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5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50)
옛 시대에서도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지금과 비교하자면 그 수를 헤아리는 단위 자체가 달랐다.
신격화(神格化).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신적 존재로 거듭나는 변화를 총칭한 표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신성을 보유하고 있는 신족들이나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후예들과 다르게 제 신성을 만들어내는 단계라고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이 단계에 도달한 필멸자들은 종족에 구애되지 않으며, 수명의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도, 엘프도, 드워프도.
고블린이나 트롤 같은 마물조차 그 자격을 인정받는다면 제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신이 될 수가 있었다.
마물의 경지를 구분하는 5개의 대경계 중에서도 최종경지에 해당하는 신마경(神魔境)이 바로 그에 해당했다. 옛 시대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다 헤아려봐도, 몇이나 될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희소한 존재였지만 말이다.
{신의 혈통을 물려받지 못한 마물이라면 불가능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름이 잘 알려져있는 괴수신과 마물신은 다 신의 자손이거나 그 부산물에서 태어난 놈들이니까.}
과거 애시르 신족과 대적했던 거인족, 트롤(Troll)의 기원이 된 요툰들도 결국 태초의 거인신 [이미르]로부터 태어난 신의 자손이었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로 열화되어서, 그 피에 깃든 권능과 신성을 잃어버렸기에 마물로 전락했을 뿐이다.
0에 가까운 가능성이지만, 선조회귀(先祖回歸)나 격세유전이 수천 년 단위로 일어난다면 신마경의 트롤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본적으로 마물 따위에 불과한 고블린이나 오크와 비교하면 잠재능력의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보레아스님! 하나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뭐지.}
레너드와 함께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던 비비안이 손을 치켜들었다. 간이계약이라도 제 계약자에겐 제법 관용적인지, 무시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보레아스가 되물었다.
“오우거나 사이클롭스 같은 마물들도 다 신들의 자손이거나 부산물인가요? 위험도가 높은 마물일수록 그 지능과 잠재력도 뛰어난 편인데, 기원 자체가 우월하기 때문이었던 건가요?”
{그러하다. 오우거는 지저세계의 신 [오르쿠스]의 후예이고, 사이클롭스는 거인신으로 분류된 키클롭스의 먼 후손이지.}
이 시대에 남아있는 오우거들은 모두 교활함과 폭력성으로 무장한 괴물들이지만. 천 년 단위로 거슬러올라가면 무덤가를 파헤치려던 자들을 징벌하는, 신의 봉사종족이었다. 죽은 자와 한 약속과 맹세를 위반하거나 유족들을 배반하면 그 징벌자로 파견되었다던 존재이기도 했다.
사이클롭스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포스 신족의 주신급에 해당하는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에게 무려 신기(神器)를 만들어준 것이 그들의 선조, 키클롭스였다. 그 혈통의 편린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도 S급의 위험도가 나올 만한 종족이었던 것이다.
“…어딜 가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인데.”
“마물들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들려주면 다 거품을 물고 뒤집어지겠어.”
천진난만하게 와! 그랬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비비안과 달리 니니안과 레너드는 그 정보의 무게에 혀를 내둘러야했다.
생태계의 이물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마물의 기원은 오래 전부터 연구되었지만 큰 소득이 없었고, 세계법칙의 왜곡이나 기존 생물의 돌연변이가 아니냐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지금 보레아스가 한 이야기는 그걸 모조리 부정해버렸다.
{이야기가 조금 멀어졌나. 은인의 경우로 다시 돌아오자면, [스킬라]와의 전투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신의 영역에 근접한 것 때문에 신격화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레너드는 그 말을 곱씹어보다가, 보레아스의 말투에서 뭔가 꺼림칙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반문했다.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는 말투인데? 신격화가 좋기만 한 건 아닌가보군. 몸이 자꾸만 내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감이 좋군. 은인의 짐작대로다.}
보레아스는 곧바로 수긍하면서 몇 문장을 덧붙였다.
{신격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다, 그 준비가 미흡하다면 온전하게 제 신성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은인의 경우에는 최소 네 가지 이상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다 우화(羽化)시키지 못하고 하나밖에 품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내 신성은 지금 화기(火氣)에 치우쳐있겠군.”
{정확하다.}
일시적으로 진신급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오의, 〈주작도래〉로 인해서 신격화가 일어났다는 증명과도 같았다.
‘지금 내 몸에 나타난 인력(引力)에 순응한다면 신화경이 될 수 있다는 소리지만…그릇의 크기와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형태로 마무리되고 만다는 건가.’
본래대로라면 오행 전부를 조화롭게 완성시켜서, 다섯 가지 권능을 하나처럼 다룰 수 있는 힘이야말로 〈일원오행신공〉의 진정한 신화경에 해당하리라.
그런데 〈주작도래〉로 그 오행의 균형이 무너져서, 신격화에 끌려가버리면 오행이 아니라 불에 한정된 신격밖에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적 존재로서의 위광이나 담당하는 개념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신좌의 주인이라면, 그저 신격에 다다르기만 해선 안 된답니다. 세상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권능을 품어야해요. 균형이 크게 치우쳐있는 힘을 품었다면, 신이 되더라도 좌에 앉을 자격은 없어요. 옛 시대에는 여러 신족의 우두머리들이 그 역할을 분담했지만, 현 시대에선 그게 불가능하죠.
위그드라실과 한 이야기가 레너드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신좌의 공백.
이 세상이 필연적으로 멸망에 가까워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나인헬]로부터 쏟아져나오는 마족들을 얼마나 많이 물리치든지, 외신 침공을 몇 번이나 저지하든지, 그건 다 시간벌기에 불과했다.
세계법칙이 약화되면서, 차원간의 이동 및 침략을 막아주던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상부터 저지해야했다.
“신격화의 진행을 멈춘다거나, 충동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없다.}
보레아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현 상태는 스스로가 절제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지난번에 쓴 기술을 다시 사용한다면 의지로 억누를 수 없는 이끌림이 작용하게 될 거다.}
“〈주작도래〉는 당분간 봉인인가…? 아니, 잠깐만.”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다. 상극에 해당하는 속성의 신격화를 불러일으켜, 두 방향에서 작용하는 인력을 상쇄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고 싶은 것인가?}
“그래.”
레너드의 발상을 앞서 짐작한 보레아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방법에 성공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을 인정했다.
{가능…하겠군.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치우치면 두 배의 인력이 발생할테니 더 위험하겠지만.}
“세 번째부터는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겠군. 알았다.”
주작의 신격화를 그 대극에 위치해있는 현무의 신격화로 잘 막아낸다고 해도, 세 번째 신격화를 일으켰다간 두 개의 힘을 조율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난이도로 올라가버릴 터.
백호지기와 청룡지기의 신격화가 동시에 이뤄져야만 균형을 무너트리지 않고, 그렇게 사방신(四方神)을 완성시킴으로서 그 정중앙에 앉게 될 황룡의 신격화가 가능해진다.
무리난제(無理難題)밖에 없는 소리였지만, 레너드는 이미 그 방식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신격화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바로 여기까지다. 은인에게 좀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군.}
“큰 도움이 됐다. 위그드라실의 빚은 완제했다고 해줄까?”
{아니, 어머니를 그리 배웅해준 은혜만큼은 내 존재를 모두 바쳐서라도 갚지 못해야할 빚이다. 사양해두지.}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 말을 사양한 보레아스가 다시 바람에 녹아들어서 사라지자,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들었던 니니안과 비비안이 자연스럽게 제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이야기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보니 영 현실감이 없군.”
“언니도?”
보레아스의 소환주체가 된 것이 비비안이다보니 멀어지지도 못하고 다 들어야했던 것이 문제였다.
잠재력이 높은 마물의 기원에서부터 신격화의 상세정보까지 알게 된 사람은, 레너드를 제외하면 그녀들밖에 없을 터였다. 마탑이나 신비학회에 가서 그 내용을 보고한다면, 사례금으로 대영지 몇 개를 받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고대정령왕, 옛 시대에 활동했던 존재의 이야기엔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종족 본연의 성품부터가 물욕에 무관심하다보니, 그렇게 할 일을 없었지만 말이다.
레너드만은 그 겉모습만큼은 담담하게, 오직 두 주먹만큼은 강하게 움켜쥐고 선 채로 이야기를 곱씹어보고 있었다.
‘내 목숨에 너무나 많은 게 걸려있는 기분이다만…, 나는 그 책임감으로 연연하기보단 무인답게 목숨을 불태우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을 구하라던가, 신의 자리를 대신해서 그 위기를 막아달라던가 하는 명분에 사로잡혀왔다.
그러나 레너드의 본질은 결국 무인(武人)이었다.
제 힘을 갈고닦아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를 그 목숨을 걸고 알아보려는 광기의 정신성.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것도, 구세(救世)보다는 자강(自强)에 더욱 치우쳐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을 구원하는 쪽이 덤이고, 강해지는 쪽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화륵.
〈주작도래〉로 그 격과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화기가, 레너드의 투쟁심에 호응하듯이 백회로 치솟아오르려고 한다.
아슬아슬하게 그걸 억누른 레너드가 쓰게 미소지었다.
‘투쟁심이나 분노처럼 열을 띤 감정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자극받는 건가…? 현무의 신격화를 조금 더 서둘러야겠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신격화의 조짐이 강렬하고, 빨랐다.
앞으로 그가 조율해야할 힘과 상황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며, 고양되었던 감정을 겨우 가라앉힌다.
“은인!”
“음?”
그때, 레너드의 고뇌를 알 리도 없는 비비안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특별한 용무가 없으시다면, 저랑 언니랑 같이 상점가를 한 번 둘러보시지 않을래요? 은인이 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도 제법 많이 변했거든요!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평상시의 레너드였다면 크게 고민하지도 않고 거절했겠으나 지금은 좀 이야기가 달랐다.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신격화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다, 운기조식과 명상으로 괜히 더 파고들었다가 상태가 악화되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비비안이 한 제안을 그답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지. 안 그래도 저녁까지 시간을 때울 일도 없었으니.”
“와! 저녁식사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아있으니 한 바퀴 돌아도 괜찮겠네요! 저만 따라오세요!”
“비비안, 사람들이 많은 도로에서는 달리지 말라니까!”
엘프와 하프엘프, 피가 절반밖에 이어지지 않은 관계임에도 그 우애가 두터운 자매들을 바라보던 레너드가 픽 웃었다.
강해지는 것과 세상을 지키는 것.
둘 중 하나를 따로 선택해야하는 상황도 아닌데, 어느 쪽이 우선인지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강해져서 세상을 구한다. 레너드가 할 일은 그걸로 충분했다.
니니안과 비비안을 따라간 레너드는 오랜만에 제 의무와 책임을 다 내려놓고서 여가시간을 만끽했고, 저녁식사로 예약된 식당에서 아쿠아마린의 단원들과 그간 쌓여있었던 회포를 다 풀어냈다. 외신토벌에 동행하지 못했던 면면들과는 나눌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르카디아 제국에 방문해야할 일이 생기거나, 관광이라도 온다면 카르데나스로 연락해서 내 이름을 말해라. 어지간해선 문제가 생길 일이 없어질테니까.”
그 말에 닭다리를 물어뜯던 갈라노가 껄껄 웃어젖혔다.
“이야, 기대되는구만! 제국관리는 제국 바깥의 사람들을 다 야만인으로 본다던데, 우리 대장님의 이름을 들려주면 어떻게 반응할지 좀 궁금해졌어!”
“전형적으로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인간이로군.”
니니안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구상해본 갈라노가 헤벌쭉하게 웃자, 에스더와 로렐라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해보면 이 모험단에서 가장 욕망이 노골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갈라노였다. 엘프도, 마법사도 물욕이나 권력욕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 속물 같은 발언에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갈라노 본인도 저렇게 말은 늘어놓을지언정, 생각없이 저지를 만한 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가장 들떠있는 사람은, 갈라노가 아닌 모험단장 프란시스였다.
“레너드 덕분에 제6해역이 안전해졌으니, 그 해역에 매장된 오케아노스의 유적지를 탐험하는 것도 가능해졌어요!”
오케아노스 왕국의 후예로서 그 영광을 되찾을 날이 다가온 것을 직감했는지, 평상시와는 다르게 술에 만취한 프란시스가 레너드의 한쪽 팔을 끌어안으면서 반대쪽 손으로 쥔 유리잔을 높게 치켜들었다.
아쿠아마린의 단원들도 그 박자에 맞춰서 잔을 들었다.
그걸 본 프란시스가 출항을 알리듯이 크게 소리쳤다.
“우리들의 모험에, 건배!”
“““건배!”””
유리잔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