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5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54)
당일.
데클렌의 저택으로 간 레너드는 평소와 달리 예복으로 몸을 두르고 있는 검공과 조우했다.
반신경이나 9위계에 도달한, 반신급 강자들에게 그 예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후장상(王侯將相), 세인들이 구분해놓은 신분의 귀천은 결국 필멸자의 영역에서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면전에 나와야하는 자리라면 또 모를까.
사적으로 대면한다면 그 최소한의 작법도 무의미했다.
하지만.
“건국제 라그나와 세 명의 시조들이 그러했듯이, 세 가문과 황제폐하의 사이에도 암묵적인 존중이 있는 것일세. 무력만이 힘은 아니고, 이 세계를 수호하는 일에 그분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네.”
“그렇습니까? 황도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 분께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옷의 치수를 재고 있는 시종들에게 몸을 맡긴 채, 레너드는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무력만이 힘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반신의 영역에서부터 점점 흐릿해지다가 진신급에 도달한다면 의미를 잃는다. 힘이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설마 데클렌이 그걸 모르고 한 소리일 리도 없었다.
데클렌 역시 그가 반문할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이전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가?”
“황제폐하는 ‘세계에 사랑받는 자’라는 것 말입니까?”
“바로 그 말대로일세. 건국제 시절부터 그 혈통에는 세계의 편애(偏愛)가 깃들어있네. 사소한 일부터 중대한 일까지, 전부 순풍만범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수준의 가호이기도 하지.”
이 세상으로 환생하면서 마법과 초능력에 대한 이해를 높인 레너드에게 있어서도, 그 설명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아르카디아 황실에 전해내려오는 힘은, 이 세상에서도 실존 여부를 의심받는 능력이었다. 옛 시대에도 한 번 나타나면 그 인물을 쟁탈하고자 수십 명의 신족들이 난투를 벌여, 때 아닌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기록마저 찾을 수 있었다.
‘세계에 사랑받는 자’의 능력은 아주 간단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만사형통이지.”
데클렌은 그 자신도 새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려가면서 설명해주었다.
만사형통(萬事亨通).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알 터였다. 세상만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누가 새삼스럽게 주워섬길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마음을 주고받는 것도, 금은보화를 손에 넣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칭송해주는 명예를 누리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격 한 번으로 산을 쪼개버릴 수 있는 반신은 단언했다.
아르카디아의 황제는, 그 불합리를 품은 존재라고.
“제국인들은 이미 무감각하게 수용하고 있지만, 역사책이나 기록을 조금이라도 더 세심하게 살펴봤다면 느낄 수 있지. 이 나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말이야.”
“무엇이?”
“아르카디아 제국은 여태까지 한 번도 흉년이 든 적이 없는 것도 모자라, 천재지변이 일어났던 적도 없다네.”
그 말을 이해한 레너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르카디아는 대륙의 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대제국이다. 전생의 연무혁이 몇 번인가 돌아다녔던 구주팔황(九州八荒)과 오호사해(五湖四海)를 다 합쳐도 그에 비하면 4할이 될까말까 할 정도로 넓었다.
천문이나 지리를 공부하지도 않아도 알 수 있다.
위로 올라가다보면 북해처럼 추위가 찾아오고, 아래로 내려가다보면 남만처럼 더위가 반겨준다는 것을. 폭우가 쏟아지는 곳도 있으며, 사막과 황무지가 당연한 곳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비옥한 땅이라고 해도 그 지력(地力)이 강성하고, 쇠퇴할 때를 거듭하기 마련인데…! 천 년 가까이 순환이 멈춘 옥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지진이나 화산,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대규모 천재지변은 그 천자조차도 뒤룩뒤룩하게 살찐 몸뚱이를 끌고 나와서 제를 올려야하는 문제였다.
반신경까지 돌파하면서 자연의 구조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 레너드조차, 순수한 능력으로 천재지변을 재현하진 못한다. 이 별의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바로 천재지변이며, 그 진정한 힘의 규모는 진신급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했다.
“세계에 사랑받는다는 건, 그런 뜻입니까?!”
“그 이상이라네.”
반신급의 무력으로도 감히 대체할 수 없는, 황제의 능력을 알게 된 날엔 데클렌도 경악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재지변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된 적도 없고, 전염병이 돈 적도 없으며, 대악인(大惡人)이나 반역자는 그 탄생과 동시에 돌연사하거나 토벌당하고, 농작물은 항상 풍요로우며, 제국의 인재들은 기본적으로 인품에 하자있는 경우가 드물지. 황폐한 땅이라도 제국령으로 편입하면 얼마 안 가서 정상화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네.”
“…….”
“이것이야말로 삼공 가문에서 절대적으로 황실을 보호하고, 건국제의 혈통을 섬겨온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제서야 레너드도 납득할 수 있었다.
이건 무리다.
아르카디아 제국의 비정상적인 국력과 번영은 그 혈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반칙…아닙니까?”
“당연하지만 모든 존재에게 통하는 건 아니라네. 반신급, 그 이상부터는 폐하의 힘에 거스를 수 있지. 진신급의 힘으로 이 세상에 간섭해오는 외신이나 옛 시대의 악신들의 잔해가 만들어낸 [나인헬], 위그드라실의 수족으로 기능한 스프리건과 옛 시대의 상위종이 모인 천족들처럼 말일세.”
“그 예외를 처리하는 것이 삼공이군요. 외부의 우환을 물리치는 게 삼공이라면, 내정(內政)을 담당하는 게 황실.”
“정확하네. 그저 적을 물리치는 일이라면 칼로 충분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칼 하나로는 부족하니까.”
거기까지 설명한 데클렌이 괘종시계를 돌아보고 말했다.
“약속시간이군. 슬슬 출발해볼까?”
“알겠습니다.”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데클렌이 일어나자, 어느샌가 예복 차림이 된 레너드도 그 뒤를 따라나섰다.
“황궁으로 직결된 공간문을 이용해야하네.”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이 저택의 지하실이었다.
아르카디아의 심장, 황도 에테르나(Eterna)로 공간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삼공 가문의 가주에게 배치되어있는 공간문을 사용하는 것. 9위계의 대마도사라도 황도 내부로 공간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이 지하실로 내려가기가 무섭게 가주 저택 주변에서 마나가 한 번 크게 요동쳤고, 이내 잠잠해졌다.
신화경에 가장 다가서있는 검객들이 황도로 떠난 것이다.
* * *
아르카디아 제국.
오직 황실이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제국의 심장이 된 도시 에테르나, 그 성세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세계에 사랑받는 자’의 능력이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는 장소였기에, 세계법칙의 방어력도 터무니없어서 외신 따위가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안전한 장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봐라, 안토니우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역할은 결국 토템(Totem)이랑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황도에서도 심장부에 해당하는, 황궁의 중심에서 옥좌 위에 드러누워있던 소녀가 불만스럽게 발을 까딱였다.
정수리에서 흘러내릴 것처럼 쓴 왕관(王冠).
정갈하게 입고 있었던 옷은 다 흐트러져서 내의가 바깥으로 보일 지경이었으나, 그걸 지적하거나 성을 낼 사람은 없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손님들과의 이야기에 앞서 사람들을 모조리 물려뒀기 때문이었다. 예외적으로 한 사람만을 남겨두었으나, 300년도 넘게 산 마법사의 정신은 식물과도 다름없었다.
“…제가 그 이야기에 어울려드리기에 앞서, 신발이나 양말 정도는 신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답답하단 말이다! 통풍이니 온도조절이니 다 해봤자, 짐의 옥체는 어차피 최상으로 유지되지 않느냐? 사적인 자리에서는 좀 편하게 있어보자꾸나.”
“발가락이라도 얌전하게 둬주십시오. 정신 사납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노마법사조차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정도로, 황제 라일라의 산만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짐이 6개월이나 쉴 새 없이 일하고 겨우 맞이한 휴일인데, 오늘마저도 자유롭게 있지 못하면 근로의욕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더욱 마음대로 할 거라고, 좌우로 몇 미터나 되는 옥좌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황제의 모습을 본 노마법사는 이걸 지켜보는 자가 스스로밖에 없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했다.
펜타곤의 2위, 안토니우스.
봉인마법과 결계마법으로 9위계에 도달한 대마도사가 괜히 시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손님이라도 도착하고 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으리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왔구나!”
나무늘보처럼 늘어져있던 라일라가 몸을 일으키며 반색하는 것과 동시에 마나의 파동이 한 차례 터져나왔다.
황도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는 공간마법의 발동.
그 왕래를 허락받은 자는 세 가문의 우두머리뿐이었다.
“이쪽으로 인도하겠습니다, 폐하.”
“음음! 서두르거라!”
안토니우스는 제자리에 선 채로 수인을 맺어, 거대하다못해 미궁처럼 그 공간구조가 꼬여있는 황궁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가 얽혔다가 풀릴 때마다 수 킬로미터 단위의 공간이 산산조각나고, 재구성된다.
철저히 준비해놓은 결계 안에서라면 동급의 실력자 세 명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결계사’ 안토니우스다운 솜씨였다.
공간문으로부터 알현실의 정문으로 공간을 연결한 그가 제 손을 거둬들이자, 이윽고 문이 열렸다.
“부르신대로 왔습니다, 폐하. 간만에 휴일이시군요.”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데클렌은 쓴웃음을 머금으면서 안토니우스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는 그 눈짓이 더 쓰라리다는 사실을 알까 모를까.
물론 라일라는 그들의 눈빛교환을 다 알아챘으면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냐! 안 그래도 편하게 있던 참이었으니 너희들도 편하게 있도록 해라! 그리고….”
데클렌의 등 뒤에서 걸어들어온 레너드와 눈을 마주쳤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로군. 날 알고 있느냐, 카르데나스의 레너드?”
“예, 폐하.”
레너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라일라와의 만남에 각오했던 것 이상의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계법칙이 환희하고 있다.
그녀와 면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의가 자연스럽게 솟아난다. ‘매료’나 ‘매혹’처럼 잡스러운 능력이 아니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상쾌해지듯이,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듯이. 광신(狂信)을 불러일으키는 외신들의 존재감과도 전혀 다른 영향력이었다.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사신지기와 드래곤하트조차 중립적인 태도로 지켜보고 있을 뿐, 라일라에게 발생하는 호의 자체에 거스르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유쾌하구나. 지난날의 데클렌도 날 그렇게 보진 않았는데, 과연 신좌의 후보답구나.”
그녀의 말에 제정신이 된 레너드가 반사적으로 목례했다.
“…무례했습니다.”
“아니다. 대마도사도, 반신경의 강자도 날 처음 만났을 때는 다 반응이 독특했지. 마음먹으면 주저없이 죽일 순 있겠지만, 호의 자체를 부정하진 못했다. 그런데 넌 나를 향하는 호의도 시냇물처럼 흘려보내고 있구나?”
재미있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라일라가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짐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도다. 만족스럽다. 그러니 따분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부터 다 풀어놓는 것이 옳겠지? 안토니우스여.”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폐하.”
그녀의 부름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안토니우스가 손바닥을 펼쳐보이면서 말했다.
“신비협회의 전언이오. 외신과 마족의 결탁가능성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가능성을 찾아냈소. 아직 논리구조가 미흡하기에 그 결론만을 앞서 거론하는 것을 양해해주시게.”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듣게 된 데클렌과 레너드의 두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