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2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23)
껍질과 달리 그 표면이 부드럽게 갈라지고, 독기에 수백 년 쩔어있었던 나무심장의 중심까지 칼날이 닿는다.
레너드는 그와 동시에 청룡지기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동신류(東神流)
권능무력제압기(權能無力制壓技)
사필귀정검(事必歸正劍)
부패의 요령왕, 키벨레가 일시적으로 정화되었을 때부터 이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위그드라실로부터 끊임없이 오염을 공급받기에, 정화해봤자 다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요령왕과는 다르다. 오염의 진원지, [니드호그]가 직접 독니를 박아넣어서 그 뿌리부터 심장까지 썩어문드러지게 한 세계수의 근원.
외신의 독 앞에서도 존재목적을 상실하지 않고, 외차원과의 접촉만은 계속 차단해온 나무의 저력을 믿어본다.
‘성공한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겠지.’
레너드의 심상에서 빠져나온 벼락이 검을 타고 흘러들어가, 나무심장에서 꿈틀거리는 독기를 맹렬하게 물어뜯는다.
본래대로라면 승부가 성립하지 않는 싸움이었다.
[니드호그]가 남겨놓은 독은 천 년 가까이 경과했음에도 그 격을 유지하고 있어서, 〈동신류〉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좀 성가시게 만드는 걸로 끝나야했다.그러나 위그드라실의 심장에서 벌어진 싸움이라는 것이, 백 번 싸워서 한 번도 이길 수 없어야할 구도를 역전시켰다.
구우우우우우??.
〈사필귀정검〉의 푸른 번개가 나무심장을 물들이고, 그 안에 스며들어있던 독기를 불태우면서 몇 번이나 번쩍거린다.
진득하게 밀려들어오는 독에 비해서 번개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자극으로 깨어난 위그드라실의 인지력이 곧 전후사정을 알아차렸다. 제 심장에 검을 박아넣은 존재야말로 아군이며, 양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야말로 적이라는 것을.
청룡지기로 눈을 뜬 위그드라실의 의식이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자, 나무심장에 모여있던 독이 모조리 끌려들어가서 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그대로 배출해버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 ■■■, 아, 아아.
알아들을 수 없는 잡음과도 같았던 목소리가 방울처럼 곱고 영롱하게 울려퍼진다.
나무심장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타르로 만들어진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던 맥(脈)이 가라앉아, 묵검에 꿰뚫려있는 곳만 제외하면 다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 안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생명력은 과연 정순하면서도 격 높은 것이라, 세계수의 진정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레너드는 검 자루에서 손을 놓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위그드라실의 말을 기다렸다.
‘생명의 어머니…인가.’
옛 시대에서부터 대자연의 구심점으로 숭배받은 존재. 신이 아니게 된 상태에서도 반신급을 압도하는 신목이, 마침내 제 심장부에 침입해있는 인간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의 ‘눈’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으나, 오직 호의만이 가득한 시선이었기에 레너드는 두 무릎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다.
위그드라실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예?”
정중하다못해 그 죄책감과 사죄의 뜻이 흘러넘치는 의념에,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에 남아있지 않은 진신급의 존재가, 제 격에 비하면 미물이나 다름없는 필멸자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세계수는 그의 반응마저도 이해하고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저와 제 아이들은 언제까지고 눈앞이 가려진 채로 세상을 망가트리고 있었겠지요. 아니, 오늘날까지 망가트린 것만 하더라도 면목이 없을 정도입니다.}
“외신의 독 때문이잖습니까.”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고집해버린 결과가 바로 이 결말이에요.}
위그드라실은 제 면죄부를 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라리 [니드호그]의 독과 함께 사라졌었다면, 먼 미래까지 재앙으로서 남게 될 일은 없었으리라고 후회했다.
아르카디아 제국과 삼공 가문 덕분에 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지만, 스프리건에게 희생당한 숫자는 적지 않았다.
{제가 오만했습니다. 신족들의 보호가 없어도, 제 빈자리가 다시 채워지지 않아도. 그 황야에서 번영할 수 있는 아이들을 둥지 안에 가둬놓으려고 했으니까요.}
외신의 독에 죽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삶의 의지가 뚝 끊어지면서, 세계수의 유예되었던 죽음이 진행된다. 독을 전부 몰아내더라도 잔뿌리부터 가지 끄트머리까지 썩어문드러진 지 오래였다. 다시 이성을 잃어버리고 아이들을 위기로 내모느니, 스스로의 의지로 결단하는 쪽이 백 배 나았다.
위그드라실의 존재감이 점점 사그라들자, 레너드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죽는 겁니까?”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운명을 포기했음에도 미련이 없다. 그 무덤덤한 태도야말로 자연의 순환, 생자필멸을 당연시하는 모습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제 과오를 일깨워준 레너드에게 보은하고자, 몇 분 남아있지 않은 시간을 붙잡아세웠다.
{신좌(神座)가 비어있군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세계적인 위기가 찾아오게 될 겁니다.}
그 말에 레너드의 뇌리로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존재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법칙과 〈마경〉의 외계법칙. 저 경계면 너머야말로 이 세상보다 나스트론드에 더욱 가까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 〈마경〉의 핵을 파괴하더라도, 단기간에 회복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었을걸?
‘외신의 힘이 그 정도로 강력합니까? 다른 세계의 영향력이 자정되지도 않을 정도라니.’
―그건 좀 달라. 이쪽의 세계법칙이 약화된 것은, 옛 시대의 종말과 함께 신좌가 비어버리고 난 다음부터니까.
9위계의 대마도사, 크루엘라가 한 말이었다.
카르데나스 가문에서도 단장급만 접근할 수 있는 기밀사항, 세계의 비밀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은밀한 것.
호기심을 다 참아내지 못한 레너드가 말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가능한 많이 알 수 있겠습니까?”
위그드라실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긍정했다.
{물론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이라면 숨김없이 다 말해줄게요.}
옛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그 전성기에는 각 신족의 우두머리조차 내려다볼 수 없었던 존재의 이야기였다.
고고학에 미친 학자들이라면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몇 년의 수명을 지불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생각하던 위그드라실이 말했다.
{신좌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할까요? 신좌는 문자 그대로 이 세상의 담당자이자 책임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공백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차원의 장벽이 허술해지고 세계법칙도 점점 더 약해진답니다. 〈균열〉이나 〈마경〉이 빈번하게 출현하는 것도 다 신좌의 공백 때문이에요.}
“위그드라실께선 그 출현을 막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저는 신족과 마찬가지로 세계법칙의 일부가 구현화된 존재니까요. 제 영역에선 세계법칙이 한층 더 공고해지죠.}
하지만, 하고 운을 뗀 위그드라실이 환상을 만들어냈다.
파앗.
나무심장과 레너드만이 존재하던 세계에, 아름답게 빛나는 구체 하나가 떠오르면서 그 시선을 사로잡는다.
용안으로 그걸 살펴보던 레너드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구(球)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알아보셨군요? 그 생각대로예요. 우리들이 살고 있는 별의 모습이랍니다. 참 아름답죠?}
어검비행으로 고도를 높일 때마다 그 일각(一角)을 볼 수는 있었지만, 별(星)의 온전한 형상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레너드가 알 수 없는 감동으로 침묵하고 있을 때, 세계수는 잠시 기다려줬다가 환상을 변화시켰다. 초록색과 푸른색, 황토색으로 장식되어있는 별의 허상은 희끄무레한 구름과도 같은 것으로 보호되고 있었는데, 그게 흩어져버린 것이다.
{신좌의 힘은 곧 중력과도 같아요. 관성적인 부분도 있으니 천 년 정도는 버텼겠지만, 이대로 내버려두면 대기(大氣)가 다 흐트러지고 말겠죠. 이 환상에서 보이는 대기권은, 차원장벽을 의미하는 거예요.}
대기권, 아니 차원장벽이 사라진 별의 표면으로 운석이 몇 개나 떨어져내리면서 대륙을 찢어발기고 바다를 뒤엎는다.
인류문명이 저항하고 말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외신의 침공.
위그드라실이 지금 유성우로 나타낸 천재지변의 정체였다.
{땅이나 물도 마찬가지예요. 중력이 사라져버리면 붙잡아줄 힘을 잃어버리고, 별 바깥으로 유출되어버리죠.}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이, 위그드라실은 다시 한 번 별의 환상을 변화시켰다. 유성우로 갈기갈기 찢어진 별의 표면에서 대륙과 바다가 떠오르더니, 출혈과도 같이 온 사방으로 흩어져버리기 시작한다.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천계’와 ‘마계’ 같은 소차원이 떠오른 것은, 절대로 우연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합니까?”
{신좌를 채워야겠죠.}
위그드라실은 그 방법밖에 없다는 태도로 답해주었다.
{새로운 신을 탄생시켜서 좌를 채우는 것. 그게 파멸해가는 세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랍니다.}
“신화경에 도달해야한다는 겁니까?”
{신화경? 아, 당신의 격을 상승시켜준 수행법에서 거론하는 경지로군요. 맞아요.}
“마법사들도 가능합니까? 그들이 정의하는 10위계도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레너드의 의문에 잠시 고민하던 위그드라실이 답했다.
{불가능해요.}
“어째서입니까?”
{여러분이 사용하는 마법은 어디까지나 세계법칙의 식(式). 신좌가 채워져있는 상태에선 그 허가를 받는 것으로 10위계에 다다를 수 있지만, 공백이면 불가능해요. 신좌에서 허락해야할 일인데, 허가해줄 수 있는 상대가 없으니까요.}
무인에게 있어서 신화경이 제 힘으로 영지를 만들어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라면, 마법사에게 있어서 10위계는 세계에게 인정받으면서 벼슬자리를 얻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벼슬자리를 내려줄 수 있는 신이 없는 세상이라면, 10위계의 대마도사가 탄생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 시대에서 신좌에 도달해낼 수 있는 필멸자라면, 당신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에요.}
위그드라실의 말에 의아한 표정이 된 레너드가 반문했다.
“저 이외에도 반신경의 강자는 있습니다만. 저보다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신좌의 주인이라면, 그저 신격에 다다르기만 해선 안 된답니다. 세상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권능을 품어야해요. 균형이 크게 치우쳐있는 힘을 품었다면, 신이 되더라도 좌에 앉을 자격은 없어요. 옛 시대에는 여러 신족의 우두머리들이 그 역할을 분담했지만, 현 시대에선 그게 불가능하죠.}
신화경의 강자 한 명만 탄생해도 전황이 뒤집어질 텐데, 그 다수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와도 같은 요행이었다.
나무둥치에서 기다린다고 토끼가 계속 찾아오진 않는다.
{어깨가 많이 무겁겠지만…, 당신 이상의 적임자는 없어요. 제가 한 잘못을 바로잡아준 사람이기도 하니, 인과의 흐름도 여러모로 도움을 줄 거예요….}
위그드라실의 음성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지막이 찾아왔음을 안 그녀가 레너드에게 다정한 말투로, 천 년 가까이 품어왔던 한(恨)을 풀어놓았다.
{그럼 안녕히. 우리들이 없는 세상에서도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숲의 아이들에게도 제 마지막을 전해주세요.}
옛 시대부터 대신격으로 추앙받았던 존재, 세계수의 유언은 겸손하기까지 했다.
그걸 마지막으로 나무심장이 자리하고 있었던 공간 전체가 붕괴하면서, 레너드의 몸이 어딘가로 끌려갔다. 아무래도 나무 밖으로 내보내주려는 모양이었다.
상냥하기까지 한 인력(引力)에 순응하면서, 레너드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신목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번에야말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
[니드호그]의 독을 천 년 가까이 감내해온 것은, 그 생명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모성애의 극한이었다. 죽음마저 사랑으로 극복해왔던 나무의 여신은, 그녀 없이도 잘 살아가는 생명을 관측하고 난 다음에서야 끝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