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1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13)
―아아…!
‘그녀’는 한탄하고 있었다.
그 탄생이 언제였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생명의 나무. 수액 한 방울만 떨어트려도 사막을 초원으로 바꾸고, 초원을 삼림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본래대로라면 제 몸에서 흘러넘친 생명력으로 온 세상을 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건만, 사악한 신이 남겨놓고 간 흉터가 그걸 방해하고 있었다. ‘그녀’조차도 의식이 아득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은, 때때로 시간의 경과마저 알 수 없을 만큼 지독해질 때가 많았다.
밤하늘처럼 검고 사악한 비늘로 덮여있는, 비웃음과 악의로 점철되어있던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하기만 했다. 죽음으로 온 세상을 물들이려던, 사악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베르단디…! 우르드…! 스쿨드…! 생명수를, 제게 생명수를 부어주세요…! 외적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대로라면 버틸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녀’를 보살펴야할 여신들은 언제부터인가 말이 없었다.
아스가르드까지 솟아나있는 가지에 생명수를 부어, 그 힘을 북돋아야할 여신들이 응답하지 않는다. 멸신전쟁으로 다 죽고 사라져버린 신족들이 대답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몇 번이고 계속 부르짖었다.
시간감각도,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도 모두 [니드호그]의 독 때문에 망가져버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아직도 옛 시대에서 사악한 신의 앞잡이들과 투쟁하고 있었다.
―…잔혹하기까지 한 불길과 강철의 냄새, 너희들도 그 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을 짓밟으러왔느냐.
‘그녀’에게 있어서 스프리건은 여전히 정령이었고, 트렌트는 제 몸의 일부분과도 같았다. ‘그녀’ 자신의 타락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스프리건과 트렌트의 오염과 변질을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기동요새와 비공선은 사악한 신의 사도나 마찬가지였고, 사명감과 전의로 무장한 기사들의 투쟁심은 곧 악의의 활화산과도 같이 느껴졌다.
―미안하구나, 내 아이들아.
생명의 어머니로서 제 역할만은 잊지 않은, ‘그녀’가 부족한 힘을 쥐어짜내서 아이들을 불렀다.
정령계로부터 일탈하여 ‘그녀’의 품에 남아준 아이들이다.
보레아스, 테티스, 불카누스, 키벨레.
요령왕으로 타락한 상태에서도 ‘그녀’에 대한 공경만은 계속 지켜온, 정령왕들의 오염체가 그 부름에 응답했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영체가 다시 부풀어오르면서, 허락된 것 이상의 힘과 권능을 부여받는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묵묵히 감내하고 적을 맞이하러간다.
―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지켜야해.
모성애와 집착이 뒤엉키고 눌러붙어서 광기로 물든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명령했다.
―적을, 해치워.
요령왕들은 복종했다.
* * *
위그드라실이 결단해버린 순간, 그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계법칙의 흐름을 관조하는 것이 가능한, 반신 수준에 도달했거나 거의 근접한 자들만이 직감했다.
‘세계’가 움직였다.
태풍이나 지진, 화산활동과 같은 영역에서 꿈틀거리던 힘이 일순간 스쳐지나갔다. 그 유동(流動)은 마치 해일이 시작되기 직전에, 파도가 크게 물러나는 것과 닮아있었다.
그것을 감지하자마자 우루카가 제 권한을 발동시켜서, 계속 나아가던 기동요새의 전진을 멈춰세웠다.
무언가가 온다.
반신경급의 강자들도 긴장해야하는 돌발상황이.
그리고.
?????????!!!!
그 효시(嚆矢)로서 폭풍화살이 날아들었다.
한두 발도 아니고, 열 발이 동시에.
보레아스의 권능으로 형성된 투사체가 일제히 비공선단으로 들이닥치고, 그레이스조차 다 막아낼 수 없는 힘과 속도로 열 척의 비공선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선단의 3할 가량이 한 번에 파손되었으나, 비공선의 용도는 하나 더 남아있었다.
“오오? 출력을 더 높였다고? 그래봤자지! [최대가속]!”
타격지점을 설정한 그레이스가 명령어를 읊자, 연기와 불로 휘감겨있었던 비공선들이 다함께 속도를 높였다.
수십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보레아스를 노릴 순 없었다.
그래도 기동요새의 진로상에 있는 장애물들을 치우고, 영역 내부의 간섭력을 조금이나마 밀어낼 수는 있었다. 폐기처분이 확정된 물건으로 그 정도 전과라면 수지타산이 맞는다.
하지만.
쿠워어어어어어어??!!
옆구리에 구멍이 난 비공선들이 추락하던 지점, 그 지면을 뒤집어버리면서 거대한 용암거인이 솟구쳤다.
요령왕 불카누스.
80미터 규모로 나타났을 때 이상으로 크고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지는 동체가 보자기처럼 펼쳐진다. 비공선 열 척으로부터 발생하게 될 폭발을 막아내고자, 제 상반신으로 그걸 모조리 받아내서 집어삼켜버린 것이다.
그런다고 자폭명령이 실행된 비공선의 폭발이 멈추거나 할 리도 없었다. 불카누스의 체내에 빨려들어간 비공선들은 얼마 안 지나서 기폭해버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비공선 열 척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그 충격파가 불카누스의 체내에서 팽창한다. 복어의 배처럼 부풀어오른 몸뚱이는 이미 기동요새마저 넘어가버린 크기였다.
테티스나 키벨레, 보레아스라면 버틸 수 없었을테지.
[니드호그]의 독으로 변질되었지만, 그 본연의 속성력은 큰 차이가 없다. 물과 땅과 바람. 막대한 열과 압력을 받아버리면 본체까지 증발하고, 녹아버리고, 타버린다.상성적으로 불리점이 존재하지 않는 요령왕, 불카누스만이 완벽하게 감당할 수 있었다.
“…버텨냈어? 그걸?”
그레이스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놈을 내려다보았다.
비공선 열 척을 집어삼켰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랐으나, 몸 안에서 폭발을 진정시켰는지 그 상반신의 팽창이 점점 가라앉는 중이었다.
열 척을 동시에 터트린다면 기동요새도 상당히 큰 데미지를 각오해야할 텐데, 그 위력을 감당해내다니? 열과 압력에 강한 정령왕의 오염체라지만, 내구력이 도를 넘었다.
“상성적으로 불리한 공격이었다지만, 힘의 규모를 감안하면 저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는데.”
레너드와 함께 전장을 바라보던 오드리가 말했다.
“역시 위그드라실이 개입했구나. 너도 느꼈겠지?”
“예, 터무니없는 존재감이 움직였습니다.”
“요령왕은 결국 정령에 기반하고 있는 존재란다. 그 본연의 존재방식은 여전히 정령과 다를 게 없어. 공급되는 힘의 양에 비례해서 격과 권능이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지.”
무예와 마법을 깊게 수련하고, 업을 쌓아올려서 격 자체를 높여야하는 필멸자들과는 그 경우가 다르다. 자연계의 일부로 취급되는 존재였기에 힘만 충분하다면 신격도 될 수 있었다.
물방울이 모이다보면 웅덩이가 되고, 연못과 호수를 거쳐서 바다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만약 위그드라실이 무진장한 힘을 공급할 수 있다면, 4체의 요령왕은 전부 신격에 도달했으리라. 그 뿌리에 깊게 밴 독을 제거하지 못했으니 악신으로서 탄생했겠지만.
그러나.
“위그드라실이 직접 강화했는데 저 정도라면, 놈도 그다지 여유로운 상태는 아니겠구나. 조금 안심했단다.”
기사단장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만 아니라면, 위그드라실 본체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패퇴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드리는 그렇게 확신하면서 제 글레이브를 만지작거렸다.
그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흘러넘친 투기가 얼마나 농밀한지, 레너드조차 한 걸음 물러서게 할 정도였다.
기동요새를 가로막고 선 용암거인에게 달려들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그레이스가 먼저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의 머릿수가 넷이고, 기사단장도 넷. 1대1의 구도를 무너트리면, 상대쪽에서 파고들 수 있는 허점이 발생한다.
“엇?”
“호오.”
그때였다.
정지명령으로 멈춰있었던 기동요새가 발이라도 빠진 것처럼 몇 미터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정도로 무게중심을 잃거나 할 실력자들도 아닌지라,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기동요새의 벽 너머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네 마리가 전부 나타났군요.”
“음, 이제 단장들도 본격적으로 나서야겠구나.”
기동요새의 하단부는 물론 발이 아니라 바퀴로 움직이지만, ‘빠졌다’는 표현 자체는 아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아직 몇 미터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빠져들고 있었다.
요령왕 두 마리가 만들어낸 무저갱으로 가라앉아간다.
‘키벨레와 테티스의 합작품인가. 머리를 잘 굴렸군.’
‘부패’와 ‘독수’의 상호작용으로 땅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기동요새를 무력화할 의도가 보였다. 문제는 그 수법이 제법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는 점이었다.
기동요새의 중량은 산 하나가 움직이는 수준으로 무거웠고, [경량화]에 관련된 마법진은 각인되어있지 않았다. 그 엄청난 크기 덕분에 지표면을 모조리 다져버리면서 움직일 수 있었던 거지, 기동요새마저 빠트릴 수 있는 늪을 준비한다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기사단장들도 그 상황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지상을 내려다보고 벽 위로 올라선 오드리가 레너드에게 씩 웃어보였다.
“나도 가봐야겠다. 레너드, 몸 조심하렴.”
오드리가 벽 너머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요새 어딘가에 머물러있던 우루카도 떨어져내리는 게 보였다.
키벨레와 테티스는 그들 두 사람이 상대할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요새에 남게 된 웨이드는.
플람베르크(Flamberg)
시간을 가속시켜서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하더니, 보레아스가 계속 저격을 쏘아대는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그걸로 요령왕과 기사단장의 일대일 구도가 전부 마무리된 셈이었다.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 된 반신경들의 전투에 끼어드는 것은 어렵다. 수십 킬로미터 밖으로 멀어져버린 웨이드는 물론이고, 초대형 용암거인과 대적하고 있는 그레이스나 무저갱의 늪에 내려선 단장들에게는 방해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레너드는 저 너머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한, 용안으로 겨우 보이게 된 거목(巨木)의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마침내 그 진면목을 드러내셨나.’
지평선보다 더 멀리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뿌리 부근은 안 보였지만, 구름 위쪽으로 솟구쳐있는 기둥만큼은 보지 못하는 쪽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
원근감(遠近感)을 감안한다면 진작 보였어야할 크기인데, 이 국면이 도래하고 난 다음에서야 눈에 들어왔다. 보는 자들의 인지능력을 저해하는 권능이라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영역의 간섭력이 위그드라실을 은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수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시력으로도 그림자만 옅게 내비치는, 그 거리에서도 짙게 느껴지는 존재감.
‘세계수, 위그드라실.’
아르카디아의 대적 중 하나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육이 압도당해,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오고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가려고 한다.
레너드는 그 위압을 정신력으로 떨쳐내면서, 묵검을 움켜쥔 손아귀에 기를 흘려넣었다. 비공선단은 아직 7할 가까이 남은 상태였고, 기동요새도 제 기능을 잃지 않았다지만 단장급들이 빠져나간 상황이다보니 방위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 틈을 간과해줄 정도로, 위그드라실은 어수룩하지 않다.
“온다???!!”
창룡후로 거칠게 내지르면서 검을 들어올리자, 백색 검강이 찬란하게 피어오르면서 그 일대를 내리눌렀다.
단장들의 싸움 때문에 사주경계가 소홀해졌던 자들이 겨우 현실을 깨달았다. 지평선부터 시작해서 기동요새의 수백 미터 앞까지 득시글거리는 스프리건과 트렌트들이 악의로 일그러진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광선공격에 특화해있던 형태의 약점을 알았는지, 두 다리를 거미와도 같이 변형시킨 트렌트들의 기동력은 무시무시했다.
그 잔뿌리의 마찰력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능력마저 갖춘 것 같았으니, 철저히 기동요새를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서신류(西神流)
만휘군상절단기(萬彙群象切斷技)
참천절운(斬天截雲)
수직베기가 아니라 수평베기의 형태로, 아래쪽을 향해서 그 검력을 방출했더니 개미떼처럼 몰려오던 놈들의 허리 부근을 절단내버리는 형태가 된다.
개념영역에서 공간마저 베어버리는 참격이 내리꽂혔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숲 한복판에 갑자기 천인단애(千?斷崖)와 같은 낭떠러지가 생겨나, 기동요새만 보고 내달리던 스프리건과 트렌트 수백이 우르르 떨어져내렸다. 멈추려고 해봤자 그 뒤에서 밀려들어온 놈들에게 부딪히면서 몸만 더 뭉개질 뿐이었다.
비행능력을 가진 놈들도 그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놈들에게 짓눌려서 벼랑 밑바닥까지 처박혀버렸다.
레너드의 노림수대로, 돌진하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총원! 단장님들의 개선(凱旋)까지 요새를 사수하라!”
이 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답게 그 태세를 정돈하는 속도가 과연 신속하다. 얼마 안 되는 시간으로 임전태세가 된 병력들이 결연한 얼굴로 제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타이탄 사수들도, 요새 내부에서 방벽의 마법진을 관리하고 있는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직감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라고.
스프리건 전선의 원흉, 위그드라실의 토벌이 시작되는 것은 틀림없이 지금 이 순간부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