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6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65)
오대존명왕의 무공 5종은 그 자체로 동공(動功)에 해당한다. 초식의 형태만 올바르게 수행하더라도 불문의 진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선문답처럼 들리는 구결로 채워져있던, 소림사의 무공보다 더욱 접근하기가 더 쉬웠다.
물론 이 접근성의 차이는 이미 초월경에 도달해있는 기사들 입장에서나 그러한 것이었다. 무형의 검술을 오랫동안 익혀온, 카르데나스 출신이기에 더 그러했을 터다.
처음으로 무공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초식 한 가지를 제대로 펼쳐내고자 연 단위의 고된 수행을 거쳐야했다.
“지금부터 내가 가르쳐주는 것은, 이전에 앞서 전파되었던 〈데몬베인〉보다 상위의 무예라고 생각해도 좋다. 명계의 다섯 장군으로부터 마족을 처단하는 권한을 빌리는 것이니, 순수한 검술과는 좀 거리가 있다.”
중간계에서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위타복마검〉과는 그 경우가 정반대였다. 〈오대존명왕공〉은 지옥문 너머에서야말로 10할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오직 마족을 쓰러트리기 위한 무공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먼저 그 무예에 특화한 운신법부터 시작해서 권장각법으로 기초를 쌓아올리고, 마지막에 검을 배운다.”
포달랍궁에서도 그 수련과정은 비슷한 순서대로였다.
〈부동명왕신법〉부터 철저하게 몸에 박아넣고, 그 움직임에 맞춰서 권장각(拳掌脚)을 쓸 수 있게 하고, 〈대위덕명왕검〉을 전수받으면서 한 명의 금강승으로 인정된다.
다섯 가지의 무공들을 하나와 같이 쓸 수 있었던 금강승은, 구파일방의 정예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겉멋에 혼이 팔려있는 화산파의 매화검수보다 두 수 이상, 공동파의 척사검대와는 비슷하거나 조금 더 위일까. 무당파의 태극검수나 소림의 십팔나한보단 한 수 처지겠지만, 구파일방 최정예와 비견된다는 것부터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운신법의 특징은 바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배우게 될 무예 4종의 기수식으로 성립하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한 뼘 남짓한 간격부터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한 수준까지 틈을 좁혀나간다. 경지에 다다른다면 음속을 넘으면서도 자세를 바꾸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하고 레너드가 〈부동명왕신법〉을 펼쳤다.
?쿠웅!
두 다리를 구부려서 땅에 박아넣은 듯한, 도약이나 질주에 부적합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급가속했다가 정지.
소리와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던 몸이 10미터도 더 멀어진 곳에 나타나자, 극도의 집중상태를 유지하던 기사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이 몇 번이고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정중동(靜中動)의 극치.
밀교와 다른 길로 나아가는 소림사에서, 〈부동명왕신법〉만 장서각의 최심부에 보관해놓은 이유가 있다.
“주먹을, 발을, 손바닥을 내지르거나 검을 휘두르는 동작의 시작점이다. 실전에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다면, 회피와 공격을 병행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상대보다 한 발 앞서는 선(先)도, 완벽하게 그 의도를 읽고 반격해내는 후(後)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대(對)의 이점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마족에게 잘 통한다는 점 외에도 공방의 최적화를 이룰 수 있는 수법이니, 계속 수련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
연병장에 모아놓은 기사들 역시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한 번밖에 보여주지 않은 시범과 언어화된 이론만으로도 그 무학의 고절함을 파악할 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오대존명왕공〉은 순식간에 마계정벌군으로 지명받은 기사 전원의 향상심을 불태워서, 레너드가 예상했었던 기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수준의 가속도를 얻었다.
무공의 주춧돌에 해당하는 〈부동명왕신법〉을 7성의 경지로 성취하기까지 일주일.
〈항삼세명왕장〉, 〈군다리명왕각〉, 〈금강명왕신권〉을 5성의 경지로 터득하기까지 다시 일주일.
불과 2주만에 〈대위덕명왕검〉에 입문할 수 있는 조건이 다 채워졌다. 그 자격을 얻고자 수십 년을 수행하는, 포달랍궁의 승려들에게 보여준다면 칠공에서 피를 뿜어내리라.
‘카르데나스 혈통에 전해내려오는 무골(武骨)과 재능이 크게 관여했겠지만…그래도 상식을 너무 벗어나는 빠르기로군.’
새싹부터 키우는 것과 나무를 옮겨심는 것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겠으나, 흡수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카르데나스의 무예 자체가 망망대해에 던져놓고, 알아서 잘 찾아가보라는 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최소 수재(秀才)라고 할 만한 재능이 없으면, 카르데나스의 무형검에 적응하지 못한다. 수단방법에 관계없이 모든 상황을 대응시키려고 한 광기의 산물. 그 막막함에 적응한 자들에게, 정해진 길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무공은 쉬워보이겠지.’
사방팔방이 다 똑같은 풍경으로 보이는 사막 한복판에서 잘 살아남았다면, 평평하게 다져놓은 것도 모자라 이정표까지 다 준비해놓은 길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울 리 없었다.
이대로면 마계로 넘어가기 전에 〈오대존명왕공〉의 10성을, 그 이상의 경지를 목표하는 것도 허황된 일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하데스]로부터 지하세계의 법칙을 다룰 수 있는 식(式)을 받았네. 옛 시대에는 성법(Divine)이나 신성력으로 취급받았던 힘을, 마법사가 쓰게 될 줄이야.”
시몬 마구스를 필두로 한 위클라인의 마법사 대다수가 손에 넣은, [하데스]의 신성력이 좋은 변수가 되어주었다.
중간계와 마계가 완전히 격리되어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 거리에 상응하는 열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걸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관리자의 인정’, 즉 [하데스]였다.
“기본적으로 대마법은 옛 시대의 신화나, 전설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지. 하지만 그 신화의 당사자에게 허락받은 것은, 이 시대의 어느 대마법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네. 마계정벌군의 참가권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야.”
“정품(正品)으로 인정받았다는 소리와 비슷하군요.”
“…그렇게 생각하자니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군. 뭐, 틀린 건 아니겠네만.”
레너드의 말에 시몬의 얼굴이 떨떠름해졌지만,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만큼은 변함없었다.
사명감이나 투지로 움직이는 기사와 다르게 마법사들은 그 경지가 높아질수록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렬해졌다. 7위계를 넘어선 대마법사의 경우에는, 의무감으로 움직일 때 이외에는 공방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드물어질 정도다.
마계정벌과 같은 대업(大業)에서 물러서거나 하진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그에 임하는가와 아닌가의 차이는 컸다.
안 그래도 지하세계의 법칙에 대한 호기심으로 알게 모르게 입소문을 타던 것이, [하데스]가 제공했다는 식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불이 붙어버렸다.
제하이어의 경우에도 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악시오케르소스]의 마지막 조각상이 완성에 가까워졌으니 한 번 확인해보게! 자네의 설명대로 분노에 찬 얼굴, 검을 든 손으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봤는데?.}
“?훌륭합니다.”
수정구 너머로 그 조각상을, ‘부동명왕’의 상을 본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포달랍궁에서 본 상보다 더욱 정교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손에 쥔 검으로 악마들을 베어낼 것만 같은 분위기가 전해져온다. 허신이라지만 그 사도를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기에, 특수금속을 아낌없이 쓴 것도 모자라 귀금속까지 사용해서 옛 시대의 장식품을 모방해냈다.
[하데스]마저도 그 완성도에 작게 감탄하면서, 자신의 신기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를 되찾는다면 손재주를 치하하는 포상을 내려주겠다고 약조했다.그렇게 마계정벌의 때는 다가오고 있었다.
카르데나스도.
위클라인도.
제하이어도.
단 하루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1분 1초를 쌓아올리면서 그 결전의 날을 준비해갔다. [나인헬]의 마족들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을, 반격의 순간을 위하여.
* * *
대회의에서 [나인헬]의 정벌군이 결정되고 난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4개월이 흘렀다.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엊그제와 같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겠지만, 아르카디아 제국과 삼공 가문에게 있어서는 그 밀도의 차원이 달랐다.
일상을 구가하고 있는 제국민들은 물론이고, 제국 외부에서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팽팽해진 공기였다.
가문 내부에 머무르기보다 대외활동이 잦은 기사단도 모두 복귀해서 〈오대존명왕공〉을 수련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여러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던 신비협회는 갑자기 그 문의 절반을 닫아걸더니 거의 모든 대마법사가 잠적해버렸다. 예약된 물품 대부분을 취소하고는 관광객까지 차단하기 시작한 제하이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언가가 벌어지려고 한다.
세계 각지의 권력자들은 그 ‘무언가’를 파악하고자 정보원을 천 단위로 풀어댔지만, 제국 국경을 넘어가기가 무섭게 독이 바짝 올라있던 영룡기사단에게 남김없이 처리되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거늘.
7번 주둔지에서 지저의 천정을 바라보던 [하데스]가 배후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못마땅해하는 것 같은 목소리와 다르게 그 얼굴은 스산하게 웃고 있었다. 등 뒤로 다가오는 자들의 수와 존재감으로, 이번 싸움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었다.
“반 년도 걸리지 않았으니, 제법 서두른 편입니다만.”
―그러냐?
레너드의 말에 앉은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하데스]의 눈이, 아르카디아가 철저하게 준비해온 결과를 돌아보았다.
다섯 명의 기사단장과 다섯 개의 기사단.
세 명의 대마도사와 82인의 대마법사를 주축으로 한 병단의 구성원은 대부분 6위계 이상의 전투마법사다.
제하이어에서 마계의 환경조건에 부합하는 설계로 재구성한 타이탄이 1200기에, 위클라인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골렘이 천 단위로 늘어서면서 때 아닌 장관을 연출했다.
그중에서도 [하데스]의 시선이 머무른 것은, 그가 장군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한 ‘오대존명왕’의 조각상이었다.
―…잘 만들었군. [헤파이스토스]도 인정하겠어.
올림포스의 대장장이, 불과 야금의 신을 회상한 [하데스]가 제 손가락을 뻗어내면서 신격을 드러냈다.
파편밖에 안 남은 상태라지만 올림포스 3주신의 하나다.
부스러기에 불과한 수준의 힘이 날아들어, 다섯 조각상으로 깃들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부리부리하게 뜬 눈에 화염과도 같은 일렁임이 발생하고, 살아움직일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몸엔 실제로 꿈틀거림이 일어났다.
[하데스]가 그 탄생의 순간을 축복하듯이 명령했다.―일어나라, [악시오케르소스]. 지하의 군주가 명하노라.
그와 동시에 ‘오대존명왕’, 아니 [악시오케르소스]로 거듭난 조각상들이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을 맞이하는 기사와도 같은 자세였다.
―아직 언어는 구사하지 못하나보군. 상관없지. 나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한다면, 무언으로 일관하는 것도 괜찮을 터.
그 위용에 만족스러워하는 [하데스]에게, 데미안이 몇 걸음 다가서서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곳에서 꺼내든 것은, 투명하게 비치는 고철조각이었다.
“가문의 창고에서 이걸 찾았습니다. 도움이 되겠습니까?”
―퀴네에(Kynee)의 파편인가. [토르]의 망치에 산산조각났던 것 같은데, 용케 찾아왔구나.
[하데스]의 세 가지 신기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하다는 투구, 퀴네에의 조각은 그 주인에게 돌아가자마자 녹아들면서 크게 열화된 신격을 보충했다.허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존재감이 몇 할이나 더 거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군. 지하세계의 영향력을 더 수월하게 가져올 수 있겠다. ‘바이던트’를 찾는다면 그 파편이라도 상관없으니 다 가져오거라. 투구 이상으로 영역쟁탈에 효과적일테니.
데미안에게 그렇게 말한 [하데스]는 다시 뒤돌아서서, 눈에 해로울 정도로 일렁거리는 지옥문을 향하여 걸어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이 나아갈 때마다 지하세계의 군주답게 그 힘과 격을 높여나가서, 문 앞에 당도하니 옛 시대의 풍모와 같이 갑옷과 망토를 휘날리는 형상으로 변한다.
투명의 투구도, 풍요의 뿔도, 창도 잃어버렸지만.
―너의 정당한 주인이 돌아왔으니, 문을 열지어다!
명왕의 자격만큼은 잃지 않았다는 듯이, [하데스]가 거세게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헬게이트]의 반경이 확장되었다.
기사단 하나가 돌격해도 될 정도로 넓고 큰 범위였다.
이 현상만은 반대편에서도 관측할 수 있겠지만, 마족들에게 그걸 대응할 수 있는 여유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 주변에 그렇게 많이 몰려있진 않다만, 전투를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교전해야할 터. 준비는 되었느냐?
[하데스]의 경고에 호응하듯이 앞으로 걸어나온 것은, 단장 레너드를 필두로 한 황금룡기사단 전원이었다.힘의 밀도에서 타 기사단보다 압도적인 수준을 자랑하기에, 최선봉에 내세울 봉첨(鋒尖)으로서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상관없습니다.”
―훗, 좋다.
마계정벌군을 한 차례 둘러본 [하데스]가,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기세로 손을 들어올렸다.
―내 왕국을 되찾으러가자, [악시오케르소스]! 길을 열어라!
쿠궁, 쿠궁하고 지축을 뒤흔드는 발소리와 함께 조각상들이 질주해서 [헬게이트]의 표면으로 뛰어들었다.
제하이어의 솜씨와 특수금속, 신의 가호까지 내려진 동상의 전투력은 이미 전략병기에 가까웠다. 고위 마족이라도 간단히 파괴하고 말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황금룡은 들어라.”
[하데스]와 조각상들의 뒤를 따르듯이, 제 묵검을 뽑아올린 레너드가 수하들에게 말했다.“우리들이 바로 아르카디아의 최선봉이다! 내가 정지하라고 할 때까지, 한순간도 걸음을 멈춰세우지 마라!”
“““아르카디아에 승리를! 황금룡에 영광을!”””
“마계정벌의 시작이다?! 나를 따르라?!”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투지와 함성에 등을 밀리면서, 발을 내딛은 레너드가 [헬게이트]의 표면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