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6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66)
혐오스러운 색채로 일렁이는 표면을 넘어서, 그 건너편으로 분출된 레너드의 코끝으로 유황냄새가 스쳐지나갔다.
마계(魔界).
그 대기성분조차 유해하기 그지없으며, 살이 그을릴 정도의 열기가 상온(常溫)으로 작용하는 땅. 귀곡성처럼 높게 우짖는 바람에서 묻어나오는 악취는 이미 맹독의 영역에 도달해있다. 썩어문드러진 주검으로부터 뿜어져나온 가스가 쌓이고 쌓여서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을 지경이었다.
부정한 색채로 물들어있는 하늘에서 눈을 뗀 레너드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쿠과과과과과과??!!
그들보다 앞서 진입한 [악시오케르소스] 5기가, 파죽지세의 기세로 적 전열을 돌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다만티움과 미스릴의 합금으로 된 동체에, 그 표면장갑에 새겨놓은 것은 오리하르콘을 아낌없이 쓴 회로다. 그렇게까지 돈을 쏟아붓고도 저 중량의 동상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수준은 어려웠지만, [하데스]의 가호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오대존명왕의 형상을 빌려왔기 때문인지, 옛 문헌의 기록과 유사하게 보이는 힘을 사용하는군. [하데스]가 그들의 권능을 파악하고 있을 리 없는데.’
부동명왕의 동상이 휘두르는 검과 밧줄을 따라서 그 권능이 담겨있는 불길이 솟아오른다. 성스럽기까지 한 화염에 접촉한 마족들은 살얼음처럼 녹아내리고, 트롤보다 더 강한 재생력도 무력화당한 채로 잿더미가 되었다.
화생(火生).
연소현상에서 기인하는 불꽃과 달리 부동명왕의 화염능력은 이 세상을 비추고, 악마와 번뇌를 태워없애는 권능이다. 그걸 다 재현해낸 [악시오케르소스]의 검격은, 단숨에 수십 마리의 마족들을 지워버리면서 길을 열어젖혔다.
항삼세명왕의 동상은 네 개의 손아귀로 움켜쥔 봉이라거나, 금강저로부터 황금의 벼락불을 쏘아날린다.
군다리명왕의 동상은 여덟 개의 팔을 휘둘러서 반경이 수백 미터가 넘어가는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다. 그 회오리에 스친 놈들도, 휘말려든 놈들도 전부 박살내버리는 폭풍이었다.
대위덕명왕의 동상은 여섯 자루의 검을 자유자재로 다뤘고, 금강야차명왕의 동상은 그 주먹질과 발길질로 허공을 때려서 충격파로 온 사방을 휩쓸어버렸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난데없이 천재지변과 같은 습격을 마주한 마족들은 그 목이 터져라 울부짖으면서, [악시오케르소스] 5기의 진로에서 몸을 빼내려고 몸부림쳤다. 화염과 번개, 폭풍과 충격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마족 수백이 만신창이로 바르작거린다.
그리고 놈들이 맞이하게 된 것은 생존의 환희가 아닌, 검과 살의로 무장하고 있는 기사들이었다.
서신류(西神流)
만휘군상절단기(萬彙群象切斷技)
참천절운(斬天截雲)
황금룡기사단의 최선두에 선 레너드가 횡으로 베어긋자, 그 궤적대로 수백 개의 상하체가 분리되면서 피분수를 뿜었다.
본래대로라면 확인사살이 더 필요한 상태였으나, 그는 지금 혈혈단신으로 온 게 아니었다. 황금기사들은 물론이고, 배후로 따라붙어올 후속부대가 알아서 정리해줄 터.
레너드와 황금룡기사단이 할 일은, 마계정벌군이 전개할 수 있는 영역을 신속하게 만들어내는 것.
“진격해라?! 모조리 죽여버려라?!”
창룡후로 거세게 포효하면서 한 걸음으로 음속을 돌파하고, 두 걸음으로 혼비백산한 적의 면전에 도달한다.
황금기사들도 거의 동시에 초음속으로 내달렸다.
신체능력은 반신경 강자들과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는, 카르데나스 최강의 무력집단. 삼공 가문을 통틀어서도 집단의 무력으로 헤아리자면 첫 번째를 놓치지 않는 괴물들이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대위덕명왕검〉으로 전개된 오러블레이드가, 범종과도 닮은 소리를 토해내면서 불적(佛敵)을 포착한다.
황금룡기사단의 총인원은 고작 37명에 지나지 않으며, 단장 레너드를 제외한다면 36명이다. 결사대로 운용하더라도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으나, 병력의 질이 물량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뛰어나다면 또 말이 달라진다.
오러블레이드 없이도 하위 마족들을 도살할 수 있는 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물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푸화아악!
황금기사의 앞을 가로막은 발톱의 마족이 그대로 두 조각이 나버리면서 좌우로 무너져내린다.
미스릴 갑옷보다 더 단단하고 예리한 발톱을 베어가른 검이 몸뚱이까지 절단냈던 것이다. 〈위타복마검〉 이상으로 그 몸과 재생능력에 치명적인 기운, 멸마(滅魔)의 법력이 오러블레이드 내부에 깃들었다는 증거였다.
1선에서 적을 막아내야할 ‘발톱’이 빠르게 무너지니, 뒤에서 틈을 노리려던 마족들은 그 방패를 잃고 황금기사들의 공격에 노출되었다.
카아앙!
그 와중에 일격이나 이격 정도는 막아내는 놈도 있었다.
귀족계급으로 분류되는 마족, ‘이빨’이었다.
정신공격에 특화한 ‘혀’와 다르게 ‘이빨’의 마족들은 뭐든지 다 씹어부술 수 있는 아가리가 달려있는 육체파였다. 그 입에 들어가면, 오러블레이드도 맥없이 산산조각난다. 정확히 검신 한가운데를 물어버린 이빨이 억세게 죄여들어갔다.
하지만.
쩌적…! 쩍…!
〈대위덕명왕검〉의 검강을 물어뜯은 이빨에 거미줄과 같은, 미세한 균열이 퍼져나가더니 곧 살얼음처럼 부서졌다.
제아무리 ‘이빨’의 마족이 [크롬두브]의 치아에서 태어난 놈들이라지만, 그 능력의 격과 밀도는 희미했다. [하데스]에게서 우회적으로 심판자의 자격을 인정받은 기사들에게 대적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파삭, 하고 이빨이 부서지기가 무섭게 목이 날아간다.
귀족 계급조차 3격을 못 버텨내는 시점에서, 전장의 기세는 이미 황금룡에게 넘어와있었다.
남신류(南神流)
일휘소탕섬멸기(一揮掃蕩殲滅技)
그중에서도 가장 큰 활약상은 당연히 레너드의 몫이었다.
신진화멸겁(薪盡火滅劫) 참(斬)
응축되지 않은 열기가 참격 형태로 쏟아져나와, 지평선까지 바글거리고 있는 마족들을 숯으로 바꾼다. 화염마법이면 설령 8위계의 주문이라도 버틸 수 있었겠지만, 정화의 개념이 담긴 불꽃만큼은 감당하지 못했다.
부동명왕의 화염 이상으로 상극에 해당하는 공격이었다.
‘지옥문에서부터 1킬로미터가 좀 넘게 떨어졌나? 이 정도면 정벌군이 모두 넘어오더라도 여유공간이 상당히 남겠군.’
돌아보지도 않고 그 간격을 파악해낸 레너드가 동상 위에서 오연하게 서있던 [하데스]를 바라보았다.
때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하데스]는 피식 미소지었다.
―건방진 것! [제우스]조차 이 지저에서 내게 명령할 자격은 없었거늘, 분에 겨운 영광인 줄 알거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 입가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울 수 없었던 [하데스]가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천 단위를 넘어서 만에 가까운 마족들이 죽어나가면서 피와 시체로 뒤덮인 땅. 마계의 상식대로라면 그 힘은 다시 마족의 탄생으로 환원해야했지만, [하데스]는 그걸 부정하듯이 주인 없는 영향력을 제 마음대로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왕의 귀환이다, 지하세계여! 더러운 찌꺼기를 걷어내고, 내 영토로 돌아오도록 해라!
[하데스]의 신역이 펼쳐지면서 마계를, [나인헬]을 덮는다.다시 말하자면 ‘먹어치운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림이 그려져있는 캔버스 위에 다시 한 번 물감을 칠하듯, [하데스]의 신역으로 덧씌워진 세계는 더 이상 마계라고 부를 수 없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유황 냄새가 사라지고, 대장간에 들어선 것 같았던 열기가 식어버리면서 몸이 서늘해진다.
이전에 레너드가 시몬, 데미안과 함께 방문했던 지하세계와 매우 유사한 공기였다.
‘…다섯 개의 강줄기는커녕 잿빛 평원도 구현되지 않았지만, 범위와 영향력을 더 회복한다면 원형에 가까워지겠지.’
중간계에서 [하데스]의 신역은 일시적으로 구현된 아공간에 가까웠지만, 지하세계에 구현된 신역은 거의 실체화되었다.
유지비용도 거의 없을 것이며, 마계정벌군이 마족들을 죽일 때마다 그 영향력으로 힘과 범위를 넓혀나가겠지. 스틱스강의 맹세가 없었다면 [하데스]에게 이 정도의 회복을 용납하는 일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의 기감에 수백,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게 잡혔다.
“왔군.”
마계정벌군의 등장이었다.
이미 마계에서 지하세계로 돌아온 환경 때문인지, 기사들과 다르게 마법사들은 그 변화에 놀라워하는 표정들이었다.
“이 공간은…벌써 [하데스]의 신역인가?”
“넓은 범위는 아니라지만 그 [크롬두브]의 영향력을 이렇게 빨리 가져올 수 있을 줄이야. 상상 이상이로군.”
“장악력의 감소도 앞서 상정했던 것보다 적어. 이 정도라면 대마법이나 전략마법의 발현도 크게 문제없겠는데.”
수천 기의 타이탄과 골렘들까지 다 걸어들어와서 그 대형을 갖춰서자, 10만 단위의 마족 군세가 밀려들어와도 난공불락에 가까운 형세가 만들어진다.
상륙작전과 마찬가지로 진입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데, 경미한 피해도 없이 안전하게 넘어온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쥐새끼가 한 마리 있구나.
신역을 전개하면서 그 감각범위가 넓고 예민해진 [하데스], 그와 비슷한 타이밍에 기척을 잡아낸 레너드가 날아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계정벌군의 기세를 느꼈는지, 그들에게 다가오려던 마족 하나가 쏜살같이 도망치고 있었다. 저걸 놓쳤다가는 마족들의 대응속도가 몇 단계는 더 가속될 게 틀림없었다.
‘뇌의 마족…?! 이 지역을 담당하는 놈인가! 잡아야한다!’
이전에 본 놈보다는 약해보였지만, 반신급 개체다보니 검격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나 [하데스]의 신역을 벗어나자마자 공간전이를 개시할 놈이니, 2번 이상의 공격을 이어붙일 틈은 없어보였다.
일격필살(一擊必殺).
그 각오에 상응하는 힘이 심상세계에서 솟아오른다. 주작과 현무, 신격화의 영역에 도달해버린 기운 두 줄기가 손아귀로 흘러들어와서 한 자루의 검에 담긴다. 여명이나 황혼, 어둠과 빛이 공존하듯이 검신 표면에서 신기가 일렁거렸다.
일원오행신검(一元五行神劍)
반신경의 규격을 넘어선 힘을 동원하느라 온몸이 다 삐걱댈 정도였으나, 그렇다고 하나만 동원했다간 그 반대쪽의 기운을 억누르지 못하게 된다.
〈일원오행신검〉은 이제 신화경을 돌파하거나, 음양태극으로 힘을 안정시키지 않는다면 쓸 생각을 버려야했다.
그래도 일격만큼은 가능하다.
약한 놈이라도 반신급 개체를 매장할 수 있을 만큼, 신검의 완성도가 크게 올라가있었다.
쌍신오의(雙神奧義)
일검(一劍)
태극무상참(太極無相斬)
초고속으로 비행하고 있는 마족의 등 뒤에서 레너드가 검을 내리그었다. 아직 수 킬로미터의 간격이 남아있는데도, 검격을 내리치는 사이에 또 수백 미터나 멀어졌는데도.
〈태극무상참〉이 펼쳐진 순간, 레너드는 그 자리에 멈췄다.
더 움직여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지켜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 ■■■■?”
뇌의 마족, 델로스도 의아했는지 투명한 두개골 안에 둥둥 떠다니던 뇌의 송과선이 꿈틀거렸다.
그러면서도 날아가는 것을 멈추거나 하진 않았다.
이제 [하데스]의 신역범위도 다 끝나서, 공간전이로 도망칠 수 있는 영역이 코앞이었다. 생존의 환희로 뇌가 현란하게 몇 차례 깜빡거렸다.
“■■■■■■…?!”
놈이 이상현상을 감지한 것은 그 직후였다.
전속력으로 날아가는데도 거리가 더 좁혀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었다. 눈앞이었던 것이 지평선 너머로, 그 너머로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이 비현실적일 정도였다.
놈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외부에서 관측하면 놈의 주변으로 구현된 태극문양이 시공간과 함께 축소당하고 있었다.
음양은 곧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기반이지만, 발산되지 않고 안으로 수습한다면 공(空)으로 떨어지게 된다. 범위 안에 있는 삼라만상을 허무로 돌려놓는 일검.
이것이야말로 두 종류의 신을 총동원하는 신검오의.
〈태극무상참〉이다.
꾸드드득.
마침내 그 태극문양에 사로잡힌 마족이 주변 시공간과 함께 찌그러지자, 레너드도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마계정벌의 시작부터 판이 어그러지는 것은 모면한 셈이다.
“…갈 길이 멀어보이는군.”
뇌의 마족을 추적하느라 고공까지 올라온 덕분에, 레너드는 저 멀리 펼쳐져있는 [나인헬]의 정경을 볼 수 있었다.
팔열지옥(八熱地獄)과는 거리가 좀 멀어보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 모두가 고통스러울 것 같은 세계였다.
유황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연기가 구름 대신에 꿈틀거리고, 마족이나 마물들이 서로 죽이고 잡아먹으며, 더럽고 일그러진 마나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계정벌군이 수복해야하는, 지하세계의 오염된 형태였다.