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9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95)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청룡기사단의 단장, 그레이스를 필두로 한 청룡기사 전부가 ‘스프리건’과의 전선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황을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카르데나스가 작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각 전선의 현상유지를 위해서라면 청룡기사단을 한 곳에 다 투입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것도 무려 ‘스프리건’을 상대로 한 전력집중이라면, 그 차이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차원에서 전력을 투사하고 있는 외신과 외신숭배자들.
―그 절멸을 서둘러야할 이유가 없고, 어디에 숨어있는지 다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허신들.
―지옥문의 너머로 쳐들어가서 섬멸해야하는 마족들.
아르카디아 제국이 총전력을 동원하더라도, 각 전선의 원흉 자체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허신만큼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중간계와 인류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외신이나 마족들과 다르게 허신들은 옛 시대의 회귀만을 바라던 놈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데미안 단장님이 한 말씀대로군.’
아침부터 그 숙소 앞으로 나와있었던 레너드는 제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가문은 물론이고, 제국 전체가 움직이는 사안이다보니 정보량이 문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천족과 불가침을 한 것도 모자라서 ‘스프리건’까지 섬멸해서 3면전선을 만들겠다는, 아르카디아 제국의 결단력은 그 어느 세력에서도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청룡기사단의 편입은 그중에서도 시작점에 불과했다.
기사단장 두 명이 추가로 투입된다는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웨이드 단장님과 오드리 단장님. 기사단장 중에서도 경력과 실력 모두가 최고봉에 있는, 반신경의 극한급 강자 두 명까지 출정한다면 그 누구라도 깨달을 수밖에 없지.’
단장급만 네 명에, 기사단 두 개 규모의 정예병력.
아르카디아는 이 기회에 전선이나 조금 밀어두자고 하는 게 아니라 사활(死活)이 걸려있는 도박수를 꺼내들었다. 토벌대가 전멸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큰 피해를 입는다면, 전선 하나를 종결시킨 것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승전보가 돌아온다면…녹룡기사단과 제하이어 가의 전력까지도 타 전선으로 운용할 수 있겠군.”
레너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검 자루를 더듬거렸다. 그의 투쟁심에 공명하듯이 묵검이 한 차례 낮게 공명했다.
우우웅.
전운(戰雲)이 점점 부풀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이전 삶에서 경험했었던 혈교와의 전쟁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되는 규모였다. 세계수 위그드라실과 그 권능으로 변질된 ‘스프리건’ 역시 강적이었으나, 더 멀리 본다면 전초전(前哨戰)의 영역조차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다음부터가 진정한 의미에서 승부처라고 할 만한 순간이 될 거라고, 레너드는 직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
누군가가 빠르게 접근해오는 기척을 느끼고, 레너드는 그쪽 방향으로 제 몸을 돌려세웠다.
‘익숙하면서도 조금 생소한 느낌이 섞여있는데, 누구지?’
녹룡기사단에서 그의 안내역으로 기사 한 명을 보내겠다는 전언은 들었지만, 누구를 보내겠다는 설명까진 없었다.
용안의 공능으로 독수리보다 더 시력이 좋은 레너드다.
그 누군가의 정체라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설마?”
대호(大虎)보다도 큰 덩치의 늑대 위에서 내달리고 있는, 긴 머리카락의 소녀를 본 레너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훈련소에서 방계 혈족들의 리더로 활동했던 3번, 헤더가 몇 년만에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키가 다섯 척(150cm)하고도 절반은 더 될 것처럼 커진데다가, 팔다리까지 길다보니 인상이 전혀 달라져있었다.
“아! 조장이다!”
몇 초가 더 지나서 레너드를 발견한 헤더가 밝은 얼굴로 제 손바닥을 팔랑거렸다.
‘조장이라.’
레너드는 그 호칭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녀, 헤더에게 있어서 레너드라는 인물은 그날 야외훈련이 남겨놓고 간 기억이 그만큼 컸던 것이리라.
질풍처럼 달려온 늑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다리를 멈추고 몸을 기울이자, 안장도 없이 올라타있던 헤더가 허공으로 휙 뛰어올라서 몇 바퀴를 돌고 착지했다.
무예보다 곡예에 더욱 가까운 동작이었다.
“조장!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사춘기라고 할 만한 연령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더는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접근해왔다.
평범한 소년이었다면 몇 년만에 조숙해진 그녀에게 뜻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겠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정신연령이 남다른 레너드는 별 감흥도 없이 반응했다.
“그래, 무탈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하하하! 그러게, 조장 이야기라면 몇 번이나 들어서 귀가 따가울 정도였는걸! 조장하고 동기라니까 관심도 좀 받고.”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자니, 홀로 소외되어있던 늑대가 애처롭게 끙끙거리면서 울음소리를 냈다.
〈영수축양진결(靈獸畜養眞訣)〉을 각인했던 날부터 레너드는 놈의 주인이면서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헤더와 몇 년이나 같이 다니면서 친구가 되었다지만, 그가 명령한다면 그녀와도 떨어져서 지낼 것이다.
물론 레너드는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기에, 늑대의 콧등을 긁어주면서 그 체내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이 정도라면 상급 영물까지 자라나는데 10년도 필요하지 않겠어. 헤더와 동행하면서 업을 축적했던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모양이로군.’
남만야수궁에서 본 영물들 중에서도 이 늑대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던 놈은 없었다. 이쪽 세상에서 심법의 효과가 몇 배나 크게 작용한다지만, 늑대 본연의 영성(靈性)도 범상치 않아서 상승작용이 일어난 것이리라.
레너드는 놈을 평가하다가 그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헤더, 이름은 지어줬나?”
“응? 아니! 어째서인지 누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하더라고.”
그러자 늑대가 컹 하고 짖으면서 제 머리를 흔들거렸다.
놈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만약 그 여정에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그날, 너에게 내 직접 이름을 붙여주마.
이래저래 일이 복잡해지면서 늑대를 데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지만, 놈은 그 약속을 믿고 꾸준히 수련하면서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와있었다.
레너드조차 이 늑대의 성실함에 기특해하면서 말했다.
“너는 그 털가죽이 밤하늘처럼 검고, 짐승답지 않게 현명한 성품을 지녔구나. 널 현랑(賢狼)이라고 불러도 되겠느냐? 이쪽 발음으로는 ‘시엔랑’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자 늑대, 시엔랑이 기쁨에 찬 하울링으로 응답했다.
아우우우우우우??!
그 울음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반응하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대부분이 실력자다보니 큰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와! 조장이 지어주는 이름만 기다리고 있던 거구나!”
헤더는 그 광경에 크게 감탄하면서 시엔랑의 목덜미를 북북 긁어주었다. 마침내 제 이름을 갖게 된 늑대는 꼬리까지 붕붕 휘둘러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에 흡족해하던 레너드는 곧 헤더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본 늑대의 성장세도 대단했지만, 헤더와 비하자면 그 빛이 흐려질 정도였다. 용안으로 그녀의 경지를 간파할 수 있었던 레너드가 말했다.
“초월경을 돌파했었나? 그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누군가가 들었더라면 제 귀를 의심했을 발언이었다.
적룡기사단장의 아들, 윌리엄조차 초월경을 돌파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레너드와 같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보다 더 빠른 사람이 드물텐데, 헤더는 이미 초월경의 힘을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그 흐름마저도 안정적이었다.
헤더 역시도 그 질문에 놀란 것처럼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 그게, 조장이 생각하고 있는 거하고는 좀 달라서,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레너드가 계속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헤더가 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와 같았다.
―무예 이상으로 마법적성이 뛰어났는지, 외력경 10단보다도 6위계에 먼저 도달했다는 것.
―두 속성의 정령친화력이 드러나서 물과 바람의 중급정령과 계약했다는 것.
―마검사로서 활동하다보니 제 힘이 너무 중구난방이라, 세 가지 능력을 통합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그녀의 시도는 반 정도 성공했고, 반 정도는 그 성패(成敗)를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가버렸다.
초월경도 아니고, 7위계도 아니며, 최상급정령사도 아닌 힘.
그것이 바로 헤더가 녹룡기사단에 스카우트된 이유이자, 제 경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나한테도 그걸 보여줄 수 있을까?”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상관없는데…한다?”
“그래.”
늑대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한 헤더는 천천히 심호흡하더니, 이내 제 내면으로 의식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뭐지? 이질적인 기운이 두 개나 섞여있는데?’
용안으로 바라본 헤더의 몸 안에서, 불규칙적으로 요동치는 기운 두 개가 관측되었다.
순수하기까지 한 바람과 물의 기운이었는데, 혈도의 순서와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노닐고 있었다. 육체 본연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 것은 역천(逆天)의 마공과도 별반 다를 게 없었으나, 마공의 흐름과도 전혀 달랐다.
그러면서도 혈도를 상처입히거나 주화입마를 유발하지 않는 것 또한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레너드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위이이잉.
헤더의 심장에 새겨져있는 고리 6개가 일제히 회전하자, 그 장악력이 체내의 기를 가속시키면서 두 종류의 불규칙한 힘을 임맥과 독맥으로 들여보냈다.
그와 동시에 임독양맥(任督兩脈)이 활성화되었다.
“스으으으으으?….”
가늘고 긴 호흡으로 심신을 안정시킨 헤더가 눈을 뜬 순간, 흑백(黑白)의 안광이 양눈에서 짧게 흘러나왔다.
그 기의 밀도와 격은 틀림없이 강기에 도달해있었다.
초월경에 다다랐다는 증거다.
“헤더.”
자초지종을 들여다본 레너드가 놀란 얼굴로 질문했다.
“너, 서클을 이용해서 오러를 순환시킨 것도 모자라서 너와 계약한 정령들까지 체내에서 조작한 거냐? 아니, 장악력을 몸 안에 한정시켜서 일시적인 균형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는데.”
“그걸 한눈에 다 알아봤어?! 조장은 역시 대단하구나!”
헤더는 그 통찰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지만, 레너드는 제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성공시켜버린 자질과 운에 경악했다.
아주 조금만 잘못되었어도 정기신이 어긋나면서 주화입마가 일어나, 몸 안쪽에서부터 처참하게 터져나갔을 터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이라서 성공했을지도 모르겠군. 힘을 어설프게 제어하려고 했다면, 세 방향에서 가해진 힘이 서로 반발하면서 확실하게 실패했을테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이 경우라면 운이 구십구였다. 중원의 무학도 대부분 어리석음과 무모함을 딛고 선 것이었으니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체내에 정령소환을 한 것도 모자라서 오러와 같이 운용하는 짓을 한 것은, 이쪽 세상에서도 미친짓에 해당했으니까.
레너드는 본의 아니게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도달한 헤더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제 머릿속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는 것을 느꼈다. 깨달음을 얻기엔 모자라지만 그 단서가 될 만한 일을 마주했다는 뜻이었다.
“후, 일단 녹룡기사단으로 이동하자. 헤더, 네가 안내역으로 보내진 것은 확실하겠지?”
“응! 먼저 우루카 단장님부터 만나러가야해!”
그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 헤더가 늑대 위로 뛰어올랐다. 상급 영수에 가까워진 늑대, 시엔랑의 이동속도는 이미 초월경 무인보다 더 빨라져있었다.
“조장도 늑대, 아니 시엔의 등에 올라와! 엄청 편하다구!”
그에 레너드가 난감해하는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엔랑의 덩치가 좀 크긴 했지만, 방년의 소녀와 함께 탑승하는 것은 좀 유난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안 타도 괜찮다만.”
“시엔은 태워주고 싶은 것 같은데?”
헤더가 한 말마따나 끄응 하는 소리를 낸 시엔랑이 그 앞에 수그리면서 등을 낮췄다.
몇 년이나 내버려둔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일이었다.
짧은 고민과 긴 한숨을 교차한 레너드가 등 위로 올라타자, 시무룩했던 모습이 다시 의기양양해진 늑대의 네 다리가 크게 움직이면서 발 아래 지면을 후려쳤다.
파아앙!
순식간에 아음속까지 도달한 늑대가 [검의 숲]을 빠져나가, 전송마법진이 설치된 장소에 다다르는 시간은 불과 몇 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기마(騎馬) 이상으로 효율적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도 없겠군. 왜 헤더가 [늑대기사]로 유명해진 건지도 알겠다.’
헤더 본인보다도 시엔랑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늑대의 움직임에서 그 전투력을 읽어낸 레너드가 남 모르게 감탄하면서 털가죽을 두드려주었다.
“조,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전송마법진을 담당하는 마법사는 평소와 달리 신비협회에서 온 사람이었다. 위클라인 혈통은 ‘스프리건’의 구역 주변으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는 거대한 늑대를 보고 좀 놀랐는지, 당황을 다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멀티텔레포트]의 준비에 들어갔다.
그 사이에 레너드는 제 앞에 걸터앉은 헤더에게 말했다.
“헤더.”
“응?”
“이제부터는 날 이름으로 불러라. 다른 사람들은 그 호칭에 혼동할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한 번 부른 적도 있었잖나.”
〈성혈식〉을 진행하기 직전에, 헤더가 그를 이름으로 불렀던 기억이 떠올라서 한 말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추억을 기억해낸 헤더는, 꽃이 피어나듯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응! 레너드의 말대로 할게!”
전송마법진이 발동한 것은 그 직후였다.
늑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소년소녀를 감싸안듯이, 찬란한 마법광이 한 차례 번뜩였다.
파아아앗!
당연하게도 그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카르데나스 내부에서 이미 준단장급으로 분류된 혈족, 레너드는 그렇게 녹룡기사단에 파견되었다.
‘스프리건’과의 회전(會戰)까지 고작 한 달도 남아있지 않을 무렵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