레너드를 직접 본 데미안의 얼굴에 드물게도 불신 어린 색이 나타났다가, 곧 가라앉으면서 난감하게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무살도 안 되는 나이로 초월경까지 돌파했던 것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반신경의 계단을 본격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건 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누군가는 수십 년, 그 자질과 운이 부족하다면 백 년 이상을 소요하더라도 제자리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경지였다.
안 그래도 다수의 특이점을 보유하면서 그 미래가 기대되던 유망주였는데, 반신경의 돌파가능성까지 유력해졌으니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수밖에 없었다.
“도달했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스로의 변화를 깨닫지 못한 레너드가 반문하자, 데미안은 제 뒤통수를 긁적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의식영역이 체외로 크게 확장되는 현상을 경험했겠지? 그 현상은 너의 심상이 고유법칙으로 승화하면서, 반신의 영역에 거의 도달했다는 증명과도 마찬가지거든. 영혼과 육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필멸자에게 존재하는 한계가 옅어지는 거다.”
“옅어진다고 하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로군요.”
“당연하지. 영육(靈肉)의 구분이 사라지고 그 존재가 완전히 법칙화했다면, 그걸 뭐라고 불러야겠냐?”
아, 하고 스스로의 우문(愚問)을 깨달은 레너드가 대답했다.
“…신.”
“그래, 필멸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불멸자가 된 경지. 그게 우리들이 수백 년이나 갈망하고 있는 도달점, 신화경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고유법칙을 그 자체로 세계법칙과 동일한 반열에 올려놓은 존재, 무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를 ‘신화경’으로 호칭하게 이유가 바로 그래서였다.
옛 시대를 지배했던 초월종, 신족들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세계법칙의 일부를 제 권능으로 할당받았기에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신화경의 강자는 그걸 역순(逆順)으로 성취해버린 존재였다.
“귀족제로 비유하자면 탄생과 함께 영지를 물려받은 놈들이 신족이고, 제 힘으로 땅을 개척해서 영지를 만든 것이 신화경 무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시조 카르데나스의 사후에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거론하면서,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혀야했다.
지난밤을 넘어서 방금 전까지 계속되었던 회의의 내용이 제 머릿속에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발키리의 여왕, [시그드리바]가 가져다준 정보는 확실히 그 값어치를 했다. 아르카디아 제국이 수백 년만에 총력전을 준비해야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가능성을 겨우 알아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의식영역의 확장이 시작되면서, 용안도 한층 더 날카로워진 레너드는 그 미미한 흔들림마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줬구만.”
제 심기가 읽혔다는 것을 안 데미안이 쓰게 미소지었다.
레너드의 성장이 대단하다지만, 용안소유자로서 표층의식을 방어하지 못한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평상시라면 몇 번을 시도하더라도 의식의 저항력에 가로막혔으리라.
그것을 꿰뚫어본 레너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알아선 안 되는 내용입니까?”
“대부분은. 뭐,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도 없진 않은가.”
머릿속으로 말을 골라낸 데미안이 곧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제부로 천족과 불가침협정이 체결되었다. 발키리 여왕이 직접 찾아왔었지. 결과적으로 청룡기사단은 할 일이 없어졌고, 5면전선은 4면전선으로 줄어들었다.”
“불가침협정, 그렇다면 그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영구적으로다. 자세한 내용까진 말해줄 수 없지만, 천족과 싸울 일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고 장담하마.”
레너드는 그 말에 절로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해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좋았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는 소식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전선 하나가 완전하게 종료되었다면, 아르카디아 제국이나 삼공 가문에 있어서 그 이상으로 좋은 상황도 없다. 그런데도 가문의 수뇌부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중대한 위기라도 알게 된 것처럼 심각해보이는군.’
데미안은 그의 속내를 짐작하면서도 다 말해주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네가 다음에 갈 곳은 청룡기였지만, 지금 한 이야기대로 천족과의 불가침협정이 체결되면서 다른 전선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나밖에 안 남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틀림없이 녹룡기사단에 가게 될 거다.”
백룡기사단에서 허신을 토벌하고, 적룡기사단에서 〈마경〉을 공략해본 레너드였다.
천족과의 불가침으로 청룡기사단이 할 일을 잃었으니, 그가 경험하지 못한 전선이라면 녹룡기사단밖에 없었다. 예전에 한 번 들어봤다지만, 종족명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종족 전체가 중대기밀에 얽혀있어, 타 기사단보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녹룡기사단의 숙적.
‘스프리건(Spriggan).’
백룡기사단장, 데미안조차 문서로 본 경험밖에 없는 종족의 이름이었다.
건국제와 시조 카르데나스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에 몇 마디 주워들은 것까지 참고하자면, ‘세계수의 원념이 변질시킨 정령군체’에 해당하는 것이 놈들이리라.
“떠올렸나보군. 이제 그놈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마.”
레너드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데미안이 피식 웃으면서 ‘스프리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마경〉 나스트론드에 다녀왔으니 이야기가 더 빠르겠구만. 그곳을 지배하는 외신, [니드호그]는 멸신전쟁 당시에 세계수 위그드라실에 독을 흘려넣었던 놈이거든. ‘스프리건’의 탄생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개자식이야.”
“…외신의 독이 세계수를 변질시켰던 겁니까?”
“오? 지난번에 한 이야기하고 연결한 건가. 네 생각대로야. [니드호그]의 독은 대상을 부패하게 만드는 걸로 끝나지 않고 언데드로서 재탄생시키지. 덩치와 격이 너무 크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완전한 형태로 완성되었지만 세계수의 능력은 그 이상으로 위협적이었다.”
옛 시대에 사멸해버린 대자연의 화신, 세계수 위그드라실은 그 존재 자체가 정령계와 중간계를 잇는 통로이면서 자연력을 순환시키는 핵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게 언데드로 변질되었으니, 자연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잘못된 방향성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었다.
“[니드호그]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위그드라실은 그 예상마저 초월한 재앙이 되어버렸다. 세계수의 영향력이 닿는 범위에서는 ‘죽은 것’이 자연스러운 걸로 취급되고, ‘산 것’이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취급당하지.”
공기와 햇빛조차도 그 범위 안에서는 생명을 죽이는 효과를 발휘하며, 잡초 한 포기부터 시작해서 좁쌀 크기보다 더 작은 날벌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를 공격해온다.
그 정도만 해도 호신기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지에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땅이었지만, ‘스프리건’이 활동하기 시작한 구역부터는 더 위험도가 높아진다.
‘스프리건’의 원형은 바로 고대정령(Ancient Spirit).
정령계 본연의 계급체제에 소속되지 않은, 중간계에 기반을 둔 정령 중에서도 강력한 존재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기본적으로 정령은 언데드가 될 수 없어. 그것들은 존재와 부재로 구분되지, 생과 사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수의 권능은 그 상식마저 비틀어버린 거지. ‘스프리건’은 정령과 언데드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괴이(怪異), 시체와 융합해서 힘을 증폭시키는 사령으로 거듭나버렸다.”
앞서 말했던대로 잡초 한 포기부터 날벌레 한 마리까지, 그 빙의체가 될 수 있는 사체는 얼마든지 널려있었다.
놈들을 대적하는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온 세상에 위협으로 돌변할 수 있는 요소가 산재해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의 시체조차도 제대로 안장해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불태우거나 철저히 파괴하지 않으면, 초월경급 기사의 몸을 탈취한 ‘스프리건’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발휘할지 상상도 안 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성가신 점은, 위그드라실이 타락한 상태에서도 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거다. 하이엘프의 인자를 갖고 있는 위클라인에선 그 범위에 접근조차 할 수 없어. ‘스프리건’처럼 9위계급 대마도사가 놈에게 지배당하기라도 하면….”
“아크리치(Arch-Lich)가 탄생하겠군요.”
최상위 언데드에 해당하는 리치가 반신급으로 격상한 존재, 아크리치는 그 이전의 형태에서 보유하고 있었던 약점마저도 다 사라져버린 괴물이었다.
음차원의 마나를 받아들이며 영혼이 오염되기에, 선한 자도 타락하는 것을 회피할 수 없는 형태이기도 했다.
녹룡기사단이 여러모로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스프리건’과의 전선에선 제하이어가 활약하고 있는 편이지. 위그드라실의 권능도 결국 무생물엔 큰 효용이 없고, ‘스프리건’도 빙의체로 삼을 수 없으니까.”
드베르그의 후예, 제하이어 가문은 그 특성상 전투력보다는 기술력이 특출한 일족이었다. 삼공이 담당하고 있는 전선에서 기본적으로 후방 보급을 담당하며, 7대 기사단의 장구류를 제작하고 관리한다거나 청룡기사단의 비공선과 같은 전략물자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들이 거의 유일하게 전면전으로 참가하고 있는 곳이 바로 녹룡기사단, 죽음의 세계수에 대적하는 전선이었다.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더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게 대공사를 한 것도, 자율보행병기 타이탄을 만들어내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다 제하이어지. 녹룡기사단의 수고를 폄하할 셈은 아니지만, 그들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과연.”
그리고, 하고 운을 뗀 데미안이 제대로 된 용건을 말했다.
“잘 들어라. 얼마 후에 세 명의 기사단장이 ‘스프리건’과의 전선에 추가적으로 투입될 거다. 아, 청룡기사단도.”
적룡기사단장 웨이드.
흑룡기사단장 오드리.
청룡기사단장 그레이스.
천족과의 불가침협정으로 할 일이 없어진 그레이스는 물론,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기사단장 전원이 투입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제아무리 ‘스프리건’과 위그드라실의 힘이 대단하더라도 전선을 밀어올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데미안 단장님께선?”
“난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군이다. ‘스프리건’은 나랑 상성이 안 좋은 편이거든. 그래서 빙의체와 함께 말살해버릴 수 있는 화력을 지닌 단장들만 파견한다는 소리야.”
“설마.”
그 의도를 알아차린 레너드가 중얼거리자, 데미안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래, 제국은 이 기회에 ‘스프리건’과 위그드라실을 완전히 지워버릴 생각이다. 천족의 공백을 알게 된 마족이나 외신이 개입해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장을 볼 셈이지.”
대담하기까지 한 결단이었다.
마족이나 외신숭배자가 그 전력의 공백을 알아차린다면, 한 명의 기사단장을 예비로 둔 것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
황금룡기사단을 몇 명 소모해서, 시조가 움직여야할 사태로 번질 수도 있었다. 그 리스크를 모를 리 없으면서도 수뇌부는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승기를 붙잡기로 한 것이다. 이 작전이 다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필연적인 멸망의 때가 백 년 단위로 늦춰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다.”
진지해진 얼굴로 그를 본 데미안이 검 자루에 손을 올리자, 반사적으로 몇 미터 물러난 레너드가 검을 움켜쥐었다.
농담이 아니라는 것은 그 의식영역의 충돌로 알 수 있었다. 죽이거나 할 마음은 없어보이지만, 데미안은 이전과 달리 제 힘을 아낌없이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녹룡기사단으로의 파견은 너를 더 성장시킬지도 모르지만, 쓸데없이 위험부담을 늘리는 일이기도 하다. 넌 그대로 계속 수련하기만 해도 반신경에 다다를 수 있을테니까.”
전선의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적의 섬멸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라면 단장급도 죽음을 각오해야한다.
막다른 곳에 몰아넣으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
제아무리 네 명의 기사단장과 두 개의 기사단이 투입되어도 사상자는 나온다. 확정적으로 반신경에 도달할 것이 분명해진 레너드다. 신화경의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는 소년을 그렇게 위험지대로 보내야할 이유가 없다.
“네 실력을 보여봐라. 만일 스스로를 지켜낼 역량이 부족한 수준이라면, 이 자리에서 당분간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겠다. 넌 말로 설득해봤자 들어먹을 성격도 아니니까 말이지.”
“문답무용(問答無用)입니까.”
그 막무가내에 실소한 레너드가 검을 뽑아들었다.
연무장도 아니고 숙소 주변이었지만, 출력만 다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여파를 걱정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반신경 강자 중에서도 데미안은 그러한 존재였으니까.
“지난번에는 내 상쇄를 깨트리지 못했지. 이번에는 좀 다를 거라고 기대해도 되겠냐?”
레너드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에 검을 들이밀었다.
“하, 좋은 대답이구만.”
카르데나스 가문의 백룡기사단장, 데미안과 두 번째 비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