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6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60)
스틱스강.
옛 시대에서도 아주 강대한 세력으로 자리잡았던 올림포스, 그 세계관(世界觀)에서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 경계선으로서 널리 알려져있는 곳이었다. 나머지 강 4개를 모두 합치더라도 스틱스의 규모와 격에 비교될 수 없었으며, 이 강의 이름으로 한 약속과 맹세는 모두 지켜져야했다.
필멸자라면 그 맹세를 어긴 시점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망령으로 전락하면서 타르타로스에 떨어져버리고, 신족이라면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10년 후에나 깨어나는 것도 모자라 권능까지 크게 제약당한다고 한다.
올림포스 신족의 정점, [제우스]조차도 그 강제력을 이겨낼 수 없을 정도였으니 스틱스의 위상은 과연 무시무시했다.
레너드는 그걸 마주하면서 남다른 감상을 품었다.
‘불문에서 말하는 삼도천(三途川)과도 크게 다르지 않군. 산 자는 건너갈 수 없고, 한 번이라도 강물에 빠지면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다는 전승에서도 제법 유사한 점이 보인다. 강을 건너가려면 뱃사공의 인도가 필요하다는 점도 그렇고.’
중원무림에는 이쪽 세상의 옛 시대처럼 신이 군림했던 때가 없었으리라고 판단했건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섣부른 확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 왕조 이전에 군림했다는 삼황오제(三皇五帝).
그에 대항해서 만마의 군세를 일으켰다는 치우(蚩尤).
두 세력을 공멸시킨 탁록대전이 이쪽 세상의 멸신전쟁과 별 차이점이 없는 사건이었다면? 신족이 다 죽어나가면서 신좌가 비어버린 이쪽과 달리 그쪽은 곧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신이 살아남았던 것이라면?
중원에서 〈균열〉이나 세계법칙의 왜곡 따위를 보지 못했던 것도, 그 중대하고도 사소한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확인해볼 수 있는 처지도 아니겠다만.’
신화경에 도달한다고 해도 타 차원으로의 이동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외신들이 몇 차례나 침공을 시도했음에도 번번이 저지당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이쪽 세상보다 환경적으로 열악한 중원에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봉신연의(封神演義)가 실화라고 한다면, 신선과 요괴가 서로 죽고 죽이던 시대였다면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크흠.”
레너드가 다른 생각에 빠져있음을 안 건지, 시몬이 작게 한 번 헛기침해서 그의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신선과도 같은 풍모를 한 대마도사가 말했다.
“전승대로라면 이 강은 지형지물이 아니라 여신 [스틱스]의 권능을 상징한다더군. 거신족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면서 만신의 동의를 받아, 그 정도 강제력을 발휘하는 강의 주인이 된 것이라지.”
“[스틱스] 본인이 엄청나게 강대한 것은 아닌가보군요?”
“약소한 신격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12신에 포함되지 못한 수준이니, 대신급에는 못 미칠걸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뱃사공, 카론이 맞장구쳤다.
―그분께서 티타노마키아(Τιτανομαχ?α)의 상으로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명예이지,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골육상쟁에 더 가까운 싸움이었다보니 대대적으로 상찬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지요. 스틱스 여신께서도 남편 팔라스와 사별하게 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진 못하셨을 겁니다.
신화시대의 비사(?史)를 엿듣게 된 데미안이 흥미로워하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물어보았다.
“팔라스라는 신격은 왜 살해당한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올리브나무의 올빼미, 지혜로운 전쟁의 여신 아테나님께서 그 가죽을 벗겨내서 방패 아이기스의 안감으로 만드셨다지요. 크로노스의 편을 든 대가라고 들었습니다.
“어으, 지독하게 살벌하구만. 신족끼리는 좀 봐주거나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반대입니다. 애완동물에게 물리거나 긁힌 상처는 자비롭게 넘길 수 있어도, 동족에게 찔리거나 베인 상처라면 더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날 때부터 모든 종족을 내려다보는 신족다운 대답이었다.
데미안과 레너드는 그 말에 거부감과 거리감을 느끼는 표정이었으나, 시몬만큼은 왠지 납득했는지 제 턱수염을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 이상의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어느새 나룻배가 스틱스마저도 다 통과하여, 잿빛 벌판으로 이어져있는 부둣가에 당도했던 탓이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로군요.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카론의 작별인사를 뒤로 한 레너드와 일행이 나룻배에서 땅 위로 내려서자, 노질 몇 번으로 다시 멀어져간다.
등평도수(登萍渡水)의 경공으로도 저승의 강 위를 달리거나 할 순 없고, 공간이동과 비행마법도 통용되지 않으니 이제 세 사람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결국 전진밖에 없었다.
데미안이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처음부터 돌아가거나 할 생각도 없었는데 기가 차는군. 옛 시대의 허상 나부랭이가 주제를 잊어버린 모양이야.”
레너드는 그 혼잣말에 묻어나오는 살기를 읽고 말했다.
“놈을 토벌하러온 게 아니라는 건 기억하고 있으십니까?”
“물론이다. 그래도 칼침 몇 방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너무 온건하게 협상하려고 하면 조건이 안 좋게 나온다고.”
“자존심밖에 안 남은 존재에게 칼을 들이민다고, 조건이 더 괜찮아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명계를 관장하는 신격이 [하데스]만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어. 그런 거라고.”
아하, 하고 그 말뜻을 이해한 레너드가 눈을 돌렸다.
‘여기서부터가 바로 잿빛의 평원이로군.’
스틱스강을 등지고 앞을 바라보니 세 사람의 정면으로는 그 지평선까지 하얀 꽃망울과 회녹색의 잎으로 흔들리는, 잿빛의 평원 아스포델(Asphodel)이 펼쳐져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이 평원을 배회하는 망령들과 죽은 자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고 전해지지만, 신역으로 구현화된 영역이라서 그 부분까지 재현할 수는 없었나보다.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자들이 맴도는 땅.
죄인 탄탈로스(Τ?νταλο?)처럼 굶주리거나 목마르는 형벌을 받진 않았으나, 만찬을 대접받을 정도로 잘 산 것도 아니기에. 내세가 찾아올 때까지 이 꽃과 잎사귀를 먹으면서 연명해야할 망자들의 거주지였다.
이곳을 지나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낙원 엘리시온에 갈 수 있고, 왼쪽으로 나아가면 영겁의 지옥 타르타로스로 갈 수 있다는 전설도 존재했다.
그 진위여부를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앞으로 나아가세. 오른쪽에나 왼쪽에나 볼 일은 없으니.”
시몬 마구스의 말대로 레너드와 데미안은 그 뒤를 따르듯이 걸음을 옮겨, 광활하다못해 넓이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평원 안쪽으로 깊숙이 걸어들어갔다.
성인장정보다 더 크고 굵게 자라난 아스포델의 줄기나 꽃이 시야를 방해했지만, 반신들에겐 별 문제도 아니었다.
의지를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길이 열린다.
서두르지 않고 몇 시간을 그렇게 걸어나가다보니 마침내 그 평원의 끝에 도달하여, 하데스의 궁전입구로 생각되는 기둥이 파묻혀있는 절벽을 볼 수 있었다.
‘크다…!’
협곡의 좌우 암벽을 그대로 기둥삼아서 쓴 것인지, 그 높이부터가 무려 킬로미터 단위로 깎아지르듯이 솟아나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 출입자를 가로막기 위한 문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올림포스 신화의 사후세계에서 [하데스]의 궁 앞을 지키는, 헤라클레스 전설에도 등장한 마견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전에 그와 한 번 격돌했던 소드마스터, 허먼의 오의로 그 어렴풋한 형상을 목도했다지만 실제와는 제법 큰 차이가 존재했다.
크르르르르르르??.
세 개의 머리가 일제히 으르렁거리는 것만으로도 그 주변의 땅과 공기까지 뒤흔들려서,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덩치는 과연 대형종이라고 할 만한 크기였으나, 남부해역의 레비아탄처럼 무식하게 큰 것은 아니다. 윤기가 흐르는 가죽, 불길처럼 일렁거리는 체모(體毛)를 다 헤아려도 100미터가 안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케르베로스(Κ?ρβερο?).
괴수신 [티폰]과 [에키드나]의 사이에서 나온 적자로, 외신 [히드라]와도 형제나 다름없는 혈연관계를 지닌 존재였다. 제 일족과 달리 신족들에게 거스르지 않고, 하데스와의 계약으로 궁전 수호자가 된 케르베로스는 외신으로 전락하는 일도 없이 지하세계에 남을 수 있었다.
“신역에 가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이 정도라면…옛 시대에 실존했던 케르베로스는 분명히 진신급에 해당하겠구먼.”
“헤라클레스는 그걸 죽이지도 않고 때려잡아서 끌고 갔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진짜 괴물이로군.”
시몬과 데미안의 감상평을 들으며, 레너드는 여섯 눈동자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케르베로스를 마주보았다.
반신급에서도 상위권으로 헤아릴 수 있는 존재였다.
1대1로 상대한다면 승산은 6, 7할 정도일까.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상위경지에서 그 정도면 필승이나 다름없겠지만, 신역의 주인 [하데스]도 아닌 부속개체가 이렇게 강력하게 구현되다니? 만약 [하데스]가 이 마수와 함께 덤벼들었다면 얼마나 까다로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저쪽이 먼저 공격해올 것 같진 않은데, 싸우지도 않고 들여보내줄 것 같지도 않군요. 어떻게 할 겁니까?”
“글쎄다. 3대1로 상대한다면 금방이겠지만?.”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곁눈질로 시몬 마구스를 한 번 흘겨보았다. 공방에서 나올 줄 모르는 대마도사가 생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느낌이었다.
시몬도 그 익살스러운 눈짓에 껄껄 웃으면서 걸어나왔다.
“이 늙은이의 엉덩이가 너무 무거웠나보군! 좋아, 오랜만에 젊은이들 앞에서 폼을 좀 잡아보도록 할까? 제대로 된 싸움은 수십 년만이기도 하니 준비운동도 필요하겠지.”
검공과 동격으로 취급받는 마법사회의 정점, 시몬 마구스가 그 손아귀에 잡힌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살의는커녕 투지도 한 가닥 느껴지지 않는 동작이었다.
그때였다.
콰오오오오오오오??!!!
케르베로스는 그 지팡이 끄트머리가 불과 몇 센티미터 위로 올라오기도 전에 반응했다.
산악처럼 거대한 존재감이 몇 배로 부풀어오르고, 지옥불과 같은 영기(靈氣)가 몸 주위로 휘몰아치면서 외부의 간섭을 다 태워없애는 장벽으로 변한다. 돌진해서 부딪히기만 해도 적을 그대로 지워버릴 수 있고,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무효화하는 공방일체의 강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마주하면서도 시몬의 움직임은 느긋하기만 했다.
마침내 제 지팡이로 케르베로스를 겨냥하더니,
“파수견의 단점이지. 짖는 게 아니라 덤벼들었다면 몇 배는 힘들어졌을 텐데, 판단이 느려.”
신화시대의 삼두견을 비웃으면서 그 마법을 전개했다.
주문 한 마디도 없이 9위계의 마법진이 풀려나온다.
웅웅웅웅웅웅?!!
공간이 접힌다.
공간이 눌린다.
공간이 꼬인다.
순식간에 케르베로스의 몸 주변을 에워싸듯이 공간마법으로 형성된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그저 가두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압축되면서 내부의 생물을 눌러죽일 수 있는 수법이었다. 그 파괴력보다 놀라운 것은 발동속도였다. 반신급 존재도 피해낼 수 없을 정도의 효과범위는 덤이었다.
콰드드득?! 콰드득?!
그러나 케르베로스 같은 존재에게 공간마법의 벽 따위는 좀 성가신 장애물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살의에 불타오르는 눈동자가 여섯 개.
앞발질 몇 번으로 공간면을 찢고, 몸통박치기로 마법진마저 간단하게 파괴한 놈이 되돌아왔다. 콤마 5초도 안 되는 시간, 결계사 안토니우스의 마법까지 빌렸음에도 케르베로스를 멈출 수 있는 시간은 그 정도였다.
시몬 마구스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현현하라, [아담카드몬(AdamKadmon)].”
공간을 압축하듯이 번개처럼 내달려서, 제 코앞까지 다가온 케르베로스를 본 시몬이 손을 뻗었다.
드래곤하트 덕분에 마법체계를 직관적으로 간파할 수 있는, 레너드조차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면으로 구축되는 마법진도 아니고, 입체로 형성된 마법진도 아니었다. 3차원의 개념마저 벗어난, 시몬 마구스만의 식(式).
구조적으로 10위계에 도달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 도달점을 추구해온 대마도사의 논문이 펼쳐진다.
세피로트의 나무(Tree of Sefirot)
세 개의 기둥과 열 개의 세피라로 만들어진 초월마도학.
하나의 세피라는 각각 네 겹의 본성을 갖고 있으며, 나무는 각 세피라의 연결에 의해서 22가지의 경로를 지닌다. 그 경우 전부를 헤아리면서 올바른 답을 찾아내는 것은, 대마도사에게 있어서도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옛 시대에서부터 경험과 지식을 전승해온 시몬조차도, 아직 그 윤곽의 테두리밖에 그려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덜떨어진 개 상대로는 이것도 과분하겠지, 클클.”
10위계 초월마법의 편린, [아담카드몬]의 형상은 빛으로 된 거인과도 같았다. 눈코입은커녕 사지관절의 모양도 좀 엉성한 것이, 불완전함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꼬락서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카드몬]은 고작 팔 하나로 세 개의 머리를 들이밀어온 케르베로스를 막아냈다.
아니, 막아내는 것을 넘어서 놈을 주저앉혔다.
쿠구구구궁…!
지진파와도 다를 게 없는 진동이 울려퍼졌으나, 이 정도로 비틀거리거나 할 실력자는 여기에 없었다.
옛 기억을 떠올렸는지 케르베로스의 꼬리가 잠시 축 늘어질 것 같더니만, 이내 헤라클레스보다 [아담카드몬]이 만만한 걸 이해하고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아래로 찍어누르는 힘과 위로 밀어올리는 힘.
그 힘겨루기의 여파로 꾸국, 하고 공간이 밀려들어간다. 두 존재의 위상 자체가 물질생명의 영역을 좀 벗어나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
힘겨루기의 승자는 다름 아닌 케르베로스였다.
[아담카드몬]의 손아귀를 크게 떨쳐낸 놈이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려는 순간.꽈아아아아앙!!
반대쪽 주먹을 내지르는 [아담카드몬]에 의해서, 몸 전체가 땅에 파묻히면서 강제로 입을 다물렸다.
시몬 마구스가 대마법으로 불러낸 존재, [아담카드몬]이 옛 시대의 영웅신과 비교대상도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반신 수준으로 약화된 케르베로스가 상대라면, 힘의 우열은 불분명했다. 진신급의 영역에서 굴러떨어진 마수와 그 천상에서 흘러넘치는 위광으로 만들어진 거인.
“뭐, 신화시대의 축소판 정도는 되겠구먼.”
만족스러운 얼굴로 두 존재의 격돌을 지켜보던 시몬의 말에 두 사람도 동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머리를 지닌 대마수와 백색 광휘의 거인.
상대방을 잠시 노려보던 둘은 곧이어 다시 맞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