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0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08)
퍼엉!
이전에 한 번 교전해본 경험으로 반응속도와 움직임이 한층 더 정교해진 레너드가 찰나를 빠져나간다.
키벨레도 맹렬하게 공격을 거듭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직격타는 한 발도 없었다. 옷 끄트머리나 갑옷 가장자리가 스치거나 부식되는 정도로 전부 막거나 피하면서 시간을 번다.
몇 초만에 수십 번의 공격과 회피, 방어가 맞물리면서 눈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까지 난해해졌다.
‘키벨레가 아니라 보레아스, 불카누스였다면 위험했겠어.’
권능의 파괴력이나 응용력에 비해서 기(技)가 허접했다.
보레아스처럼 제 능력이나 전황을 이용하지도 않고, 능력을 최적화시켜서 주변상황에 적응하는 불카누스와도 다르다.
레너드에게 통용되지 않은 수법을 몇 번이고 다시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서, 머드웜들을 조종하는 패턴과 늪의 진흙파도를 물결치게 하는 패턴도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동신류(東神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의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오는 것은, 여전히 키벨레가 레너드보다 더 강하다는 증거다.
권능무력제압기(權能無力制壓技)
사필귀정검(事必歸正劍)
순리의 힘이 뻗어나오면서 진흙파도를 가라앉히자, 그 힘에 접촉당하기 전에 진흙과의 연결을 끊어버린 키벨레가 불쾌한 기색으로 으르렁거렸다.
그 대응을 보아하니 이전과 같은 상황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필귀정검〉이 진흙을 타고서 본체까지 도달하기 전에 그 접촉부위를 끊어내서 대전(帶電)을 막은 건가. 단순하지만, 더 효과적인 방법도 없지.’
그래도 〈사필귀정검〉을 본 키벨레의 경계심이 높아져, 계속 몰아쳐오던 공격의 흐름이 뚝 끊어졌다.
레너드는 그 사이에 심호흡하면서 몇 초만에 크게 소모당한 내공과 정신력을 회복하는데 전념했다.
‘아직 10초도 안 지나갔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지된다면 30초 정도는 어떻게든 될 것 같다만.’
체감시간의 가속 때문인지 1초가 10분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느샌가 제 목덜미가 축축해진 것을 깨달은 레너드가 쓰게 웃으면서 태세를 바로잡았다. 멧돼지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제 엄니만 들이밀어오는 상대에게, 반격은커녕 방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몰리고 있다.
위그드라실에게 무진장한 힘을 공급받는 요령왕들은 소모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존재이기에, 30초가 아니라 30분을 더 끌더라도 우열이 뒤집히거나 하진 않는다.
전세(戰勢)를 역전시키려면, 지난번과 같이 본체를 위협하는 수준의 공격이 성공해야했다.
‘아무래도 두 번 당해줄 생각은 없어보이는데.’
지난번 전투로 상대방의 수를 학습하게 된 것은 레너드만이 아니었다. 〈사필귀정검〉에 앞서 레너드의 내공이 청룡지기로 변환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키벨레는 그 속성변화를 읽고서 한 박자 빠르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레너드가 반격을 성공시킬 가능성은 없다.
북신류(北神流)
그러니까 수를 바꾼다.
최선의 수를 상정하고 대응한다면, 차선의 수를 꺼내들어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것 또한 전략이었다.
레너드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시간벌기에 불과하다.
1초라도 더 키벨레를 지연시킬 수 있다면, 〈동신류〉를 계속 고집해야할 이유도 없었다. 설령 〈사필귀정검〉을 직격시켜도, 현 시점의 레너드가 발현하는 수준에서는 키벨레를 역소환할 정도의 타격을 주지 못한다.
사면팔방제압기(四面八方制壓技)
동한백설래(冬寒白雪來)
그 효과범위 전부를 얼려버리는 광범위제압기. 눈송이 같은 형태로 바스러진 검강조각이 수천 수만 개나 흩날리면서 반경 100미터에 다다르는 영역을 정지시킨다.
‘부패’의 권능으로 모든 걸 썩혀버리는 진흙도, 그 영향권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점점 느려지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 ■■■■…!
제 살갗을 타고 올라오는 서리를 본 키벨레가 이를 갈았다. 〈동한백설래〉로도 늪 전체를 얼어붙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져있었다.
기동력이 안 좋은 편이었던 키벨레에게 이 감속은 여러모로 짜증날 수밖에 없는 족쇄였다.
진흙을 탄화시키거나 늪 자체를 증발시키는 열기보다 위협적이진 않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냉기도 키벨레에게 퍽 친화적인 속성력은 아니었다.
‘현무지기가 밀려나고 있다. 부패의 힘으로 얼어붙은 표면을 문드러지게 하면서 영향력을 제거한 건가? 직격했는데도 3초, 다음번에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벗어나겠군.’
본래대로라면 이 초식으로 발을 붙잡고, 〈사생유명검〉 같은 오의로 마무리했을 터.
그러나 키벨레의 본체를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이 무효화당한 이상, 추가적인 공격은 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레너드는 그 판단을 마지막으로 후퇴해서 수비태세를 굳혔다.
우루카가 언급했던 ‘30초’는 그냥 한 말이 아니라 단장급의 지원이 당도할 때까지의 시한이었다.
이제 20초도 안 남았으니 충분히 버틸 만했다.
■■■■■?.
레너드가 제 판단이 착오였다고 깨달은 것은, 그 직후였다.
수백 미터의 간격 너머에서 증오와 살의로 일렁거리는 눈이 둥글게 휘어진다.
노골적이기까지 한 비웃음이다.
키벨레는 그렇게 조소하면서 두 팔을 벌려, 발치에 펼쳐진 늪으로부터 흙더미를 높게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수 미터, 수십 미터나 솟아오르는 진흙탑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 콤마 몇 초만에 100미터를 넘어서 그 위로, 하늘 너머까지 솟아오르는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뭣?!’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본 레너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진흙탑에 호응하듯이, 지상으로 제 몸을 낙하하고 있는 소용돌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합격기.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과 동시에 레너드의 옆에 우루카가 내려앉았다.
{저지할 수 없었네. 나의 실책이로군.}
천 배 이상으로 가속한 체감시간에선 말을 주고받는 속도가 너무 느려졌기에, 그들은 의념으로 소통해야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보레아스와 키벨레가 크게 나왔네. 우리들이 시간을 끌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최대출력을 낸 거겠지. 놈들로서도 도박수에 가까운 판단이겠지만, 이쪽보단 잃을 게 없으니.}
실시간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진흙탑과 소용돌이,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의 용량만큼은 단장급 서너 명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막대했다. 요령왕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저 힘이 터져나온다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오리라.
그리고 우루카는 그 의도를 꿰뚫어본 것처럼 침음했다.
{저렇게 힘의 크기만 부풀려봤자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모를 리 없어. 자네와 나를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비효율적일세.}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한 줄기 벼락이 스쳐지나갔다.
{……방벽열차!}
우루카가 그의 독백에 공감하듯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래. 우리들이 좌시할 수 없는 대상이면서, 막대한 소모를 강요할 수 있는 표적이지.}
{교활하군요.}
{명심하게. 놈들은 미쳐있는 것이지, 어리석은 것이 아니야. 광기(狂氣)는 가끔 현인들의 지혜마저도 뛰어넘는 법이니.}
그 충고를 남긴 우루카가 다시 날아오르면서 〈멸혼검〉으로 오러드래곤을 불러냈다.
보레아스와의 공중전에서 힘을 좀 소모한 모양인지, 형체가 처음보다 많이 흐려져있었다. 레너드 역시 선기를 점검해보니, 반신경의 격을 동원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정도였다.
그리고.
쿠과과과과과과과과??!!!
키벨레의 진흙탑과 보레아스의 소용돌이가 만나는 순간, 두 개의 권능이 뒤섞이면서 파편화된 진흙이 소용돌이의 와류를 타고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조악하면서도 무식하기까지 한 합격기(合擊技)였다.
‘설마 [삭풍]으로 잘게 쪼개진 [부패]의 흙을, 모래폭풍처럼 만들어서 방벽열차에 부딪힐 셈인가?!’
레너드는 그가 전생에 본 타클라마칸의 모래폭풍을 떠올려, 요령왕들의 노림수를 정확히 간파했다.
두 종류의 권능이 깃들어있는 모래폭풍이다.
‘삭풍’의 칼바람이 먼저 방벽열차 외벽을 손상시킬 것이고, 칼바람에 미세입자가 된 ‘부패’의 흙을 들이마신 녹룡기사들은 얼마 못 가서 체내가 썩어문드러져 사망하게 될 터였다. 구역 하나가 전멸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위기였다.
방호결계를 최대출력으로 전개해도, 요령왕 두 마리가 바로 눈앞에서 발동한 합격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단장님과 내가 막아내는 수밖에.’
빈말로도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심상무예를 한계까지 사용한 레너드는 그렇다쳐도, 그 특이점부터가 영체살해에 특화한 우루카는 화력 자체가 크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아니, 7명의 단장들 중에서도 많이 떨어지는 편에 속해있었다.
요령왕처럼 출력면에 특화한 반신급과는 상성이 안 좋다.
서신류(西神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선기를 끌어올려서 백호지기로 전환한다.
무아지경에 들어간 레너드가 옛 격언을 떠올려보았다.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이라, 실로 그 말대로군.’
생사지간의 난관을 돌파하는 것보다 더 무인을 성장시키는 경우도 없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 거론하기를, 생사가 한 번의 호흡 사이에 존재한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멀리 볼 것도 없이 하루도 멀고, 한 끼도 멀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나 찾아야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인이란, 그 찰나를 베어가르는 칼날 위에 목숨을 올려놓은 부나방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본 레너드의 검이 평상시보다 더 깊고 날카로운 궤적을 만들어냈다.
만휘군상절단기(萬彙群象切斷技)
참천절운(斬天截雲)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져내리는 태산압정의 일격.
모래바람을 두 동강내겠다는 기세가 고스란히 드러난, 신수 백호의 앞발길질이 공간마저 찢어내는 참격을 토해낸다.
“큽!”
드래곤하트의 공능으로도 다 회복되지 않은 내공과 선기가 밑바닥을 드러내고, 보레아스의 저격으로 입었던 내상이 다시 도지면서 목구멍으로 피가 올라왔다.
레너드는 그걸 다 삼키지도 못하고 입 밖으로 흘려보내며, 다시 한 번 묵검을 들어올려서 기수식을 취했다.
일격으로는 안 된다.
개념의 영역에서는 한 걸음 앞서있더라도, 격이 대등하다면 출력의 우열은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만휘군상절단기(萬彙群象切斷技)
참천절운(斬天截雲)
이격(二擊) 십자열공참(十字裂空斬)
두 번 연속으로 쏟아낸 〈참천절운〉이 열십자로 교차하면서, 그 진로상의 공간을 찢어발기면서 모래폭풍에 다가섰다.
콰아아아아아아?!!
〈십자열공참〉이 모래폭풍의 허리 부근에 작렬하자, 그 표층 기류가 잘려나가면서 내부의 힘이 흘러나왔다.
모래폭풍을 네 조각으로 쪼개버리진 못했으나, 세상 전체를 갈아버릴 것 같았던 기세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방벽열차로 나아가던 모래폭풍이 주춤거리는 순간에 맞춰서, 우루카도 제 검을 내리그어서 오러드래곤을 조종했다.
드래곤 스트라이크(Dragon Strike)
유성과도 같이 떨어져내린 오러드래곤의 형체가 모래폭풍에 작렬하는 순간, 그 여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면서 격이 부족한 생명체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물리적으로 발생한 충격파가 아니다.
영적으로 발생한 힘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영체 상태로 그 후폭풍에 휩쓸려버린 스프리건들은 완전히 소멸해버린 놈들도 적지 않았다.
모래폭풍을 만들어낸 요령왕들조차 앗 뜨거라, 하고 물러날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나…!”
두 사람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모래폭풍은 아직 형태를 남기고서 방벽열차로 접근하고 있었다.
얼마 안 남은 힘이라도 초월경 수준의 무인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쳤다. 상황을 파악하고 열차 내부로 대피한다면 생존자가 제법 나오겠지만, 스프리건들과 교전하고 있던 와중에 재빨리 후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 레너드의 담당구역이 초토화되는 결과는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아라드와르(Areadbhar)
지평선 너머에서 쏘아져나온 빛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레너드의 인지속도를 넘어선 빛은 그대로 모래폭풍을 향해, 〈십자열공참〉과 〈드래곤 스트라이크〉의 데미지로 너덜거리는 표면을 돌파해서 그 안에 파고들었다.
■■■■■■?!?
키벨레보다 먼저 보레아스가 반응했다.
거대독수리의 형상에서 수천 가닥의 깃털이 쏟아져나오면서 회피불가의 탄막을 구축한다.
푸확!
그러나 〈아라드와르〉는 그 포위망을 간단히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서 보레아스의 몸뚱이까지 산산조각냈다.
신검합일의 태세로 빛이 된 웨이드가 돌진하는 필살기.
외신의 사도 두 마리를 일순간에 도륙내버렸던 기술은 감히 요령왕이라도 감당할 수 없었다. 키벨레는 뒤늦게 보레아스의 역소환을 알아차리고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라드와르〉가 그 뒤를 추격하면서 수백 미터 지하가 갑작스럽게 용암층으로 변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키이이이잉.
지상으로 올라온 빛, 〈아라드와르〉가 흩어지면서 그 안에서 웨이드가 걸어나왔다.
수십 킬로미터를 전력으로 주파한 탓에 안색이 창백했으나, 표정이나 몸가짐은 평소와 다를 게 없어보였다. 그는 제 곁에 다가온 우루카와 레너드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납검했다.
“음.”
언제나처럼 근엄한 분위기를 한 웨이드가 입을 열었다.
“전선사령관의 지원요청을 받고 왔다만, 아무래도 제시간에 맞출 수 있었던 모양이로군.”
동력원을 잃어버린 모래폭풍이 그 뒤에서 무너져내렸다.
그건 요령왕 셋의 기습공세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증명과도 같은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