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5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57)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아르카디아의 현 황제, 라일라의 명령으로 [나인헬] 정벌이 대회의에서 거론되자 세 가문은 첩보 관련으로 소모하던 힘을 모조리 거둬들여서 그 가능성의 탐구에 돌입했다.
외차원(外次元)의 공략처럼 아예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론상 가능하다는 말은 거의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간계와 마계를 연결하고 있는 통로 9개를 방비하는 것조차 인명피해가 상당한데, 수성전의 유리함을 다 버리고 적진으로 가서 회전(會戰)을 벌이겠다니?
흑룡기사단장, 오드리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세 가문에서 누구보다도 [나인헬]과 마족들의 생태를 잘 아는 그녀였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나인헬]에서 마족들의 씨를 말려버리려면 제국의 국력 전부를 갈아넣어야했다.
“지옥문으로 넘어온 마족들을 여기서 저지하는 것과 마계로 넘어가서 놈들을 토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팔의 재활을 끝마치고 온 오드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마족은 그 개체 하나하나가 강력하지만, 머릿수도 빠질 수 없는 위험요소다. 천? 만? 아니, 백만의 단위로 몰살하더라도 놈들의 전력공백은 드러나지 않는다. 물량공세가 크게 제한된 방위전으로도 겨우 전선을 고착시키는 게 한계였는데, 공세를 시도했다간 아이들의 개죽음만 크게 늘어날테지.”
“뭐, 그렇겠군. 엄밀히 말하자면 마족은 ‘생물’로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종족이고, [나인헬]에 침전된 신력이 모두 소모되기 전까진 무진장하게 솟아날테니까.”
데클렌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다네. [나인헬]과 마족의 존재가 곧 외신들을 불러들이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면, 그 수와 영향력을 가능한 최소화시킬 수밖에 없을테니.”
“전멸보다는 좀 낫겠지만 최소화도 별 차이가 없다. 마계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면 마족을 대량으로 죽여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영토 자체를 정화해야한다. 멸신전쟁으로 죽어나간 신들의 유해가 오염시킨 세계를, 필멸자의 영역에서 정상화할 수 있을지부터 답을 내놓아야해.”
“위클라인에서 그 방안으로 제시한 방법은 세 가지일세.”
오드리가 반박하는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데클렌은 제 소매에서 꺼낸 보고서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첫 번째는 백룡기사단이 그동안 회수한, 옛 시대의 유물을 동원해서 그 땅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는 것이네. 남부해역으로 간 원정대가 협력자로서 포섭한 인물이 한 명 있는데, 주신급 신족의 축복자라서 그쪽 계통의 유물들을 대부분 의도대로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더군.”
“…신족에게 신족의 힘으로 대항한다는 건가?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조금 극단적일세. 아홉 개의 차원통로에 봉인과 파괴를 시도하는 것이지. 중간계과의 접점을 최소화해서 적이 넘어올 수 있는 길을 폐쇄하고, 가능하면 천계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잘라내버리는 식이라더군.”
“너무 위험하다. [나인헬]의 통로는 그 문을 폐쇄하거나 무너트려도 세상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을 알 텐데? 설령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야. 멸신전쟁으로 한 번 조각났던 차원을 다시 잘라냈다간, 차원붕괴가 일어날 확률도 적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 역시 기각했다네. 우리들이 쓸 수 있는 방식은, 결국 첫 번째와 세 번째의 혼합이겠지.”
데클렌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세 번째 이론을 제시했다.
“신비협회장, 시몬 마구스가 제안한 방법일세. 본래대로라면 〈마경〉으로 오염된 땅을 정상화하거나,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무인차원을 개척하기 위한 마법연구의 결실이라더군.”
멸세(滅世)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투쟁만이 아니다.
천족들과 마찬가지로 타 차원으로 이주해, 인류의 생존만을 우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차원을 찾아다니면서 마법사들이 알게 된 사실은, 인류의 생존범위에 들어가는 세상 자체가 거의 없다는 현실이었다.
공기가 없다거나, 중력이 약하다거나, 물이 없다거나.
동식물이 전부 인간에게 독으로 작용한다거나, 지성이 없는 괴물들의 전투력이 무시무시한 세상도 있었다. 다른 시점에서 보자면 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신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스리는 자 없이 방치된 곳에는, 지성생물이 존재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요소가 존재해야했다.
그렇다고 이미 신적 존재가 다스리고 있는 세상에 들어가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만약 그 존재가 악신(惡神)이라면,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굴에 들어간 거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마법사들이 고를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테라포밍(Terraforming).”
인류의 생존가능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최소한의 생존가능성을 보장하는 세계로 바꾼다.
아르카디아의 재력을 공급받는 신비협회조차 그 자원소모를 감당하지 못해, 이론적인 연구만 지속하고 있는 영역이었다.
그 상세를 전해들은 오드리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은 것 같은데.”
“누구인가?”
“레너드. 흑룡기사단에 그 아이가 전수한 검법, 오러운용은 마족들의 천적으로 작용해. 그걸 응용한다면 마족만이 아니라 [나인헬] 자체를 밀어내버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호오.”
오드리의 말에 반색한 데클렌은 그 자리에서 독대를 멈추고 레너드에게 가보라고 했다.
실시간으로 다가오고 있는 멸망에 대항하려면, 1분 1초라도 허투루 낭비해선 안 됐다.
* * *
“그러니까…항마(降魔)나 퇴마(退魔)의 힘을 마법진에 담아, [나인헬]의 영향력을 걷어내는데 쓸 수 있겠냐는 겁니까?”
“그 말대로란다. 네가 흑룡기에 전수했던 〈데몬베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오드리의 말에, 레너드는 황망한 얼굴로 두 눈만 깜빡거렸다.
얼마 전에 황제를 알현하면서 [나인헬]의 정벌에 관한 말이 오가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이전에 흑룡기사단에 가르쳤던 무공이나 진법지식을 요청받게 될 줄은 몰랐다. 흑룡기사단과 관련된 기억들을 뒤적거려본 레너드가 곧 진지해졌다.
〈가사복마공(袈裟伏魔功)〉.
〈위타복마검(韋陀伏魔劍)〉.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
신공절학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도 귀족급 마족까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공절학의 영역까지 도달한 항마공이라면 얼마나 더 위력적일까?
‘초월경에 불과했던 시절과 달리 반신경이 된 나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무공 대부분을 복원할 수 있다. 소림사의 신공절학인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같은 무공이라도 8할 이상은 재현가능하다.’
〈달마삼검(達摩三劍)〉처럼 견식조차 한 적이 없는 무공이면 모를까, 눈으로 본 적이라도 있거나 직접 상대해본 적이 있는 무공이라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신공절학에 담겨있는 이치를, 신비협회의 마법사 일동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일반적으로 중원 사람들은 도가(道家)에 불문(佛門)보다 큰 거리감을 느낀다지만, 그건 도관과 절의 역할이라거나 위치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와 도사는 크게 본다면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지만, 마법사와 승려는 전혀 다르다.’
도교에서 추종하는 불로장생과 선도(仙道)는 결국 세속적인 욕망과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불교에서 핵심적인 가르침들은 대부분 생사(生死)나 현실세계와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옛 시대에 존재했다는 순례자(Pilgrim)와 더 가까운 존재다. 마법사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해보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문제인 것을 알았기에, 레너드는 주저없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데려가주십시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고맙다. 흑룡기의 아이들도 그렇고, 네게 기대는 일이 너무 많다보니 웃어른으로서 조금 부끄럽구나.”
“과찬이십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테라포밍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신비협회로 향했다.
이미 데클렌에게 전달받은 바가 있는지, 그들을 데리러와준 것은 다름이 아닌 크루엘라였다. 펜타곤의 4위, 카르데나스의 기사들을 언데드로서 사역하여 생전에 다 완수하지 못한 일을 끝마칠 수 있게 만들었던 네크로맨서.
언제나처럼 빗자루에 올라탄 그녀는, 둘을 발견하자마자 제 손바닥을 팔랑거렸다.
“어, 벌써 온 거야? 이야기가 빠르네!”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레너드가 한 말에 쓴웃음을 머금은 크루엘라가 지면에 미리 그려놓은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파아앗!
몇 번인가 그를 이동시켰던 칼란타와 다르게 공간의 진동이 아주 희미해서, 현기증이나 울렁거림을 일으키질 않는다.
공간마법의 숙련도가 현격하게 달랐다.
시야가 이지러졌다가 다시 복구되는 것만 몇 번을 거듭하니 지면의 감각이 되돌아온다. 어느샌가 자신과 오드리가 기이한 방에 도착했음을 안 레너드는 주위를 둘러보려다가,
‘??뭣.’
데클렌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존재를 뒤늦게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천지를 길게 가로지르는 칼날과도 같았던 존재감을 지닌 게 데클렌이라면, 눈앞에서 그를 들여다보고 있는 마법사는 너무 멀어서 거리감이 안 잡히는 밤하늘과도 같았다.
두 속성력의 신격화로 격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안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열세(劣勢).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린 레너드가 검에서 손을 뗐다.
“실례했습니다, 신비협회장님.”
“그냥 시몬이라고 부르게. 황금룡기사단장, 레너드, 아니면 신좌후보라고 호칭하는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레너드로 충분합니다.”
9위계의 정점에 올라서있는 대마도사의 공방, 그 안에 이미 들어와있었으니 동급 경지라도 승산이 없을 수밖에.
마법사는 그 준비가 철저할수록 힘의 고점이 높아진다.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서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해온 대마도사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영역 내부에서라면 시몬은 반신급 존재 서넛이라도 감당하는 것이 가능하고, 데클렌이나 레너드 같은 상대라도 1대1은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다.
신비협회장, 펜타곤의 1위.
시몬 마구스의 연구실은 거의 마경에 근접해있었다.
‘…마법사와 도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게 방금 전인데, 그 인상을 더욱 확실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선풍도골(仙風道骨).
대마도사 시몬의 풍모를 묘사하자면, 그 이상으로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린애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피부.
눈썹과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첫눈처럼 희고 깨끗한 모발.
당당하게 허리와 가슴을 편 자세부터 시작해서 걸음을 딛는 법, 호흡하는 법, 시선을 움직이는 방식까지 전부 다 고아하기 그지없었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도문의 장문인을 자칭했더라도 바로 믿었으리라.
“그래, 레너드. 자네가 흑룡기사단에 전수했던 오러운용법을 한 번 분석해봤네. 기존의 무엇과도 다른 사상과 개념에서 그 흐름을 이끌어내,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을 규정하고 그걸 정상화하는 능력을 발휘하더군.”
“〈데몬베인〉 말씀이십니까?”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그 본질을 흐트러트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자네가 명명했던 이름이라면?존중해야겠지.”
도사보다 더 도사 같은 외형을 한 대마도사, 시몬이 고요한 호수처럼 가라앉은 눈동자로 돌아보았다.
그의 존재감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방이 드러난다.
세계와 차원학을 묘사해놓은 것인지, 2차원과 3차원의 틀을 벗어난 그림이나 도표로 벽 전체가 뒤덮여있었다. 테라포밍에 대해서 잘 모르는 레너드조차 그 집념만큼은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야기는 다 듣고 온 것 같으니 생략하겠네. 겉치레에 쓸 시간이 아까워. [나인헬]을 어떻게 정상화해서 본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지금부터 계속 이야기해보세.”
세계 최강의 대마도사는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제 앞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청년에게 새하얀 이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