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1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16)
쿠구구구구구……!
6조각으로 토막나버린 용암거인, 아니 암석거인의 몸뚱이가 그대로 흩어지면서 숲 곳곳에 떨어져내렸다.
불운하게도 그 범위에 들어간 스프리건이나 트렌트 따위는 곡소리도 못 내고 으스러졌으며, 혈액처럼 쏟아져나온 용암이 그걸 불태우면서 때 아닌 화재를 불러일으켰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영역에서 불길이 번진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사태였다. 화재의 근원이 된 용암, 그 내부에 아직 불카누스의 격이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용안까지 쓸 것도 없이 전후사정을 파악한 레너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불카누스의 본체는 안 죽고 살아남았나보군.’
막대한 힘을 저장해뒀던 화신체(化身體)를 잃었으니 상당히 큰 타격이겠지만, 그렇게까지 만족스러운 전과는 아니었다.
위그드라실이 건재한 상황에서 요령왕들을 완전히 전장에서 이탈시키려면, 역소환시키는 것 외엔 방도가 없었다.
“못 잡았어?”
그의 눈빛에서 불만스러운 기색을 읽었는지, 그레이스가 제 얼굴을 들이밀면서 질문했다.
레너드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 내공을 조율했다. 현무지기와 백호지기가 원상복귀하니, 두 기운으로 치우쳤던 균형이 즉시 정상화된다. 〈오행일원〉의 상태를 안정시킨 레너드가 다시 제 입술을 달싹거렸다.
“도망쳤습니다. 이쪽의 합동공격을 받아내지 않고, 화신체를 미끼로 써서 본체를 빼돌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긴, 내 〈서리검〉도 완벽하게 들어갔다지만 너무 손맛이 없었어. 부드러웠던 움직임도 영 뻣뻣해보였고.”
투박해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불카누스는 요령왕 중에서 그 교활함과 영악함으로 유명한 존재였다.
힘의 저장량에서 우위를 점해봤자, 상성적으로 불리한 강자 두 명에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 도망쳐버린 것이다. 명예, 긍지,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는 존재였기에 그 결단력은 과연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결과적으로 요령왕 하나를 잠시 물러나게 한 셈이었다.
‘〈사생유명검〉, 〈동한백설래〉, 〈십자열공참〉까지 연속해서 발동했는데도 숨만 좀 차오르는 정도인가.’
〈십자열공참〉은 사실 〈참천절운〉을 두 번 연속으로 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심상무예만 네 번 구현했던 것이다.
경지돌파 이전의 레너드였다면 곧 탈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신세맥을 혹사시킨 대가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터다.
그런데 반신경이 된 레너드의 몸은 평온하기만 했다.
‘기술의 위력과 발동속도가 몇 배나 증가했고, 개념영역에서 작용하는 힘 자체도 상승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동한백설래〉가 한 번에 불카누스의 화신체를 멈췄던 것만 생각해봐도 그러했다. 아직 사용해보지 못한 기술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강화되었을 게 분명했다.
레너드는 그걸 자각하고 난 다음에서야, 반신경에 올랐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세계법칙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는 권능과 특이점은 다르다.
초월경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이점은 결국 세계법칙의 굴레에 묶여있는 상태였으며, 그 제한을 벗어나려면 반신경에 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신경이 된 기분은 어때?”
그레이스가 그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질문해왔다.
“필멸자가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최소자격. 무예와 권능이 겨우 대등해지기 시작하는 영역이 반신경이지. 눈에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귀에 들리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질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레너드도 알고 있었다.
무공(武功)에서 도가와 불가의 사상을 중점적으로 채택하고, 환골탈태의 개념을 모방하고, 우화등선의 경지를 종점으로 한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지혜를 품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원숭이의 처지를 넘어 상위존재로 거듭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경지 하나를 넘어설 때마다 스스로가 더 우월해졌다고 실감하게 된다. 외가기공을 좀 수련한 삼류조차 자신의 몸뚱이가 강인해졌음을 느끼고, 기를 다루기 시작하는 이류와 일류부터는 그 감각부터 크게 달라져버린다.
‘인지력(認知力)이야말로 수련자의 격을 증명하는 법이지.’
삼류에서 몸 쓰는 법을, 이류에서 내공의 존재를, 일류에서 그 운용법을 깨달으면서 점점 인지력이 확장되어간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제 의지와 기가 호응하기 시작하는 경지가 바로 절정이며, ‘고수’의 영역에 한 발 들여놓은 수준이었다.
초절정부터는 몇 걸음을 더 나아가서 의지가 기를 강화하고 변형시키는 수법을 터득하며, 정기신의 합일로 상단전을 열게 된다면 조화경으로 진입하게 된다.
[의념]을 지각하고 다루는 것이 그 시작점이었다.‘아직까지도 떠올릴 수 있다. 전생의 내가 조화경에 들어선 날, 스스로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치면서 느낀 전능감(全能感)을.’
그와 동시에 조화경의 고수들은 알 수밖에 없었다.
현원경은, 생사경은 이보다 더 크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존재들이라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신선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라고.
세계법칙을 직접 관조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레너드도 그 영역에 들어가있었다. 그동안 스스로가 머물렀던 곳이 얼마나 완만하고 낮은 산중턱에 불과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음.”
그레이스와의 잡담으로 숨을 다 돌린 레너드가 이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2대2의 구도에서 맞부딪히고 있었던, 오드리와 우루카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상성적으로 제법 우위에 선 상태라지만, 상대방이 버티기에 전념한다면 승부가 나지 않는다. 힘의 저장량이 전투지속력을 보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ㅡ!
계속 도망다니면서 시간벌이에 치중하던 키벨레가 날카롭게 외치자, 그 소리에 반응한 테티스의 몸이 새벽녘 물안개처럼 흩어져버렸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물방울로 흩어진 것은, 요령왕 테티스의 본체가 틀림없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삼십육계(三十六計)였다.
“어딜!”
“내버려둘 것 같은가.”
오드리와 우루카도 그걸 놓치지 않고 돌진했으나, 키벨레가 그 앞을 가로막듯이 무저갱의 늪을 일으켜세웠다. 기동요새가 빠져버릴 정도로 깊고, 끔찍한 독기마저 스며들어있는 진흙의 파도가 크게 솟아오른다.
콰과과과과과과?!!
그에 맞서서 오드리가 한 발 앞으로, 우루카가 한 발 뒤로 위치하면서 정면으로 달려들어갔다.
멸절(Extermination)
칠흑의 구체가 두 사람을 보호하듯이 둘러싸고,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진흙해일 안으로 진입했다. 제아무리 큰 힘이라도 단위면적의 밀도로 겨룬다면 오드리에겐 이길 수 없었다.
그걸 증명하듯이 ‘멸절’의 구체가 바로 진흙파도를 처참하게 찢어발기면서, 두 기사단장의 접근을 성공시켰다.
이 간격에서 그들로부터 살아남을 길은 없었다.
“고작 한 마리로 만족해야하는 것은 아쉽다만, 동료를 살려보내고자 목숨을 건 것은 기특하구나.”
오드리는 그렇게 찬사하면서 스스로의 글레이브를 내리쳐, 마지막까지 두 눈동자가 악의와 증오로 물들었던 진흙여인의 형상을 산산조각냈다.
부패의 요령왕이 역소환당하는 순간이었다.
테티스가 이탈하고, 키벨레도 사라지면서 무저갱의 늪은 곧 정상화되었다. 기동요새가 다시 늪 바깥으로 굴러나오면서 몇 겹인가 빨려들어갔던 방벽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수십 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부패’와 ‘독’이 함께 갉아먹은 방벽은 흉물스럽게 일그러져있었다.
그리고.
???????!!!
저 너머에서 들려온 귀곡성과도 같은 비명소리에, 반신경의 실력자들은 모두 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레너드도 마찬가지였다.
초월경 수준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었던 지각력이 한층 더 넓어지면서, 수십 킬로미터 너머에서 일어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범위까지 성장했다. 삭풍의 요령왕, 보레아스의 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보레아스가 역소환당했군.’
생각해보면 그 웨이드를 상대로 여태까지 버틴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기동력에 특화한 요령왕이라도, 시간축을 뒤틀어버리는 괴물 앞에선 큰 의미가 없을테니까.
위그드라실과의 결전에 대비해서 힘을 뺀 것도 있을테지만, 전심전력이 아니라고 해도 그 전력차는 절대적이었다.
키벨레와 보레아스.
2체의 요령왕이 역소환당하면서 위그드라실은 손패 두 장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하지만 요령왕이 두 마리 줄어들었다고 해서 적 전력이 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생각해선 안 되겠죠.”
“뭐, 그렇지. 여러모로 성가시다니까.”
그레이스가 제 눈썹을 신경질적으로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요령왕 4체에 분산되어있던 힘의 공급이 2체에 집중될테니 더 위험할지도? 출력이 높아지면 격도 상승하는 놈들이니까, 신격화까진 아니라도 그 경계에 가까워질 수도 있어.”
“이 자리에서 4마리를 전부 역소환시킬 수 있었다면 최선의 결과였겠지만…저쪽도 그걸 모르진 않았겠군요.”
자기희생에 가까운 방식으로 테티스를 도망치게 한 키벨레. 그 돌발행동은 동료애 따위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어쭙잖게 둘 다 살아나가려다가 전멸하거나 치명상을 입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나가 남은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의 눈에, 지평선 너머에서 승전보를 가지고 온 웨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플람베르크〉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트렌트 등이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웨이드 경이 돌아왔네. 우리들도 합류해볼까?”
레너드가 말 대신에 납검하는 것으로 대답하자, 그레이스는 제 손등의 각인을 들어올리면서 비공선단에 명령했다.
“[정지. 현 위치에서 최대고도까지 상승해라. 자기방위 외의 목적으로 자율기동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 명령어를 수신한 비공선들이 일제히 정지하더니, 고도를 상승시켜서 구름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레아스의 저격으로 3할 이상이 손실되었으나, 전투능력은 온존하고 있다. 스프리건이 아니라 인간 상대로 동원되었다면 전쟁의 구도 자체를 바꿔놓았을 병기였다.
“끄응, 아무래도 더 써먹긴 힘들겠는데.”
그레이스의 혼잣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왜 그렇습니까? 동력원이나 기능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 문제라면 자폭용으로라도 끌고 갔겠지.”
그 말에 고개를 도리질친 그레이스가 설명했다.
“위그드라실의 본체에 가까워질수록 비공선의 관제마법진이 오류를 일으키고 있어. 현 위치까지는 어떻게든 다룰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더 나아가면 제어권을 탈취당할지도 몰라.”
비공선단이 적으로 돌아선다? 그 상황을 가정해본 레너드가 반사적으로 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공에서 어마어마한 화력을 지속적으로 퍼붓는 전쟁병기가 공격해온다면, 기동요새의 방어기능은 대부분 무력화된다. 그 내부로 추락해서 자폭하기라도 한다면, 반신경 외의 인원들은 남김없이 전멸당하게 될 터였다.
“안 되겠군요.”
“두고 가야지, 뭐. 가문으로 돌아갈 때에 이동수단으로 쓰면 되겠고. 기동요새가 멀쩡하게 남을 것 같진 않거든.”
“그것도 그렇습니다.”
위그드라실의 영향력은 이미 방호결계의 수복속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동력원에 축적되어있는 힘이 상당해서 몇 시간 정도는 버텨주겠지만, 놈에게 더 접근하면 제한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제하이어 가문의 걸작품이라고 해도 방벽열차와 기동요새는 그 규모와 성능 때문에 마법적인 보조가 필수적이었다.
시설 내부의 마법기관이 모조리 망가진다면 그 자리에서 더 움직이지 못하는 폐품으로 전락해버린다.
“가자.”
“예.”
그레이스와 레너드가 동시에 허공을 가로질러, 웨이드가 막 착지하고 있는 지점의 근처에 내려섰다.
오드리와 우루카도 때마침 그 주변으로 다가와있었다.
네 명, 아니 다섯 명이 된 반신경의 집결이었다.
“30분만 휴식하고 다시 전진하겠습니다.”
우루카의 결정에, 나머지가 제 고개를 끄덕거렸다.
30분.
원정대의 피로도를 감안하자면 절대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는 간격이었지만 시간의 경과로 불리해지는 것은 원정대지, 위그드라실이 아니었다.
카르데나스를 대표하는 강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쪽 지평선을 노려보았다.
“우주수(宇宙樹)라고 불린 적도 있다더니, 그럴 만하군.”
웨이드가 한 말대로였다.
하늘 너머로 솟구쳐있는 위그드라실의 상층부는 반신경급의 가시거리조차 벗어나있었다. 정말로 대기권을 넘어서 우주에 다다르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뿌리고 있는 신목(神木).
이 다음부터는 승패가 결정되기 전까지 쉴 수 없을 거라고, 반신경들의 직감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