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5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53)
그 다음날부터 레너드의 일상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반신경에 들어서면서 잠의 필요성이 사라진 터라, 명상으로 심상을 정돈하다가 해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눈을 뜬다. 몇 차례의 대주천으로 몸 상태를 점검하고 나면, 황금룡기사단의 연무장에 나와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는 단원들을 살폈다.
남부해역에서 두 번이나 크게 소모당한 상태다보니 그 검의 기세는 평소보다 떨어졌지만, 눈동자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는 열의만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오랜 굶주림으로 다 잊고 있었던 승리의 맛이, 그 영혼의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열의를 일깨웠으리라.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실력들이 좀 늘었다. 외신의 분체 상대로 제법 선전(善戰)했던 것이 업으로 축적되었나.’
신격화를 맞이하면서 전보다 더 고차원적인 영역까지 볼 수 있게 된 레너드의 눈은 정확했다. 수십 년, 아니 백 년도 넘게 정체되었던 황금기사마저 그 경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시조 카르데나스가 한 말대로였다.
그들의 성장가능성은 완전히 닫힌 게 아니었다.
‘돈오(頓悟)의 길은 닫혔다지만, 점수(漸修)의 길은 열려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 녹이지 못하고 굳어버린 시조의 심득을 연화하면서, 업을 축적하는 것으로 반신경까지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군.’
기존의 방식대로 검과 오러를 수련했다면 100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지만, 무리(武理)의 이론만큼은 이쪽 세상보다 진보한 중원무림의 무공 덕분에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선문답처럼 보이는 구결들은 그 해석의 여지를 넓히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언어화할 수 없는 깨달음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이었다. 제 역량을 초월하는 육체와 심득을 얻게 된 탓에 나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린, 황금기사들에게 이보다 나은 해결책은 없었다.
따라서 레너드는 초식수련이나 대련보다는 강론(講論)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승리의 쾌감으로 지나치게 들떠있었던 황금기사들도 점점 침착해져갔다.
그의 직전제자가 된 헤더의 수련도 아주 순조로웠다.
“스승님! 〈구하천풍검법〉은 이제 완성한 것 같아요!”
“한 번 펼쳐봐라.”
레너드가 시키는대로 두 자루의 검을 다루기 시작한 헤더의 몸 주변에서 촉촉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자연지기(自然之氣)를 통제하는 것은 아니고, 정령과 동화한 상태다보니 물과 바람의 속성력이 끌려들어온 것이다. 무공에 담겨있는 심상의 재현도가 뛰어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안 그래도 쌍검술의 달인이었던 헤더답게 그 검로는 조금도 뒤엉키거나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고, 그녀의 손에서 풀려나온 〈구하천풍검법〉은 틀림없이 청성제일검보다 한 수 위였다.
제1초 목우즐풍부터 제27초 풍우수월(風雨水月)까지.
초식의 완성도만큼은 이미 레너드도 더 흠잡을 부분이 없는 무공시연이 종료되었다.
“…형(形)과 의(意)를 완벽하게 내보일 수 있는 수준이로군. 〈구하천풍검법〉의 10성에 도달했구나.”
그러자 헤더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질문해왔다.
“무공의 숙련도는 12성까지라고 하셨었으니 아직 두 단계나 더 남아있는 건가요?! 완벽하게 펼친 것 같은데!”
“그 말대로다. 네가 보여준 〈구하천풍검법〉은 완벽했다. 이 다음부터는 ‘완벽’을 넘어서야하는, 무공의 창시자가 정해놓은 틀 바깥에서 성취해야하는 경지다.”
명문대파에서 10성의 숙련도를 극성(極成)이라고 표현하며, 12성을 대성(大成)이라고 구분하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정해져있는 길의 끝이기에 극(極)이다. 그 너머는 이정표도, 갈림길도 세워져있지 않은 광야이기에, 괜히 더 나아가려다가 10성에서 퇴보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무공 자체의 숙련도라면 10성으로 끝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수련자가 누구인가에 관계없이 10성의 경지는 모두 동일한 형태를 보이겠지만, 12성의 경지는 아니다. 〈구하천풍검법〉의 12성에 도달한 자가 열 명이라면, 12성의 경지는 열 명 모두 제각각의 형태로 나올 것이다.”
“아하, 제 나름대로 심득을 더해야하는 경지라는 거군요?”
“그렇지. 10성의 〈구하천풍검법〉을 기반으로 해서 더 높은 경지의 검리(劍理)를 완성한다면, 그게 바로 12성에 해당한다. 제대로 완성시키기 전까진 11성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여기서부터는 레너드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었다.
심상무예의 입문단계라고 할 수 있는 특이점의 형성, 그건 타인이 관여해선 안 되는 부분이었다. 헤더 본인이 제 내면과 마주해서 결과물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내놓아야했다.
헤더가 자율훈련에 전념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본의 아니게 좀 한가해졌군.’
황금룡기사단에 강론하고 있는 무공구결도 얼마 안 남았고, 하나 받아들인 제자는 그 알껍질을 깨는 단계에 돌입했다.
평소대로라면 할 일이 없어진 레너드는 자기단련에 그 남는 시간을 투자했겠지만, 신격화를 억누르면서 제대로 된 단련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못하게 된 레너드는 그동안 몇 번인가 생각했었던 일들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옛 동기들을 찾아가보는 것도 그중에 하나였다.
윌리엄과 헤더는 이미 만나보았으니, 벨리타와 딜런을 따로 찾아가보기로 한 레너드였다.
“레, 레너드?! 아니, 레너드 단장님!”
훈련소에서 4번으로 각 세력의 어부지리를 목표하고 있었던 소년은, 어느새 영룡기사단의 견습기사가 되어있었다.
오러에 입문하기도 전부터 쓸 수 있던 능력을 발전시켰는지 그 흐름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초월경일 무렵의 레너드라면 용안 없이는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인으로서의 성취도 거의 초월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공적인 자리도 아니니까 존대할 필요는 없어. 동기니까 한 번 보러온 거야.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 말에 딜런이 머쓱해하면서 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습니까? 뭐, 예를 거둔다고 해봤자 저는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사용합니다만.”
“생각해보니 너는 그 훈련생 시절에도 그랬지.”
시시한 이야기로 말문을 연 딜런과 레너드의 이야기는 별로 영양가가 없었지만, 시간때우기로는 나쁘지 않았다.
너무 빠르고 급격하게 강해져버린 레너드와 다르게 딜런은 정석적인 코스를 쭉 밟고 있었고, 타 기사단에서 듣기 어려운 영룡기사단의 속사정은 제법 흥미로웠다.
단장급의 자격으로 정보열람이 가능한 레너드였기에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나 다음으로는 벨리타를 찾아갈 생각이지?”
“그렇다만.”
“그녀는 지금 [검의 숲]이 아니라 제 가족들이 있는 영지로 돌아가있어. 만나보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야할 거야.”
레너드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계 출신이라도 7대 기사단에 들어갔다면 사사로운 이유로 거주지를 바꿀 순 없었다. 벨리타가 [검의 숲]을 벗어났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아, 본래대로라면 벨리타는 청룡기사단에 갈 예정이었거든. 그런데 천족과의 불가침협정이 성립하면서 입단예정자가 전부 보류되었고, 무소속인 채로 시간이 붕 떠버린 거지.”
“과연.”
딜런의 설명으로 전후사정을 알게 된 레너드는 다시 하늘로 도약하여, 카르데나스의 직계혈족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한 번 크게 가속하면서 쏘아져나갔다.
충격파가 지상을 후려갈기지 않도록, 구름 위까지 상승하고 있었던 탓에 그 경로에 들어가버린 구름들만 갈가리 찢어져서 푸른 하늘이 노출되었다.
카르데나스 대공가의 영지는 상상 이상으로 광활했지만, 한 걸음에 수 킬로미터를 뛰어넘는 반신에겐 넓지 않았다.
레너드는 그 도착과 함께 용안의 기척을 읽어냈다.
“역시나 용안소유자가 된 건가? 아직 취급이 미숙하지만.”
데미안이나 레너드와 같은 수준이었다면 그 시야를 완전히 통제하여, 외부에서 존재를 감지하기 어려워졌을 터다.
본다(視)는 것은 그 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영안(靈眼)을 지닌 자만이 괴력난신을 다루듯이, 인지능력은 곧 간섭으로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용안처럼 상위종족의 혈통능력에 해당하는 경우는 더 강한 존재감이 드러나버린다.
그래서 레너드는 곧 벨리타와 조우할 수 있었다.
“에? 레너드? 아니, 그, 황금룡기사단장님?”
“사적으로 만날 때에는 편하게 해. 동기들한테 전부 윗사람 취급받는 게 어색하기도 하니까.”
“아하, 그 부분은 여전하구나?”
훈련생 시절과는 전혀 달라진, 앳됨이 빠지면서 여성적으로 성숙한 벨리타가 두 눈썹을 부드럽게 휘어보였다.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신비로운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어릴 적에도 무감각했던 레너드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아니, 본인 스스로가 유혹받았다는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터였다.
훈련소의 2번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레너드에게 호의를 드러냈던 소녀, 벨리타가 찻잔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홍차 좋아해? 아니면 커피?”
“둘 다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만.”
전생의 연무혁은 낭인으로 살 때에 진흙경단까지 먹어본 적 있는 인물이었고, 화경급 고수로서 무림에 우뚝 선 다음에도 식도락(食道樂)에는 딱히 흥미가 없었다.
그건 레너드도 마찬가지였다.
벨리타가 따라준 차를 스스럼없이 들이켜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그가 두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초월경을 돌파하면서 용안이 열려버린 건가? 통제가 조금 불안정해보이는데.”
여전히 표정변화가 적은 벨리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부분까지 다 보이는 거야?”
“용안소유자는 서로 알아보기가 편하니까. 데미안 단장님도 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간파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우리 기수의 자랑거리한테 가르침이나 받아볼까? 용안소유자 자체가 가문 내부에 날 제외하고 네 명밖에 없는데다가, 다들 너무 바쁘다보니 물어보기 어렵더라구.”
보이는 것만큼 안다는 말처럼, 용안소유자는 기본적으로 그 전투력과 직급이 높을 수밖에 없다보니 1대1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말고 할 여유시간이 남지 않았다.
레너드도 대규모 토벌작전과 신격화 때문에 시간이 잠시 빈 것이지, 평소대로라면 벨리타를 찾아올 짬도 없었다.
“뭐, 좋겠지. 요령이라도 괜찮다면 내가 가르쳐주마.”
“어? 진짜로? 진심이야?”
“가주님께서도 그러셨거든. 카르데나스의 혈족간에 서로 배우고 가르침은 당연한 일이라고. 나도 그렇게 배웠으니, 너를 상대하는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번거로워할 마음은 없다.”
배우고자 하는데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애타는 일도 드물었다. 몰락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독학으로 무공을 수련하고 강호 곳곳을 떠돌아다녔던 레너드의 한이 그 갈망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몇 년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해하는 일 없이 대화를 계속했다.
중천에 떠올라있던 해가 서산 너머로 떨어질 때까지.
* * *
레너드가 쉴 새 없이 달려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고서 한 달이 조금 넘어갈 무렵이었다.
동기들과의 해후를 완료하고, 황금룡기사단을 가르치고, 헤더의 수련을 지켜보면서 제 심상을 가다듬는 일에 전념하기만 반복하는 삶의 쳇바퀴.
제 심상세계를 관조하던 레너드의 눈썹이 크게 움찔거렸다.
‘〈주작도래〉로 신의 영역에 도달했던 화기(火氣)가 그 외의 사신지기를 침범하고 있다. 현무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방법은 잘 먹히고 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개입하더라도 7대3에서 6대4 정도가 최선인가.’
가능하면 운기조식과 명상으로 균형을 되찾아오고 싶었으나 이 구도는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주작도래〉와 동급의, 진신급의 현무지기를 각성하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전투 도중의 고양감과 세계법칙의 가호도 없이 그걸 시도했다간, 주화입마를 넘어서 반경 수 킬로미터를 날려버릴 규모의 대폭발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당연하게도 레너드는 그 즉시 산산조각날테고 말이다.
“?황제를 알현하고 온 다음에 더 생각해봐야겠군.”
그랬다.
어느샌가 데클렌이 얼마 전에 말했던, 아르카디아의 황제와 대면해야할 날이 가까워져있었다.
반신급 강자들에게 있어서 인간사회와 국가권력은 표면적인 존중으로 충분한 상대였으나, 건국제의 후예로서 이 대전쟁의 지휘관이나 마찬가지인 황제는 또 예외적인 존재였다.
천자(天子)라고 자칭하면서 제 사리사욕으로 천하를 끝없이 어지럽히던, 중원의 황제와는 다른 것이다.
―세계에 사랑받는 자.
검공 데클렌은 그 만인지상(萬人之上)을 그렇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