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3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36)
제6해역의 범람은 아직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일이었다.
고든 헤이우드처럼 〈연합의회〉의 상층부에 소속되어있거나, 제5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A등급의 모험단이거나, 이 해역의 마나흐름을 관측하고 있는 마탑의 수뇌부들이나 알게 모르게 파악하고 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해상연합의 가장 큰 수입원에 해당하는 제4해역, 제5해역이 실시간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세간에 다 알려졌다간 반드시 대혼란이 일어난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은 결국 국가도, 민족도 아니었기에 그 소속감과 단합력이 약했다. 대대적인 위기가 찾아온다면 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단 제 안위만 먼저 챙기려고 할 자들이 널려있었다. 〈버뮤다〉를 포함한 거대조직들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르카디아 제국에서 원정부대를 보낸 것도 모자라, 그 위험도를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책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대조직들은 소스라칠 수밖에 없었다.
{반신경의 강자가 세 명, 9위계 대마도사가 두 명…?}
{제6해역의 상태가 그 정도로 위험하다는 말입니까!?}
〈연합의회〉도, 〈버뮤다〉도, 아틀란티스 마탑조차도 제 발에 불똥이나 튄 수준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수천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제국에서도 그 핵심전력을 바로 파견할 정도의 위기였다. 용암에 발목, 아니 허리까지 담그고 있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이 해역에서 대피해야할지, 아니면 제국에서 온 자들을 믿고 가세해야할지 논의하느라 목이 쉴 지경이었다.
타 조직과 달리 마탑의 결정만큼은 아주 신속했다.
아틀란티스 마탑의 정점, 8위계에 도달한 대마법사 잭 러셀 때문이었다.
{눈앞의 위기에서 도망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반신급 존재 다섯이 참전했는데도 제6해역의 확장을 막지 못한다면, 세상 어디까지 도망치든지 그 영향을 받게 될테지. 제국에 안 좋은 시선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겠고.}
{으음, 그럴지도.}
{마탑주의 의견도 옳군. 아르카디아에 한 번 밉보이면 세상 어디에서도 받아줄 곳이 없겠지.}
〈버뮤다〉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소유한 남자, 벤자민도 그 입장을 단호하게 밝혀두었다.
“저 역시 마탑주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들은 이미 한 번 대륙을 벗어나서 아틀란티스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한 번 보금자리를 버리고 떠난다면, 이곳과 같은 안식처를 또 찾기는커녕 평생 유랑민(流浪民)으로 살아야할 겁니다.”
남부대륙에서 해상연합은 그 지위가 매우 불안정했다.
접근성이 나쁘고, 무력도 상당하기에 함부로 적대하지 않을 뿐이다. 신분제를 부정한다는 것부터가 주변 왕국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해안과 접해있는 영지에서는 그 삶에 만족하지 못한 인재들이 해상연합으로 빠져나가는 일도 흔했다.
제6해역의 범람으로 연합이 붕괴한다면, 주변 왕국들은 그 틈을 내버려두지 않고 물어죽이고자 할 터였다.
이 자리에 모여있는 면면이라면 제 앞가림은 어렵지도 않을 테지만, 아틀란티스에서 갖고 있었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할 게 틀림없었다.
{…귀족들의 발가락이나 핥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동감일세. 그 탐욕스럽고 무능한 돼지들을 모시고 사느니, 제국으로 망명하는 쪽이 더 낫겠지.}
{제6해역으로의 원정을 지원한다면 망명 정도는 받아줄지도 모르겠군. 성공한다면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두 번째 고향에 대한 애향심(愛鄕心)으로.
누군가는 그 부와 명예를 온존하려는 탐욕으로.
누군가는 아르카디아 제국에 잘 보이고자 하는 속셈으로.
진중해보이던 가면 너머에서 들끓는 감정은 모두 달랐으나, 결론은 이내 한 방향으로 수습되었다.
{아르카디아의 원정대를 지원해서 제6해역에 잠재된 위협을 배제한다. 만장일치로군.}
{벤자민 의원, 그들이 요청했던 부분에 관련해서는?}
수정구에서 흘러나온 고든의 목소리에, 벤자민은 그 통신실 바깥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스터피스급 함선을 보유하고 있는 모험단은 세 개, 그들 전원에게 통지했습니다. ‘아쿠아마린’은 바로 소집에 응답해서 원정대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라탄’은 몇 시간은 더 있어야만 항구에 도착한다더군요.”
{‘와일드헌트’, 그 괴짜들은?}
“사흘 전에 목격담이 들어왔으니 아직 아틀란티스에 머무를 가능성이 큽니다. 회신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흥미를 느꼈다면 늦지 않게 찾아오겠지요.”
이 해상연합에서 유일무이하게 S등급으로 인정받은 모험단, ‘와일드헌트’는 문자 그대로 신출귀몰한 자들이었다.
단원들의 신상만 하더라도 그 대부분이 감춰져있으며, 실력 또한 미지수였다. 제5해역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몇 번이나 목격되지 않았더라면 도시전설로 취급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중심도시를 방문할 때도 그 부둣가에 정박하는 일이 없는데다 〈버뮤다〉에서 의뢰를 받는 경우도 드물었다.
아틀란티스의 거대조직들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저 바다 너머의 풍운아들이 바로 ‘와일드헌트’와 그들이 탄 골든하인드 호였다.
“자, 회의의 결론도 나왔으니 다들 움직입시다. 제국에서 온 손님들이 우리를 내버려두고 출항하기 전에.”
짝, 하고 손바닥을 마주친 벤자민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지금부터 그가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 * *
“?레너드!”
귀빈용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너드를 찾아온 사람은, 검은 머리카락을 파도처럼 찰랑거리는 미녀였다.
보석과도 같은 눈동자를 파랗게 반짝거리며, 문을 열어젖힌 그녀가 곧 소파에서 일어나려던 레너드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어서 몸통을 부둥켜안았다.
당연하게도 그 여자는 ‘아쿠아마린’의 단장, 프란시스였다.
감회가 북받쳐서 할 말을 잃어버린 그녀를 몇 번 토닥여준 레너드가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프란. 여왕님은 아직 못 됐나보군요.”
“네? 뭐라구요? 아하하하하!”
그의 인사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프란시스가 깔깔거리며 폭소하고 말았다.
이전에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될까 말까인데, 몇 년만에 성공했을 리가 없잖아요? 하여간.”
“그래도 프란이라면 혹시나,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오케아노스 전설에 등장하는 바다신이라도 부활시켰더라면 모를까, 멋진 배 하나로는 벅차요! 모두들 노력해주고 있으니,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요.”
프란시스가 그렇게 자랑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뒤를 쫓은 단원들이 일제히 방에 들어섰다.
“돌아오셨군요, 레너드.”
호위무사에서 갑판장이 된 마리안.
“대장, 지난번에 가르쳐주고 간 창술 덕분에 벽을 넘었다고! 나중에 한 번 상대해줘!”
작살창의 명수, 갈라노.
“…미안하지만 난 아직이다. 흐름은 잡은 것 같다만, 만발에 도달하진 못했으니.”
“오랜만이네요, 은인! 잘 지내셨나요?”
애꾸눈의 하프엘프, 니니안.
물과 바람의 정령사, 비비안까지.
오랜만에 아쿠아마린의 동료들을 본 레너드의 눈에 이채가 한 차례 스쳐지나갔다.
‘한 명도 빠짐없이 일취월장했군. 니니안은 만(萬)의 경지에 근접했고, 마리안과 갈라노는 초월경인가? 비비안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령의 존재감도 두 배 이상 강렬해졌다.’
그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실전경험과 수련을 혹독하게 한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레너드의 가르침으로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게 되었더라도, 눈앞의 길로 나아가는 것만큼은 수련자 개개인의 부담이었다.
‘아쿠아마린’이 레너드 없이도 A등급의 상위권을 차지한 건, 그들이 부지런하게 노력해온 덕택이었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을 궁금해하는 레너드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프란시스가 몇 마디 덧붙였다.
“에스더와 로렐라이는 마탑 소집령에 불려갔어요. 아무래도 레너드가 온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보이던데요?”
아쿠아마린 모험단에선 단원 한 명에 불과하지만, 마탑에선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6위계에 도달한 에스더까지는 그렇다쳐도, 7위계의 벽을 넘어선 로렐라이는 언제든지 장로가 될 수 있는 실력자. 본인에게 그럴 마음이 없더라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된 레너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했습니다. 여러분도 〈버뮤다〉에서 의뢰를 통지받은 것 같은데, 어디까지 들었습니까?”
“제6해역을 탐사한다는 것 정도에요. 그 이상은 의뢰주에게 직접 들으라던데요?”
“과연.”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보니 파급력을 염려할 만했다.
본격적으로 계획을 진행시킨다면 알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도 충격에 대비하는 쪽이 옳았다.
무턱대고 다 알려줘봤자 패닉을 일으키는 짓밖에 안 된다.
1차원적으로 정보를 제한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쿠아마린’처럼 최우선으로 고용해야할 모험단이 아니라면 제6해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았을 터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의뢰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 다음부터 공개된 것은, 아쿠아마린의 단원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규모의 대재앙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6해역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외신교단의 존재에서부터 다 혼이 빠졌는데, 원정대의 정보는 그 이상이었다.
“기사단장이 세 명, 대마도사가 두 명…? 게다가 레너드가, 황금룡기사단의 단장님이라니…?!”
“안 그래도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더 대단한 경지에 올랐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반신경이라고!?”
“하아, 저희들도 제법 강해졌는데 혼자서 너무 멀리 가버린 거 아니십니까?”
프란시스조차 현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넋이 나간데다, 갈라노와 마리안은 그들 사이의 격차가 더 막대해졌다는 것을 전해듣고서 조금 허망한 기색이었다.
그들과 같은 연령대에 초월경까지 돌파한 것만 하더라도 그 천재성의 증명이었는데, 스무살도 안 되어서 반신경에 도달한 레너드와 비교하자니 빛이 바랬다.
니니안과 비비안은 그저 감탄하거나 수긍하고 있었다.
“으으, 머리가 다 지끈거리지만 어떻게든 이해했어요.”
그래도 몇 분만에 상황정리를 끝낸 프란시스가 대답했다.
외신교단의 위험도가 굉장히 높게 책정되었다는 것,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내고 토벌하기 위해서 마스터피스급에 버금가는 함선이 필요하다는 말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제6해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찾아오는 시기는 아주 적절했던 것 같네요. ‘자라탄’과 ‘와일드헌트’ 모두 아틀란티스 주변에 머무르고 있거든요. 평소대로라면 몇 개월이나 연락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인데.”
초대형급 함선 중에서도 비교대상이 없는 ‘자라탄’의 함선은 한 번 출항하면 최소 3개월은 돌아오지 않는다.
물자의 저장량이 엄청나기에 그걸 다 소모할 때까지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해양자원을 채집하고, 균열 따위를 탐사하면서 최대치의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이었다.
행적 자체가 불분명한 ‘와일드헌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버뮤다〉와 〈연합의회〉가 모비딕 사태로 물갈이된 후에는 말이 좀 통하는지, 예전보다는 연락을 받아준다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네요. ‘자라탄’은 큰 건수라면 일단 머리부터 들이밀어보는 편이니까 괜찮을테고.”
“‘자라탄’이라…. 프란, 그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요. ‘자라탄’은 타 모험단하고 충돌하는 일도, 연합하는 일도 없었거든요. 서로가 무관심하게 지나쳐가는 사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누구와도 친분을 나누지 않는 용병단으로 취급하면 된다고, 프란시스는 말했다.
“의뢰성공률은 10할에 가깝고, 배신이나 계약위반도 저지른 적이 없다니까 고용주로서는 괜찮은 상대겠죠. 모험가들은 영 꺼림칙한 기색이지만요.”
“모비딕처럼 안 좋은 소문은 없습니까?”
“네,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있지만 그 정도는 어디에나 있는 수준이니까요.”
그때였다.
응접실로 점점 가까워지는 기척을 잡아낸 레너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초월경의 극한에 도달해있는 자다. 삼공 가문에선 흔하게 볼 수 있겠지만, 제국 외부에서는 국가 단위로 찾아도 한 자릿수를 넘어가기 어려운 실력자였다.
아틀란티스에서 한 번이라도 조우했던 사람이라면 존재감을 모를 리 없으니, 그의 정체는 둘 중 하나였다.
‘자라탄’이나 ‘와일드헌트’에서 온 모험가.
그리고.
“와하하하! A등급 모험단 전체에 고용통지라니, 오래간만에 손이 지랄맞게 큰 고용주로구만!”
누가 보더라도 해적이라고 할 만한 풍모의 중년인이 응접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삐뚤어지게 쓴 선장모에 왼쪽 눈을 가리는 안대까지.
그 손목에 갈고리라도 달려있었다면,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해적선장 본인이라고 해도 믿음이 갈 정도였다. 아쿠아마린의 면면들은 다 알고 있는지, 그들을 한 번 스윽 둘러본 남자는 곧 레너드에게 돌아섰다.
“이쪽이 고용주신가보군? 난 ‘자라탄’의 단장, 새뮤얼이오.”
마스터피스급 함선을 보유하고 있는 모험단 중 하나, ‘자라탄’의 우두머리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