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6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63)
중간계와 마계를 연결하는 통로, [헬게이트] 주변에서 떠날 수 없는 흑룡기사단의 일과는 단조로웠다.
경계와 단련.
카르데나스 본가에 준비되어있는 시설물과 비교하면 열악한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백 단위의 인원수가 매번 수련을 위해 공간문으로 드나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헬게이트]가 적을 토해내기 전에 그 전조를 읽어내고, 경보가 울린다고 해도 몇 분 차이로 인명피해의 자릿수가 달라질 수 있었다.
게다가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적 군세의 조합이 어떤 식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수련으로 힘을 다 써버렸다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벌어질 터였다.
전략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요인들로 인하여, 흑룡기사들은 타 기사단보다 부자유한 생활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너드 단장님이 전수하시고 간 검법과 오러연공법 덕분에 수련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되었군.”
“뭐, 그렇지. 그 이전에는 몸이나 좀 풀다가 오러블레이드도 사용할 수 없는 대련으로 마무리하는 게 전부였으니.”
〈데몬베인〉으로 합을 나누던 흑룡기사들의 대화에, 그 둘의 주변에서 초식을 연습하던 자들도 크게 맞장구쳤다.
“설마 초월경에 올라서 검법이나 오러연공법 좀 연습한다고 효과를 볼 줄은 몰랐지.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놈들도 이젠 다 잠꼬대로 구결을 중얼거린다고.”
“카르데나스 내부에선 생각해보지도 못한 관점이기도 했어. 무형의 검술은 어느 상황에서나 저점을 높일 수 있지만, 특정 상황이나 적에 대응하는 형태를 갖춤으로서 더 유효한 위력을 발휘한다?라.”
“요령만 붙은 게 아니야. 전체적으로 경지가 다 상승했다고. 〈데몬베인〉을 수련하면서 제 특이점을 각성한 놈만 열 명이 넘었을걸? 녹룡기랑 청룡기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그쪽으로 전입시키거나 했을지도 몰라.”
제국 외부에서는 초월경에 도달하기만 해도 그 몸값이 하늘 너머로 올라버리지만, 카르데나스의 7대 기사단 내부에서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특이점을 자각하고, 제대로 다루는 게 가능해진 시점에서야 ‘정예’라고 할 만한 수준이 된다.
반신급 개체와 마주하더라도 생채기 한두 개 정도라면 입힐 수 있는, 최전선에서 유효전력으로 분류되는 단계다.
“응? 아니, 잠깐만.”
그때였다.
제 관자놀이를 누르던 흑룡기사 하나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떠올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있잖냐. 지금 우리가 수련하고 있는 〈데몬베인〉은, 레너드 단장님께서 아직 초월경이셨을 때에 만들어진 거였지?”
“어, 당연하지. 혀의 마족을 쓰러트리긴 하셨지만, 반신경을 돌파하셨던 건 스프리건 전투였으니까.”
“그렇다면 〈데몬베인〉의 개선형이 나올 수도 있을까?”
그가 조심스럽게 한 말에 연무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당연하기까지 한 반응이었다.
안 그래도 흑룡기사단의 전력과 전과를 유의미하게 개선한 것이 〈데몬베인〉인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온다? 몇 년에서 몇십 년이나 정체되어있던 경지를 움직이게 한 가르침이 더욱 효과적으로 진보한다?
사막을 걸어가면서 한 모금의 물에 만족하던 사람이라도 저 멀리서 오아시스가 나타나면 눈이 뒤집히는 법이었다.
“일리가?있어!”
제아무리 천재의 시선이라도 초월경일 때에 볼 수 있는 것, 반신경일 때에 볼 수 있는 것은 그 차원이 달라진다.
개념영역에 진입하기 시작한 경지, 특이점의 운용법만 해도 그렇다. 데미안조차 초월경 시절에는 ‘반사’로 적의 공격을 몇 번 무력화하거나, 빛을 튕겨내서 모습을 감추거나 하는 것이 한계였다. 평행세계의 참격을 천 번 중첩시켜서 산도 쪼개고, 공간감옥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은 반신경부터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좀 전해들은 게 있는데, 레너드 단장님과 데미안 단장님께서 흑룡기사단 본부에 방문하셨다더군.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지만은 않을 것 같아.”
“진짜로?!”
“흑룡기사단의 주둔지 전체에 유입되는 물자가 많아진 것도 그렇고…, 이 다음은 우리들의 차례일지도 모르겠네.”
누군가는 그저 환희하고, 누군가는 그 대국적인 움직임에서 얼마 안 남은 미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명확하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은 두 명의 기사단장이 오드리를 찾았다는 것 정도였다.
흑룡기사단의 존재목적을 완성시킬 수 있는 수단과 함께.
* * *
“……허?”
갑작스럽게 레너드와 데미안도 모자라 시몬 마구스를 보게 된 오드리의 얼굴이 드물게 일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신과 경악.
두 종류의 감정으로 뒤흔들리던 것도 잠시, 그 눈꺼풀을 한 번 감았다가 뜬 오드리의 시선은 고요해져있었다. 속마음까지 완벽하게 다 잠재운 것은 아니겠으나, 용안으로도 표층의식의 흔들림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카르데나스 가문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연장자의 정신수양은 과연 대단했다.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허신의 힘을 이용해서 마계 내부의 영역다툼을 시도하겠다, 는 거니?”
“예, 그렇습니다.”
오드리는 그 말에 천천히 눈을 돌려서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뜻을 알아차린 시몬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의견이 아닐세. 그의 아이디어였지.”
“뭐, 그렇겠지. 노인네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으니. 게다가 내 앞으로 가져온 것도 모자라, 당신까지 동행했다면 성공가능성도 제법 보인다는 뜻일테고.”
“신격과의 협상도 성공적으로 끝난데다, 이론적으로는 전혀 빈틈이 없었다네. [나인헬]의 영향력이나 범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면, 외신침공의 규모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야.”
“진정한 의미에서 마계정벌이 가능해진다는 건가.”
흑룡기사단의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를 토벌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던 녹룡기사단이나, 천족과의 불가침으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청룡기사단처럼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헬게이트]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마족들은 그 수가 끝없이 늘어나는 것도 모자라 수성전에서 압도적인 이점을 가진다.중간계에서 죽은 놈들은 그 본체를 남겨두고 온 놈 외에는 소멸당하지만, 마계에서 토벌당하는 놈들은 그 힘의 대부분이 환원되기에, 어디선가 새로운 마족이 태어나버린다. 원정대의 입장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인헬]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점령가능하다…?’
무진장으로 쏟아져나오는 마족의 원천, [나인헬]을 없앨 수 있다면 근본대책이 성립한다. 대악종 [크롬두브]가 남기고 간 영향력이 남아있는 이상, 마족의 생명력은 무한하다. 그렇다면 그 영향력을 모조리 지워버리면 된다.
여태까진 그걸 가능하게 할 수단이 없었고, 무력이 없었다.
기사단 한 개 규모의 전력으로는 [나인헬]에 들어가봤자 그 영역을 밀어내기는커녕 얼마 못 버티고 전멸한다. 물량공세의 정점이나 다름없는 종족이 바로 마족이었다. 적어도 기사단이 세 개 이상 투입되어야하고, 펜타곤의 대마도사가 두 명 정도 지원해야만 가능성이 조금 보인다던가.
다중전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안 무너지는 것이 용했던, 20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불가능했던 요구였다.
“가능해.”
오드리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데미안이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면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청룡기와 녹룡기는 다 예비군으로 전환되었고, 황금룡이나 백룡기도 가세할 수 있어. 기회는 지금뿐이야, 누님.”
스프리건 전선이 종료되면서 녹룡기가 남았고, 천족이 다른 세상으로 이주하기로 하면서 청룡기가 남았다.
시조 카르데나스가 한계에 가까워지고, 레너드가 그 유지를 이어받으면서 황금룡은 다시 태어났다. 흑룡기를 제외해도 세 개 규모의 기사단이 여유전력으로 남은 것이다. 적룡기사단과 백룡기사단도 유동적으로 가세할 수 있으니, 무려 8할 이상의 무력부대를 집중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클라인의 대표나 마찬가지인 시몬도 몇 마디 보탰다.
“세계법칙에서 크게 일탈한 〈마경〉과 다르게 마계에서라면 7, 8위계의 마법사들도 그럭저럭 활약할 수 있지. 위클라인도 전력을 아끼지 않고 참전하겠네. [나인헬]이 아닌, 지하세계의 법칙을 탐구하고 싶어하는 마법사들은 얼마든지 있을 터.”
“…너무 달콤해서 이빨이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제안이로군. 무의식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왔던 사명이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어.”
오드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앉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루카도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겠지. 신중해야한다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몸이 먼저 나가려고 해.”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전과 달리 태풍의 눈처럼 동적(動的)이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큰 격동은 도리어 정(靜)에 가까워져서, 오드리의 몸 주변이 수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 속마음을 독백하듯이 토해낸 오드리가 다시 말했다.
“[헬게이트]에서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고 했나?”
“예, 마계가 된 지하세계는 [하데스]에게 있어서도 생소한 것이니까요. 내부로 들어가보진 못하더라도 그 입구 부근에서 상황을 알아보고 싶다더군요.”
“과연.”
레너드의 말에 한 번 고개를 끄덕거린 오드리가 시몬에게로 몸을 돌려, 7번 주둔지의 좌표를 불러주었다.
공교롭게도 그 주둔지는 이전에 레너드가 방문하여, 마족의 침공을 경험했었던 장소였다. 그걸 떠올리기가 무섭게 시몬의 지팡이가 바닥을 한 차례 내리치면서 빛을 뿜어냈다.
파아앗?!
7번 주둔지는 아주 당연하게도 그 즉시 뒤집어져버렸다.
“다, 단장님?!”
“레너드 단장님이랑 데미안 단장님까지!?”
“위클라인의 대빵도 오셨댄다! 다 튀어나와서 기립해!”
기사단이라고 해서 군(軍)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전진기지의 특성상 그 군기는 타 부대보다 더 매서운 편이었다. 상급자 세 명이 불시에 방문한 것도 모자라서 경쟁가문의 우두머리까지 데려왔으니, 여기서 흐트러진 모습을 좀 내보였다간 흑룡기사단이 아닌 카르데나스의 망신이 된다.
순식간에 임전태세가 된 흑룡기사들을 가볍게 눈인사로 한 번 치하하고, 레너드 일행은 계속 걸어나갔다.
“호오, [나인헬]에 가까운 장소라서인지 세계법칙이 기묘한 흐름으로 나타나는군. 공통점과 차이점이 명백해. 부모가 다른 형제자매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구먼.”
―정확하다. 아무래도 저 나이를 헛먹진 않은 모양이로군.
시몬의 말에 동감하듯이 레너드에게 깃들어있던 [하데스]가 제 의사를 전달했다. 지하세계의 영향력이 짙은 곳이라서인지, 그 목소리와 의지에 한층 더 생기가 흘러넘쳤다.
[하데스]는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서 말했다.―이곳이라면 내 신역을 전개하지 않은 상태라도 현현할 수 있겠군. 네 안에 머물러봤자 부담만 되는 것 같으니, 바깥으로 나와서 내 발로 걷겠노라.
“알겠습니다.”
레너드가 대답하기가 무섭게 그 심상으로부터 거대한 힘이, 마계의 공기와 유사하면서도 부정하지 않은 존재감이 밖으로 흘러넘치면서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신족 중에서도 올림포스는 그 외관이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었다. 눈이나 팔이 기본적으로 대여섯 개나 되거나, 날개와 뿔이 매달려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데스]도 마찬가지였다.병약해보일 정도로 희고 창백한 피부에, 새카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소년이 [헬게이트]를 응시했다.
―…차원문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악취로구나. 존재의 근원까지 다 썩어들어간 냄새가 난다. [타르타로스]의 뚜껑을 열어놓기라도 한 것 같아.
“대악종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큰 차이도 없겠지요.”
―하! 찌꺼기로부터 태어났다는 녀석이니, 네 말이 옳구나!
레너드가 한 말이 취향에 맞았는지, [하데스]는 시원스럽게 웃어젖히면서 제 손바닥을 앞으로 펼쳤다.
그와 동시에 7번 주둔지의 공기가 변화하는 게 느껴졌다.
쿠구구구구구구??.
반신급의 영역에 다다르지 못한 자들은 알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하데스]의 손아귀에 잡힌다.
레너드 일행은 그 모습에 조금 불안해하면서도 스틱스에 한 맹세를 믿고, 그의 행위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역시 지하세계는 내 존재를 인정하는구나.
[하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전과를 알려주었다.―지금부터 저 문의 통제권한은 나에게 있다. 닫거나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열고 닫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군.
대마도사들이 몇 번이나 시도하고,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바로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