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0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00)
고오오오오오오??.
아직 1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가 남아있음에도, 그 거체에서 뿜어져나온 열기가 느껴진다. 아지랑이 때문에 제 형상마저도 불분명한 거인이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열차 위에서 놈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입술이 바짝 말라붙어갔다.
서늘하게 흐르던 바람은 어느새 열풍으로 변해있었고, 하늘 위에서 떠다니던 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걸어다니는 천재지변 같은 놈이다.’
용안으로 놈의 실체를 본 레너드가 그 크기를 눈어림하면서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았다.
지표면에서 머리로 보이는 부분까지 무려 80미터가 넘는다. 방벽열차조차 놈의 허리춤을 좀 넘어가는 수준이었으니,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용암 자체의 밀량도 어마어마한데, 운동에너지까지 갖게 된 상태였으니 파괴력은 감히 추정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레, 레너드.”
녹룡기사단에 입단한 헤더였지만, 요령왕과 같은 개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신급의 존재가 흩뿌려대는 살의와 적의, 그 탁류에 직면한 헤더가 저도 모르게 레너드의 옷깃을 붙잡으면서 목소리를 떨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자가 더 용감하다는 격언처럼, 초월경에 도달해버린 헤더는 그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었다. 초월에 도달하면서 크게 성장한 스스로가 미물로 보일 정도로 엄청난 존재규모를 보유한 적을.
“괜찮다. 이쪽으로 올 생각은 없어보이니.”
레너드는 제 뒤에서 오들거리는 헤더를 진정시키며, 열차의 동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용암거인을 주시했다.
구역분류에 따르자면, 그쪽은 분명 F구역 방향이었다.
그 주변의 전력배치를 떠올려본 레너드가 피식 웃었다.
‘F구역이라면…내가 지원하러갈 필요는 없겠군.’
레너드가 이 전선의 특임관으로서 명령받은 일은, 단장급이 즉각 도달할 수 없는 구역에서 반신급 개체와 같은 변수들을 상대로 지연전투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다.
만약 ‘단장급이 도달할 수 있는 구역’이라면, 레너드는 그저 상황을 관망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스으으으으으??.
용암거인의 열기에 맞서듯이 그 맞은편에서 냉기가 일어나, 두 개의 상반된 기류가 크게 충돌하면서 방벽열차와 용암거인 사이에 소용돌이와 같은 돌풍을 만들었다.
상극(相剋)의 속성력이 대규모로 뿜어져나오자, 거침없이 제 발을 내딛던 용암거인도 놀라서 주춤거렸다.
그 일순간이었다.
자연검(Nature Blade)
용암거인, 불카누스가 다가서던 열차 위쪽에서 얼음으로 된 검이 생성되었다. 한 자루도 아니고 수십 자루, 하나하나가 몇 미터를 넘어가는 대형검.
강기공보다 더 막대한 힘이 내재되어있는 형태였다.
“레너드! 저건?!”
“청룡기사단장, 그레이스 경의 특이점이다.”
레너드는 간단히 설명해주면서 그레이스의 검을 회상했다.
‘방벽열차를 공략하려고 저렇게 몸을 키운 것 같은데, 하필 그레이스 단장님이 배치된 쪽으로 갈 줄이야.’
오대혼원(五大混元)으로 반신경에 도달한 그녀에게 있어, 저 용암거인의 몸뚱이는 그저 표적에 불과했다. 기사단장 중에서 가장 화력전에 특화되어있고, 내공의 순환효율이 너무 좋아서 전투지속력도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상성관계가 좋다.
콰아앙!
화살처럼 쏘아져나간 얼음검 한 자루가 작렬하는 순간, 그 부위가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굳지도 않고 흐르던 용암은 제 몸뚱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딱딱하게 식어, 암석의 형상으로 돌변하면서 곧 부서졌다.
화약병기와 달리 그레이스의 공격은 유효하다는 뜻이었다.
그오오오오오오?!!
불카누스도 그 위협을 알아차렸는지, 잠시 멈춰섰던 다리를 움직이면서 방벽열차까지 도달하고자 애썼다.
지금까지 놈이 상대해본 인간 중에서 그레이스 같은 존재는 없었다. 화약병기라면 수백 발 수천 발을 얻어맞아도 티가 안 날 터였고, 녹룡기사단장 우루카가 응전했다면 상당한 소모를 유도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던 그레이스의 출현은, 요령왕의 입장에서도 때 아닌 봉변이었다.
퍼어엉! 퍼엉! 퍼어어엉! 펑!
〈자연검〉으로 만들어진 얼음검 수십 자루가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고, 쏘아지는 것을 반복한다. 한 차례 작렬할 때마다 용암거인의 몸은 줄어들어, 80미터가 넘어가던 크기가 어느새 방벽열차보다 더 낮아져있었다.
제아무리 요령왕의 능력이 대단하다지만 반신급 사이에서는 그렇게 큰 격차가 아니었다. 몸을 크게 부풀린 대가로 밀도는 낮아져, 상대적으로 한 발 한 발의 공격력이 높은 그레이스가 쉽게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크게 문제없이 격퇴할 수 있겠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그걸 듣기라도 한 것처럼 용암거인의 패턴이 크게 변화했다.
구르르륵…! 구르륵…!
열차에 접근하는 것을 포기한 용암거인, 불카누스의 표면에 울룩불룩한 거품들이 떠올랐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 아니면 터져나오기 직전의 수맥과도 같이.
아직 수 킬로미터의 거리가 남아있어, 그 광경을 정확하게 포착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
당연하게도 레너드는 그 얼마 안 되는 인원에 속해있었다.
“이런!”
누구보다 먼저 불카누스의 의도를 간파한 레너드가 제 검을 모조리 꺼내들었다.
아공간주머니에서 튀어나온 검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그 주인의 명을 기다린다. 레너드의 반응에 놀란 헤더도 제 검을 뽑아들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쿠과과과과과과과과?!!!
불카누스가 임시로 만들어낸 육체, 용암거인이 폭발했다.
그레이스 때문에 거의 반토막이 난 상태였음에도 그 내부에 모여있던 열과 질량은 무지막지했다. 열차 근처에서 터졌다면 방벽의 마법진을 모두 발동시켰어도 동력부에 타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위력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대폭발의 충격파는 수 킬로미터나 확산되면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폭발로 산산조각이 난 용암거인의 파편은 방벽열차까지 도달하고도 남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화산의 폭발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그 분화구에서 흘러넘치는 용암이 아니었다.
“화산탄(火山彈)인가…!”
화산폭발의 충격으로 수 킬로미터가 넘는 사거리와 위력을 보유하게 된 용암은, 외부의 찬 공기에 냉각되면서 단단한 돌 따위로 변해서 투석기보다 더 위험한 투사체가 된다.
그래도 실제 화산이 아니다보니, 쇄설류(碎屑流)는 발생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오상류(五象流) 오검(五劍)
현무칠식(玄武七式)
귀갑빙천벽(龜甲氷天壁)
다섯 자루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레너드의 머리 위에 방어막을 만들어낸다. 돌풍을 일으켜서 그 궤도를 꺾어버리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화산탄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무분별하게 흘려냈다간 유탄에 사상자가 더 나올 수도 있었다.
녹룡기사들도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면서 역할을 수행했다.
혼자서 막아내진 못할지라도, 두세 명이 방어에 전념한다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다. 색색깔의 오러가 치솟으면서 열차 위쪽에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연색으로 물들었다.
그중에서도 활약상이 가장 특출한 사람은 그레이스였다.
터엉! 텅! 터어엉!
백 자루 가까이로 늘어난 풍검(風劍)이 현란하게 제 위치를 바꿔가면서 화산탄을 요격하고 있었다.
불카누스를 공격할 때와 다르게 바람으로 된 검을 운용하니 수천 발, 어쩌면 만 발이 넘어갈지도 모르는 화산탄을 모조리 흘려내고 튕겨버리는 절대방어가 완성된다.
레너드의 열 배가 넘어가는 범위를 지키면서도, 한 발도 안 놓치고 걷어내는 솜씨는 과연 단장급이었다.
“끄, 끝났나?”
우박처럼 쏟아져내리던 화산탄이 뚝 멎자, 방어막 아래쪽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지평선 너머에서도 원근법을 무시하는 것 같던, 용암거인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갑작스런 폭발 자체가 이 장소에서 도망치고자 한 눈속임인 듯했다.
“그놈,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은데?”
“하! 요령왕이니 뭐니 하더니 단장님들 앞에선 제 몸뚱이를 터트려가면서 꽁무니를 빼는군.”
“이번에야말로 스프리건, 그 개자식들을 끝장낼 수 있겠어!”
요령왕의 습격을 아주 간단하게 물리쳐버리니, 이 전선에서 계속 복무해온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치솟았다.
상성 덕분에 잘 싸운 것도 있었다지만, 반신급이 곧 전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두 세력이 패를 한 장씩 뒤집었다가, 원정대의 압승으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정대원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크게 울려퍼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전초전은커녕 탐색전도 못 되는 싸움이었지만, 결과가 좋고 나쁘냐에 따라서 그 분위기가 변하는 법이었다.
몇 세기나 정체되어온 전선을 밀어버릴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들을 벅차오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방벽열차의 인원 대다수가 환호하고 있을 때, 레너드만큼은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불카누스가 존재했던 곳, 대폭발로 크레이터가 생긴 지점을 내려다본 레너드가 긴 숨을 들이쉬었다. 그걸 본 헤더가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왜 그래? 공격을 막아주느라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불카누스가 너무 간단히 물러나준 것 같아서.”
그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 헤더가 반문했다.
“그레이스 단장님이 강했으니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물러난 거 아닐까? 마지막에는 자폭으로 눈속임까지 해가면서 도망쳐버렸잖아?”
아니, 하고 레너드는 제 고개를 흔들었다.
불카누스가 만들어낸 용암거인의 몸과 기세는 허장성세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무시무시한 존재감과 달리 의념에 묻어나오는 색이 너무나 희미했다.
성공하면 좋고, 아니라면 말고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스프리건의 사령관급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선견대(先遣隊) 역할로 나타났다는 느낌이 사라지질 않았다.
‘내 직감이 빗나간다면 좋겠지만, 만일 적중했다면 요령왕의 기습적인 등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기사단장들은 한 번만 치명상을 입거나 죽어버리면 그 즉시 전력에서 이탈되지만, 요령왕들은 그와 비슷한 타격을 입어도 위그드라실만 남아있다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체스판에서 죽어버린 말을 재활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략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있는 놈들을, 상식의 울타리에 갇혀있는 상태로 대적하려면 아주 까다로워진다.
“쯧.”
방벽열차와 같은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각 전선에 뿌리 내린 괴물들은 절대로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레너드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하면서 생각했다.
편하게 올 수 있었던 것은, 여기까지라고.
* * *
바로 그 다음날부터였다.
레너드의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고, 백 킬로미터 단위로 펼쳐져있는 방벽열차 곳곳에 요령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습격해온 것은 보레아스였다.
놈은 불운하게도 적룡기사단장, 웨이드가 있는 구역을 먼저 습격했다가 몇 분만에 부피의 반을 상실하고 후퇴했다. 만전 상태로 돌아오려면 며칠 정도는 걸릴 타격이었다.
세 번째로 습격해온 것은 테티스였다.
방벽열차의 진로를 가로막은 호수로부터 등장한 놈은, 물로 만들어진 분신체 수십을 조종하면서 제 독안개로 방벽열차를 휘감아버리려고 했다. 흑룡기사단장, 오드리의 글레이브가 그 본체를 노렸지만 분신체와 제 위치를 바꾸고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보군.”
네 번째로 등장한 요령왕, 키벨레(Cybele)가 보라색 안광을 번뜩이면서 레너드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키벨레의 권능은 부패(腐敗).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물질 전부를 썩게 만들어서, 부정형의 진흙덩어리로 바꾼다. 흙투성이 여인처럼 보이는 본체는 결국 키벨레의 옛 기억에서 나타난 허상에 불과하며, 그 발치에서 함께 움직이는 늪이야말로 진정한 본체였다.
아다만티움이나 오리하르콘 같은 특수금속도 부패의 권능에 접촉하면 몇 분을 버티지 못한다. 방벽열차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요령왕이 바로 키벨레였다.
“헤더, 물러나있어.”
레너드는 제 팔목에 걸려있는 아티팩트를 발동시키지 않고, 묵색의 검을 뽑아들면서 선기를 운용했다.
황금빛 서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면서 키벨레의 존재감으로 억압된 사람들을 북돋아준다. 레너드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선기의 공능은 그저 스스로를 격상시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키벨레에게 있어서도, 그 서광(曙光)은 눈에 거슬렸다.
■■■■■■■??!!
먼 옛날에 잃어버린 빛과 영광을 떠올리게 만든, 레너드의 존재 자체에 격노해버린 요령왕이 임전태세에 돌입했다.
부패의 요령왕.
제 이름을 증명하듯이 검게 썩어들어간 진흙을 토해내, 그 진흙으로 권속을 만들어낸다. 온갖 마물들의 형상으로 빚어진 토용(土俑)들은 그 주인의 악의를 대변하듯이, 보라색 안광을 내뿜으면서 열차로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