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2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25)
아르카디아 제국.
그 광활함과 강대함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으나, 국가의 통치방식이나 운영체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식적이지 못한 국가였다.
전대륙의 반 이상을 점유한 상태에서 더 확장하지 않고, 그 주변국들을 몇 세기나 내버려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르카디아에 쇠퇴기가 온 것인가하고, 제국을 괜히 건드렸다가 피바람을 불러들인 적도 많았다.
카르데나스가 출격할 것도 없이 국경지대의 상비군만으로도 주변국 전체를 상대할 수 있었으며, 마탑 이상의 위상을 지닌 신비협회도 모자라서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 병기로 무장하고 있는 제하이어까지 감안한다면 그 위상에 감히 기어오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아르카디아가 세계를 정복하지 않는 것은, 그 내부의 알력다툼이 정복전쟁 이상으로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에선 적을 찾을 수 없어도, 내부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근거 하나 없는 추측이었지만, 제국 외부에서 쑥덕거리기엔 퍽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카르데나스의 7대 기사단에 맞설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위클라인의 신비협회와 대적할 수 있는 국가도 없었다.
제하이어까지 거론하기엔 그 상세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카르데나스와 위클라인이라면? 위클라인과 제하이어라면?
제국의 기둥이라고 알려졌던 삼공이 서로 대적하고 있다면, 그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서 외부로 투사되지 않았던 것이라면 외부에서도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었다.
아르카디아 황실은 결국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고, 권신들의 투쟁과 대립으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국이라고.
물론 이 추측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뇌내 망상에 지나지 않았으나, 아르카디아를 질시하고 깎아내리고 싶었던 사람들의 입맛에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강대국이 언제든지 그들의 목을 쳐낼 수 있다는 상황보다는, 마음이 더 편해졌으니까!
―쯧쯧.
아르카디아의 귀족들은 당연히 그 허무맹랑한 소리에 기가 찰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삼공 가문이나 황실의 소속인원을 제외하면, 그들보다 이곳 아르카디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봉건제도처럼 영주와 영지의 개념이 존재하는데다, 작위를 계승한 귀족들이 백성 대다수를 관리하기에 타 왕국과 비슷해보여도 그 실상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200년도 더 전에 명재상으로 불렸던, 아치볼트 후작이 그걸 자조하듯이 남겨놓고 간 말이 있었다.
―아르카디아를 한 채의 저택으로 비유해볼까? 황실은 지붕, 카르데나스는 벽, 위클라인은 기둥, 제하이어는 주춧돌과 같은 존재다. 그 외의 귀족들을 모두 헤아려봤자, 바닥에 깔려있는 타일 한 장만도 못할 것이다.
아르카디아의 귀족들은 결국 그 호칭만 엇비슷하지, 영주나 귀족이 아닌 고위행정관이나 다름없었다.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간 하루 아침에 일가친척이 처형당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군권(軍權)이나 상업권은 철저하게 중앙 부처에서 관리했으며, 영지전과 같은 짓거리는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톱니바퀴와 같았다.
황실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삼공은 그 팔다리에 해당했다.
―삼공 가문의 구성원이 내분을 일으키거나, 황실과 척을 질 가능성은 천재지변보다 더 낮다. 그들의 관계성에는 우리들이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르카디아 귀족계의 마지막 금구(禁句)였다.
공공연하게 호기심을 드러낸 자, 개인적으로 알아보려고 한 자 모두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 덕분인지 오늘도 대제국은 평화롭기만 했다.
* * *
아르카디아 제국의 수도, 에테르나(Eterna).
황제가 머무르는 곳답게 그 방위태세부터 도시의 번영도에 이르기까지, 이 제국 전역을 통틀어서도 첫 번째가 될 수밖에 없는 도시였다. 신분증명이 조금이라도 미흡하면 관문 하나도 넘을 수 없고, 소란을 피운다면 타국의 지배자라도 처형될 수 있는 핵심구역이기도 했다.
명칭보다 황도(皇都)로 더 자주 불리는 영역의 중심부에서, 전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들의 회담이 개최되었다.
삼공 가문의 수장들이 바로 그 면면들이었다.
“오랜만이군, 시몬.”
카르데나스의 검공, 데클렌이 제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내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둥그스름한 모자를 쓴 것도 모자라서 화려한 가면으로 낯을 가리고 있는 자였다. 누가 보더라도 수상하다고 할 게 분명한 차림새의 남자. 몸 곳곳에서 일렁거리는 마력의 유동은 과연 9위계에서도 극한에 도달해있는 수준이다.
가주보다 ‘회주’의 칭호가 더 익숙한, 그야말로 위클라인의 정점이면서 신비협회장을 겸임하는 대마도사였다.
시몬 마구스(Simon Magus).
옛 시대에서부터 이름과 기억을 전승해온 마도의 화신.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건 20년만인가, 데클렌. 악투르도 그 정도겠군.”
무덤덤하게 그 인사에 화답해준 시몬이 옆을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의자가 존재했다.
제하이어 가문의 전용좌석이다.
그곳에 앉아있던 대장로, 악투르가 끌끌 웃어젖혔다.
“칼잡이에, 주문쟁이까지! 친구들을 많이 보는 날이군!”
안 그래도 호탕하기로 유명한 악투르였지만, 그가 들떠있는 이유는 두 사람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하이어의 걸작, 방벽열차가 마침내 제 역할을 완수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던 탓이다. 위그드라실을 무너트리고 그 전선을 완벽하게 수복했다니, 그보다 더 기쁠 수가 없었다.
장인에게 있어서 제 작품의 활약상보다 가슴 뛰는 이야기가 존재할 리 없었다.
“이런, 자네에겐 축하와 애도를 함께 전해야겠지? 데클렌.”
신나게 웃어젖히던 악투르가 곧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검공 방향을 돌아보면서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정대의 구성인원은 대부분이 카르데나스의 기사들이었고, 녹룡기사단장마저 사망했다고 들었다. 그 전력의 손실을 떠나, 우두머리로서 그저 기뻐하기만은 어려울 터.
데클렌이 아주 희미한 쓴웃음을 머금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축하만 받아두지. 우루카, 그 친구는 자기 소망을 성취하고 떠났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패배했더라면 모를까, 승전보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죽상을 내보이진 않겠네.”
방벽열차를 관리하고, 타이탄의 사수 역할을 담당했던 자들 역시도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했다.
유일하게 피를 흘리지 않은 위클라인의 시몬만이 긴 한숨과 함께 묵념했다. 그들 덕분에 위그드라실의 영맥까지 확보하게 되었는데, 전투에 공헌하지 못했다보니 영 입장이 난처했다.
그래도 삼공 가문의 결속력이 그 정도로 흔들리거나 무너질 리도 없었다. 원정대원들의 넋을 애도한 수장들은 곧 회의의 논제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위그드라실은 사라졌지만 그 영맥과 삼림지대는 옛 시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존되어있지. 정령왕들의 의견도 있고 하니, 위클라인에 관리를 일임하려하네. 악투르, 자네 생각은?”
악투르 대장로가 제 콧수염을 정돈하면서 고함쳤다.
“나는 상관없어! 광맥도 없는 곳이라던데, 사실인가?”
“세계수의 뿌리가 너무 깊게 파고들어서, 광석의 마력을 다 흡수했다던가? 특수금속은 아예 전멸이야.”
“에잉, 그 염병할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썽이로군!”
“결정됐군.”
세 가문의 수장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다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도다.”
시종은커녕 호위기사 한 명도 대동하지 않은 황제의 등장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릴로 짠 실처럼 아름답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그 사이로 반짝이는 황금색 눈동자는, 카르데나스의 직계와 닮았으면서도 조금 달랐다. 생물보다 무생물의, 광물에 가까운 색을 띤 동공이 샹들리에의 빛을 현란하게 반사시켰다.
건국제 라그나로부터 한 세대도 빠짐없이 계승된 체질이 그 외양에서 드러나있었다.
“미안하지만 30분밖에 내지 못했다. 그 안에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해산해야하니, 서둘러다오.”
겉모습은 불과 스물이 될까 말까 한 소녀의 그것이었으나, 몸가짐이나 말투에서 배어나오는 관록은 상당했다.
손짓 한 번으로 가주들을 앉게 한 황제가 상석으로 올라가, 자질구레한 인사치레도 다 생략하고 고개를 까딱였다.
회의나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가주들도 그 태도가 익숙했는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 ??????.”
“????????.”
15분 가까이를 경청하기만 하던 황제가 그 손을 들어올리자 가주들이 말을 멈췄다.
“데클렌, 한 가지 질문하고 싶다만.”
“예, 폐하.”
“레너드라고 했나. 그 소년이 우리들의 마지막 희망인가?”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에 데클렌과 악투르는 물론, 시몬마저 제 안색을 굳혀가면서 긴장했다.
한 마디의 군소리로 산을 옮길 수 있는 자들조차도 가볍게 언급해선 안 될 이야기였다.
데클렌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마지막?이라고 하긴 좀 이르지 않겠습니까? 위클라인에서 관측한 바에 따르자면, 다다음 세대까진 기회가 있습니다.”
“그건 유예기간에 불과하지. ‘조소하는 학살자’가 남기고 간 비웃음이 그렇게까지 멀리 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의 반문을 간단하게 봉쇄해버린 황제가 계속 말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일생을 불태워가면서 멸망이 확정된 운명에 대항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늦었어. 아니, 천 년이나 버텨냈으니 필멸자의 분수로는 잘한 셈인가.”
“…….”
“…….”
“…….”
세 가문의 수장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숙였다.
신하로서 군주를 안심시키려던, 무의미한 위안의 말이 전부 허황되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옳았다.
무려 천 년이나 유예되어온 멸망이 다가오고 있었다.
“악투르.”
“예.”
“천족 전선과 스프리건 전선이 마무리되었으니, 방벽열차와 비공선에 집중되었던 자원과 인력을 모두 최종결전에 대비한 태세로 돌려놓도록. 마족과 외신, 양쪽 모두에 대항할 수 있는 전략병기나 공정을 완성해야한다. 만약 예산이 부족하다면 재무대신에게 청구하라.”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드워프에게 안 어울릴 정도로 황실예법에 충실한, 악투르의 정중한 몸짓이 그 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위클라인의 방향으로 돌아선 황제가 명령했다.
“신비협회에도 총동원령을 내리겠다. 그 출신성분과 소속을 막론하고 마지막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마탑을 병합할 수 있다면, 최대한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말고 실행하라.”
“예, 폐하.”
“아르카디아의 시야는 좁지 않다만, 이 세계는 그 이상으로 넓고 복잡하노라. 그대들의 역할이 중요해. 마족이든 외신이든 징조가 발견되는대로 전시태세에 들어가야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마도사 시몬이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하면서 대답했다.
두 사람에게 하명한 황제는 이내 데클렌을 돌아보더니, 그 하나만 남으라고 지시하고서 등을 돌렸다.
황제와 검공.
비밀공간에서 독대하게 된 권력자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데클렌.”
검공은 그 부름에 말없이 부복하면서 명을 기다렸다.
“네 보고서에 나와있었던 소년을 만나봐야겠다. 3개월 후의 일정을 하루 비워두었으니, 그날 황도로 데려오도록.”
“코빈 단장을 경유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자네도 이만 물러가보게.”
“예, 폐하.”
그것을 마지막으로 검공마저 방을 나서자, 5분밖에 안 남은 여유시간을 헤아려본 황제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밀랍인형처럼 보일 정도로 비인간적인 외모였다.
은발금안.
[세계에 사랑받는 자]의 혈통과 기질을 이어받은 존재.옛 시대에서라면 만신 전부가 탐냈을지도 모르는 소녀가 그 휘황찬란한 안광을 번뜩였다.
“?선조들이시여, 보고 계십니까?”
건국제가 용들의 시대를 끝장냈을 때에 확정되었던 멸망이, 그녀의 시대에 도래하게 된 것은 재앙이었을까.
아니면.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후손들의 승리를 기원하소서.”
아르카디아의 7대 황제, 라일라가 나직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