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2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26)
“뭣? 그게 사실인가?!”
“스프리건 전선이 종료됐다고? 공문은!?”
“천족과 불가침협정을 한 것도 현실감이 없는데, 전선이 더 줄어들다니?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군.”
“우리 세대에서 끝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하!”
위그드라실과 스프리건이 모두 토벌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두 개 규모의 기사단과 전략병기가 전부 동원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대규모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고무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상자의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대놓고 기뻐하는 사람은 몇 없었지만, 전선 하나를 완벽하게 끝장냈다는 것은 그 이상의 전과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259인의 사망자 중에서 대다수는 견습기사였고, 카르데나스 최정예로 취급되는 정식단원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팔 하나를 잃어버렸던 오드리도 금방 재생치료를 받아서 몸 상태를 회복했기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라고 한다면 우루카가 전사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우루카 단장님의 부고는 안타깝지만…다행스럽게도 그분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인재가 나타나지 않았나.”
“어허, 인재라니? 이미 반신경에 도달하신 분을 가지고.”
“그 말대로일세. 단장급의 직위를 받는 것은 확정적일테고, 어느 기사단에 배속되실지 궁금하군그래.”
녹룡기사단장의 공백으로 침잠했어야할 분위기가 한 사람의 경지돌파로 인해서 크게 전환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사람은 바로 레너드다.
스무살도 안 되는 나이로 반신경까지 돌파해낸 초신성.
이미 흑룡기사단과 적룡기사단을 거쳐가면서 상당히 무명을 쌓아올리고 있던 참인지라, 반신경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즉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어버렸다.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그 훈련소 시절부터 얼굴이라도 한 번 봤던 자들의 입이 부르텄고, 윌리엄이나 벨리타 같은 동기들은 더 그러했다.
레너드에게 한 수 배우거나 대련했던 적이 있었던 기사들은 자연스럽게 콧대가 올라갔고, 괜히 거리감을 느끼고 다가가지 않았던 기사들은 제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해야했다.
반신경.
아르카디아 제국을 통틀어서도 20명이 안 되는 절대경지엔, 그 정도의 값어치와 무게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영룡기사단의 13호, 레너드 경을 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검의 숲]으로 돌아가있었던 레너드를 찾아온 자, 영룡기사의 태도는 실로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13호’라고 자칭한 것은 그 소속기사단, 영룡의 특징이었다. 주요임무가 암행과 잠입 방면으로 치중되다보니, 단장 이외엔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있다. 평범한 외모와 복식도 전부 다 위장이었으며, 용안이 아니었다면 간파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교묘했다.
레너드의 앞에서 하급자로서 자신을 낮춘 13호가 말했다.
“가주님께서 레너드 경을 호출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셔도 괜찮고, 저택으로 직접 방문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급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편한 시간에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레너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따라가겠습니다.”
“명을 받았습니다.”
13호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앞장서면서 검공의 저택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레너드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영룡기사답게 운신법이 제법 독특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발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바람을 가르는 소리라거나 인기척도 아주 희미했다. 한밤중에 본다면 옆을 지나가더라도 간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발자국 하나 남겨놓지 않으면서 허공을 내달려, 허깨비처럼 나아가는 모습이 과연 은밀기동의 전문가다웠다.
‘유령곡의 살수들보다 더 낫군. 유령객(幽靈客)에 비하면 한 수에서 반 수 뒤떨어지는 정도인가?’
격전 도중에도 제 기척차단을 유지했던 유령객과 달리 13호의 움직임은 전투를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
전투용의 경신법이 따로 존재하던가, 아니면 정면승부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황금룡기사단의 다음으로 비밀스러운 곳이다보니 그 상세를 알 방법이 없었다.
얼마 안 지나서 검공의 저택에 당도하자, 13호는 제 걸음을 뒤로 물리면서 레너드에게 한 번 목례했다.
“제 소임은 다했습니다.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레너드가 그 말에 가볍게 눈짓으로 화답해주자 13호는 그가 선 자리에서 아지랑이처럼 흐려지면서 사라졌다.
무림에서도 일절(一絶)로 평가받을 만한 환영보였다.
한낮의 그림자처럼 멀어지는 13호를 일별하고, 저택 내부로 걸어들어간다. 아르카디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신, 검공의 저택치고는 제법 소박해보이는 곳이었다.
그를 불러들이면서 다 물려놓기라도 했는지,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택 내부에서 일렁거리는 존재감만이 검공 데클렌의 유무를 알려주고 있었다.
저벅, 저벅.
처음부터 열려있었던 현관문을 지나서 긴 복도를 넘어, 제 발소리가 낮게 울려퍼지는 벽 너머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기척에 무의식적으로 전율한다.
반신의 영역에 도달했기에,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저택 전체가…가주님의 검권이로군. 이렇게 들어오고 난 다음에서야 겨우 깨닫다니, 검기가 무위(無爲)의 역에 달했나? 천인합일이라고 부르는 쪽이 더 정확하겠는데.’
천의무봉이 더 이상 완벽해질 수 없는 무예의 형태라면, 그 다음으로 목표해야할 경지가 바로 천인합일이다.
무예를 실천하는 것이 곧 하늘의 뜻과 같아진다는 경지.
눈앞에서 검을 내리치더라도 그 행위가 너무나도 당연하여, 위기감은커녕 위화감도 느끼지 못해서 막아내거나 피해내지를 못하는 수준이었다.
문자 그대로 검선(劍仙)이나 다름없었다.
“오, 왔는가? 생각보다 조금 빨랐군.”
마침내 응접실처럼 보이는 방에 도착해서 그 안으로 걸음을 들여놓으니,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존재감이 그를 반겼다.
검공, 데클렌 카르데나스.
그를 본 레너드의 눈동자가 저도 모르게 가늘어졌다.
용안과 용안이 교차한다.
드래곤하트와 드래곤하트가 공명하면서 서로의 상태를 한층 더 깊게 파악해버린다. 찬란하게 넘쳐흐르는 오러의 안쪽에서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운 불꽃이 보였다. 당혹스러운 것도 잠시였고, 레너드가 먼저 목례하면서 말했다.
“…가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레너드입니다.”
“데클렌일세.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던가?”
앉게, 하고 손짓한 데클렌이 스스럼없이 화답했다. 반신급의 강자들 사이에서 상하관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레너드의 존대는 어디까지나 제 가문의 존장에 대한 예우에 가까웠다. 그리고 스스로보다 몇 걸음 앞서나간 무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검공으로 불리는 자, 그 이전의 삶에서 검제로 경외받던 자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강하다.’
여태까지 그 경지로 압도당한 적은 좀 있어도, 검기(劍技)의 차원에서 압도당하는 경험은 아주 드물었다.
레너드는 크게 감탄하면서도 당혹감을 다 숨길 수 없었다.
당연하기까지 한 반응이었다.
“후후, 아무래도 내 상태를 알아본 모양이로군.”
데클렌은 그 부분을 괜히 숨기거나 얼버무리지 않았다.
카르데나스에서 그 누구보다도 드래곤에 가까운 몸을 지닌 자들이었다. 용안과 드래곤하트의 공명은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영역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자네의 생각대로일세. 내게 허락된 시간은 이미 끝났다네. 300년도 더 살았으니 여한은 없네만, 가주직을 물려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생을 붙잡아두고 있었지.”
당대의 검공이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 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신경에게 300년은 그렇게까지 긴 것도 아니었으나, 생사의 간합을 계속 넘어오면서 심신을 혹사시킨 대가는 적지 않았다.
영혼까지 상처입히는 부상도 경험했고, 초월경이라면 백 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복해왔다.
그때마다 수명이 깎여나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활동하실 수 없는 겁니까?”
“마지막 한 번은 가능하네. 몸에 축적해놓은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니, 그걸 다 사용하면 잿더미로 변해버리려나?”
아무렇지도 않게 제 상태를 설명해준 데클렌, 카르데나스의 최강자가 한 점의 흐림도 없이 미소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련이라도 거하게 하고 싶네만, 그랬다간 내 영결식과 가주계승식이 오늘 열려버리겠군.”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알 수 없는 소리에 레너드의 얼굴이 조금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걸 본 데클렌이 성격 나쁜 노인처럼 쿡쿡대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애늙은이 같은 성격이라더니, 골려주니 솔직하게 반응해오는 모습은 그 나이대에 제법 어울리지 않은가.
‘안타깝군. 이 정도의 검객과 진심으로 겨룰 수 없다니.’
레너드의 마음 속에서 가문의 존장을 우려하는 마음과 당대 최강자와 겨룰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교차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본 것처럼 키득거리던 데클렌이 말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레너드, 반신경에 올랐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나?”
“7대 기사단의 수장이 될 자격을 증명했다는 뜻입니다.”
“정확하네. ‘단장급’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지. 반신급의 존재를 맞상대하려면 그 격이 대등해야하니까. 자네도 몇 번 싸워봤으니 알겠지만 상위 경지에서 격의 차이는 절대적이야. 외력경은 아주 잘하면 초월경을 죽일 수 있지만, 초월경이 제 힘으로 반신경에 대적하거나 쓰러트릴 수는 없어.”
그러니까, 하고 운을 뗀 데클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레너드, 기사단장이 될 마음은 있나?”
그의 진중함에 호응한 레너드도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없습니다.”
“어째서?”
“지휘관으로서 감당해야할 책임과 시간을 짊어지는 것보다, 제 수련을 우선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데클렌이나 레너드나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반신경에서 다음 경지를 목표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르카디아의 상층부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된 데클렌이 속삭이듯이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이 아니로군. 누구에게 들었나?”
“세계수, 위그드라실입니다. 신좌의 공백은 확정적인 파멸을 불러들인다며, 그 적임자로 저를 지목했습니다.”
“과연.”
옛 시대의 존재라면 세계법칙과 신좌에 대해서 이 시대보다 해박할 수밖에 없었다. 외차원의 존재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기능한, 세계수가 한 말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데클렌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네는 내 예상보다 더욱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 같군. 황제폐하께서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네. 그 일정이 워낙 빡빡하다보니 3개월은 지나야겠지만.”
아르카디아의 황제라, 그 존재여부만 알고 있었던 레너드도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전생의 연무혁은 무엄하게도 관(官)과 황실을 유명무실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했으나, 이곳에서는 좀 달랐다. 삼공처럼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유한 가문들을 완벽하게 복속시키고, 제 수족처럼 다뤄온 일족이었다.
하나하나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반신들을 힘으로 제압한 것도 아닐테니, 모종의 비밀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자네의 직위를 결정하기에 앞서, 황금룡기사단의 주둔지로 한 번 찾아가보게나. 시조님의 상태는 알고 있나?”
“예, 강림하실 때만 의식이 돌아오신다고 들었습니다.”
데클렌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으면서 설명했다.
“아주 가끔이지만 의식이 활성화될 때가 존재한다네. 며칠, 길어봤자 한 달 정도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지. 그 상태가 얼마나 유지될지도 모르지만, 상당히 드문 기회일세.”
“…시조님과 만나보라는 말씀이십니까?”
“대련 한 번도 불가능한 나보다 더 도움이 될 걸세. 과거의 나 역시 그분과의 만남으로 큰 진전이 있었으니까.”
레너드의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한 데클렌은 그걸 마지막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다녀오게. 나머지 이야기는 그 다음에 진행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