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1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17)
“보레아스와 키벨레가 쓰러졌다고?”
“그렇다고 하더군. 웨이드 단장님께서 보레아스를 해치웠고, 오드리 단장님과 우루카 단장님이 한 놈은 처치하고 한 놈은 격퇴하셨다던데?”
“산산조각이 난 꼴을 보아하니 불카누스도 온전하게 도망친 것은 아닐거야. 테티스도 마찬가지겠지.”
“사실상 대승을 거둔 셈이구만!”
요령왕 4체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2체를 토벌, 2체를 격퇴한 전과가 알려지자 원정대원들의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포션의 냄새로 코가 다 따끔따끔할 정도였지만, 죽음과 패배의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부분이 만신창이였지만, 싸울 힘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가장 큰 피해라고 할 수 있는 비공선들의 손실도, 무인으로 운용하다보니 사상자는 없었다. 아무리 베어넘겨도 계속 몰려드는 스프리건과 트렌트의 군세는 과연 악몽처럼 느껴졌지만, 카르데나스의 정예들에게 있어서 적의 강대함은 당연하다못해 그 의기를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원정대의 사기를 가장 고양시켰던 소식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가 되면 영웅이 나온다더니, 설마 그 당사자를 보게 될 줄이야.”
레너드가 마침내 반신경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입에서 귀로 전달되는 거리가 물리적으로 수십 배 짧아진 기동요새에서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청룡기사단, 녹룡기사단을 구분할 것 없이 기사들은 30분의 휴식시간을 그 주제로 떠들어댔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도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다.
스프리건 전선에서의 악전고투를 다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소재였다.
“특임관께선 어느 기사단을 맡게 되실지 궁금하군그래.”
“기사단장으로 임명되시진 못할 수도 있겠어. 청룡기사단도 그렇고, 녹룡기사단도 이번 임무가 끝나는대로 타 기사단과의 통합까지 고려해야할테니 말이야.”
“아, 그런가. 천족과는 이제 불가침협정이고, 스프리건도 다 해결되면 ‘마족’과 ‘허신’, ‘외세’만 남아버리니까.”
원정대원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어느새 이 전장에서 ‘이미 승리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했다는 것을.
그리고.
“헤더.”
원정대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레너드는, 팔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선 헤더와 마주하고 있었다.
와이번의 발톱 따위에 스치기라도 한 건지, 피 묻은 붕대의 틈새로 깊게 도려내진 상처자국이 보였다. 포션과 회복마법을 병행했는데도 다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다면 팔다리가 한 짝 떨어져나갔겠지.
헤더는 그 와중에도 검을 닦고 있다가, 눈앞으로 뚝 떨어진 레너드를 보고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레너드?”
그녀 역시 훈련소의 동기가 반신경을 돌파했다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까지 수십 초가 필요했던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래서인지 현실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녹룡기사단의 내부에선 헤더 또한 세기의 천재로 평가받는 중이었지만, 레너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어서 스스로를 한층 더 과소평가하는 경향성이 있었다.
갑자기 레너드를 본 헤더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단장님들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방금 전까지 작전회의하고 왔다. 그 자리에서 30분이나 더 남아있어봤자 할 이야기도 없어.”
“그렇구나….”
헤더의 몸 상태를 꿰뚫어본 레너드가 조금 진지해졌다.
“와이번이라도 넘어왔던 건가? 멀쩡한 곳이 없는데.”
“으응, 비슷한데 좀 달라.”
기동요새라고 해서 난공불락은 아니다. 제아무리 잘 구축한 방위선이라도 천려일실(千慮一失)은 발생하는 법.
비공선의 포격과 기동요새의 방어를 모두 돌파하는 놈들은 백 중에서 서넛도 안 되는 수준이었으나, 10만 마리가 넘으면 3000마리에서 4000마리나 되어버린다.
영역 중심부답게 중급 이상의 스프리건이 평균치에, 뿌리를 변형시킨 트렌트들의 기동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초월경급의 실력자들도 한 번 실수하면 중상을 피하지 못하는 전장.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역시 대형마물에 빙의한, 상급 스프리건이었다.
“드레이크 한 마리가 와이번 수십 마리를 동반해서 구역을 강습했거든. 그 날개 피막을 찢어놓는 사이에 대여섯 마리가 달라붙으니까,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더라고.”
헤더는 그녀 정도의 부상은 별 것도 아니라면서, 선배만 세 명이 죽어나갔다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상급 스프리건의 위험도는 그 정도였다.
레너드는 〈참천절운〉 한 방으로 둘을 쓰러트렸지만, 부단장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한 기사들을 그와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열 명, 스무 명이 달라붙으면서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쓰러트리는 게 불가능했다.
“그런가.”
연민하지도, 동정하지도 않고 그 희생에 잠시 묵념한다.
카르데나스의 일원으로서 제 사명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용맹하게 싸웠던 자에 대한 존중이었다.
얼마 지나서 눈을 뜬 레너드가 헤더를 바라보았다.
훈련소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인 줄만 알았던 소녀가, 제 변덕으로 영성을 일깨웠던 늑대와 교감하는 것도 모자라서 경지돌파의 실마리까지 얻게 해주었다. 인과(因果)와 연(緣)의 개념이 새삼스럽게 중량감을 늘렸다.
“?헤더.”
레너드는 그녀의 대답보다 먼저 제 용건을 풀어놓았다.
“너한테 빚이 하나 생겼다.”
“내가? 아니, 나한테? 왜?”
“반신경의 돌파를 시도하게 된 계기가 바로 너의 내가기공, 아니 오러운용법 때문이었으니까.”
내공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대신에 기 자체에 영을 깃들게 하여,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한 방식을 보지 못했더라면 스스로 떠올리기가 어려웠으리라.
사신지기의 해방에서부터 〈오행일원〉이 완성될 줄은, 그가 참오할 때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너한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헤더 본인이 의도하고 전한 것은 아니더라도 가르침을 받게 되었으니, 그 은(恩)을 되돌려주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카르데나스 가문의 특성상, 사승관계가 존재하는 기사가 더 드물었으니 크게 문제가 될 장애물도 없었다.
“이번 작전을 끝마치고 돌아가는대로 내 검술과 오러운용을 전수하고 싶다. 네 방식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겠지만, 나는 그 방법론을 참고하여 새로운 경지에 다다랐으니 심득의 거리감이 그렇게까지 멀진 않을 거다.”
연무혁으로 살았을 때도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은 있었으나, 사승관계를 인정한 적은 없었다. 검법 몇 초식, 심법 몇 줄로 누군가의 스승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고, 인연이 그렇게 몇 번 얽히다보면 자유롭게 무를 추구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보니 알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인연은 제 발목을 잡아채기도 하지만 그 등을 떠밀어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훈련소에서 아이들을 모두 외면하고 제 수행에만 힘썼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경지에 올라가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아틀란티스에서 프란시스와 연관되지 않았더라면, 불균형을 조율하는 일에만 몇 년을 허비했을지도 모른다.
“…레너드가 내 스승이 되어준다는 거야?”
헤더가 두 눈은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그 시선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은 실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네가 원한다면, 말이지.”
레너드의 확답에 한쪽 팔을 들어올린 헤더가 즉답했다.
“원해! 아니, 원해요! 스승님이라고 부를까요?!”
“지금부터 경어를 쓸 필요는 없어. 가문에 복귀하고 나서도 가르침을 받을 때만 존대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아니, 알았어!”
상처의 통증도 잊고 팔짝거리는 헤더를 본 레너드가 연하게 미소지었다.
흑룡기사단에서 교관 노릇을 할 때에도 느꼈지만, 레너드로 살아가기로 한 날부터 그의 정신성은 연무혁보다 현생에 더욱 치우쳐있는 상태였다.
연장자나 동년배에게 윗사람으로 대우받는 일 자체가 조금 부담스럽다는 뜻이었다.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훈련소 동기들에게 상급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위그드라실의 토벌이 완료되면 녹룡기사단도 청룡기사단과 같이 주업무가 사라질테니, 소속을 이동하는 일에 불협화음이 날 일은 없겠지.’
게다가 반신경이 된 레너드의 발언권은 이제 단장급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가있었다. 단원 한 명을 제자로 받겠다고 해서 누군가 반발하거나 할 이유가 없었다.
헤더 입장에서도 아류(我流)로 수련하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보물찾기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녀에게 레너드보다 더 적합한 스승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득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 * *
한편, 기사단장들은 그 휴식시간에 최대한 힘을 회복하면서 위그드라실만 노려보고 있었다. 옛 시대에서부터 신의 자격을 인정받고 있었던 신목. 자연스럽게 흘러넘친 영향력만으로 몇 세기에 걸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뒤틀어버렸던 존재다.
본래대로라면 정령계에서 벗어난 고대정령, 요령왕은 한 번 소멸하면 그대로 사라져야했다. 그런데 위그드라실이 그 혼을 자신에게 종속시켜서 정령계와 마찬가지로 영체의 귀환, 수복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불멸하게 된 것이다.
9위계 마법으로도 모방할 수 없는 권능의 영역이었다.
“불카누스와 테티스가 얼마나 더 강화될지 모르겠네요.”
그레이스의 혼잣말에 나머지 셋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단순계산으로 셈을 따져보자면, 신격화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란다. 4체로 분산되어있던 힘을 다 모으더라도 좀 부족한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위그드라실의 에너지 공급량도 그 수준이 최대치는 아니었을 겁니다. 불카누스와 테티스, 2체 모두가 반신급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죠.”
“요령왕들의 전력은 대충 파악했다. 그보다 큰 문제가 하나 남아있는데, 그 부분은 알아낼 방법이 없군.”
마지막으로 제 의견을 마무리한 웨이드의 말에, 위그드라실 쪽을 바라보던 단장들의 얼굴이 굳었다.
모든 작전계획의 변곡점이 될 수밖에 없는 미지수.
세계수의 본체가 발휘할 수 있는 전투능력에 대해서였다.
“옛 시대의 기록대로라면, 위그드라실의 본체는 전투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걸로 나옵니다만.”
“그건 [니드호그]에게 오염당하기 전의 이야기지. 권능조차 다 뒤틀려버린 존재다. 그 이전에 알고 있었던 내용은 참고할 만한 값어치가 없다.”
“계산은커녕 추측도 아예 불가능한 변수로군요.”
위그드라실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최초였으니, 그 이질성을 탐구하거나 주목한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방벽열차는 그 영향력과 스프리건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고, 기동요새도 결국 위그드라실까지 나아가는 수단에 불과하다.
세 가문의 선조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제아무리 잘 만든 병기라도 신격에 도달한 세계수를 타도할 순 없다. 외신의 독에 썩어들어가고, 광기에 잡아먹힌 상태를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은 그 힘의 규모가 아닌 경지로 증명된다.
“교전수칙은 변함없다. 요령왕 2체를 우선적으로 배제하고, 그 다음에 위그드라실을 토벌한다. 그게 최선이겠지.”
“동의합니다.”
“뭐, 선택지가 없구나.”
우루카와 오드리가 받아들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네 사람은 제각기 몸을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거의 만전에 가까웠고, 보레아스를 처치할 때에 좀 소모했던 웨이드도 여유가 남아있었다. 오드리도 8할 이상 남겨놓은 상태였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커헉!”
체내에서 오러를 순환시키던 우루카가 갑자기 선혈을 왈칵 토해내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화입마라도 찾아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레이스가 황급히 그 등에 손바닥을 올려놓고서 제 오러를 불어넣자, 통제를 벗어났던 힘이 즉시 가라앉으면서 우루카가 쿨럭거리던 것도 멈췄다.
그러나 반신경급의 고수가 기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건 아주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기경팔맥이 모두 파열되더라도 제 몸의 혈도마저 자유자재로 조작해, 내공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경지였으니까.
“버틸 수 있겠나?”
놀랍게도 그 중태(重態)를 목도했음에도 기사단장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루카의 몸 상태가 위태로웠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웨이드가 평상시보다 더 무거운 얼굴로 한 말에, 우루카는 다시 무릎을 펴고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입가엔 핏자국이 선명했으나, 눈동자만큼은 또렷했다.
“그동안 오늘만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니 물러나라고 하진 말아주십시오.”
“…물러난다고 더 나아질 몸도 아닐테지.”
그가 왜 그렇게 위그드라실과 스프리건에 집착하는지, 자기 목숨까지 도려내가면서 싸우고 있었는지 모를 리 없었기에 더 말리지도 못했다.
웨이드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인정해주었다.
“마지막까지 그 사명을 다하도록, 우루카 단장.”
핏자국을 닦아낸 우루카가 결연하게 그 명을 받아들였다.
“예, 카르데나스를 위하여.”
그의 특이점은 철저하게 위그드라실과 스프리건을 토벌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대가로 스스로의 혼마저 태워버린다.
심상세계에서 타오르고 있는 ‘멸혼’의 불꽃은, 그 주인마저 불사르면서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수대로라면 150년은 더 살아갈 수 있어야하는 경지에서 시한부가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